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ㆍ고등학교의 업무는 대부분 일주일 단위로 반복된다. 일과 시간표가 일주일 단위로 짜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학기에 따라 6개월 단위, 학년에 따라 1년 단위로 바뀌는 것이 있다. 요사이 학교는 겨울방학 중이지만 선생님들이 바쁜 시기 중 하나다. 특히 고등학교는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일단 이 업무를 끝내면 졸업식 업무, 새학년 대비 업무, 입학식 업무 등으로 학교 행정조직은 풀가동된다. 사실 해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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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용어와 다른 학생부 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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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학생부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학생부를 본 사람이 거의 없다. 요즘은 아무 학교나 가서 행정실에 신청하면 학생부를 팩스로 받아 볼 수 있다. 학부모 세대의 학생부는 매우 간단하다. A4 두 쪽 분량으로 담임선생님이 펜으로 잉크를 찍어 직접 쓴 출결 상황, 교과 성적이나 행동 발달 사항 등을 볼 수 있다. 행동 발달 사항은 근면성 성실성 준법성 등이 양호하면 ‘가’, 보통이면 ‘나’, 좀 불량하면 ‘다’로 평가하고, 그 아래 종합 평가를 했다. 종합 평가는 대부분 세 자. 성실함 명랑함 차분함 등으로 평가했다. 지각하지 않고 청소 도망 다니지 않았다면 ‘성실함’이다. 수업 시간에 잘 떠들고 집중하지 못하면 ‘명랑함’이었다. | |
자주 다투거나 월담을 하거나 선생님한테 대드는 학생은 ‘용감함’이었다. 1980년대 중반에 담임한 제자를 우연히 만났다. 중견 토건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도 않고, 늘 도망 다니고, 툭하면 패싸움에 휘말려 선도부에서도 이름이 난 학생이었다. 당시에는 전문대도 경쟁이 치열해 재수를 해서 간신히 지방 전문대 토목과에 진학했다. 토목과 출신이니 군 생활도 공병으로 했고, 군대 동기들과 회사를 차려 사장이 되었다. 그 제자 학생부 종합 평가 내용이 ‘용감하고 명랑함’이다. 한마디로 상당한 문제아라는 예기다. 그걸 모르는 제자가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학창 시절 저를 긍정적으로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속으로 좀 부끄러웠지만 “성공할 줄 알았다. 너는 학창 시절 승부 근성이 좋았잖아!”라고 답하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학생부에서 ‘승부 근성이 좋다’는 말은 친구들과 자주 다툰다는 말로 통한다. 이렇게 학생부 용어는 일상용어와 다른 뜻이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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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이 안 되는 학생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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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학생부는 본인이나 학부모가 집에서 컴퓨터로 열람할 수 있다. ‘나이스 대국민 서비스’(www.neis.go.kr)에 가입하면 출결, 봉사 활동, 창의적 체험 활동, 성적 등 다양한 내용을 조회할 수 있다. 어떤 학부모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수시 모집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려고 학생부를 발급받았는데, 1학년 때 부정적인 내용이 있어요. 지금 수정할 수 있나요?” “어떻게 쓰였는데요?” “종합 의견란에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의 배양이 필요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이 이 내용을 보면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까요?” “지금 바꿀 수는 없습니다. 1학년 때 담임이 그렇게 판단한 것인데 지금 바꿔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셨을지도 모르고요.” 몇 년 전 일선 학교에서 학생부를 무더기로 정정했다가 징계받은 경우가 많다. 그 후 학생부 정정은 특별한 사항이 아니면 일체 허락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절차도 상당히 까다롭다. 학교별로 정정 횟수가 누적되어 특별히 많은 학교는 감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대상은 학생부다. 학생부에는 출결이나 봉사 활동과 같이 사실적인 내용과 세부 능력 특기 사항이나 종합 의견과 같이 담임교사나 교과 담당 교사의 판단과 평가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면밀히 읽어보면 고등학교 3년 동안 학생이 교실이나 학교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대학 입학 전형에서 감점될 만한 내용도 있고,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내용도 있다. 자습 시간에 자주 떠들거나 자율 학습 참여율이 저조한 학생, 스스로 공부하기보다 학원이나 과외에 의지하는 학생에게 주로쓰는 표현이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의 배양이 필요함’이다. 이 말을 정정하려면 증빙 서류가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증빙 서류를 만들 수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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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보다 마무리가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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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학생부는 한 학생당 20쪽에 육박한다. 학생부 쪽수만 봐도 입학사정관 전형의 합격 여부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전교에서 수위권에 있는 학생은 교내 경시대회 등 수상 실적이 20회 가까이 되고, 세부 능력 특기 사항이 학년당 2쪽이 넘으며, 독서 활동 상황도 그 정도 되고,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도 학년당 1쪽 정도가 된다. 담임교사가 직접 작성해야 할 사항이 6쪽 정도, 한 학급 인원이 40여 명 되므로 모두 240여 쪽, 책 한 권을 쓴다. 이 많은 양을 담임교사가 완벽하게 작성하기는 쉽지 않다. 간혹 증빙 서류가 분실되기도 하고, 메모해둔 것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방학 기간 중에 나오라고 해 본인에게 확인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학생은 한 반에서 4~5명에 불과하다. 대다수 학생들은 페이스북 뉴스피드 넘기듯 대충 훑어보고 다 봤다고 한다. 요사이 아이들의 특징이다. 출발하는 것보다 마무리하는 것이 어렵다. 한 학년을 끝내면서 1년간 모든 활동이 기록된 학생부를 꼼꼼히 읽으며 누락된 것은 없는지, 나와 상관없는 내용이 입력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지금은 담임선생님이 판단해 수정할 수 있지만, 학년이 바뀌면 내용을 바꿀 수 없다. 또 학생부에서 쓰는 용어를 잘 알아야 한다. 혹시 ‘항상 명랑하고 용감함’이라는 말이 있는지 잘 살펴보자는 얘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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