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부터 한국인의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조연이 아닌 주연의 자리를 차지한 라면.
‘눈물젖은 라면을 먹어본 적 있는가.’ 부식으로 라면을 먹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생존’을 위해 라면을 먹는 사람도 있다. 칠전팔기의 대명사, 프로권투 홍수완 선수도 어려운 시절 눈물젖은 라면을 곱씹으며 챔피언을 꿈꿨다고 한다. 일명 ‘헝그리 정신’. 탁구 금메달리스트
현정화 선수와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800m, 1500m, 3000m를 제패하며 3관왕을 차지한
임춘애 선수도 이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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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젖은 라면을 먹어봐야만 인생을 논할 수 있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
그 누군가는 눈물젖은 라면국물을 먹어본 사람만이 인생을 논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물론 라면국물대신 빵이 들어가기도 한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야만 참된 인생을 논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여전히 세상살이는 빠듯하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일구고 있다. 그들의 주된 주식이 바로 라면이다.
꿈을 그리며 라면을 밥 먹듯이 먹는 그런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끓여먹으면 그만인 라면이지만 보통 분식집에선 2,000원은 줘야 하는 것이 라면. 그 라면을 단돈 1,000원에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노량진에 위치한 ‘1000FOOD’다.
“자장면과 라면에다 공기밥을 추가해도 단돈 2,700원”‘천라면(1,000원), 천일우동(1,100원), 천이짜장(1,200원), 천사국수(1,400원), 천배짜장(2,000원), 공기밥(500원), 천팔짜장밥(1,800원), 꼬마김밥 2개(500원) 4개(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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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FOOD의 젊은 사장 김우빈(27) 사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요식업을 시작, "일단은 안정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
아무리 많이 내도 3,000원이며 배가 터질 정도로 먹을 수 있다. 대부분의 메뉴가 1,000원인 데다가 100원짜리 동전 몇 개만 보태면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 수도 있다. 자장면과 라면에다 공기밥을 추가해도 단돈 2,700원.
자장면 한 그릇이 보통 3,000원에서 3,500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놀라운 가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수지가 맞을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될 정도. 저렴한 가격이 가능한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1000FOOD의 젊은 사장인 김우빈(27)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노량진이 대부분 싸요. 노량진만 거의 10년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하죠. 바꿀 수가 없어요. 전국에서 올라와 장기적으로 생활하는 고시생과 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다보니...점심과 저녁 수업시간이 끝나면 줄서서 기다려야 되죠. 보시다시피 안이 그리 넓은 편은 아니라서요.”
‘학원의 메카 노량진’이라는 이름답게 대낮에도 거리에서 공무원부터 대입, 재수, 편입을 준비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고, 김 사장이 설명했던 데로 가게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물론 요금은 선불이고 ‘
셀프 서비스’다. 물과 노란 단무지는 직접 퍼야 하고 다 먹은 빈 그릇은 퇴식구에 반납해야 한다. 이집을 찾은 대부분의 손님이 익숙한 듯 음식을 내오고 단무지를 떠오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은 단 3분을 넘기지 않는다. 바로 초스피드 박리다매. 이것이 1000FOOD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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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과 자장면, 그리고 공기밥. 단돈 2,700원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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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 남짓한 공간은 쉴 새 없이 손님으로 가득하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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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시생이 맛깔스럽게 라면을 먹는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
“‘싸니까 허접하다’, ‘싼 게 그렇지 뭐’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어요”라면을 넣은 양은냄비 4~5개가 한꺼번에 팔팔 끓기 시작하면 젊은 사장의 손놀림이 분주해진다. 면발의 쫄깃함을 살리기 위해 집계로 면발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파와 고춧가루도 잊지 않는다. 자장면도 마찬가지. 라면과 자장면의 맛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이집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라면과 자장면의 맛은 보통가게의 그것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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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한 면발을 위해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
“‘싸니까 허접하다’, ‘싼 게 그렇지 뭐’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어요. 손님들이 그런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죠. 떡, 계란, 김치라면은 1,200원인데 계란라면 같은 경우 보통 계란 반개를 넣기도 하지만 저희는 한 개 다 넣어요. 김치도 안사오고 직접 담근 김치를 쓰구요. 체인이다 보니 면이나 이런 것은 들어오는 것을 쓰지만 대부분의 재료는 신선한 재료를 사다가 쓰고 있어요. 물론 우동국물 같은 경우엔 아침에 일찍 나와서 제가 미리 만들어 놓죠.”
젊은 사장의 굵직한 자존심이 저렴한 가격에도 ‘싼티’나지 않는 음식을 내오는 비결이었다.
“한번 온 사람은 다시 또 들를 수밖에 없다”는 김 사장은 “3일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라면으로 때우며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던 고시생을 잊을 수 없다”며 웃음을 보였다.
가난한 주머니를 두툼하게 만드는 그곳, 1000FOOD. 애써 찾아가려면 먼 걸음이지만 우연히 들린 김에 찾기엔 딱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