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를 한번 가 볼까하여, 만사 비켜두고 연안부두에 서 있었으나, 안개주의보가 내려 8시 출항해야 할 배는
9시가 되어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코스는 강화도로 바뀌어지고, 내가면의 강화안보수련원에서 1박하며,
석모도 보문사, 정족산 전등사, 민통선내의 제적봉, 강화역사박물관 등을 살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폐교를 리노베이션한 안보수련원... 침실은 2인실~4인실까지 다양하며 말끔하고, 첫날부터 선물이
준비되어 있어서 선물 받은 타올로 세수와 샤워도 하고, 6.25 책자와 강화쌀 1kg...돌아오는 길엔 마지막 선물도
한가지 더 있었습니다.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
보문사 석실 앞에서 단체사진...38명이 갔었는데, 몇명 빠졌군요.
보문사 마애불상의 유일무이한 특징 두가지를 문화해설사가 미션으로 줘서
곰곰히 바라봅니다.
왼쪽의 해설사는 눈을 뜬 부처님, 콧구멍 2개가 보이는 부처님으로.. 두가지를 지적하더군요.
여늬 사람들처럼 살아 숨쉬는 마애불상을 조각했다면서요...
양눈을 뜨고 계신가요? ... 뵙고도 어려웠습니다.
마애불상 전망대에서 산악회 A팀 인증샷
전등사 입구의 단군왕검 세 아들이 쌓았다는 三郞城
傳燈寺 라는 절 이름은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옥등을 시주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하지요.
대웅전 앞에서면 모두들 목수가 벌을 준 나부상을 보려고 추녀를 살펴봅니다.
전등사 불사에 참여한 목수가 절 아랫마을 주막집 여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일이 모두 마무리
되면 그 여자와 살림을 차릴 목적으로 돈을
모두 맡겼다는군요
하지만 마음이 변한 그녀는 그돈을 몽땅 가지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목수는 쓰라린 가슴을 안고 불사 마무리 공사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못내 그여인을
용서하지 못하고 무거운 지붕을 평생 떠받들고
있어야하는.. 도망간 그 여인을 조각해 넣었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단청이 벗겨져 있어서.. 대웅전 보살님께 왜 단청을? 하며 불심 깊은 박순봉님네 경애씨가
물으니, 6.25때 많은 군인 젊은이들이 자기 이름을 기둥에, 대들보에 쓰고 새긴 자국이 있어서, 차마
그 위에 단청을 못하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제가 가장 와보고 싶었던 무설전에 왔습니다. 재작년 신문기사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문화공간적 하얀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 보고싶었습니다.
'無說'은 금강경의 가르침에 나오는 말로 說한 바 없이 說했다는 의미의 무설전입니다.
전등사 템플스테이관 지하공간 150평을 활용해 마련된 무설전은 기존의 사찰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불교건축으로 평가받고 있는 공간입니다.
석굴암 본존불을 참고로해서 만든 석가모니불 좌상
불상 제작은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조각한 김영원 홍익대 명예교수 작품이라
합니다.
주불은 우묵한 돔형 공간에 안치되고, 그 뒤로 기존의 탱화가 아닌 프레스코화 기법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각 보살상의 뒷 배경으로 천 이상의 작은
불상이 보이더군요 본존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무설전은 예불을 하는 법당의 기능뿐만 아니라, 전시와 연주, 강연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입니다. 천정에는 999개의 설치미술적 lcd 조명의 연등을 달았습니다.
안보수련원 강당에서 안보강연을 들었습니다.
28세 처녀 안보강사 이미연씨의 북한 생활과 탈북경로를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회령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도 하고, 일정액의 돈도 부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더군요.
그럴 수 있는 데는 수수료를 챙기며 중계를 해주는 중국인 거간꾼이 있었습니다.
저 한쪽 은빛을 내는 생선이 제철을 맞은 강화도의 밴댕이 입니다.
밴댕이는 그물에 잡힌 순간 제 성미를 못이겨 파르르 떨다가 죽어버린다는, 밴댕이 잡는 어부조차
살아있는 놈을 보기 어렵다는 얘길 전에
들었습니다.
대통밥도 있고요, 가오리찜도 있었습니다.
강화도 인삼 막걸리로 이재돈 회장님이 건배제의를 했습니다.
백령도 계획이 불가불 강화도코스로 바뀌었지만, 이회장님은 이 일을 성사시키는데,
우여곡절 신경도 많이 쓰셨을 겁니다....
김용후총무님의 뒷 준비 노고가 말할 수 없었다고 하고, 김익명
산악회장의 노고도 치하했습니다.
안보강사 이미연씨가 원피스 의상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이 장소에 왔습니다.
밝은 얼굴이 반가웠어요.
이 외포리 선착장 강화횟집에 밝았을 때, 바다를 보며 들어왔다가 아주 컴컴할 때 나왔습니다.
서울서부터 우리를 안내하기위해 나오신 분들 따라 산책길을 가노라니 '삼별초 항쟁비' 와 '진도개
기념상'이 있었습니다. 삼별초는 배중손장군에 의해 강화도에서 출병이 되어,-> 진도->제주도로
진군하고 쫒기고 했던 모양입니다.
이튿날 아침 7시 구내식당, 음식맛이 보통 아니더군요. 순무우 깍뚜기맛도 여타 식당 보다
최고였습니다.
이 날 아침이 마침, 한국과 러시아 월드컵전이 열리는 때라 우리는 버스를 광성보 주차장에 세워둔채
버스 안에서 중계방송 보느라 열을 올리며 응원했습니다. 주최측이 계획했던 광성보와 초지진 관람은
건너 뛰고 민통선으로 달려, 제적봉평화전망대에 왔습니다.
4층 OP에서 북한 예성강과 연백평야를 바라보며 OP장과 연대장의 브리핑을 들었습니다.
조광명님, 서관주님, 김태희님의 질의응답이 잠시 연이어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안개 사이로 북한 땅과 남한 땅이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음을 봅니다.
제적봉은 공산당을 제압한다는 의미이고 1966년 김종필 민주공화당의장이 친필로 썼다고 합니다.
제적봉 전망대 뒷동산의 망배단과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해병대사령관 출신 회장님 덕분에 특별한 영접을 받고 우리는 떠났습니다.
마지막 코스 강화도 역사박물관
선두포축언시말비 와 강화 동종 앞에서
강화도 지역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군, 그리고 39년간 고려의 수도였던
강화도의 역사성을 다시금 되새겨 보며.. 잠시 인삼시장을 들렀다가 서울 양재동 출발지로
돌아왔습니다.
첫댓글 사진을 너무나 소상 하게 찌어셨네요.
작업을 위해 좀 퍼갑니다 양해 바랍니다. 3-8 강휘주 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