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2차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노원구 상계3구역의 모습. 뉴스1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새집을 지을 계획인 박 모(58) 씨는 건축 인허가 과정에서 시름에 빠졌다. 구청에서 땅의 4분의 1을 도로로 내놔야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145㎡ 규모의 땅이 107㎡로 확 줄어들었다.
건축가와 건축주 헌법소원
4m 도로 확보 위해 땅 내놔야
창신동 재생 불가능했던 이유
"제약에 따른 보상 없어 문제"
땅의 삼면이 길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중 두 면에 접한 길이 4m 폭이 안 되는 것이 문제였다. 각각 1.5m 너비에 불과한 좁은 골목길이었다. 4m 도로를 확충하기 위해 건축법에서 도로의 중심선에서 2m 물러나 집을 짓도록 강제한 탓에 박 씨는 대지 경계선에서 1.25m를 떼고 집을 지어야 했다. 어떤 보상도 없이, 38㎡(11.5평)에 달하는 땅을 도로로 내놓은 셈이다.
집의 설계를 맡은 박상욱 건축가(자향헌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공공이 해야 할 인프라 확충을 건축주에게 모두 전가하는 데다가 작은 땅을 가진 건축주의 경우 손해가 너무 큰 법 조항"이라며 "문제가 큰 법 조항인데도 건축법이 만들어진 이후 수십년간 그대로 적용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공공의 공짜 도로 확보 관행에 첫 제동
건축법에 명시된 ‘4m 도로’ 건축선 지정 조항(46조 1항, 47조)이 60년 만에 위헌 소송에 휘말렸다. 이 조항 때문에 피해를 본 건축주와 건축계의 주요 단체인 새건축사협의회가 집단으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를 7일 청구했다.
1962년 건축법이 처음 만들어지고, 이듬해 법 개정과 동시에 이 조항이 추가됐다. 4m 도로를 기준으로 건축선을 긋고, 이 너비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땅의 일부를 도로로 만들게 했다.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아크로의 제본승 변호사는 “통상 법을 개정하면 이유를 적시하는데 건축선의 경우 도입한 목적과 이유에 대해 밝힌 것이 없다”며 “보행자의 통행을 확보한다는 명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전국의 모든 땅에 일률적으로 4m 도로 건축선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제약이고 지금까지 위헌 논란이 없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창신·숭인동 왜 재생 어렵나 봤더니
문제는 많았다. 건축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강북 구도심의 경우 4m 폭이 안 되는 골목길이 대다수다. 이런 동네에서 낡은 건물을 신축하려면 땅을 길로 내놔야 하니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낡은 동네가 더 낡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서울형 도시재생사업 1호로 1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된 창신·숭인동도 똑같은 문제를 겪었다. 서울연구원의 조사 결과 이 일대에는 폭원이 4m 미만인 도로가 약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일대 노후주택의 모습. 중앙포토
재생 사업 당시 태스크포스(TF)에서 이 조항을 완화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으나 현실화되지 못했다. 사업은 도로포장에만 집중됐고 그 결과 창신·숭인동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길 원하고 있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동네마다 환경과 상황이 다른데 무조건 4m 도로를 확보하라고 하니 자정적인 환경 변화가 일어날 수 없고 결국 재개발해 환경을 바꾸려는 욕망만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청구인단은 4m 도로 건축선 강제조항이 재산권과 평등권과 같은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더욱이 제약에 따른 보상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짚었다. 제 변호사는 “공공의 필요에 의한 수용이라 하더라도 헌법에서 정한 재산권 보장을 위한 보상규정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박인수 새건축사협의회 회장은 “도로는 애초에 국가나 지자체가 비용을 내서 설치해야 하는 기반시설인데 건축법이 만들어졌을 당시야 국가가 가난해서 할 수 없었다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뀐 만큼 정부가 노후 동네의 인프라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건축법을 총괄하고 있는 국토부 관계자는 “소방차 진입 등과 같은 안전 측면에서 4m 도로 확보는 필요한데 보상 여부는 가치적 판단이 필요한 것 같다”며 “잘 검토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