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사막을 건너는 힘 / 이면우
낙타도 없이 이 세상 끝에 뭐하러왔느냐고 물어주길 바라며 찬바람 쌩쌩 흙먼지 풀풀대는 사막을 한참 걸어갔다.
이렇게 대답해줄 참이었다 흰구름 양떼 따라 바로 당신을 만나러 왔노라고, 흙모래 속에 듬성듬성 박힌 바다자갈 낯 선 이 사막을 다 건너 처음 만나게 될
나무같은 다음 생을 만나러왔노라고.
섣달그믐께 / 이면우
성문 밖 주막을 그냥 지나가는 발자국에 오래 귀 기울이는 다저녁때구요,
빈 마당에 누군가, 자싯물 길게 한 번 짧게 또 한 번 찌트리는 소리가 서쪽 하늘 끝 붉은 등 매답디다.
아침까지 내처 백리쯤 더 가야하는 흰옷 입은 은사시나무들, 신발 끄는 소리도 없이 산으로 산으로 먼저 올라갔구요,
근데요, 다 말고 당신은 어디쯤 어스름길을 서둘러 디뎌오는 중입니까.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 이면우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 할 저녁이 있다
화염경배 / 이면우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불길 속에서,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부전자전 / 이면우
일찍이 성욕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시도 때도 없 이 쳐들고 올라와 바지 주머니에 손 넣고 꼬집어 죽여줘 야 했다
나이 쉰 되며 비로소 피가 맑아졌다 속으로 휴우, 한 숨 쉬며 안도한다 이젠 여자를 무심히 볼 수 있게된 거 다 그런데
열두살 된 아이, 제 고추가 너무 자주 빳빳해져 고민 이라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밤, 나는 꼼짝없이 한 방 꽝 맞아버렸다
아내는 십년농사 헛농사라며 방바닥을 친다 신부님 되라고, 눈 비 뚫고 업고 걸려 읍내 성당에 다녔는데 그 래서야 어떻게 그 먼 길 가겠느냐며
그러더니 어느새 깔깔대며 부전자전, 하고 외치는 것 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 이면우
가뭄 / 이면우
멧비둘기 악착같이 가야하는 저 숲 어디쯤
빵집 / 이면우
나는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았다
거미 /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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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 문화교양학과 전국문화제에서
따뜻하리라, 푸르리라, 그 생의 북쪽 - 이면우 시인
좋은 시를 만나는 순간과 좋은 시인을 만나는 순간. 이 두 순간은 시인에게 궁극적인 기쁨이다. 인간이 백 가지 고통을 한 가지의 기쁨으로 이겨내듯, 시쓰는 일의 적막함도 이러한 순간들 때문에 즐거움으로 환치된다. 시인의 세계를 카메라 파인더로 엿보는 일이야말로 정말 특별한데, 평소에 좋아하는 이면우 선배이고 보니 그 특별함이 더 소중해진다. 장마였다. 계속 무거운 구름과 비오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약속을 몇 번 바꾸며 벼르고 벼르다가, 비 그친 틈을 타 카메라 가방을 메고 나서는데 또 빗방울이 친다. 꾀를 낸다. 이면우시인이 아끼는 이진수, 김열 두 시인에게 우산돌이로, 웃음동이로 동행을 청한다. 흔쾌히 함께 길에 서는 두 사람, 우리 삶에 동행이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배, 세 배로 늘어나는 만남의 즐거움, 삶의 풍요란 바로 이런 것.
1. 시인의 직업 시 속에 나오듯 그는 열일곱에 손공구를 틀어쥔 이후 오늘까지 손공구를 쥐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오래 움켜쥐고 있으면 쇠도 손바닥처럼 따스해지고야 마는’(「손공구」) 노동의 삶을 수용해낸다. 삶을 이해해낸다는 것, 삶의 노동을 수용해낸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시인의 직장을 들르면서 내 마음이 먼저 따뜻해진다.
