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스타의 이미지를 팔아 돈을 벌겠다는 욕심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화면은 예쁘지만 그 안에 깔린 상업적 계산은 영화를 진흙탕에 빠트린다. 우리가 사랑하는 스타 전지현을 스크린에서 보는 일은 꼭 이런 험산준령을 넘어야 한단 말인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는 한국영화의 미래를 향해 바치는 한 잔의 독주다. 맛있어 보이는 이것을 먹을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스타의 구름 같은 환영에 취해 즐기는 덧없는 독주다. 아울러 영화라는 것을 즐기는 취향을 전면적으로 모독하는 불온한 장삿속의 산물이다. 당장 배탈이 나지는 않겠지만 소화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곧 밝혀질 겉만 번지르를한 불량식품 같은 영화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이래 곽재용 감독의 취향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의 재기작 <엽기적인 그녀>와 중급 흥행작 <클래식>에서도 곽재용의 순애보적 세계관은 존중할 수 있는 진심을 묻고 있었다. <여친소>는 그의 취향이 스타 마케팅을 둘러싼 노골적인 기획 상품 의도에 전면적으로 투항해 버린 것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에 대한 호감도, 비판도 그 내용에서는 거의 똑같을 것이다. 전지현을 위한 전지현의 이미지 가공물인 이 영화에서 최소한의 영화적 상식을 갖고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영화는 거의 대다수 카메라 앵글과 움직임과 배경 음악과 소품을 전지현의 웃음, 발랄, 비탄, 눈물을 보여 주는 장식품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는 이것이 결국 관객인 당신이 원하는 것 아니었느냐고 뻔뻔스럽게 되묻고 있다.
물론이다. 우리는 천상에서 내려온 것 같은 전지현의 예쁜 이미지를 큰 스크린에서 근사하게 만끽하길 바란다. 좀 봐준다면, 초반 40분가량, 또는 좀 더 봐준다면, 1시간가량 <여친소>는 꽤 볼 만하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이미 대단한 호소력을 발휘한 전지현의 천방지축 청춘의 아름다움이 잘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못 말리는 말괄량이 여대생으로 나왔던 전지현은 이 영화에서 힘깨나 쓰는 다이 하드형 여순경 여경진으로 바뀌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여주인공을 애완견처럼 졸졸 따라다니던 순진한 남자친구는 역시 이 영화에서 2% 모자란 이 보이지만 마음이 비단결 같은 물리 선생으로 바뀌었다. 두 사람은 사랑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엽기적인 그녀>와 달리 <여친소>의 여경진은 정말 진심으로 훨씬 더 적극적으로 남자 친구 명우를 사랑했던 모양이다.
영화 초반, 일방적인 여경진의 연애 페이스에 어리벙벙하게 끌려다니는 명우의 모습은 흥미롭다. 장혁이
연기하는 명우는 사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인간처럼 보인다. 그게 아니더라도 여경관이라는 극중 설정을 빌미로 멜로드라마와 액션영화의 배경을 자유롭게 오가는 전지현의 멋진 제복 차림새는 그 자체로 구경거리다. 여기까지는 스타의 친숙한 이미지에 소구하는 대중 영화의 관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별다른 극적 논리 없이 명우를 억지로 사지로 몰아넣으면서부터 영화는 갈짓자로 비틀거리며 그때까지 겨우 무마하고 있던 허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한다. 간신히 참고 봐줄 만했던 이 영화의 막무가내식 장르 혼합이 너절한 의도를 숨기지 못하는 꽁수라는 것이 드러난다.
<여친소>는 작정하고 장르를 섞는다. 평범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여경진이 뛰어드는 곳은 백인 갱스터와 한국 깡패가 마약을 거래하는 국제적인 범죄 현장이고, 수백 발의 총알이 오가는 이 낯선 전쟁터를 전지현은(여경진은) 누비고 다닌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찰에 쫓기는 차를 격추시키고 폭발한 차에서 이글거리는 화염을 배경으로 전지현은(여경진은) 폼을 잡는다. 비현실적으로 마구 끼어드는 이 장르 혼합을 통해 영화는 눈물 짜는 멜로드라마를 왔다 갔다 하며 심지어는 이승을 떠난 애인 유령과의 연애담으로까지 나아가는 가운데 ‘이게 영화잖아?’라고 묻는다. 별다른 톤의 변화 없이 마구 이어 붙이는 이것이 첨단 감성이냐고 항변하고 싶은 즈음에 <여친소>는 스스로 너무 친절하게 괴이한 이런 이종 접합물이 전지현을 내세운 거대한 장편 CF라는 것을 드러낸다. 영화의 곳곳에 등장하는 도를 넘어선 상품 광고가 그것이다. 그 상품들은, 물론 전지현이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 간접 광고 사술은 영화 흥행을 통해 상품 구매 충동을 부추기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영화를 통째로 흔들면 개연성 없는 영화의 플롯 논리를 서슴없이 치고 들어오며 열심히 광고하고 있는 특정 회사들의 상품 이미지가 한 다스는 나올 것이다. 이것이 쓸데없이 남자 주인공을 죽이고 상영 시간의 남은 절반 동안을 전지현의 비탄에 잠긴 눈물을 보여 주며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우기는 영화의 실체다. 공짜로 멍하니 거실에 앉아 보는 CF가 아닌 수천 원의 입장료를 내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에게 이것은 너무 뻔뻔스런 장삿속이자 모욕이 아닌가.
