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5일 10시 반에 봉화 은어축제 무대 앞에서 친구들을 만나
청량산에 가기로 했다고 전날 문자를 보냈더니
영길이 내외는 간다하고 성연이는 혼자 온다하고
365일이 바쁘다 못해 369일을 일년으로 줘도 감당 못할 병학이는
또 숨쉴 틈도 없는 바쁜 소리로 바쁘다 바쁘단다.
한 달에 한 번 딱 두 시간도 못내는 바쁜 직장이라면
조직적으로 사는 것도 생각해 볼 법 하건만
늘 병학이는 그렇게 대한민국 최고 오지 봉화꼴티에서
흘르는 콧물 닦을 새 없이 최고로 바쁘다
지 먹고 사는 일로 바쁘다니 뭐라 할 건 없지만
그렇다고 두 평생 사는 것도 아닌데
하는 피식 웃는 소리로 전화를 끝내고 생각해 보니
병학이는 아파서 병원가서 눕거나 수술했단 소식 아니면
맨날 바쁘다고 한 기억만 오래 남는다.
병덕이는 지놈이 5월 7일 등산 갈 걸 5일로 바꾸자 해놓고는
지가 못 나온다 한다
5월 4일에 우리집 내무부 장관은 5일 날 간다고 참외사고, 토마토 사고
5일 아침 전날 야근 마치고 서로 인수인계 하며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우스개하고
손바닥 서로 치고 교대
그리고 친구 만나러 앞으로!
청량산에서 과학벨트 대구유치 서명받는 영길이 만나
참으로 소주 한 병 김밥 도시락 하나 건네주고
우리는 김밥과 과일로 점심을 챙겨
청량사 맞은 편 청량산성에 올랐다.
<산성길 오르다>
<성벽에서 내무부 장관끼리, 참 이날 둘이서 많은 얘기하더라~~>
<나도 한판 찍고>
복원해 놓은 것이 너무나 현대적이고 웅장한 산성이라
고대산성이 아님은 한 눈에 알겠다
문경의 고구려성이 문경산성되었 듯
여기는 또다른 청량산성이라
영길이 댁과 미리내 엄마는 연신 웃으며 수다 떨면서 산성을 오르고
가면서 만나는 두릅나무는 모조리 이미 첫 손을 다 본 싹들이 노랗다
마침내 꼭대기 정자에 올랐더니 이 맑은 날에 어찌나 추운지
멀리 보이는 청량사도 추워 보인다
떨면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정자 아래 계단을 내려서니 거기는 그렇게 따스할 수가 없다
한 자 높이 차이에 이렇게 바람길이 다르구나
<산성 정자에서>
<정자 앞에서>
<산성 건너편 청량사>
내려 가다니까 영길이가 다 마쳤다고 올라 오고 있다
다시 내려가서 농암종택에 가서 성연이를 기다리기로 하고
내 차는 청량산 입구 주차장에 세워두고
영길이 차로 농암종택에 갔다
<종택에서>
농암 이현보의 종택은 당시 규모가 그렇다면
어깨로 져서 나르고 손 도르레로 기둥을 올렸을 그 당시를 가늠한다면
과시 대가집이다
이만한 집에서 손님치고 식솔들 거느리고 살려면
지금으로 치면 안동에서 몇 손 안에 드는
몇 천 석 지기 부자였으리라
한 바퀴 돌아보고 사진 찍고
안동댐에 수몰되는 암각글씨 바위도 옮겨 놓은 것을 보고
성연이에게 연락하니 전시회 때문에 4시 쯤 도착하겠단다
<종택 앞 꽃밭>
<농암 암각 글씨 바위 옮겨 놓은 것 옆에서>
<분강서원에서 영길>
영길이가 걸어보면 좋은 길이니
퇴계 오솔길을 따라 조오짝 모탱이까지 가보자 한다
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물이 푸르니 좋다라고 따라 걷는다
그늘에서 사진 찍고 경치보고 탄성지르고
아직 개발하지 않고 남아있는 발자국이 만든 옛길을 따라 걸었다
강 복판에 무슨 바위가 있으면 꼭 이름이 있는 바위고
모퉁이가 있으면 또 무슨 이름이 있다
<퇴계 오솔길 내려가는 첫 머리>
<오솔길 강변 숲길 입새에서>
<흐드러지게 핀 흰꽃을 보고 너무 예뻐서 한장 찍고>
<강변 옆 숲길에서>
