복 있는 사람은 사명의 사람이다. 복(福)이란 글자를 해자(解字)하면 밭에서 일하는 한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즉 사명의 자리에서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킨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맡은 사명은 그 동산을 잘 지키는 것이었다. 아담은 금지된 선악과를 명심해야 했는데, 그는 실패하며 실락원의 시간을 살게 됐다. 인류의 시조였던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마귀의 보이스피싱에 걸려 들었던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네가 바로 하나님이 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순종과 불순종의 길에서 아담은 불순종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축복을 잃게 됐다. 축복만 잃은 것이 아니라 저주와 사망으로 튕겨져 버렸고, 마귀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간관계의 갈등이 심화되고,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차단돼 버렸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자리에 서지 않고, 교만한 자들과 합석하지 않는다. 그는 애오라지 여호와의 율법을 사모하여 작은 소리로 읊조리고 읊조린다. 약을 삼키듯이 말씀을 삼켜 자기 영혼에 작용하게 한다. 그는 다윗처럼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분 위한 시어(詩語)를 고르며 행복한 봉헌(奉獻)을 올린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형통함 같이 사철 푸른 사람이 된다.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살아가는 그는 고진감래의 표상 요셉 같고, 생명보다 신앙의 가치를 더 귀하게 생각했던 다니엘 같은 사람이다.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는 지는 것 같지만 이기고, 낮은 것 같지만 높으며, 멍청한듯 하지만 가장 지혜롭다. 악인들은 잠시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입김에 먼지처럼 훅 날아가고 만다. 곧 들이닥치는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 죄인들은 의인들의 모임에 낄 수 없는 것이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사람에게 신의를 지키는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 인정받게 된다. 악인들은 망하는 것이 필연이고 망하는 운명으로 정해졌으나 악한 자의 시야에는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악인은 자신이 얼마나 오만방자한지 깨닫지 못한다. 노아 홍수 때 타락한 사람들은 "부어라, 마셔라" 하며 날마다 주지육림에 빠져 자신들의 쾌락만 추구했다. 이웃이 살든지 죽든지 관심 밖이며 지독한 이기주의에 인생을 내던졌다. 소돔과 고모라 땅은 정상적인 가정은 도로 손가락질 받을만큼 극한 동성애로 물들었고, 심판을 전하러 온 천사들까지 겁탈한다고 집밖으로 내놓으라고 롯의 집 문을 부서질만큼 두드려댔다. 그러니 타락한 그 도시에 하나님의 심판의 유황불이 비처럼 쏟아졌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태양은 찬연히 운행한다. 먹고 살기 위해 이마에 땀 흘리는 것은 한 가족을 부양하는 수단으로써 귀하다. 그보다 귀한 것은 사명의 삶으로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할 때 우리의 호흡은 복된 삶으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