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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대환란의 의미
오늘은 5과 <대환란의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환란이 일어난다고 하니까
첫째 공포, 무서워서 그리고 우리가 이 환란을 어떻게 이겨나가겠느냐 그러고 겁부터 집어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겁에 질려가지고 우리 성도들은 환난을 당하지 않고 반짝 다 들어 올려져서 구원을 받고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7년 동안이나 한다 이런 헛소리하는 사람들 말 들으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셨는데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요한복음 16장 마지막 절이에요.
대환란의 의미 크게 세 가지로 설명을 했습니다. 첫째, 환란이란 하나님의 심판이다. 둘째는 바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거다. 셋째, 더 중요한 거는 대추수 작업이다.
첫째 대환란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성경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심판이에요. 그래서 노아 시대의 대홍수 심판, 죄가 얼마나 관용했는지 하나님이 싹 쓸어버렸습니다. 또 소돔과 고모라의 불벼락 심판, 전멸시켜버렸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신다는 거죠. 마지막 때에는 세상이 불로 심판을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시려고 전부 준비해 놓으셨어요.
처처에 재앙이 가득가득한 세상, 근데 마지막 때 사람들은 어떡하느냐 그런 재앙이 일어나도 절대로 회개하지 않는다. 다 회개하지 않는 것 같아도 회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주목하시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사람들을 많이 일어나게 하셔가지고 이 땅을 새롭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환난이 일어날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 세상에 왜 환난이 일어나느냐, 인간이 짓는 죄는 크게 세 가지예요. 첫째 도덕적 타락입니다. 세상이 도덕적으로 너무 많이 타락합니다. 그 도덕적 타락에 제일 앞장서서 인도하는 게 음란한 거예요. 세상에는 그 음란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둘째가 지식적인 타락입니다. 공부는 많이 해서 아는 거는 많은 것 같은데 그 지식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식이 되고 말았단 말이죠. 첫째 도덕적인 타락이 오고 그다음에 진리의 타락이 온다.
그다음에 무슨 타락이 오느냐, 영적인 타락. 영적인 타락이 오면 어두워집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빛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또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이 빛을 잃어버리면 세상이 캄캄해져요. 우리는 옛날 사람들보다도 더 거룩하게 성결하게 의롭게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대환란이라고 하는 거는 하나님의 연단이다. 당신의 백성들을 연단시키십니다. 불속에 집어넣어서 연단시키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거는 그냥 연단을 받지 않으면 우리 평범하게 그냥 믿으면은 그거는 금광석과 같아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용광로에다가 집어넣어서 연단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께,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따라가야 돼요. 연단 받은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불속에다가 집어넣으신다. 스가랴 9장 13절-14절 보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큰 환란을 주시고 이렇게 불 가운데다가 집어넣으시는 거는 우리를 연단시키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중에 3분의 2는 다 쓸어버리시고 죽여버리시고 3분지 1만 남는답니다. 그들이 불속에 들어가서 이런 연단을 거친 후에 그러니까 불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돼요. 하나님 찾게 되겠죠. 연단, 불속에 용광로에다가 집어넣는다는 얘기는 찌꺼기를 다 떨어버린다는 얘기예요. 우리의 믿음도 순수해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제물들이 되고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대환란은 대 추수 작업이다. 가난하게 될 때에, 어렵게 될 때에 열심히 나가서 전도해서 이때 사람들 마음이 가난해져 있고 이때에는 회개하라고 외치면은 이게 받아들여져요. 또 그때는 하나님이 기적을 많이 일으키십니다. 이렇게 해서 큰 추수 작업을 이루게 되신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대환란의 의미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살면서 첫째 이 대환란이라고 하는 거는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에 먼저 회계를 잘하는 사람들이 돼야 되겠다. 둘째 이 대환난은 하나님의 연단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쁨으로 연단을 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