조짝까지 조오짝 모랭이까지 하며 가다 보니 어느 덧 십 리를 걸어
되돌아 갈 수도 없게 됐다
성연이에게 연락해서 육사문학관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걸었다
돌아보니 멀리 청량산 하늘다리가 보이고
흘러가는 물결을 왼쪽 귀로 듣고
오른 쪽 귀로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고
돌아보는 눈으로 푸른 강물이 휘감는 바위를 보니
셋이서 다 같이 좋다, 또 오고싶다를 몇 번 씩 연발하고
건너편에 갈아엎은 들녘에 풀빛이 보이니
옛날 퇴계선생은 이길을 제자들 거느리고
재미삼아 걸었으리라
가다가 훈계삼아 한 말씀 하시는 것이
살아 남아 교훈이 되었을 터
멀리 민초는 논에서 풀을 뽑다가
강 건너 갓 쓴 양반차림 한 패짱가면
그게 퇴계선생 일행이겠거니 하면서
멀리서도 허리를 굽혀 머리를 조아려 예를 표했으리니
과시 양반의 위세는 대단하고
대학자의 위명은 더욱 대단하다
그러면서 그 민초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자기네 끼리는 말했으리라
저 양반들은 부모를 잘 만나 양반으로 태어나
이 오뉴월 염천에도 삿갓쓰고 들길 따라
물가를 걸으며 공맹을 웅얼거리며
우리 아랫것들 일 잘하라 노닥거리며 간다
그런데 나는 부모를 못 만나 이 더위에
논 메다 말고 저 양반들 지나가는데
허리 숙이고 머리 조아려 인사하는 예를 걸렀다가는
어느 결에 붙들려 줄창 얻어터지고
부치는 논밭뙈기 그날로 떨어지고
동네서 쫒겨나 야밤도주해야 하리니
날 따라오는 식솔들은 꼴랑 인사 안해 타지로 내몰리는
이 신세를 보고 가장이라고 나를 얼마나 원망하랴
저 산은 그런 광경을 다 봤으리라
저 물은 그런 소리를 다 들었으리라
<강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오솔길을 걷는다>
<멀리 하늘다리가 나무가지 새로 가려지고 돌아보며 탄성을 지른다>
<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오르며>
<전망대로 오르는 마지막 언덕길에서 잠시 휴식>
세월이 흘러 내가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노라니
위세 위명 대단한 양반 어른들은
무슨 무슨 문중이니 하며 제사 때마다
문중 집안 자랑 하느라 제문마다
유세차 그 어른들 영혼을 기리겠지만
멍석말이 당해 쫒겨난 민초들은
누가 있어 그 가련한 혼백을 위로해주랴
이 생각하며 아름드리 미류나무 아래서
강가를 굽어보고 모자를 벗어
아낙네 보는데 땀 씻는 척하며
그 옛날 민초들의 명복을 비노라
그네들이 있어 오늘날 노동절에
민초들이 깃발 흔들어 단결을 외칠 수 있노라고
그대들의 자존심 버리고 굽실댄 머리 조아림이 있었기에
시간이 흘러 시대의 대세를 막지 못해
지금 민초들이 먹고사는 걱정을 덜게하는 밑거름이었노라고
그러나 어리석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민초리니
고생문이 훤한 선거판의 꼴을 보라
민초를 찍어 눌리는 정파를 인주가 적다하고 팍팍찍어
투표용지가 좁다하고 팍팍 찍어 놓고
왜 이리 쪽박신세가 되었는가는
그 정파 임기가 다 끝나도록 도무지 알지도 못하니
민초의 어리석음을 다시 또 다시
다시 말해 뭘하리
젯상에 오른 사과 하나 제사 전에 굴러 떨어지니
퇴계선생 부인은 얼른 주워 치마에 감춘다
동서와 부인네와 하녀들은 부엌이 떠나도록
와하 하하하 하하하 호호 웃는다
방안에서 제문 쓰던 퇴계선생
자기 부인 때문에 무슨 일인가 생긴 걸 직감하고
붓을 놓고 안방으로 나오나니
