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의 전령이 언제 오나 싶었는데, 일요일 새벽에 봄비가 흩뿌리더니, 비 그친 아침에 진달래 화사하게 피어났다. 담장의 개나리도 어느새 노랗게 꽃피우고, 군데군데 새하얀 목련꽃 어린아이 주먹만하게 봉우리가 터질 듯 하늘 향해 솟아오른다.
해마다 봄에 한식 때 한번 그리고 가을에 성묘하러 한번 가는 장인어른과 처 할머니 산소를 가려고 복잡한 휴일을 피해 월요일에 휴가를 내고 다녀왔다. 때마침 아들녀석도 학교장 재량 휴업일 이라서 집에서 놀겠다는 것을 온갖 감언이설로 부추겨서 장모님과 어부인과 넷이서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하늘은 푸르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은 따갑지만, 올림픽대로로 시원하게 달려 일산으로 해서 의정부쪽으로 가다가 고양시 광탄면쪽으로 들어가 용미리에 도달하니, 이른 아침의 공원묘지에는 스산함이 그득하고, 때이른 봄날의 산야엔 황량한 봉분만 쓸쓸하였다. 봄이 일찍 왔던 작년이맘때는 온 산이 붉은 진달래와 샛노란 개나리로 울긋불긋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도 오랜만에 야외로 나온 식구들은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정성스레 고인의 봉분을 손질하고, 모여서 기도하며 고인의 평안함을 안부하고, 그리고 외곽으로 돌아 의정부시내에서 늘 가는 샤브샤브집에서 거나한 점심을 먹었다. 비록 외손자이지만 든든한 모습으로 외할아버지 산소를 땀 흘리며 건사하는 모습에 장모님은 흐믓한 마음으로 제일 맛있는 것으로 푸짐하게 먹도록 신경을 쓰신다.
다시 의정부 외곽으로 나가 퇴계원을 지나서 금곡에 있는 영락공원묘지에 모신 처 할머니 산소에 가서 꽃나무 한그루 심고 그리고 모여서 기도 드리니 어부인 조상께 새봄을 맞는 인사를 마친 셈이다. 돌아오는 길에 공원묘역에 돌보는 이 없이 쓸쓸히 한 구석 차지하고 있는 광해군 묘소를 들러 보니 권력의 무상함이 초라하게 남아있다. 보니, 그 부인이 유씨인데, 인조반정으로 몰락했다는 우리 집안의 내력과 관련이 있음을 알았다.
남양주로, 구리로해서 외곽도로로, 그리고 올림픽대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7시간에 걸쳐서 서울외곽으로 크게 한바퀴 돌아온 셈이다. 세시쯤 돌아와서 아들녀석은 학원숙제 한다고 부산을 떨더니 5시에 학원에 데려다 주었더니 9시 다되어 돌아온다. 조상묘 성묘 다녀온 것은 쉰 것이라 할 수도 없으니 휴일을 별로 쉬지도 못한 셈이다.
학원 다녀 오더니 좀 쉬어야겠다며 게임에 몰두한다. 중3이 되면서 큰 뜻을 품고 목표를 세우고 그리고 열심히 한다더니, 때마침 가방에서 나온 학원의 성적표가 엉망이다. 반 평균점수도 안 되는 형편없는 성적표를 가지고 어부인은 애를 잡을듯한 기세이고, 녀석은 시험점수가 아닌 수업 중 평가점수 이므로 상관없다며 태평이다. 보니 지각으로 인한 감점, 수업중 질문에 대한 점수, 발표점수 등인데 지각점수 감점이 상당히 크고 대체적으로 수업열의가 부족함이 보인다. 그 학원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던 누나와 빗대어 대단한 기세로 몰아치는 어부인에 자기도 시험성적은 상위권이라며 같이 맞짱 뜨려는 녀석의 기세도 보통이 아니다.
감당 못할 정도로 흥분이 지나치면 달려오는 어부인을 진정시키고 잦은 지각을 문제 삼아 배우려는 자세와 학원 수강의 가치에 대해 한소리 하니 녀석이 울먹인다. 그래, 녀석도 힘들겠다는 생각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그득한데, 어부인의 기세는 여전하다. 아직도 사춘기 반항기가 남아있는 혈기 왕성한 아들과 그런 아들이 영 미덥지 못한 어부인의 갈등은 식목일 휴일에도 종일 계속된다.
