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우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양한 요리와 음식 문화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인류의 역사를 함께 해왔습니다. 특히,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발명들은 우리의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죠.
그런데, 이러한 음식 발명 중 상당수가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여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가정에서, 주방에서, 실험실에서 새로운 맛과 조리법을 창조해 왔습니다.
8월의 마지막 주 뉴스레터에서는, 여성들이 발명한 음식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열정과 지혜가 어떻게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름하면 빠질 수 없는 간식인 아이스크림부터 시작해 볼까요?
아이스크림 메이커
얼음을 구하기도 힘들고, 설탕 등의 재료 값이 비싼 아이스크림은 옛날부터 귀족들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즐겼던 음식입니다. 특히 얼음을 보존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들이 쉽게 먹을 수 없었죠. 16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한 과학자가 얼음에 소금을 뿌리면 얼음의 녹는 시간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얼음 저장법이 한걸음 발전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일반인들에게 아이스크림은 구경하기도 어려운 음식이었습니다.
이런 아이스크림을 간편한 간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발명한 인물이 바로 낸시 존슨(Nancy Johnson)입니다. 184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가정주부로 살던 낸시는 오랜 연구 끝에 나무통으로 수동식 냉동기를 만들어 '최초의 아이스크림 제조기 발명자'라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이 기계는 부드럽고 크리미한 질감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수동 크랭크와 패들이 있었습니다. 외부 통에 부순 얼음을 채우고 내부 롤러에 아이스크림 재료를 넣은 다음 수동으로 크랭크를 돌리면 재료들이 섞이는 원리입니다. 이러한 낸시의 발명품은 누구나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고,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초콜릿 칩 쿠키
디저트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초콜릿 칩 쿠키 또한 여성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심지어 루스 웨이크필드(Ruth Wakefield)는 '실수로' 초콜릿 칩 쿠키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1930년, 루스는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한 고속도로 요금소 한쪽에 작은 식당을 운영했습니다. 그만의 시그니처라 부를 수 있는 후식은 바로 직접 구운 쿠키였습니다.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았죠.
그러던 어느 날, 초콜릿 쿠키를 구울 초콜릿 반죽이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고심하던 루스는 옆에 있던 초콜릿을 조각내어 쿠키 위에 얹어 오븐에 구웠습니다. 초콜릿이 녹아 반죽 속에 스며들면 초콜릿 쿠키처럼 진한 갈색이 될 거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븐에서 꺼낸 쿠키 위의 초콜릿은 전혀 녹아 있지 않았습니다. 루스는 당황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쿠키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스 웨이크필드
그런데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초콜릿이 그대로 박힌 쿠키는 맛있었고, 손님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루스가 넣은 초콜릿은 네슬레사의 초콜릿이었는데요. 루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네슬레사에 이 초콜릿 칩 쿠키 레시피를 제공하는 대가로 평생 쓸 초콜릿을 받았습니다. 네슬레 사는 이후 초콜릿 봉지 뒤에 루스의 레시피를 실었고, 초콜릿 칩 쿠키 레시피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루스는 이 쿠키를 '톨 하우스 크런치 쿠키(Tollhouse Crunch Cookie)'라 이름을 붙였고,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간식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냉동피자
이탈리아 이민자 부모의 일곱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난 로즈 토티노(Rose Totino)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성공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던 양친으로부터 헌신적인 직업 윤리를 배웠습니다. 1951년, 그와 그의 남편은 작은 피자 가게를 열었습니다.
포장 피자만을 제공할 의도로 식당을 열었으나 손님들은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원했습니다. 피자가 너무 맛있는 탓이었죠. 로즈는 무려 하루에 400~500개의 피자를 만들었습니다. 사업을 확장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로즈는 이에 멈추지 않고 손님들이 식당이 아닌 집에서 피자를 구울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했습니다.
냉동식품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던 1962년, 로즈는 냉동 피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냉동 피자 업계의 첫 번째 브랜드로 자리하게 된 것이죠. 로즈의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고, 로즈의 냉동 피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냉동 피자가 되었습니다. 1979년에는 냉동 피자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크리스프 크러스트 기술은 특허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피자 크러스트가 냉동된 후에도 구워질 때 바삭함을 유지할 수 있죠.
