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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디우스의 [라우시스의 역사] "History Lausiaca-The Lausiac History"
A. [라우시스]의 역사]
1. 이 문서는 주후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엽의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의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수도원 수도사들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놓은 일종의 여행 수기이다.
2. 이 문서의 저자는 갈라디아 출생의 팔라디우스(Palladius, ca. AD. 365~425)인데, 그는 나이 20세쯤에 수도원 생활을 동경한 나머지 이집트에 가서 알렉산드리아 근교에 자리를 잡고 수도원을 순방하면서 수도 수행자들과 함께 생활을 하며, 여러 해를 지내는 동안 성경을 배우고 신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3. 그는 돌아오는 길에 팔레스타인의 감람산 수도원 수도사들과 다시 3년을 같이 지냈는데, 거기에서 저명한 신학자 루피누스(Tyrannius Rufinus, ca. AD. 345~410)를 알게 되었고, 오리게네스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4. 그 후 그는 비디니아로 돌아왔는데, 주후 400년에 콘스탄니노플의 대 감독 크리소스토모스에 의해 헬리오폴리스 교회 감독으로 임명 되었다.
5. 그 후 얼마 안 되어서, 대 설교가 크리소스토모스는 신학 논쟁에 얽혀 정치적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오리게네스 학파와 관련하여 소위 “오리게네스 신학 논쟁”에 휘말리어, 콘스탄티노플의 대 감독 크리소스토모스와 알렉산드리아 대감독 테오필로스는 서로 화해 할 수 없는 신학 논쟁의 정적이 되고 말았다.
6. 그 후에 테오필로소스는 크리소스토모스의 콘스탄티노플의 화려한 궁정 생활에 대한 비판적인 설교로 분노한 황후와 결탁하여 황제로 하여금 오크회의(Ock Council)를 소집하도록 책략을 꾸미고, 주후 403년에 크리스스토모스를 29개 조항에 달하는 역죄와 이단으로 정죄하여 비디니아로 유배 선고 받게 했다.
7. 일이 이렇게 되자 크리소스토모스의 입장에서 오리게네스 신학을 옹호하던 팔라디우스는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Honorius, ca, AD. 395~423)의 도움을 얻으려고 로마에 갔다. 그는 크리소스토모스의 사면을 호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가 즉시 체포되어 이집트에 유형되었다.
8. 그래서 팔라디우스는 다시 이집트의 수도원의 고된 수도생활을 하면서 수도사들의 고행과 그들의 생활 모습을 낱낱이 수기 형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9. 주후 407년 9월 14일, 크리소스토모스는 비디니아에서 순교하고, 그 다음해인 408년에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의 서거로 그 아들 데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ca. AD. 408~450)가 뒤를 이어 동로마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 후 412년에 팔라디우스도 이집트의 유배에서 소환되어 아스포나 교회감독으로 임명되었다.
10. 팔라디우스는 그동안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에서 보고 듣고 친히 체험한 수도원 수도사들의 생활과 그 풍습들을 잘 정리하여 주후 419년에 “하나님의 친구들”이라는 표제의 책으로 엮어서 이것을 데오도시우스 2세 황제의 시종무관 라우시우스(Lausius)에게 바쳤다. 그래서 이 문서가 [라우시우스의 역사책](Historia Lausiaca)라고 불리우게 된 것이다.
11. 이 문서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4~5세기의 수도사들이 모두 안식일과 일요일 양일을 종교적 집회일로 성스럽게 준수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증언들이 여러 곳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서는 마이에르(Robert T. Meyer)에 의하여 영역(trans. into Eng. from Greek)되어 “고대의 그리스도인 작가들”(Ancient Christian Writers, No. 34; Westminster, Md. ; The New man Press)이라는 작품으로 1965년에 발표되었다. 본 연구는 이 문서 내용을 저본으로 삼는다.
B. 논의 되는 내용
12. 우리는 이 문서에서, 4~5세기의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과 일요일” 양일에 종교적 예배 의식을 수행해 왔다는 기사들과, 성일로 신성시하여 단식을 금하고 존귀하게 여겨 왔다는 기사들을 다음 장들에서 여러 번 찾아 볼 수 있다.
(1) 제7장 “니투리아”(Nitria)산 수도원의 수도사들
(2) 제14장 “파아시우스(Paesius)와 이사야(Isaias)
(3) 제20장 파울(Paul)
(4) 제32장 “파코미우스(Pachomius)와 타벤니시오테스(Tabennesiotes)”
(5) 제35장 “니코폴리스(Lycopolis)의 요한(John)”
(6) 제48장 “엘피디우스(Elpidius)
이 기사들 중에 논의되는 몇 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3. 제7장 니트리아 산 수도원의 수도사들
(1) “이제 나는 알렉산드리아 근교에 있는 수도원에서 이천여 명에 달하는 참으로 고귀하고 지극히 열성 있는 거주민들과 함께 3년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곳을 떠나 니트리아 산으로 건너갔다. 이 산과 알렉산드리아 사이에는 길이가 7마일이나 되는 마레아(Marea)라고 불리는 호수가 놓여있다. 나는 그 호수를 가로질러 이 산으로 건너오기 위해 그 남쪽 연안에 이르기까지는 하루하고 반나절이나 걸렸다.