수험생이나 다름없는 고2인 딸의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된다. 밤11시 다되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겨우 옷 벗어 던지고는 안방의 침대에 쓰러진다. 세수도 하고, 제대로 정리하고 자라해도 감당을 못하더니 자기방에 들어가서는 또 그대로 쓰러져 식목일날 아침 여덟시가 되어 일어난다. 오랜만에 푹 잠을 잔 얼굴이다.
새 학기 개학하여 이과를 지원하고, 새로운 교과과정에 파묻혀 정신없이 한 달을 보내더니 힘에 부친 모양이다. 어학전문학교에서 이과를 지원하면서 진도도 늦고 이과과목 수업일수도 적다며 푸념하였는데, 웬걸, 2학년이 되자마자 수1,2에 선택인 미적분까지 한꺼번에 가르치니 이번에는 진도가 너무 빠르다고 두 모녀가 난리다. 특히 미적분은 한번도 공부한적이 없는 과목이라 불안하고 답답하다며 과외를 한다고 부산을 떤다.
식목일 휴일에는 오랜만에 쇼핑가자고 엄마를 부추기더니 둘이 나가서 아이의 봄 단장을 하고 들어온다. 늘씬하게 큰 딸아이가 화사한 차림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 바라보는데, 두 모녀가 씩씩거리며 언쟁을 한다. 여자들의 쇼핑이 얼마나 까다롭고 지루한지 잘 아는 터라 쇼핑뒤끝의 갈등도 눈에 선하다.
딸아이는 이제 자기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긴장할 줄 아는 아이인데, 봄 바람에 들뜬 것인지 종일 들락거리며 안방침대에서 뒹굴고, 두 눈의 긴장이 풀어졌다. 새학기 들어 식구들도 모르게 장학금을 타고, 3월말에 본 모의고사에서도 성적이 잘나왔다며 좋아하더니, 마치 목표를 잃은 아이처럼 나태해지고, 그리고는 종일 엄마와 언쟁을 한다. 방안 그득 붙여놓은 목표들을 상기시키며 각성을 시켜도 희희낙락하며 외면을 한다.
봄 바람이 훈훈하고, 베란다 창문너머에서 불어오는 봄 내음이 집안 가득 채워지니 아이들도 봄날의 권태를 주체 못하는 모양이다. 봄날의 가슴 들뜨는 유혹과, 일상의 나른함은 어른들도 감당을 못하는데, 공부에 찌든 아이들역시 똑같이 일상사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리고, 쉬고 싶어함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짧은 봄날, 그 아름다운 유혹에 빠지기 보다는 장래를 위해 유보하며 참고 이겨내라고 어깨를 다독거려도, 힘겹게 끄덕이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참 애처러운 봄날의 휴일이었다.
첫댓글늘 부럽게 들여다 보듯 하는데... 초우네 영특한 남매 그리고 열정적으로 관리(?)하는 그집 어부인...난 생각은 많은데 그것이 늘 생각에 그쳐서...이러다 후회하지 싶고...참참참, 그집 부부는 진학전문상담가 하면 전국 최고 되겠다~ 거 돈 될 거 같은데, 어때?
우리집애들은 글로서 과장된 면이 많고, 듣자하니 호수네 아들도 영재수준이라 하니 잘 관리할 필요가 있을듯... 우리집 어부인은 진학관리에 올인하니 전문가 수준임은 확실함... 아무리 그래도 애들이 자발적으로 해야하고,부모는 길만 인도하는것이자녀... 우리 딸애는 나보다도 훨씬 더 잘하는거 같어.
첫댓글 늘 부럽게 들여다 보듯 하는데... 초우네 영특한 남매 그리고 열정적으로 관리(?)하는 그집 어부인...난 생각은 많은데 그것이 늘 생각에 그쳐서...이러다 후회하지 싶고...참참참, 그집 부부는 진학전문상담가 하면 전국 최고 되겠다~ 거 돈 될 거 같은데, 어때?
우리집애들은 글로서 과장된 면이 많고, 듣자하니 호수네 아들도 영재수준이라 하니 잘 관리할 필요가 있을듯... 우리집 어부인은 진학관리에 올인하니 전문가 수준임은 확실함... 아무리 그래도 애들이 자발적으로 해야하고,부모는 길만 인도하는것이자녀... 우리 딸애는 나보다도 훨씬 더 잘하는거 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