셋째로 대 추수 작업이다. 대환란은 대 추수 작업이다. 이럴 때 우리가 뭘 해야 되겠느냐, 우리도 열심히 이 환난 당한 사람 찾아가서 전도해야 된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에게는 찾아가서 전도해봐야 씨도 안 먹혀요. 그리고 박해만 받아요. 그런데 어려운 사람 찾아가서 전도하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가 이 거룩한 일을 위해서 같이 힘을 모으고 충성하는 사람들이 돼야지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너무나도 빨리 흘러가는 세월 가운데 우리가 제물도 바치고 몸도 바치고 마음을 바치고 힘써서 복음을 전하고 생명의 역사를 이 땅에 이루어 놓는 귀한 일꾼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복되고 아름다운 새 열매를 맺어 나가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7 말세 교회에 오신 예수님
오늘은 4과 <말세 교회에 오신 예수님>입니다. 계시록 2장 3장에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나오는데 2장에 네 교회가 나오고 3장에 세 교회가 나옵니다. 계시록에 처음 시작하는 1장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하나님 보좌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여주시면서 2장 3장에 먼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요한에게 전달하십니다.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일곱 교회, 그 교회에 대한 편지를 하나씩 하나씩 이렇게 보내셨는데 첫째로는 그때 당시에 소아시아 지방에 있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다 그런 뜻이고, 둘째로는 이 일곱 교회라고 하는 거는 소아시아 지방에만 있는 게 아니고 어느 시대에나 어느 지역에나 하나님께서 다 이렇게 일곱 개의 교회를 주셨다. 또 다른 말로 바꿔서 얘기하면 이 세상에 교회들이 많지만, 이 일곱 교회로 분류해서 나눌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곱 종류의 교회들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 역사학자들은 이 일곱 교회를 무엇으로 해석하느냐, 기독교 2천 년의 역사를 쭉 훑어보면서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일곱 시대로 나누어 가지고 그래서 초대교회는 에베소교회 첫째 교회고, 그다음 교회가 초대교회의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고 성도들이 성령을 받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교회가 부흥되고 이렇게 하면서 사도들이 크게 역사를 했습니다. 이 사도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사도들도 하나씩 하나씩 세상을 떠나시게 되고 마지막 사도인 요한까지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 된 100년, 기원 100년까지를 에베소교회라고 보통 해석을 해요.
그다음에는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 포교의 자유를 줍니다. 그 전에까지는 무서운 박해시대였어요. 이 박해받던 시대를 서머나교회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리고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에 선교의 자유가 생기고 기독교 박해는 없어지고 기독교를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려져 로마에 복음이 들어가고 놀라운 전도가 이루어지고 이렇게 된 시대가 셋째 교회 버가모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 다음에 버가모 교회, 버가모 교회가 이렇게 되면서 박해를 받고 있다가 갑자기 선교의 자유를 얻게 되고 이렇게 되니까 교회가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교회는 박해받을 때가 순수해요. 진짜만 믿어요. 가짜들은 교회에 안 나와요. 그런데 교회에 선교의 자유가 생기니까 그다음에는 날라리들이 생기는 거예요. 나이롱 신자들이 많아집니다. 진짜를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져요. 그러면서 세상과 자꾸 짝짓게 됩니다.
로마가 기독교 선교를 자유롭게 해주고 기독교에 대해서 박해를 하지 않고 이렇게 했더니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교회는 세속화됩니다. 편하니까 세속화됩니다. 역사를 보면 380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이렇게 설명을 해요. 황제, 로마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에요. 그래가지고 로마 황제가 다스립니다.
교황이 축복해줘야 되고 이렇게 해서 구라파가 그때 돌아갔습니다. 이런 시대를 가리켜가지고 이제 교황권이 확립된 시대, 이 시대가 교황이 구라파를 다스리던 시대입니다. 이것이 천 년 넘게 이어지는 거죠. 루터가 1517년에 개혁을 일으켰는데 1890년에 나폴레옹이 교황을 생포하고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교황권이 무너져요. 이런 시대를 광명시대라고 그러지 않고 암흑시대라고 그래요.
