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선운중학교는 ‘공간’ 혁신을 통해 교육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속도는 느리지만 교육과정 속에서 공간에 대한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이 아이디어는 공간으로 혹은 작품으로 탄생시켜 다시 공간을 채운다. 학생들의 상상력이 현실에 투영된 인문공간 ‘이공삼칠’과 ‘꼬물’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삶을 위한 학교’ 문 열어
어둡고 칙칙한 화장실을 리모델링했더니 학교 전체 아이가 달라졌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지저분하게 사용하지 않는 공간으로 다시 꾸며졌다. 도서관은 더 머물고 싶을 정도로 아늑하게 꾸며서 책을 읽으라는 소리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게 만든다. […] 공간의 변화만으로도 교육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 中)
‘좋은 공간에 대한 경험이 곧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저자 김경인 씨는 공간이 아이들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바탕으로 행복한 교육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공간의 변화만으로도 교육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한 구절이 마음을 잡아끈다.
여기 공간의 변화로 교육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학교가 있다. 바로 광주 선운중학교(교장 윤경하) 이야기다. 올해 개교 4년차인 선운중은 ‘너무 깨끗해서 생명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한 교사의 말처럼 차가웠던 공간에 ‘삶을 위한 학교’를 개소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학교에서 처음 해보는 게 많다”, “학교는 우릴 존중한다”, “쉬는 날에도 학교에 가고 싶다”, “학교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그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선운중의 ‘삶을 위한 학교’는 예술과 문화를 누리고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권리, 미래가 아닌 ‘지금’ 즐거울 권리, 일상의 삶을 위해 공부할 권리, 그 권리를 지키는 학교를 만들어 보자는 목표로 탄생한 공간이다. ‘삶을 위한 학교’는 나를 성찰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살피며 사회를 바로 알게 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인문학적 사유’를 배우는 것에서 시작한다. 더불어 사물을 새롭게 본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 ‘예술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실제 내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익히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들의 소중한 공간 ‘이공삼칠’
그 중심에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인문공간 ‘이공삼칠’은 학생들에게 조금 특별한 공간이다(숫자만 놓고서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2037’이란 숫자는 선운로 20번길 37번지라는 주소에서 따왔다).
이곳은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모습은 매점을,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카페를, 까르르 웃으며 보드게임을 즐기는 모습은 동아리실을 연상시킨다. 한쪽 벽면에 사진들을 전시하여 갤러리 분위기도 물씬 풍기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점심시간이면 인문공간 ‘이공삼칠’에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이곳은 학생들의 휴식공간이면서 동시에 즐거움이 넘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학생에서부터, 보드게임을 즐기는 아이, 그림을 그리는 아이 등등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볼 수 있다. 대여섯 명이 몰려와 열띤 독서토론을 벌이는 모습은 이곳에서는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이공삼칠’을 운영하는데,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이뤄지고 있다. 학생들이 순수한 봉사의 의미로 직접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판매하며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사용한다. 빠듯한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힘들다기보다는 자부심으로 통한다”고 설명한다.
그밖에도 ‘이공삼칠’은 다양한 교육활동이 이뤄지는 뜻 깊은 공간이다.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전시회, 다양한 인문학 강연이 열리기도 한다.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의 저자를 초청, 깊이 있는 사유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으며, 호남학연구소의 연구원을 초청 ‘거짓말’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인간 본연의 삶,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 공간에서 이뤄진 다양한 활동은 ‘삶을 위한 학교’가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전해 주고자 하는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고물이 예술작품으로 탄생하는 곳 ‘꼬물’
선운중의 또 다른 공간 ‘꼬물’은 고물을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작업실이다. 입구에서부터 색다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목공소를 그대로 교실에 옮겨 놓은 ‘꼬물’은 헌 것을 재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목공도구들이 준비되어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버려진 가구나 목재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업사이클(upcycle, 재활용의 차원을 넘어 버려진 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일) 활동을 벌인다. 학교에서 채용한 이호동 작가는 학생들이 공간을 만들고 업사이클 활동을 하는데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삶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작품활동을 통해 개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도 있다. 꼬물에는 상상을 현실로 가져온 기발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손잡이가 부러진 테니스채를 재활용하여 멋진 테니스의자, 골격만 남은 의자에 나무판자를 덧대고 깨진 타일을 붙여 만든 특별한 의자, 낡은 자전거를 리폼하여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자전거가 만들어지는 곳. 이곳은 말 그대로 ‘고물’이 ‘예술작품’으로 태어나는 곳이다.
이호동 작가는 “교과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그 중에서 작품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아이디어를 낸 학생과 함께 디자인을 완성하고 작품으로 만든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구체화과정을 거쳐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어 매우 좋아한다”고 말한다. 업사이클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직접 디자인을 갖고 찾아온다. 모두 이호동 작가가 학교에 상주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공간혁신’ 교육의 질을 말한다
광주 선운중의 ‘삶을 위한 학교’는 ‘교육을 혁신한다, 바꾼다’는 것이 무엇인지 평소 고민해온 교사들이 내용적 혁신뿐 아니라 공간에 대해서도 혁신해 보자고 뜻을 모아 탄생한 공간이다. ‘삶을 위한 학교’는 북유럽국가의 인간 친화적인 학교시설이 모티브가 됐다. 2010년 스웨덴 실험종합학교 ‘푸투룸’을 알게되면서 기존의 학교와는 다른 학교의 모습을 그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교사들의 의지와는 달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절대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자신들이 생활하는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처음 아이들에게 원하는 공간을 물었을 때 매점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고민을 수업으로 이어갔다. 수업시간에 북유럽 학교에 대해 알려주고, 공간이 아름답게 조성된 전국의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파주 출판단지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학생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어떤 책을 읽고 싶은가?’와는 조금 동떨어진 ‘학교로 가져오고 싶은 공간을 훔쳐오자’는 것이었다. 창가의 바 테이블, 세모탁자,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등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작은 도서관 투어도 이어졌다. 학교에 있었으면 하는 공간을 발견하며 사진을 찍어 자료를 모았다. 인문공간 ‘이공삼칠’, ‘꼬물’은 이처럼 아이들이 자신들의 공간에 대해 설계하고, 토론하며, 모형으로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특별하다.
한 학생은 “교실을 함부로 사용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공삼칠’은 우리의 의견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공간이다. 무척 아끼고 소중하게 사용하고 있다. 친구들이 직접 음료도 판매하면서 공간에 대한 책임감도 크다”고 말한다.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드는 수작공방
선운중학교의 수작공방은 ‘꼬물’과 더불어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재봉틀을 이용하여 에코백과 방석 등 생활 속에서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다. 최근에는 영화 ‘귀향’을 시청하고 3학년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불노리개 만들기 체험을 진행한 바 있다.
선운중의 힘은 ‘여느 학교에는 없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었다’ 혹은 ‘공간혁신을 이뤘다’는 점으로만 평가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우린 ‘삶을 위한 학교’가 선운중 학생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간에 변화가 생기면서 학생들은 예술과 문화를 누리를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작은 아이디어가 멋진 예술작품으로 탄생하는 경험은 창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 미래의 행복이 아닌 지금 즐거운 권리를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즐거움을 통해 학생들은 학교라는 공간을 삶을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