그는 현재 보일러공이다. 그의 작업장은 지하실이고, 푸른 작업모와 작업복 차림으로 언제나 불꽃을 지킨다. 그전에 그는 건축 공사판을 맴도는 일용직 노동자였고, 또 그 틈틈이 특허를 꿈꾸는 발명가이기도 했다. 땀내 나는 노동의 시간과 공간은 그의 시세계의 튼튼한 초석으로 깔린다.
「벚꽃단장」에서 점심보자기를 끼고 이 현장 저 공사판 날마다 기웃대다, 종내는 시립도서관 벤치에 앉아 식은 밥 우황 든 소처럼 씹으며, 풀풀 날리는 벚꽃 몇 이파리를 함께 씹는, 그리하여 벚꽃을 ‘오, 그 죄없는 밥풀떼기’를 메인 목으로 노래할 수밖에 없는 시인의 모습.
「물 또는 자라는 탑」에서 ‘내 여름날의 노동은 팔뚝에 피는 소금꽃’을 보면서 ‘내 힘의 원천은 흐르는 땀’임을 잊지 않는 시인. 「화염경배」에서 새벽에 보일러를 가동하다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보면서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 나왔다’며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의 현장은 많은 시편 여기저기서 땀냄새를 풍긴다.
그가 결혼한 후 주어진 삶의 고달픔, 삶이 어려움 속에서 꺼낼 수 있는 것은 시였다. 그래서 첫시집 『저 석양』이 나오게 된다. 그후 한동안 그는 시에 몰입 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에게 시는 여가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인은 끊임없이 삶과 정면대결을 해야 했다. 대신 그는 가난을 극복하고자 일당 6-7만원의 노동 속에서도 특허발명에 몰입한다. 91년도에 시작된 그의 특허병은 7년이나 지나 98년 디지털시대의 환경에 밀리면서 특허를 포기하고 다시 시로 들어오게 된다.
다시 시로 들어오면서 그는 시를 통한 현실의 개선을 꿈꾼다. 시인은 시의 절대 가치에 매달리지 않는다. 일찍, 청소년 시절에 시의 세계에 접한 시인은 17살 무렵 시의 절대 가치를 버렸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것이 아마 그가 시의 자의식이나 강박감에 벗어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시가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를 끌고 가야 한다는 자신감은 시에 휘둘리기보다 시의 주인 으로써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시인이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애정은 너무 진실해서, ‘시인만의 영악성’이 어떤 것인지 그는 작품 곳곳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시에는 얼마나 철저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단거리 선수인지, 장거리 선수인지부터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될 수 있는 한, 쓸 수 있는 한 자신의 시의 꼭지점에 가 있어야 한다는 지론은 시인의 시쓰기가 사실은 얼마나 치열한 의식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식으로 그의 시는 삶의 자양분을 토대로 진정성이라는 몸을 얻어 세상으로 나갔다.
유달리 강한 삶의 책임과 그의 직업의식은 시세계에 굳건한 육체성으로 작용 한다. ‘그래 그래, 사는 거다 누구라도 온몸으로 살아야 하는 거다 (「그 숲속 작은 새들」)’에서 보이듯 그는 모든 현실에 정면으로, 온몸으로 부딪친다. 치열하고 성실한 노동을 통해, 마침내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 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시세계는 노동의 절대적 가치로 가득하고,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노동의 신성함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지금 중학생인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은빛 나는 손공구 세트를 선물 (「손공구」)’함은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볼 수 있을까. ‘보일러 스위치 넣고 삼십분 뒤 책 겉장 갈아댄 박용래시전집’을 펼치던 시인의 일상은 오늘도 책상 위에 놓인 시집이나 시편들로 이어지고 있다.
2. 걷기, 그 문학의 양식 시인과 함께 우리는 대청호를 향한다. 갈 때마다 느끼지만 대청호는 여느 호수 보다 훨씬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시인의 시 속에 나오는 모든 숲과 호수, 길들은 대청호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시인은 6년 가량 대청댐 한 골짜기의 오두막집에서 살았다. 그때의 삶과 자연은 그의 서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시가 필요할 때, 시를 써야할 때, 그는 먼저 적게 먹는다. 그리고 많이 걷는다. 50리 이상의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책상에 앉아 쓰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시를 쓴다.