이 에베소교회는 100년까지 기원 100년, 사도 요한이 세상 떠날 때까지 초대교회 아무런 권세도 없고 조직도 제대로 없고 열심히 하나님 섬기는 그런 시대예요. 그다음에는 무서운 박해가 있었습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이 발효되기까지 이렇게 약 200여 년 동안을 큰 박해를 받았어요. 그런데 이때는 교회가 순수했었다. 그런데 313년 기독교 선교의 자유가 주어지고 크리스천들이 드디어 해방을 받게 되니까 그다음에는 급속도로 세상과 가까워집니다. 그러다가 538년에서 계속 이 교황권의 확립이라는 거를 우리가 찾아보면은 금방 확립되는 게 아니에요. 계속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자꾸자꾸 생깁니다. 그래서 한 590년경 돼서 드디어 교황이 전권을 가지고 구라파를 다스립니다. 이렇게 하던 시대가 우리 넷째 교회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우리 3장에 들어가서 4대 교회는 어느 시대 교회냐, 4대 교회가 종교 개혁 시대의 교회예요. 그런데 4대 교회에 뭐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루터가 뭘 가르쳤어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그러니까 믿음의 반대, 무엇을 반대라고 그랬어요? 어떻게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루터가 무엇을 가르쳤느냐. 큰 원칙이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그거였는데 물론 이제 기억의 3대 원칙이 있어요.
첫째는 성경,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 제일주의. 교황의 가르침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 성경으로 얻은 거를 판단해야 된다. 둘째가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셋째는 만인 사제의 원칙이에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사제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사제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만인 사제의 원칙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대교회 이 시대가 끝나가는데 한 200년 이렇게 지나게 되니까 교회가 타락해요. 타락하면 반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진젤 도르프 백작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소위 경건 운동, 모라비안파의 운동이 일어나요.
이렇게 하다가 18세기가 이제 웨슬리의 시대고요. 감리교회 운동이 일어난 시대고 19세기 웨슬리가 세상 떠나고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이 엄청나게 발전하죠. 영국이 식민지를 만들고 하는 곳에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그래서 천주교회에서도 선교 운동이 크게 일어나지만 개신 교회의 운동이 훨씬 더 비교가 안 되도록 크게 일어나죠. 그래서 19세기를 위대한 선교의 세기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기가 바로 빌라델비아교의 시대예요.
20세기가 들어오니까 자유주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교회 안에도 자유주의가 들어와요. 신학계에도 자유주의가 들어와서 신학교를 점령합니다. 교회가 타락해요. 기독교가 복음이 들어가 있는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거기를 때리는 거지 이렇게 동양같이 기독교 복음이 안 들어와 있는 곳에는 사실 때리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인데 그걸 때려서 뭐 알겠어요. 물론 타락하면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지만 하나님의 징계의 우선순위는 항상 기독교 복음이 있는 곳이다. 복음이 들어가면 각성하는 사람은 각성하지만 못된 인간들은 타락합니다. 그래서 나라 망치는 짓들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정없이 때립니다. 이렇게 해서 19세기에 전 세계로 선교운동을 이렇게 벌리고 남미도 아프리카에도 전부 이렇게 복음이 들어가죠. 이런 시대를 가리켜서 우리가 빌라델비아 교회의 시대다, 이제 이렇게 말하고요.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자유주의가 들어와가지고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한편에서는 자유주의가 들어오고요. 또 한편에서는 오순절 성령 운동이 일어나요. 오순절 교회가 일어나요. 또 근본주의라고 하는 것도 있어요. 그런 것도 일어나고. 근데 근본주의는 너무 교리적이죠. 율법주의적이고 성령의 은혜에 대해서는 조금 둔감한 그런 거예요. 미국의 침례교회 같은 데는 굉장히 율법적이고 한데 성령의 은혜를 몰라, 반대로 오순절 교회는 성령의 역사만 높이 강조하죠. 그래서 침례 교회하고 오순절 교회하고는 성격이 정반대입니다. 이게 20세기에 다 같이 일어나는 거예요. 세계가, 구라파가 타락하니까 드디어 세계 제1차 대전이 일어납니다. 그러고도 정신 못 차려,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납니다. 세계는 두들겨 맞습니다. 이 시대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예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예수님이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누구시오, 누구시오, 누구시오? <그 첫째는 아멘이시오 둘째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셋째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예수님을 이렇게 세 가지로 표현했다. 그건 일곱 교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이 다 다릅니다. 다 다른 단어로 표현을 했어요.
첫째가 뭐예요? 네 아멘이 뭐예요? 진실로, 진리가 없는 시대다, 진리가 없는 시대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아멘이다. 내가 진실이다> 이렇게 나타나시는 거예요.
둘째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다> 왜 그렇게 나타나세요? 그 시대에는 뭐가 없으니까.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 없으니까. 가짜가 넘쳐나는 시대예요.
셋째 예수님의 모습은 <창조의 근본이신 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표현했을까?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창조 자체를 부인해요.
