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은 일곱 살 수준이지만 비틀스에 관해서라면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는 샘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의 이름을 비틀스 노래에서 따오고, 그 딸 루시를 위해 비틀스를 들려준다. 아홉 곡의 비틀스 리메이크 곡이 흐르는 <아이엠 샘>에는 마치 비틀스가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그들의 향취가 한껏 묻어난다. 우리는 왜 <아이엠 샘>이 비틀스를 불러냈는지 궁금하다. 한 음악 칼럼니스트가 이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신화, 혹은 전설이란 수식어 뒤에 등장하는 많은 단어들은 낡은 화석처럼 지나간 시간의 증거물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대중 음악의 신화라 불리는 비틀스는 시간이 흘러서도 그 현재성을 잃지 않고, 변함 없이 대중들의 보편적 정서를 대변하면서 신화의 영역을 확장시켜내고 있다. 여기 그 증거가 하나 도착했다. 영화 <아이엠 샘>이 그것이다.
비틀스는 예수보다 위대하다
“세상을 뒤흔든 네 명의 남자(Four lads who shoot the world).” 비틀스의 첫번째 데뷔 무대로 알려진 리버풀의 캐번 클럽 앞 돌담에 쓰여진 말이다. 지난해 런던에서 만난 EMI UK의 비틀스 마케팅 담당자는 또 이렇게 단언했다. “비틀스는 음악이 아니다. 비틀스는 하나의 현상이었으며, 패션이었고, 철학과 문화를 상징하는 또다른 무엇이었다.”
1960년 결성되어 1969년 해산하기까지, 비틀스가 들려준 음악과 그들의 모습은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문화가 되었고 상징이 되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했다는 영국의 노동자 계층의 소년들이 조직한 4인조 록 밴드 비틀스는 1964년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함으로써 본격적인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으며 후에 이것은 ‘제1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 밴드가 미국의 대중 음악 시장을 장악한 것을 지칭하는 말)'으로 불리게 된다.
“비틀스는 예수보다 위대하다”라고 했던 존 레넌의 말처럼 결성부터 해산까지 전세계에 미친 비틀스의 영향력은 종교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비틀스가 가는 곳마다 광신도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넘쳐났고, 비틀스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은 시대를 휩쓸었다. 베트남전에 반대한 그들의 발언은 히피즘의 한 축이 되었으며, 그들의 싱글 히트곡 ‘She Loves You’는 리버풀 축구팀의 응원가로 쓰여 세계 최초의 축구 응원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의 신화를 완성하고 있는 것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라디오를 통해 이들의 음악이 현재 진행형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수많은 유명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입과 글 속에만 존재하고 있음을 떠올려보자). 비틀스란 이름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몇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어느 현대 음악가의 곡들보다 널리 알려져 있고 즐겨 연주되는 것처럼, 대중 음악의 수혜를 받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그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스피커를 통해서 ‘지금’ 전달되는 현재성, 그리고 대중 음악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영향력이야말로 비틀스를 신화의 영역으로 위치시킨 가장 합당한 근거가 될 것이다.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아이엠 샘>에서는 비틀스의 음악이 영화의 주요한 소재이자 영화를 설명하는 내레이터로 기능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엠 샘>은 비틀스의 신화를 현재형으로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적절한 텍스트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역으로 비틀스를 이야기함으로써 <아이엠 샘>이 이들의 음악을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적절한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비틀스,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다리
<아이엠 샘>은 영화의 배경 음악을 사용하는 데 있어 독특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전략은 어떤 특정 그룹의 음악을 영화 전체에 배열하고, 그 그룹의 히스토리를 영화의 에피소드로 활용함으로써 다양한 취향의 관객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 전편에 걸쳐 흐르는 음악들과 에피소드들, 극중 등장인물의 이름(예를 들어 미셸 파이퍼가 연기한 리타 해리슨의 이름은 1967년 발표된 싱글 ‘Lovely Rita’의 ‘리타’와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이름 ‘해리슨’을 결합한 것이다)에까지 영화는 비틀스라는 특정 그룹을 공배수로 사용해 주인공 샘의 정신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물론 영화는 무성영화 시절부터 영화의 구성 요소로 음악을 사용해왔고, 음악이 영화의 주제와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제3의 스토리텔러’로서 기능해 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음악이 전면에 나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뮤지컬영화나 음악가의 생애를 다룬, 그래서 음악과의 구체적인 연관성을 획득한 영화가 아닌, 일반 극영화에 음악과 음악에 관련된 부수적인 이야기들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아이엠 샘>에 있어 음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영화의 음악은 왜 꼭 비틀스여야만 했을까?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 전, 감독과 각본을 담당한 제니 넬슨과 크리스틴 존슨은 장애인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룹으로 비틀스를 꼽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 때문에 영화의 배경음악을 비틀스의 음악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감독이 주인공 샘의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 현실감을 부여하고, 이후 관객들이 샘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로 비틀스를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샘이 겨우 일곱 살 정도의 지능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점점 똑똑해져가는 어린 딸 루시와 정신적으로 교류하는 데 있어 한계로 작용한다. 다양하고 세련된 어휘를 통한 의사 소통은 샘의 현실적 조건으로 볼 때 애초부터 불가능한 셈이니, 음악이 두 사람의 진솔한 감정과 사랑의 느낌을 대신 표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화면을 타고 흐르는 비틀스 음악의 풍부한 함의는 샘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아름다운 멜로디는 샘과 어린 딸의 순수한 정신 세계를 상징한다. 그런데 왜 꼭 비틀스여야만 할까?