1981년에는 냉동식품에 진입할 방법을 모색하던 회사 필스버리(Pillsbury)가 그의 사업체를 사겠다고 제안합니다. 사업 감각이 뛰어났던 로즈는 1,600만 달러의 제안을 거절하고, 2,000만 달러를 지불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필스버리의 첫 여성 부사장으로 임명되었고, 냉동식품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첫 여성으로 자리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자선 단체와 대학교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며 가진 것을 베풀며 살았습니다.
브라우니
브라우니는 1893년 사교계 명사이자 자선가인 버사 팔머(Bertha Palmer)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뛰어난 음악가이자 유능한 언어학자, 작가, 정치인으로 명성을 얻은 인물입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지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세계 콜럼버스 박람회의 이사회 의장을 맡은 버사는 셰프에게 상자에 넣고 운반하기 쉬운 재료로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도록 지시했습니다. 파이 한 조각보다 먹기 쉽고, 도시락에 쉽게 담을 수 있는 작은 디저트를 원했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브라우니입니다.
박람회에 등장한 브라우니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시카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인기가 퍼져나갔습니다. 이 요리를 만든 이는 셰프이지만, 버사의 영향력 덕분에 지금의 우리도 맛볼 수 있게된 것이죠. 박람회가 열렸던 시카고의 팔머 하우스에서는 오늘날에도 그 유산을 자랑스럽게 보존하고 있습니다. 100년 된 레시피에 따라 만든 브라우니를 대접받을 수 있으며, 브라우니의 숨은 영웅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왼쪽은 페니 파머, 오른쪽은 페니가 보스턴 쿠킹 스쿨에서 가르쳤던 학생이다.
하지만 팔머 하우스의 디저트를 브라우니라고 불렀다는 증거는 없고, 누가 처음으로 브라우니라고 불렀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보스턴 쿠킹 스쿨 요리책에 브라우니 레시피를 처음으로 실은 사람은 페니 파머(Fanny Farmer)로, 1896년 직사각형 팬에 굽는 쿠키 레시피를 각색했습니다. 하지만 그 레시피에는 초콜릿이 들어있지 않았죠.
초콜릿 브라우니의 첫 번째 알려진 레시피는 마키아스 요리책에 실렸습니다. 초콜릿, 밀가루, 우유, 베이킹 소다 등 브라우니에 필요한 모든 재료가 들어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여성의 레시피가 어떻게 메인 요리책에 실렸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페니는 초콜릿이 들어있지 않은 브라우니와 초콜릿이 들어간 브라우니 레시피를 포함한 요리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렇게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브라우니는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달콤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떡볶이
많은 사람들의 소울푸드라 불리는 떡볶이 또한 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입니다. 먼저, 떡볶이의 역사를 짚고 가자면 조선 말기에 편찬된 저자 미상의 조리서 '시의전서'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흰 가래떡과 등심, 버섯 등을 함께 볶아 만들던 고급스러운 궁중음식으로 설명합니다.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궁중떡볶이는 사실상 빨간 떡볶이와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이죠. 현대의 매콤한 고추장 떡볶이는 1953년 마복림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마복림은 집안의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중국 음식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 식구들을 보면서도 요리에 손대지 못했던 그는 개업식 떡을 먹었고, 그러다 실수로 짜장면 그릇에 떡을 빠뜨리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맛이 좋자, 마복림은 비싼 춘장 대신 고추장을 이용해 떡볶이를 만들어냈습니다.
마복림 떡볶이 가게 모습
마복림은 서울 신당동 공터에서 길거리 식당 음식으로 이 떡볶이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1970년대 "임국희의 여성살롱"이란 프로그램에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소개되었고, 떡볶이집 DJ가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더불어 정부에서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밀가루 장려 운동'을 펼치면서 더욱 떡볶이가 대중화되었죠. 지금도 떡볶이 가게가 밀집된 신당동 골목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역사와 추억이 담긴 의미 있는 음식인 떡볶이는 여남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국민 간식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음식들은 단순히 한 끼의 식사를 넘어,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이 만들어낸 음식은 우리가 즐기는 음식 문화의 한 축을 이루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음식 속에 숨겨진 놀라운 여성들의 기여를 다시금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메뉴로 떡볶이를 제안해보겠습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이런 비밀이 있었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