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명작동화를 남긴 안데르센에게 '잔혹 작가'라는 꼬리표를 붙게 한 대표적 작품이 '빨간구두'이다. 빨간구두에 넋이 빠진 카렌이 교회에 갈 때도 신는 등 당시 관습을 어기다가 결국 춤을 멈출 수 없어 구두 신은 발을 잘라냈다는 내용이다. 예쁜 구두의 유혹이 파멸로 이끈 것이다. 또 신데렐라와 왕자를 다시 만나게 해 신데렐라의 신분 상승 기회를 돕는 중매쟁이는 사람이 아닌 유리구두이다. 1970년대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가 축출될 때 그 부인 이멜다의 신발장에서 3000켤레의 구두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후 뉴욕의 구두가게에는 '누구나 마음 속에 작은 이멜다가 있다'는 카피가 붙었다. 여성에게 구두는 꿈과 욕망 자존심의 상징인 셈이다. 불황에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듯 경제가 어려울 때 굽이 높은 하이힐이 더 인기를 끄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아예 굽 높이가 10㎝가 넘는 '킬 힐'이 유행이라고 한다.
하이힐이 여성의 전유물처럼 됐지만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에서 남자들이 먼저 신었다고 한다. 역사상의 유행을 주도한 측도 남자로 17세기 유럽 절대왕정의 대표주자쯤 되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신기 시작하자 베르사유 궁전을 드나들던 귀족들도 따라 신게 된 것이다. 이후 한때는 매춘부의 상징처럼 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세계대전이 잇따르면서 남자들은 전쟁터에서 불편하다며 굽 높은 신발을 기피하게 됐고 비로소 여성만의 것이 됐다. 요즘은 남자들도 쑥스러워 않고 5~7㎝씩 되는 높은 굽을 예사로 찾는다고 하니 유행은 과연 돌고 도는가 보다.
하이힐 굽으로 폭행한 20대 여성에 대해 인천지법이 가중 처벌한 판결을 내렸다. 위험한 물건으로 상해를 입혔다며 일반상해죄보다 처벌이 무거운 흉기상해죄를 적용한 것이다. 판례에 따르면 깨진 유리조각, 부러진 걸레자루, 각목, 가위, 벽돌 등이 위험한 물건으로 분류된다니 하이힐도 그 반열에 오른 셈이다. 담당판사는 피해자가 실명할 정도로 피해가 컸고 같은 여성인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치한을 향해 휘두르는 하이힐에 대해선 언제든 관대한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