스스로 결핍의 상태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그 결핍의 상태는 슬픔을 가져오고, 슬픔은 시를 가져온다. 그는 현대인이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약한 것은 걷기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걷는 것이 인간을 건강하게 한다. 걷기는 곧 걸음마로서 지속적인 삶 자체에 대한 훈련이며, 인식의 시작이라고 시인은 믿는다. 실제로 그 걷기를 통하여 시인은 호수를 만나고, 숲을 만나고, 수많은 나무와 나무들의 계절, 수많은 새들과 새들의 계절을 만나면서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그의 시세계는 무척 자연친화적이며, 스스로도 자연과 친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길이라는 탯줄을 통해 자연이라는 배꼽으로 들어가고 마침내 삶의 진정성이라는 우주에 닿는다.
그 길에 벚꽃 피고 벚꽃 지고, 그 길에 단풍 들고, 그 길에 소쩍새 운다. 그 길에서 그는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보고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이해한다. (「거미」), 그 길에서 모든 ‘생이 하나씩 왕국’(「골짜기의 포장도로」)임을 발견한다. 그 길에서 ‘사랑하는 이들에게로 뻗은 저녁길에 지름길이 없다,(「저녁길」)라고 말한다. 그 길을 위하여 시인은 곧 도시 속 삶을 정리하고, 다시 대청호 물가로 이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다시 쪽배를 타고 마음의 저 건너편을 보고 싶은 것이리라. 대청댐은 회색 구름을 담고 흔들리고 있었다. 시인은 삶의 고달픔을 그렇게 걸음으로, 혼자 묵묵히 걸음으로 승화해내어 결국, 현실서정이 주는 삶의 뜨거움 을 그대로 전달해왔다.
그의 시의 배후에는 아내가 있었다. 시인을 시인으로 만든 건 아내와 아내의 신뢰였다. 27살에 시인은 아내를 만났다. 선풍기 하나도 없이 시작한 가난한 신혼을 거쳐 25년이란 시간의 다리를 건너 여기에 이르기까지 아내는 그의 유일한 후원자였다.
노작문학상 시상식에서 남몰래 눈가를 찍던 그녀를 본적이 있다. 시인의 시를 읽어주며, 안팎으로 가난한 살림을 당차게 꾸려온 시인의 아내는 싹싹하다. 시인이 온몸으로 삶과 정면대결할 수 있도록, 또 시와 정면대결하는 데는 아내의 힘이 너무나 컸다. 아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유달리 지극한 것은 문단에 다 알려진 사실이다. 대청호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걷다가 시인의 집으로 향한다.
3. 시인의 다락방 시인의 집은 대청호에서 가깝다. 시인의 아내는 김치찌개를 끓여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도 ‘산 너머 집쪽 밤하늘에 대고 미안해, 미안해’ (「쓸쓸한 길」)말하는 시인의 고백에서 나는 왜곡되지 않은 시인의 깊고 연연한 애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놓고 끓인 시인의 아내 김치찌개 솜씨는 주변에 유명하다. 특히 바람이 쌀쌀한 계절이면 가까운 후배시인들은 어김없이 그 김치찌개를 그리워한다. 인근에서 직접 키운 상추와 풋것들, 나물 반찬들이 참 맛있다. 식탁을 통해 시인의 삶이 유달리 풍요로운 이유를 알았다.
드디어 묵은 종이 냄새로 가득한 이면우시인의 다락방을 찍을 순간이 왔다. 처음 그 다락방을 본 순간 이 가난한 시인의 부유한 면을 보았다. 정말 욕심나는 다락이었고, 시인의 작업실이었다. 10년째 살고 있는 신탄진 입구의 덕암 주공 아파트 3동 302호 18평 아파트. 그러나 천장 전체로 깔린 다락 때문에 시인은 30평이라고 주저없이 말하며 스스로 부자라고 자부한다. 화장실 천장에 뚫린 작은 구멍이 다락방의 출입구다. 날씬하지 않으면 직선으로 벽에 붙은 사다리를 타고 그 구멍을 통과하기 어렵다. 욕조를 딛고 올라서 사다리를 짚으며 위로 뚫린 구멍에 머리부터 밀어 넣어야 한다.