부인은 여전히 치마에 뭔가 감싸 부여잡고 있는데
아랫 하녀들은 그 모습보고 입을 막고 웃음 참는다
<이어지는 강변길>
<강변길의 영길이. 영길이 얘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늘 웃음이 나온다. 적재적소의 유머랄까?>
퇴계선생 눈짓으로 물으니
하녀 하나 공손히 답을 한다
퇴계선생 다정히 부인에게 다가가
왜 떨어진 사과를 젯상에 되 올리지 않고 치마로 감싸느냐 물으니
부인은 수줍음도 없이 먹고 싶어 그랬노라
방 바닥에 푹 무질러 앉은 퇴계선생
하녀에게 과도를 이리 달라하여
손수 그 사과를 깎아 한 쪽 씩 삦어
부인에게 내미니
부인은 하나 씩 받아 맛있게 잡수신다
그 사과를 다 먹은 것을 보고
퇴계선생 말없이 자리를 뜬다
<강을 바라보며 한숨 돌리고>
퇴계선생 안방에서 나가시자
손위 동서는 부인을 보고 말한다
동서는 좋겠네
서방님이 저리 자네를 아껴주시니
진심으로 부럽노라고
나는 내 서방이 아직 한 번도 저런 적이 없는데
동서는 매 번 서방님이 저리 자상하시니
얼마나 좋은가
그 길로 손위 동서가 선생 부인 비웃는 법이 없어졌다
퇴계선생 오솔길 막바지에
계단길을 올라 강을 굽어보며
나에게 물어본다
머리 조아린 민초 밑발치에도 못 갈 인간이여
그대는 니 마누라한테 퇴계선생처럼 할 수 있느냐고
나는 내게 대답한다
나는 그리 단연코 못한다
하기는 커녕 수 틀리면 오늘 저녁에도 소리지르고
어거지도 그런 어거지 없이 내가 옳다 다툴 것이라고
그래
그러니 퇴계선생은 그냥 퇴계선생이 아니니라
퇴계선생이기에 하실 수 있는 인품이 있었기에
퇴계선생이라 존경 받는 것이니라
그렇게 오솔길 전망대에 올라
푸른 강물을 다시 보며
강물이 흘러 옛물이 없건만
흐르는 강물처럼 나도
변함이 없이 진실을 바라 볼 수 있다면 뭣을 더 바라리
<전망대, 저 멀리 하늘 다리가 보이고>
<전망대에서>
<전망대에서. 하늘다리가 멀리 보인다.>
마지막 길을 더 걸어 고개를 올라
굽이길을 걷는다
저 멀리 육사 문학관이 보이고 성연이가 도착했다
<육사 문학관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갈림길 올라 내리막 길에서. 여기부터 500미터가 왜 그리 멀던지~~>
<목적지 육사문학관 바로 옆집, 성연이 다니는 교회와 인연이 깊은 이원경 목사 생가>
동양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에 도착해
용두식당에서 돌솥 비빔밥을 먹는다
그 밥 다 먹은 마당에
바쁜 병학이가 도착해
남들 다 먹은 반찬을 거두어 들여
또 홀로 바쁜 저녁을 먹는다
저 바쁜 병학이 마지막에 물 부은 숭늉은
마시기나 하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오늘 어린이 날
얘기도 많았고
웃음도 많았고
생각도 많았고
친구도 많았고
풍광도 많았던
하루도 그렇게
즐거운 오월
그래 이 어린이 날
나는 또 다른 어린이가 되었다
다음 달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친구들을 만나기를 바랄 뿐이다.
2011.5.9.
동규 ~ 어린이 날 있었던 일을 올린다.
첫댓글 자네 글솜씨는 여전하네 그랴...
가히 면문이라 할 만하네.
글솜씨라고 까지 할 것은 없고, 우리친구들 중 백미(白眉)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밍구스럽네 그랴~
경치 구경 잘 하고 좋은 글 잘 읽었네.. 다음에 더 많은 친구가 함께 등산 한번 해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