그런데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 교회냐,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창조의 근본을 부정한다,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진화론을 더 믿는다.
목사님들이 기도해야 된다는 걸 강조하질 않아요. 성경 읽으라는 거를 가르치질 않아요. 안 가르치는 거는 아니지. 그렇지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안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이것도 미지근이야. 그런데 누가 가르쳐야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깨어서 정말 하나님 앞에 내가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는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돼야지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무섭게 말씀하시죠.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그러면서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너 나한테 와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유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세 가지. 뭘 사야 돼요? 첫째 주님께 가서 불로 연단한 금, 불로 연단한 금이란 뭘까요. 불로 연단한 금, <무엇이 불로 연단한 금보다도 더 귀하다> 그런 말씀이 나오죠. 베드로전서 1장에 그 얘기 나오죠. <너희 믿음이 불로 연단하는 금보다 더 귀하다> 우리 믿음은 <연단 받아야 된다> 하는 거죠. 연단을 많이 받아야 된다.
둘째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그다음에 무엇을 사서? 흰옷을 사서 입으래요. 그래서 부끄러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해라. 흰옷을 사서 입는다는 건 <행실을 정결하게 하라> 그 말이죠. <거룩하게 하라> 그 말이죠. 이게 19장 8절 <흰 세마포는 성도의 옳은 행실이다. 죄 짓지 마라>
셋째는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해라. 뭐가 안 보이나요. 우리 눈에 잘 보이는데 그건 육신의 눈으로 보는 거. 뭘 봐야 합니까? 영의 눈이 열려야 돼요. 마음의 눈이 열려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마지막 시대에 사는데 주님께 이 세 가지를 구해야 돼요.
첫째 무엇을 사고 무엇을 사라.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불로 연단한 금을 사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시키는 거예요.
둘째로는 흰 옷을 사서 입어서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도록 정결하게 거룩하게 해라.
셋째는 안약을 사서 발라 신령한 눈이 열리게 해라 이렇게 하시는 거죠.
오늘 그 말씀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말씀이 나오죠.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이 나와 함께 식탁에 함께 앉아주신다. 사실 이거 생각하면 엄청난 복이에요. 예수님이 최고의 복으로 약속해 주시는 게 <너 나하고 같이 식사하자> 이게 복이에요.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같이 식사하자고 하시면은 뭐가 좋은 거냐, 무슨 얘기냐? <너 먹는 걱정할 필요 없다. 먹는 거 걱정하지 마라> 먹는 것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는 의식주 전체를 걱정하지 말자는 거예요. <너 세상 살아가는데 돈 걱정 절대로 하지 마라 내가 다 해준다> 또 돈 걱정만 문제예요? <위험한 일 당하는 것 걱정하지 마> 병 걸리면 어쩌라 그런 거에 쓸데없이 걱정해. 전쟁 나면 어떠나 어떻게 할까, 화산 터지면 어떡하나, 차 타고 가다가 사고 나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지 마, 하나님이 다 지켜주신다는 하나님은 모든 일을 더 좋게 하시고 우리를 지키셔서 더 좋은 길 가게 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이 우리가 그런 일로 인해가지고 걱정하고 살지 마라 이 식사를 같이 해주신다고 하는 이 말씀 속에 어마어마한 약속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환란의 날이 올지라도 하나님을 굳게 믿는 우리들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영원한 우리 주님을 찬양하며 믿음의 여정을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8 인류역사의 종말은?
오늘은 3과입니다. 인류 역사의 종말은? 인류 역사가 어떻게 될 것인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유다를 멸망시키고 주변의 나라들을 다 무너뜨려서 큰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더 뺏을 땅이 없다 할 정도로 그 사람들이 알던 세계의 땅은 다 자기 거를 만들어 놨는데, 그래서 소원을 다 성취했으니까 참 행복해야 될 것 같은데 사람은 그런다고 행복해지나요? 안 그렇죠. 사람의 욕심이라는 거는 끝이 없어요.