나는 날씬하지도 날렵하지도 않은 편이라, 그 구멍을 통과하는 게 만만하지 는 않다. 겨우 어깨를 빠져나와 다락에 올라서면 먼저 그 많은 책들이 사방벽 을 두르고 앉아 묵은 냄새를 풍긴다. 제법 넓어 열 명 정도는 거뜬히 둘러앉을 만하다 과연 부자라고 자부할 만하다. 정말 그는 책부자다. 틈 없이 벽면을 꽉 채운 책들. 게다가 작은 스탠드와 카세트 라디오, 그리고 노트북, 담요 한 장이 작업실의 풍요를 말해준다.
이 다락방에 첫시집, 촌스러운 빨간 표지의 『저 석양』이 정부미포대에 담긴 채 이불보따리에 뒤에 얼마나 오랫동안 놓여있었던가. 그러나 그 시집은 제가 태어난 생명의 역할을 확실하게 해낸다. 하나, 둘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된 『저 석양』이 시인을 세상으로 끌어내게 된 것이다.
요즘 그의 창작은 더 뜨겁고 활발하다. 시를 쓸 때의 정력, 그 원동력의 에너지 가 무엇인가, 우리는 묻는다. 시인의 대답은 간결하다. 시를 쓰는 에너지는 삶을 긍정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어떤 문제라도 잘못된 것조차도 내 것으로 수용 한다. 그는 ‘수용’을 삶의 방식으로, 사랑의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다. 수용이란 무엇일까. 그건 <즐거운 견딤>을 의미하지 않을까. 이는 외부의 힘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우리의 감정을 지배당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는 자기 통제와 함께 시인 자신의 능동적인 노력에서 창조된 세계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지로 삶에 대한 스스로의 이해를 심화시켜나가기 때문에 그의 창작력은 더 뜨거우면서도 진정성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 <견딤>의 방식을 그의 금주금연에서 볼 수 있다. 한때 그는 하루에 <새마을> 한 갑씩 피우던 애연가였고, 술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 막 태어난 아들에게, 가난한 시인은 금주와 금연을 선물했다. 그 약속이 15년째다. 그는 정말 어떤 자리에서도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동안 여러 차례 꿈에 크게 취했다 꿈속에서 이건 꿈이니 기왕에 마시려면 잔뜩이라고 왕사발로 거푸 들이키던 애달픈’ 밤들을 그는 묵묵히 견뎌낸 것이다. 금주조차도 그에겐 견뎌내어야 할 절박함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고지식함을, 고지식함으로 보지 않고 가족에 대한 최선의 애정으로, 삶에 대한 경건함으로 읽는다.
어떤 상황이든 화살을 타인에게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몫으로 품는다. 그 견딤은 ‘그래 그래, 오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젖는 것들은 모두 따뜻하다」)’는, 또한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 할 저녁이 있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다는 고백을 낳는다. 이러한 존재에 대한 연민은 따뜻한 창작에너지로 작용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또 그 시세계의 다음 방향이 궁금해진다. 이제 그는 시 속에 보다 공동체적인 것, 사회적인 발언이 있어야 함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 시대 시의 역할은 결국은 자기구원이겠지만, 그것을 넘어 세상과의 감동할 수 있는 요소가 얼마나 될 것인가가 시의 시대적인 역할이 되리라 믿는다. 유달리 달큼한 수박까지 다 먹고 나니, 밤이 깊다. 우리는 일어선다. 아래까지 내려와 배웅하는 시인내외를 보면서 배보다 마음이 부르다. 시는 삶의 자양분에서 나오며, 다시 삶의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에 공감한다. 결국 시는 삶의 열매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리얼리즘은 삶에 대한 서정과 잔잔한 속울음 묻은 진득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하여 자기 안에 ‘생의 북쪽’을 발견하기까지 걸어낸 시인을 보면서 당당히, 그리고 즐겁게 인간의 편에 섰던 프로메테우스의 어깨가 저절로 떠오른다.