이 모든 상품 간접 구매 유혹을 포장하는 세공술은 조잡하고 성의 없다. 전지현이 빌딩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오래된 영화의 스크린 프로세스를 보는 듯하고, 감정이 고조되는 단락에선 무조건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는 영화가 인공물임을 일부러 노출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 장난질처럼 보이며, 명우의 유령과 대화하는 전지현의 덜 된 발음과 쉴 사이 없이 왔다 갔다 하며 부지런히 전지현의 이미지를 과장하는 소란스런 카메라는 엉망진창으로 망가지는 패러디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내는 것 같다. <여친소>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라고 자랑한 만큼 수준이 따라주지 않는 한심한 기술적 역량으로 그저 부지런히 전지현에게 매혹당한 카메라를 드러내느라 안달이다. 이것이 그냥 나르시시즘이라면, 대중 스타에 저 스스로 매혹당한 고백이라면, 그것까지도 참아줄 수 있다. 그래도 전지현을 보는 것이 즐겁다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뻔뻔스런 자기 자랑 현시물에 포개진 그 탐욕스런 돈의 욕망은 참아내기 힘들다. 영화 속에서 전지현은 거울을 쳐다보며 ‘예쁜 것’이라고 자문 자답한다. 정말, 전지현은 예쁘다. 문제는 그 예쁜 외모 뒤에 돈을 쥔 자들이, 더 많은 돈을 쥐고 싶다는 자들이 작정하고 서 있다는 것이다.
너무 심한 말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여친소>는 영화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이들에게 분노를 안겨주는 심히 우려스러운 기획 상품이다. 자사가 관리하는 스타의 기존 이미지를 착취해 이용하려는 속셈이 탐욕스런 PPL 효과와 결합해 혼성 장르라는 포장지 아래 도무지 이어질 수 없는 장면들을 이어 붙여 놓은 형상이다. 과연 이런 것을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것인가. 이 영화의 장점과 단점은 삼척동자라도 눈치챌 수 있으며 굳이 비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작에서 소설 <소나기>를 인용했던 감독 곽재용은 <여친소>에서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끌어 들여와 이 억지로 조작된 감상적인 연애담을 운명론적 비애로 치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쾌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스타카토 리듬의 빠른 편집 리듬에 실려 카메라와 등장인물이 늘 움직인다는 느낌을 주는 이 소란스런 영화에서 알맹이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온갖 매체에서 상품화된 전지현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이미지와 사운드의 과장된 효과를 발악하며 동원하는 이 영화가 정말 우리가 존경했던 감독 곽재용과 우리가 사랑했던 스타 전지현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만한 자랑스런 수출 상품 맞는가.
돈을 버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관객의 감정을 이렇게까지 착취하는 것은 곤란하다.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본주의 사회의 축복이다. 그 좋은 상품은, 특히 영화라는 상품은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를 깔고 말을 걸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최소한의 인척 관계라도 맺으려 노력하는 예의 없이 영화적 장르의 진공 상태 안에 스타를 가두고 멜로와 액션과 초현실적 유령 이야기를 오가는 스타의 다양한 얼굴에 그저 모르모트처럼 반응하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걸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작정하고 덤비는 이 괴물 같은 영화에 한국영화의 현재가 걸려 있다면, 난감한 일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데 왜 이토록 번거롭고 비참한 과정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엉뚱하게 사람을 죽이고 거기서 눈물을 쥐어짜려고 안달하는 영화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시대의 CF 여신 전지현을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것에 왜 이토록 비인격적인 모멸감이 따라붙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친소>는 일부 한국영화가 너무 진창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흥행을 집전하는 진짜 여신의 조소를 받게 될 것이다.
첫댓글 으아 이건또 누가 썻어????확!!!!!!!!!!!
맞는 말인거 같은데... 아무리 전지현 팬이라고 해서 진실을 거짓이라고 둘러댈수 없잖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모두 받아들입시다.
이렇게 깊이 해석하는 이유가 뭘까요? 보고 감동을 느끼는게 중요한거 아닌가요?? 이런글 써서 어쩌자는 말인지 모르겟네요;;
흠 간접 광고가 좀 많긴 했지만 어째든 이쁜 전지현 누나를 봐서 전 좋았어요 ^^;
불량식품??? ㅡ.ㅡ..
위에 글은 맞는 말씀인거 가테요, 전지현 누나를 상품화하지맛 -_-
심하게 가짠습니다, 충분히 여친소 재미잇었고 눈물까지 흘렸었는데-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