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주는 의미
김학영
나는 요즈음 새벽에 일어나 소리를 듣는다. 자동차가 아파트 지
하주차장을 빠져 나오느라 빽빽거리며 감지기를 울리는 소리, 이른
새벽부터 값을 더 받기 위해 도깨비시장으로 가는 것인지 멀리서부
터 털털거리며 달려오는 경운기 소리, 사방이 죽어있는 사이 소리
없이 내리는 새벽빗소리, 그리고 너무 일찍부터 토해 재끼는 주정뱅이
구토소리.
그는 아마도 상당한 이물질을 보도 블록과 차도사이에 토해 놓았
을 것이다. 그리곤 더 많은 비가 내려 그가 쏟아놓은 이물질들이
쓸려내려 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새벽에 듣는 소리 중엔 이렇듯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 소리 중
에서도 듣기 좋은 소리는 새벽닭 우는소리다. 아직도 토종닭을 놓
아 먹여 기르는 곳이 있는지 꼬꼬댁 하면서 새벽을 여는 그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그 소리는 어느 기상 나팔소리보다 듣
기 좋고 그 어느 행군가 보다도 이 있으며 운치가 있다. 그리고
내리는 듯 마는 듯 창가에 떨어지는 여린 빗소리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정서를 내게 주는데, 차마 진종일 내려도 창호지 한 장 못
적실 자세로 부서진 빗 가루로 내리 건만 어느 사이 굵은 물방울을
창문에 맺혀 놓곤 한다.
새벽에는 이렇듯 듣기 좋은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이이 하고 지겹게 울어대는 형광등 소리도 있고, 우억 우억 하면
금방 무엇이라도 당장 잡아 삼킬 듯한 모습으로 울부짖는 고압선
소리가 있다. 그 소리는 가까이에서 들으면 정서가 불안해진다.
나는 처음 그 소리의 실체를 몰라 몇 번이고 밖을 내다보았던 적
이 있다.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에서 나는 소리인줄 알고 새벽 미
명임에도 창을 통해 보이는 도로 위의 차들을 낱낱이 살펴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 할지라도 우리 집은 집 주위의 가로
등불로 인해 어느 만큼의 시야는 항시 트여있기에 가능한 일이었
다. 그런데 그것이 정작 우리 집 아래를 지나는 고압선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다섯 식구가 일제히 창 밖을 내다보고도 알 수 없던 그 소리를 엉
뚱하게도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우리 예찬이가 알아낸 것이다. “엄
마 전깃줄 이가 우악 우악하고 울으네.” 그 소리는 바람 부는 날
이면 더 크게 났고 비오시는 날이면 더욱 음산하게 들려와 창문을
닫는다.
지난주 아버님의 묘역에서 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숲
속의 군수 님’이 되어 오랜만에 행복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풀
벌레들이 한데 얼려 일제히 울어대는 작은 교향악단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몸둥아리를 숨긴 채 울어대는 쓰르라미 소리를 마
치 연주회가 끝난 뒤 각자의 악기를 가지고 팬 서비스를 하는 재즈
독주회의 모습으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늘 이런 소리만 듣고 살고 싶다. 사운 대는 나뭇가지 흔들
리는 소리,담장이 덩굴 휘감기는 소리, 갈대 서걱 이는 소리,돌
사이를 부벼대며 흘러내리는 시냇물소리, 꺾일 듯 꺾이지 않는 흔
들리는 코스모스소리, 또 들을 수만 있다면 이른 아침 나팔꽃 피는
소리도 듣고 싶고 채송화 피는 소리도 듣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도심에선 거의 듣기 힘들게 되어버린 예배당의 종소리까지도 듣고
싶다. 그러나 인생을 살면서 어찌 좋은 소리만 듣고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을 만드실 때도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만드
셨듯이 음과 양은 반드시 교차하게 되어 있는 법. 벽 하나를 사이
에 두고도 만감이 교차되는 것이 현실인 것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접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옆 건물은 태권도 체육관인데 아이들의 구령소리가 듣기 싫
은 소음이다. 그 소리는 마치 개골개골 하고 울어대는 개구리 울
음 소리처럼 들리면서도 영 듣기가 좋질 않다. 한적한 들녘에서
듣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초등학교시절 불러 본 돌림노래(윤창)같아
서 참 듣기가 좋은데, 왠지 모르게 체육관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구령소리와 기합소리는 보통의 인내 가지고는 감내 해낼 수 없는
고역스러운 소음이다. 그 소리가 개구리 울음소리와 거의 흡사한
데도 말이다.