첫째 두려움이 생기고요. 둘째 뭐가 생깁니까? 허무함이 생기는 거예요. 내가 죽고 나면 첫째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어떻게 될까, 둘째는 또 무엇이 어떻게 될까,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내가 지금 이 큰 나라를 만들어 놨어, 근데 나 죽고 나면 이 큰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목사님들이 교회 큰 교회를 목회했다. 큰 교회를 세워놨다. 수천,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어 놨다. 만약에 내가 물러난 다음에 이 교회가 잘못돼서 무너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내가 애쓰고 쌓아놓았다고 하는 그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다 무너져 버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게 그냥 평범하게 산 사람은 별로 그런 걸 심각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뭔가 큰 것을 이루었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온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있는 모든 나라를 다 자기 앞에 굴복시켰어요. 그런데 자기에게 찾아온 거는 내가 죽고 나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을 꿨어요. 놀라운 꿈을 꿨습니다. 꿈이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 나라에 이런 거 뭐 꿈 해몽 잘 안 되는 사람, 그 나라의 박사라고 하는 사람들, 용하다고 하는 사람들, 신령화 되는 사람들 여하간 다 불러 모아가지고 내가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참 신기한 꿈을 꾸고 그랬는데 도무지 그 꿈이 생각이 나지 않으니 너희들 이 꿈을 좀 알아내라. 결국은 왕이 그 사람들한테 호되게 야단을 치죠.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이 얘기합니다. <왕의 명령이 왜 이렇게 급하시냐, 꿈을 해석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는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낼 테니까 좀 참고 기다리셔라 그러면은 우리가 이 꿈을 알아내겠다> 그러니까 다니엘을 잡으러 왔던 신하가 그걸 왕에게 가서 보고했잖아요.
그래서 다니엘은 자기 세 친구들을 불러가지고 함께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 우리의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생명을 데려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부자 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 재물을 다 뺏어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욥의 말도 그거잖아요. 정말 그렇다면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꿈을 잊어버리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그 꿈은 우리에게 알게 해주실 거다. 분명히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다.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도 잊어버려야 하는데 왕이 저렇게 막 닥달을 하면서 그 꿈을 알겠다고 야단을 치는 걸 보면 분명히 보통 꿈은 아닐 거다. 분명히 무슨 꿈이 있는데 뜻이 있는 꿈일 텐데 하나님 그거 좀 꼭 알려주세요. 그랬더니 드디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그 꿈을 알려주십니다. 다니엘이 똑같은 꿈을 꾸게 되는 거죠. 똑같은 꿈을 꾸게 돼요. 그런데 다니엘은 꿈을 꾸고 났어도 잊어버리지를 않았어요. 첫째 꿈을 꿨어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둘째 또 뭐가 있어야 돼? 꿈을 꾸었는데 해석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죠. 이 꿈이 이러이러한 뜻이다, 하는 게 다니엘은 깨달아지더란 말이죠.
드디어 왕에게 통보를 합니다. <내가 알아냈습니다. 왕을 만나겠습니다. 왕께 이 꿈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왕이 얼마나 기뻤겠어요. 뛸 듯이 기뻐하면서도 반신반의 했겠지요.
자 그래서 왕이 귀를 쫑긋하고 <그래 꿈을 알아냈느냐. 내가 이제 그 꿈이 뭐냐 한번 얘기를 해 봐> 다니엘이 말합니다. <꿈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왜 그런 꿈을 꾸게 됐는가, 당신은 왕께서 이 세계를 통일하시고 마음에 큰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고 고민을 한다고 누가 가르쳐주는 자도 없는 그거를 대신들 모아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거고 왕만의 자기 혼자의 고민거리고 그리고 알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에요. 그래서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왕에게 꿈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하는 거죠. 그 말을 들으니까 정신이 퍽퍽 들어와요. 진짜로 그랬잖아요. <그래 맞다, 맞다. 내가 정말 이 나라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 때문에 고민이 돼서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러고 있었다가 깜빡 잠이 들어서 꿈을 꿨는데 그래 그 꿈이 되는 건 어떤 거냐 한번 얘기를 해봐라> 그러니까 다니엘이 이야기를 하죠. <왕이여 왕의 꿈에 큰 신상을 하나 보셨습니다> 그러니까 불현듯이 확 깨어나는 거예요. <맞아, 맞아 이제 생각난다. 큰 신상을 봤지. 