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老年期) 가을철을 어떻게 맞이할까?
어느덧 가을의 계절이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
하늘이 높아지고 파란색으로 변하고 있다.
빛의 미묘한 변화로 시작되는 계절 변화다.
달력은 이미 입추(立秋, 8.7)가 지나
여름 기운이 꺾인다는 처서(處暑, 8.23)도 지나갔고
9월의 중순에 접어들었다.
10월 초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언제나 한가위 날 같아라!”
이제 추석이 기다리고 있다.
머지 앉아 첫 서리가 내리고
기러기가 먼 하늘로 떠나는 계절이 오리라!
우리는 세월 따라, 자연 따라,
씨줄 날줄로 생을 엮어간다.
필자가 제주도 올레길을 걷다가
할머니들이 따스한 햇볕 속에
고추말리는 모습을 보고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정자나무 밑에서는 노인들이 한 잔 술을 기울이며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는 듯하였다.
노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어렵게 꾸역꾸역 견디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천사가 노인들의 구부러진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는 듯하다.
쉴만한 그림자를 만들어 주던 나무 잎이
바람 따라 조용히 자신의 길을 간다.
풀밭에는 메뚜기가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사마귀, 곤충이 쉴새 없이 더듬이를 움직이며
어디론가 점프한다.
그러면 가을철을 맞이하는 우리 모습은 어떤가?
4계절 중에 가을철 하면 어떤 의미가 떠오르는가?
셰익스피어는 “아이를 낳는 가을”
(childing autumn)이라고 표현했고,
(※ childing:
① 아이를 낳는 ② 임신한 ③ 아이꽃을 피우는)
까뮈는 가을을
“꽃이 떨어지는 제2의 봄”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봄은 생동(生動)을,
여름은 충만(充滿)을,
가을은 추억(追憶)을,
겨울은 분노(憤怒)를 상징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노인들에게 가을은 무엇인가?
영어로 가을은 떨어지다(fall),
죽음(die)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가을은 노인들에게는
분명히 지평선 밖으로 사라지는
저녁노을을 연상케 한다.
어느덧 가을철이 되어
마당에 꽃잎이 날리고
꽃씨가 땅에 떨어진다.
가을은 아름다운 꽃을 잃지만
풍성한 열매를 얻는 계절이다.
그런데 가을은 남자를 위한 계절이요,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왜 가을이 그렇게 쓸쓸할까?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나무 잎이 떨어지고
우리 사랑도 쓸쓸해져서 그럴까?
아니면 여름에 내리는 비가
힘이 있었는데
가을비는 힘이 없어서 슬픈가?
그러나 가을철에는
나무 그늘과 햇볕이 줄어들고
꽃도 떨어지면서
나비와 꿀벌은
잠자기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낙엽들은 조용히 겨울철로 가는 길목에서
점차 붉게 혹은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태양이 잔디에 내려와 눕고
낙엽은 아래 세계로 돌아간다.
갈색으로 변하는 나무 잎은
마치 백발이 돼 가는 노인과 비슷하다.
한 없이 흔들리는 산등성의 억새풀은
나의 백발머리와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가을 노인들이여!
노년기를 살아가는 당신은
가을철 준비를 어떻게 하는가?
늙음이 빨라지는 세월 속에서
사람마다 떠 올리는
수 만가지 이미지가 있겠으나
유독 가을철만큼은 남성, 남성노인들에게는
무언가 다가오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예부터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나약한 비애의 정서가 자리하는 듯하다.
가을철에는 슬픔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노인의 눈물, 남자의 눈물이
더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즉 “가을 남자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이것이 노년기 자기존재의 물음이다.
늙었다고 골방에 쳐 박혀 있을 수는 없다.
늙으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집에서 나오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그렇다면 망설이지말고
높은 하늘 밑에 길을 정해 떠나보자.
당신만을 기다리는 멋지고 숨겨진
핫 플레이스(Hot place)찾아 가는
용기를 내 보자.
아니면 남성의 상징인 트렌치 코드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멋진 노인으로서
옛날 친구를 만나보자.
카페에서 혹은 품위있는 레스토랑에서
심플한 매력으로 커피를 마시고
셰프(chef)가 추천하는 맛 나는 식사도 해보자.
가을 노인으로서의 멋쟁이 스타일을
실천해 보자는 말이다.
걸으면서 지나간 생애가 흰 구름처럼 몰려오는가 하면
먼 미래까지 상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꾸미지 않은 자연이 좋아서
텃밭을 가꾸고
정원의 잔디풀을 뽑는 재미도 있다.
여름내 가꾼 호박이 제법 황금색을 띄며
풍성한 모습으로 익어가고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살찐 고추가 햇볕아래 붉은색을 자랑하고있다.
힘들게 심은 고구마를 노루, 고란이가
다 뜯어 먹어도 괜찮다.
텃밭 수확물을 이웃들과 나눠 먹는 것도
남다른 기쁨이다.
마당에는 분꽃, 맨드라미꽃, 백일홍, 감귤나무가
자기 존재를 알리며 주인을 매일 불러낸다.
많은 꽃들이 생명이 씨앗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가을은 자연의 재탄생을 준비하는 시기다.
이제 꽃씨들을 받아놨다가
내년 봄에 다시 생명을 주어야 하겠다.
나무는 내년에 다시 깨어나도록
더 사랑해야 하겠다.
가을철이 지나고 겨울철이 오면
정원의 동백나무는 내년 이른 봄에
아름다운 꽃을 선사 할 것이다.
그리고 장미와 매실나무, 무화과나무 가지를 잘라주고
다년생화초들에게는 보호마포를 입혀
추위를 피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처서(處暑)날 아침이 흐리고 선선하다.
처서와 함께 오는 가을철은 조화이며
저녁 하늘의 광채가 때때로 아름답게 비춘다.
저물녘의 황혼이 조용하고 따듯하다.
낙엽들이 물들어 가는 광경을 보면서
쓸쓸해지는 기분을 느끼지만,
그러나 인간이 겸허해지고
길쌈을 결산하는 시기다.
지상의 존재로서 마지막 떠나는 순간,
우리도 나무의 마지막 잎새처럼
언젠가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런 사실에서 가을 노인으로서
늘 건강을 가꾸고 감사하는 생활로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늙었지만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우정 著>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