아무도 비틀스를 대신할 수 없다
단순한 대답이 되겠지만 비틀스의 음악이 바로 ‘아름다운’ 멜로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수많은 그룹과 아티스트들의 음악 중에서도 비틀스의 음악은 묘한(!) 보편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롤링 스톤'지는 “비틀스를 포함한 수많은 그룹들의 음악 중에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곡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하지만 묘하게도 다른 그룹들의 곡들은 재즈나 클래식적인 뉘앙스를 삽입해 편곡을 시도해보면 본래의 멜로디가 가진 아름다움이 희석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비틀스의 음악은 다르다. 전위적인 실험을 가미한 리메이크 등 다양한 장르의 변환 속에서도 비틀스의 음악만은 본래의 멜로디가 지닌 아름다움이 풍부하게 살아난다. 아니면 비틀스의 음악이 아닌 완전히 다른 음악이 되어버리든지.”
이러한 지적은 천문학적인 로열티 때문에 오리지널 곡이 아닌 리메이크 곡을 쓸 수밖에 없었던, 그렇게 해서라도 비틀스의 음악을 영화에 초대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를 적절히 설명해 준다. 비틀스의 음악이라면 누가 리메이크하더라도 충분히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살려낼 수 있다는 그런 의도와 믿음 말이다.
존 레넌은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비틀스의 음악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폴 매카트니의 단순한 가사와 짧은 시어처럼 쓰여졌지만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자신의 가사, 그리고 간단하지만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폴 매카트니의 재능과 그 멜로디 라인에 변화를 주는 자신의 재능이 비틀스 음악을 지탱하는 두 가지 기둥'이라고. 마치 극중에서 샘이 루시에게 ‘Michelle‘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존과 폴이 어떻게 함께 이 곡을 만들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폴 매카트니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존 레넌의 시어 같은 가사들은 <아이엠 샘> 전체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다.
<아이엠 샘>이 장애인 샘과 대부분의 비장애인 관객들 사이의 정서적인 소통을 이루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음악이란 통로를 거쳐야 한다면, 그것은 이론의 여지없이 비틀스여야만 한다(아니라면 누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인가?). 앞서 장애인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이 비틀스를 가장 좋아하는 그룹으로 꼽았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것은 그들 역시 일반인과 같은 범주의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것을, 그래서 충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비틀스가 장애인들만이 아닌, 모든 음악 팬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그룹으로 꼽히기 때문이다(심지어 음악을 잘 듣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비틀스를 최고로 꼽는다). 비틀스가 거둬들인 막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매년 집계되는 라디오, TV 음악 프로그램들이 선정하는 ‘Favorite Artist/Song’은 비틀스와 비틀스의 음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샘이 비틀스를 듣고 비틀스 이야기를 하는 순간, 관객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취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샘과 공통분모를 형성하게 된다. 만약 비틀스가 아닌 다른 그룹, 이글스나 롤링 스톤스를 이 영화의 음악으로 사용했다면 지금처럼 관객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렛 잇 비
존 레넌은 '비틀스의 음악은 시대가 만들어낸 단순한 산물이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이전에 그저 새로운 시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달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어쩌면 존 레넌의 이 말이 비틀스의 음악을 설명하는, 그들의 신화를 설명하는 또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잣대로 비틀스의 음악을 설명하기엔 그들의 음악은 너무 거대한 몸짓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메리가 들려준 지혜의 말씀처럼 ‘그저 내버려두는 것(Let it be)'이 이 절대적인 신화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대우일지도 모를 일이다. 샘과 루시를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출처 http://www.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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