그런데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 봐라> <그 신상의 머리는 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슴과 팔은 은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와 넓적 다리는 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리와 발은 철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 그 말을 하니까 그 그림이 떠오르잖아요. 자기가 보았던 환상이 환하게 떠오릅니다. <맞어, 맞어. 그렇지, 그렇지 맞어> <그런데요. 발에 열 발가락이 이렇게 있는데 그 발이 철과 이 다리와 발이 철로 돼 있었다고 했으니까 이 발가락이 철과 흙으로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가 되려고 해도 하나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중에 뜨인 돌 하나가 나타나서 이 신상을 때렸더니 신상이 와장창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신상은 무너지고 돌이 큰 산을 이루어서 이게 태산이 되었는데 이 돌의 나라는 영원하게 될 것입니다>
자 그래서 해석을 하는 거예요. <그 해석을 좀 해라> 해석이 어떻게 됩니까? <왕이시여 당신이 바로 이 황금으로 된 머리입니다. 이 황금머리는 바벨론입니다. 그런데 조금 세월이 지나면 이보다 못한 나라 은나라가 생깁니다. 두 팔이 있는 것처럼 이 나라가 두 개의 민족으로 된 나라가 은나라가 됩니다>
그래서 이 돌이 하나가 날아와가지고 이 신상을 때리니까 신상이 와장창 무너져가지고 사라져버리고 이 돌로 큰 나라가 이루어지더라. 그러니까 다니엘도 그것을 잘 몰랐을 거예요. 앞으로 이렇게 된다. 하는 거는 알지만 그 돌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이거는 잘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는 알죠. 우리는 이미 다니엘로부터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어요. 2500년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이 세상의 역사가 바벨론 그다음에 메데파사 그다음에 헬라 그다음에 로마 나라. 그래서 로마 나라 후에 로마에서 갈라져서, 그러니까는 바벨론이나 메데파사는 동양입니다. 아시아죠. 그러다가 헬라로 넘어가요. 이게 그리스 사람들 백인이에요. 근데 그다음 사람이 로마예요. 로마도 백인 야벳 족속이에요. 이 야벳 족속의 나라가 창대해집니다.
그래서 구라파에 있는 나라들이 크게 융성해져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거기에서 10개의 나라만 됩니까? 훨씬 많은 나라들이 이렇게 갈라져 나와가지고 이 로마의 세력이 인류의 역사를 지배해 왔어요.
우리가 정말 이런 의협심이 불타는 사람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마지막 때는 결국 지금의 이 세상은 무너지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세워지는데 그리스도의 나라가 갑자기 세워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이 세우신 한 나라가 일어난다, 그 나라가 셈족에서 나와 대한민국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지금 전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고 있잖아요. 그리고 한국에 한번 가기를 소원하고 있고 이렇게 하면서 한국이 왜 이렇게 발달했나, 왜 이렇게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놓였는가 이거를 연구해요. 그런데 예수님 잘 믿어서 그러는 거구나, 구라파가 왜 무너지나, 예수님을 버려서 이렇게 되었구나, 이거를 깨닫고 앞으로 환난이 불어오면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많이 이제 돌아오게 된단 말이죠. 그리고 진실하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7장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만 4천 명이 나오고 그다음에 아무도 셀 수 없는 무수하게 큰 무리, 흰 옷을 입은 큰 무리가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큰 환란에서 나오는 사람들이라 설명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예수님을 믿어도 다 거지같이 믿는 사람들 꽉 찼는데 이제 환란의 바람이 불어오면 기적이 일어난단 말이에요. 진실하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변해서 이 세상이 새롭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돌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곧 머릿돌이 되었다. 이 돌이 태산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약속을 받아가지고 삽니다. 은혜로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나라 백성이 됩니다.
79 하나님의 어린양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34절까지 말씀 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34절
<이튿 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 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아멘!
오늘 핵심은 29절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우리 이제 신약에 보다 구약에 대표적으로 중요한 거 세 가지를 들어서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에 죽은 어린 양, 이삭의 죄만 짊어지고 죽는 게 아니고 이삭의 생명까지도 이삭이 죽을 뻔했는데 이삭은 살려내고 이 어린 양이 대신 죽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죠. 또 뭐가 있어요? 유월절에 죽은 어린 양, 유월절에 죽은 어린 양 또 하나 더 얘기하려면 누구죠. 두 마리의 염소를 택해가지고 하나는 하나님께 바쳐져서 죽고 아사셀 그 염소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 광야로 보내지고 그렇죠. 그러니까는 어느 게 더 중요한 거예요? 여호와를 위한 양, 죽는 게 더 중요한 겁니까? 안 죽고 살려 살아나는 게 더 중요합니까? 예수님은 어느 거예요?