너희가 어린아이를 닮지 않고는 결코 아버지 나라를 볼 수 없느
니라고 주님께서는 누차 말씀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스트레
스를 받지 않으려 해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번 문학기행에서도 나는 이런 류의 스트레스 받은 소리를
들어야했다. 다른 장르는 몰라도(詩)만큼은 타고 나야된다는 것,
즉 선천적인 소질이 없이는 시를 쓸 수 없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십 사만 사천명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는 어느 사이비 종교를 대하는 것 같았고, 더더욱 그 이론이 천국
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정해져있다는 칼빈의 ‘예정서’같은 억
지 이론처럼 자꾸만 난해하게 느껴져 어지러웠다.
어떻게 시인이 타고난다는 말인가. 내가 알기로는 시인이란 뼈
를 깎는 듯한 각고의 노력을 통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떻게 타고난단 말인가. 극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도대체 이해
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이제 이 땅에 시인의 수효가 너무 많아
옥석을 구분하기가 이든 시대가 되었다고 하는데, 시인이 태어나
는 것이라면 그처럼 그 수효가 비온 뒤의 냇물처럼 범람할 수 있겠
는가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무엇 때문에 그때 그렇게 내심으로
흥분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작가도 아니면서 수필가는 더욱 아니
면서 말이다.
본격적으로 퍼부어 대는 빗소리, 개울물 불어나는 소리 속에서도
계속해서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시 낭송 순서가 시
작되면 그제서야 나는 겨우 그 상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몇
편 되지 않는 자신의 암송시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야 했기 때문이
다. 남들이 다 아는 흔한 시여서도 아니 되겠고 또한 너무 긴 시
여서도 아니 될 것 같았다. 자칫 암송도중 시구를 잃어버릴 염려
도 있겠기에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시 낭송에서 타고난 시인보다
훨씬 더 많은 박수를 받았고, 육담 대회 때에는 그 시인이 네게 필
적을 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거리를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다.
엉뚱하게도 잠시 통쾌했었다.
이 졸렬한 통쾌함. 이 졸렬한 통쾌함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깊이 생각 해본 결과 질투
심에서 오는 것임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시인의 오만이
얄미워서니 뭐니 하면서 애써 항변하는 것 같았지만, 궁극적인 이
유를 검토해본 결과는 순전히 질투심 때문이었다. 자신은 쓰지 못
하지만 그 분들은 쓸 수 있다는데서 오는 말도 되지 않는 질투심
말이다.
십 년은 써야만 그 형태가 잡힌다는 시를 쓰는 분들에게 경의는
표하지 못할망정 되지도 않는 질투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
지 못하면서 산 것 같다. 내가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 듣는 것을
좋아하듯, 남들도 좋은 소리만 듣기 좋아할 것이 인지상정일진데
가급적이면 듣기 좋은 소리를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타인에게 나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상
처를 주는 소리를 하고 살아왔고 또 얼마나 고통을 주는 말을 하고
살아 왔던가. 이제부터라도 그러하지 말자. 어린아이 걸음마 배우
듯 말을 다시 배우자. 그리해서 속에서부터 거르고 걸러 순화된
언어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언행이 일치가 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적어도 9월부터는 최소한 구
토소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지 말자는 결단을 해보았다. 그
래 9월부터는 졸작이 되건 말건 자신이 글만 쓰면 좋아하는 아내에
게 열심히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일 학기 때 병원생활로 인해 내내
얼룩졌던 가정의 평화를 일신 해보는 거다. 그리하여 9월에는 헷
세의 시처럼 잊었던 옛 노래의 멜로디를 생각하듯 묵혀 두었던 기
타를 찾아보자. 그리고 아무리 올려드려도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찬양소리를 올려드리자.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라 하였지 않은
가. 그리고 매매일 새벽을 열어 참 인격의 면모를 글을 쓰는 과정
을 통해서 배워보자. 그리해서 9월부터는 속이 꽉 찬 소리, 머리
속에 옳게든 소리, 타인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소리
만 골라 할 수 있는, 즉 사랑의 소리만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소리
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1999.
첫댓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속이 꽉 찬 소리, 머리
속에 옳게든 소리, 타인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소리만 골라 할 수 있는, 즉 사랑의 소리만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소리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