(2) 이 산 저 건너편에는 에디오피라와 마지카(Mazicae) 그리고 마우레타니아(Mauretania)까지 미칠 만큼 멀리 펼쳐진 광활한 사막이 있었다.... 니트리아 산에 큰 교회가 있는데, 그 안에는 세 개의 대추 야자나무가 서 있고, 그 나무마다 채찍이 매여 있었다. ... 네 객실이 교회당 가까이에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나그네들이 영접되어, 대접받는데, 그들이 임의로 떠나고자 하는 날까지 유하게 된다. 나그네가 원한다면 일 년이고, 삼 년 동안일지라도 여기에서 종일 머물 수 있다. ... 이 산에는 의사도 살고, 요리사도 있다. 그들은 술도 사용하고 또 팔기도 한다.
(3) 이들 모두가 그들의 손으로 아마포(Linen)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므로 그 중에 아무도 궁핍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홉시 쯤 되면 수도승들의 각각의 작은 골방(cell)에서부터, 진실로, 성스러운 영가(찬송)가 흘러나오는 것을 사람들이 서 서 들을 수 있어서 낙원의 저 높은 곳에 계신 분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오직 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교회에 참석하는 것이었다.“(Paladius, Historia Lausiaca, chap. 7 in Robert T. Meyer, trans., Ancient Christion Writers, No. 34(Westminster, Md, ;The Newman Press, 1965), pp. 40,41.)
14. 제14장 파에사우스((Paesius)와 이사야(Isaias)
“또한 서바나 상인의 아들들인 파에사우스와 이사야가 있었는데, 그들의 아버지가 죽자, 그들은 토지를 나누어가졌고, 또 5천량과 옷가지들과 그리고 또 종들도 나누어 갖게 됐다. ...
이제 하나는 수도원과 교회 그리고 감옥에 찾아가서 그가 가진 것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는 장사하는 법을 배웠기에 자신을 위해 양식을 준비해 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금욕주의적 생활과 기도로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다른이는 나누어 주지 않았으나 자신을 위해 그것으로 수도원을 세워서 몇몇 형제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매 토요일과 일요일(every Saturday and Sunday)에 셋 또는 네 개의 상을 차려서 나그네들과 모든 병약한 자들과 모든 노인네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청해서 함께 식사하는데 그의 돈을 사용했던 것이다.“(Ibid, chap. 14 in Ibid., pp. 49~51.)
15. 제18장 알렉산드리아 마카리우스(Macarius)
“파코미우스(Pachomius)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영감님, 벌써 또 여기 오셨군요. 그래, 영감님은 금욕 생활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예요. 동생들은 금옥 생활을 영위하는데, 영감님은 그들의 짐을 조금도 함께 질 수 없나는 것이지요. 그들이 영감님을 남겨 둔 채 떠나 버리면 영감은 당황하여 그들을 욕하게 될 것이어요’라고 하면서 그는 그를 [주일 중] 첫째 날 뿐만 아니라, 둘째 날에도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그러나 제칠일(the seventh day)에는 받아들였던 것이다.”(Ibid, chap. 18 in Obid., pp. 62~63.)
16. 제20장 바울
“이집트에 페르메(Pherme)라고 불리는 산이 스케테(Scete)사막의 가장자리에 우뚝 서 있다. 여기 이 산에 약 500여 명의 수도사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 모두가 금욕주의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바울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어려서 여기에 왔다. 그는 먹는 일 외에는 작업이나 그 어느 것이라도 열심히 일하는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의 일과의 수도 생활이라 해야 고작 계속 해 드리는 기도하는 일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그가 알게된 사실은 지성을 다해 기도하는 300 여명의 수도사가 있다는 사실과 또 그가 저 많은 자갈들을 수집해서 그이 앞치마에 가득 채워서 기도드리는 수도사들이 각각 자잘을 내 던지도록 그들 앞에 갔다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람들이 시민이라고 부르는 이들 중 한 분인 성 마카리우스(Macarius)를 만나러 가서 그에게 말했다. ‘아버지, 마카리우스여, 나는 대 실망했습니다’’라고 했다. ‘어느 골짜기에 30년 동안이나 수도 고행 해 온 처녀가 있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녀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 두 날 외에는 전혀 먹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했다.“(Ibid, chap. 20 in Ibid., pp. 70~71.)
17. 제32장 파코미우스와 타벤니시 족
“소위 타벤니시라는 곳이 데베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곳에 외롭게 사는 어느 파코미우스라는 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예언의 능력과 천사의 환상을 보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느는 매우 친절했고, 우애가 심히 두터웠다. 어느 날 그가 그의 골방에 앉아 있었을 때 그에게 한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다. ‘네가 염려하고 있는 한 너는 네 생애가 완전하게 인도되리라 그러므로 너는 네 골방에 계속 앉아만 있는 것은 허사니, 나와서 이곳을 떠나 나가라. 그리고 젊은 수도사들을 불러내어 그들과 함께 지내라. 내가 지금 네게 주는 모형)model)으로 그들을 다스려라’ 했다. 그리고 나서 그 천사는 그에게 이것들이 새겨져 있는 청동 판을 주었다.
...
그들 각자에게 염소 가죽의 작업용 외투 한 벌을 가지도록 할 것이니, 이는 그들이 그것 외에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성찬식(Communion)에 참석하러 가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그들로 그들의 허리띠를 풀어서 두건만 쓰고서 가게 할 것이다.“(Ibid, chap. 32 in Ibid., pp.92~95).
18. 이와같이 우리는 4~5세기의 고대 교부시대의 문헌에서 당시에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예배와 일요일 예배를 병행해 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기초는 “오직 성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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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안식일에 대한 교부들의 증언(3)|작성자 참 좋은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