첫째부터 봅시다. 이렇게 대표적으로 세 가지 그 외에도 많이 나오지만 가장 대표적인 게 이렇게 나와요. 창세기에서는 이삭 대신에 모리아산에 바쳐져서 죽은 어린 양 그 어린 양이 바로 예수님의 상징이었다. 예수님의 상징이었다는 거죠. 거기에서는 우리가 뭐를 배웁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어요? 예수님은 이삭 대신해 죽으셨다. 그러면 이삭을 대신해서만 죽느냐~ 아니죠. 우리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으셨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 양은 이삭을 살려내고 그리고 이삭을 살려내고 대신 죽으셨다. 여기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시냐? 내가 죽어야 될 걸 내 대신 죽으시고 나를 살려내셨다. 우리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거는 이 대신 죽으시고 내가 살아났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마음에 깊이 깨닫고 주님 나를 드립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생명을 주셨으니 나도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주님 내 생명을 받아 주시옵소서. 이런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갈 때에 하나씩 하나씩 이게 보이기 시작하는 거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들이 이렇게 보여요. 이게 보이면 그때는 우리가 감사하게 되죠. 마음에 감격이 생기죠. 또 안심이 되죠. 걱정할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둘째 유월절 어린 양입니다. 집집마다 자 애굽 땅에 이미 9가지 무시무시한 재앙이 쏟아졌어요. 이제 마지막 재앙입니다. 열째 재앙 그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어요.
<너희는 어떻게 해라, 내가 이제 이 애굽집의 장자들을 다 쳐서 죽이리라, 너희 이스라엘 집은 어떻게 준비해야 된다>
어린 양을 언제 잡느냐 13일, 날이 끝나기 전에 3시간 전에 3시부터 6시 사이에 양을 잡아요. 양을 잡아서 양의 피를 문설주와 안방에 발라놓고, 그리고 가족들은 집에 다 들어가서 절대로 바깥에 나가면 안 돼요. 그 날이 지나기까지 집 안에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양을 잡아서 그 고기를 가족들이 다 먹어야 돼요. 피는 이렇게 발라놓고. 피를 먹으면 안 되죠. 살코기는 가족들이 다 먹어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언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느냐. 13일 날 죽으신 거고 그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시각은 오후 3시, 그때인 거예요. 그래서 3시부터 6시 그 사이에 장사 지낸 거죠. 급하게 무덤에 이렇게 장사를 지냈다. 예수님이 정확하게 이 시간을 맞춰가지고 그렇게 해서 돌아가셨어요. 예수님은 유월절 양이라, 고린도전서 5장 7절에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가 준비해야 될 거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되는 일은? 그분의 피를 우리도 문설주와 안방에 발라야 된다. 우리 각자의 자기 마음 문. 마음 문에 발라놔야 돼요.
자 이번에는 셋째로 가봅시다.
셋째 어린 양은 누구라고 그랬어요? 이것은 유월절이 아니고 대 속죄일에 1년에 한 번 민족 전체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것이 칠월 십일 날이에요. 1년에 대제사장이 한 차례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백성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데 이것이 이제 레위기 16장에 쭉 설명이 나와 있어요. 그런데 두 마리의 염소를 택한다. 그래서 염소 두 마리가 이렇게 끌려왔어요. 택함받아 가지고. 그런데 그 둘 중에서 제비뽑기를 해요. 그래서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양 또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양, 줄여서 그냥 아사셀양 이렇게 하는데 여호와를 위한 양으로 뽑힌 이 염소는 죽여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다 이 양에게 뒤집어 씌워서 죽이고 이 양의 피를 어디다 바르죠? 양의 피를 어디다 바릅니까? 제단 뿔 단 뿔에다가 발라요. 단 뿔에 바르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속죄의 기도를 하는 거죠. 자 그리고 이 아사셀를 위한 양으로 택함 받은 염소는 염소인데 왜 양이라 그러느냐. 한자로 하면은 다 양이에요. 집에서 기르는 양을 면양이라 그래요. 염소는 산양이라 그래요. 염소는 산양이에요.