/ 김수우 시인의 카페 글에서
봄밤 / 이면우
늦은 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
작달막한 키의 이면우씨(50)는 햇살 아래 손을 흔들며 서있었다. 푸른색 작업복 차림이었는데, 한손엔 언제나 들고다니는 듯한 검정색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봄볕이 너무 따갑다고 하자, "나는 여름햇볕도 좋다"고 답한 그는, "태양을 늘 쬐고 사는 흙은 참 행복한 존재"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일터 앞에는 드넓은 공원을 소유한 정부 대전종합청사가 있었는데, 이씨는 점심시간이면 그곳으로 나가 맨발로 흙을 밟고 다닌다고 했다.
이씨는 일찌감치 노동판에 입성했다. 중졸이 그의 학력. 가난 탓이었지만 예습, 복습을 해야 따라갈 수 있는 공부도 재미가 없었다. 조숙한 데다 새로운 세계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부잣집 농사를 지어주러 간 큰형, 양복점 '시다'로 간 둘째형의 뒤를 이어 공사판으로 나섰다.
"처음엔 덩치가 작고 나이가 어리다고 안끼워주데요. 심부름만 하다 마침내 삽자루를 쥐고는 어찌나 기쁘던지 죽자사자 일만 했습니다. 군시절엔 밤톨만한 게 일 잘 한다고 소문이 자자했어요. 물론 서럽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체가 으스러지도록 젊음을 불태워보자는 오기가 있었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자 그는 더욱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 시절 이씨의 최대 고민은 일이 없는 겨울을 어떻게 버티느냐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대청호변 산자락으로 들어간 그는 버섯농사를 지어 겨울을 나기로 했다. 봄.여름.가을에는 공사장으로, 겨울에는 산골에 틀어박혀 농사에 전념했다.
그렇게 살기를 7년. 어느날 문득, 그의 삶에 시가 찾아왔다. 공사장을 전전하는 동생이 안쓰러워 큰형이 보내준 박용래의 시집 '먼바다'는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그의 감성을 흔들어 깨웠다. 공사장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종잇장이 너덜너덜해 지도록 읽고 또 읽었던 시집. 한 100번쯤 읽으니 '나도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거세게 일었다. 서른아홉에 얻은 아들은 그의 시심을 더욱 부추겼다. 용기를 냈다. 호숫가 외딴 오두막에서는 날이 저물면 '또닥또닥' 타자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랫방에는 아내와 아이가 잠들고, 남편은 불기 없는 윗방에서 이불 을 뒤집어쓴 채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시를 썼다. 그의 싯감은 대부분 노동판을 오가며 건져올린 것이었다. 몸뚱이 하나 믿고 전력을 다해 살아가는 동료 노동자 들의 삶, 그들의 밥상과 눈물, 가난 속에서도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작은 행복과 꿈들…. 그것이 세상에 알려진 사연도 애틋하다. 공사판에 시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건설회사 사장이 그의 시를 읽고 감동, 사재를 털어 첫시집 '저 석양'을 출판해 준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시집이 나온 뒤 그렇게도 좋아했던 시쓰기를 중단했다.