셋째 아사셀이라고 하는 거는 아마 마귀가 아니겠느냐. 그러니까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바쳐지는 양 또 하나는 마귀에게 바쳐지는 양 이렇게 둘로 나누어지는 거 아니냐. 근데 이제 그렇게 말하면 또 뭐가 문제가 생기죠? 아니 이 양을 마귀한테 바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마귀한테 바친다고. 그거는 우리가 얼른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거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될 것이냐. 제일 처음 제사로 말미암아서 둘로 갈라진 게 아벨과 가인입니다. 아벨은 죽임을 당했어요. 여호와를 위한 양. 가인은 살아났어요. 그리고 쫓겨났어요. 광야에 버려졌어요. 그는 아사셀에게 바쳐진 거예요. 내 죄벌이 너무 중요해서 내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호소하지만 하나님은 그걸 깎아주시질 않아요. 너는 네가 지은 죄에 대한 그 죗값을 짊어지고 고생을 당해야 해.
그래서 사탄에게 매어서 실컷 고생을 하게 만들어라. 고생하면 어떻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죽을 고생을 하는 가운데 드디어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그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 하는 게 사탄이냐. 죄 지은 놈들 때려가지고 벌 줘가지고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게 사탄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사탄을 벌주지 않고 놔두시는 거지. 그러니까 죄지은 놈들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내주셨어.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 거룩하게 살고 하나님 말씀 따라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탄이 건드리지 못해.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잖아요.
자 그러니까 이 아사셀에게 준다고 하는 얘기는 무슨 얘기냐. 아사셀이 이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염소도 뭐를 짊어지고 살아요?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와 죄를 짊어지고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를 짊어지고 사니까 고생하는 거죠. 그러니까 인생의 괴로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 어려움이 옵니다. 뭐가 잘 되는 것 같은데 잘 되는 게 아니에요. 이제 죽을 고생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사셀이다.
아사셀의 첫째 의미는 이제 이런 뜻을 가지고요. 둘째 의미는 그러니까 바로 그 아사셀을 위한 양 아사셀에게 던져준 바 된 양, 그게 누구냐. 그거는 오늘날 세상 사람들 전부 다예요. 자 그런데 한 걸음 더 나가서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예요, 둘 중에? 예수님은 둘 중에 누구라고요? 여호와를 위한 양이잖아요. 그럼 아사셀을 위한 양은 누구예요? 예수님은 두 염소를 갖다 놓고 제비뽑기를 했을 때에 예수님은 뽑혔어요. 죽는 양으로 뽑혔어요. 그런데 우리는 사는 양으로 뽑혔어요. 왜 살아야 됩니까? 아사셀에게 던져줘서 실컷 고생 당하라고, 고생하면서 첫째 내 죄를 깨닫고 우리 민족의 죄를 깨닫고 그러면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해요.
그러면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이거를 찾아내야 돼요. 그래야 비밀이 풀리는 거예요. 하나는 죽임당하고 하나는 놓임당하고. 바라바, 마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우리 공동 번역 성경, 천주교하고 같이 만든 이 성경에 그렇게 말했어요. 빌라도가 묻습니다. <너희는 이 둘 중에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아니 예수라 하는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냐 또 하나는 바라바 예수냐 바라바의 이름도 예수예요. 영어 성경 가운데는 NEB 성경, 뉴 잉글리시 바이블이라고 하는 이 성경이 그렇게 번역을 했어요. 아~ 두 예수가 있다. 두 염소가 있다. 한 염소는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진 염소. 또 하나는 사탄에게 내준 바 된 염소. 그래서 바라바는 염소니까 자기는 모르는 거예요. 자기가 염소로 이렇게 놓임 받는다는 걸 몰라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깨달은 건 바라바가 바로 이거로 놓임 받은 염소였구나.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이렇게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다 해석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는 놓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다 놓임받은 사람들, 이것을 우리가 깊이 깨닫고 이제 주님께로 돌아와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상태까지 가야 됩니까? 우리도 내 목숨을 주님을 위해 바쳐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이런 자리에 우리가 나아가야지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도 제대로 짊어지지 않고 그렇게 살아요. 최소한도 내 죄라도 짊어지고 십자가를 달게 지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깨닫고, 그리고 내가 또 어떻게 십자가를 쥐고 주님을 따라가야 될 것인가를 깊이 깨닫고 악하고 험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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