"우리같은 노동자가 시를 쓴다는 건 현실의 땅에서 발을 뗀다는 걸 의미하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이튿날 새벽녘에 공사장으로 갈 수 있는데, 책을 봐야 하고 시도때도 없이 상념에 빠져들게 하는 시는 노동을 망치는 지름길이죠. 이러다간 마누라 고생만 시키고, 늦둥이 아들 학교도 못 보낸다 싶어 책들을 정부미 부대에 꼭꼭 싸서 처박아 두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을까. 아빠도 '회사'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소원에 보일러실로 일자리를 옮긴 그에게 다시금 시를 써야 하는 운명적 만남이 찾아 왔다. 남편 자랑할 게 없어 "우리 신랑은 시인"이라고 떠벌린 아내로 인해 다락 에 처박혀 있던 시집이 어느 국어교사의 손에 들어갔고, 그의 시에 감명받은 교사가 '창작과 비평사'에 이씨의 작품을 소개한 것이다. 마침내 그는 1997년 '시인 이면우'로 등단했다. 얼굴 뜨거워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아, 하늘의 별을 따는 사람이 있다더니, 나도 별을 따는구나" 하고 감격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인 이씨에게 '삶이냐, 시냐' 하는 갈등은 지금도 계속된다. IMF때는그 역시 실업자의 고통을 뼈저리게 맛보았다. 도시락 하나 싸들고 공원 을 전전했고, 아내 몰래 몇번을 고쳐쓴 이력서를 여기저기 들이밀고는 90도로 허리숙여 절을 했다. 생활마저 극복했을 때 진정한 시가 터진다고 선배들은 충고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실수할 틈도 없이 50평생을 허겁지겁 살아왔다는 노동자 이면우씨. 그러나 "현실에서 상처를 받아도, 세상에 꽃을 돌려주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믿는 그다. 오히려 그는 가난을 즐기는 듯했다. 가난을 지독히 경험하고 나면 숨만 붙어서 모든 걸 보고 만질 수 있는 자체로 행복해진단다. 그는 가난에 이미 도가 터 있었다. 시인의 배웅을 받으며 올라탄 서울행 버스. 뒤돌아보니 왜소한 몸집의 그가 봄햇살을 받으며 일터를 향해 바삐 걸어간다. 아마도 그는 회사 정문이 아닌, 주차장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을 걸어 어두컴컴한 차고로 들어갈 것이다. '통제구역'이라 쓰인 철문을 열고 다시 계단으로 내려가 붉은 배관들이 복잡 하게 얽힌 지하의 음침한 공간에 닿으리라. 불현듯 그에게 던졌던 질문 하나 가 떠올랐다. "다시 태어난다면…". 시인이 답했다.
"하늘로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흰구름 같은 시 한편 써보고 싶어요. 하지만 삶은 단 한번이면 족해요. 단 한번이니, 보석같이 껴안고 갑니다"
<화장실 천장을 서재로 운동성 극복한 노동시>
평단은 이면우의 시를 노동시로 분류한다. 하지만 그의 시는 1980년대를 풍미한 박노해나 백무산의 시와는 전혀 다르다. 노동자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하지만 운동성을 지니지 않았으며,소시민적이지만 서정적이고 진솔하다. 실제로 집과 가족, 사람에 관한 것이 그의 주된 시제다. 실업의 아픔을 달래던 무렵에 쓴 '생의 북쪽'은 '평론가가 뽑은 2000년 대표시'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가 시상을 떠올리는 또 하나의 배경은 아내다. 먼산에 소나기구름 드리우자 동구 밖에 매어놓았던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던 처녀. '고졸'이라 속이고 보문산에서 정을 나눈 뒤 혼례를 올린 아내는 삶을 정면으로 껴안는 당찬 여자였다. 남편의 벌이가 시원치 않아 자신은 신문배달에 분식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꿀릴 게 뭐 있어!" 하고 큰소리치는 아내는 순간순간 절망하고 넘어지는 이씨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가장 커다란 버팀목이었다.
생활이 앞서간 자리에 고여드는 시. '누구나 자기 안에 북쪽을 지니고 간다. 좀 더디지만 북쪽에 쌓인 눈도 때 되면 녹고 꽃은 한꺼번에 붉고 푸른 빛을 몰아 터뜨리기도 했다'(생의 북쪽)는 그의 시처럼, 그들은 하루하루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밭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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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詩의 향기 / poem & photo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
첫댓글 "근데요, 다 말고 당신은 어디쯤 어스름길을 서둘러 디뎌오는 중입니까"....기가 막히는 구절이군요....요즘의 한다하는 사랑시들은 서구화의 영향인지....아니면 체험이 전혀 없는 말장난으로....너무나 감각적이라 ...게스름한 눈빛으로 무엇을 쫄쫄 빨고있는....포르노 같더라니.....이렇게 착한 시를 소개해주어...행복합니다.
시를 쓰는 에너지는 삶을 긍정하는데서 비롯 된다는 시인의 말... 노동자 이면우 시의 세계를 보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다시 태어난다면..."하늘로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흰구름 같은 시 한편 써보고 싶어요. 소박한 시인의 소원 성취되리라 믿으면서 끝까지 읽으면서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