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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지난 11월 17일부터 19일 사이에 독립기념관에서 있었던 현충시설 해설연수에서 순천향대 김일환 교수의 『열강들의 한국문화재 약탈』강의를 듣고 분통터지는 마음에 사진을 보완 또는 정리하여 올립니다 ☞아래 숫자들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2015년 1월 통계임 |
이렇게 아름다운 수월관음도도 우리는 국내에서 직접 볼 수 없다.
일본 경신사의 백의수월관음도 2014. 일본에서 발견 '수월관음도'
1.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
1)2015년 1월 현재 재단이 파악한 것만도 국외소재문화재는 16만 여점이라 함
2)일본 소재문화재는 파악된 공공기관과 개인 콜렉션을 합해서 66,824점(전체의 43.3%)
-비공개 소장품까지 합하면 30만점으로 추정된다 함
3)공개되어 파악된 국외소재 문화재 현황은 그림과 같다. 조금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
2. 국외반출 경위
※우리 민족은 유교에 의한 효행사상으로 자타의 고분(무덤)에 대한 도굴은 금기로 일제강점기 일인들의
도굴이 있기 전까지는 고려청자가 묻힌 고려 고분 등이 대체로 지켜졌다고 한다
☞굴총掘塚을 할 놈-무덤을 파헤칠 만큼 못된 놈의 뜻, 조선시대 무덤은 신성한 대상으로 여김
※우리의 국왕 조차 고려청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종과 이토 히로부미와의 대화 逸話
"이 청자는 어디서 만든 겁니까?(고종)
"이것은 이 나라의 것입니다."(이토)
"아 그래요? 이런 물건은 이나라에는 없는 겁니다."(고종)
"......"(이토) ※고종은 고려청자를 본 적이 없었고, 이토는 차마 도굴품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1)일본의 문화재 도굴과 반출(약탈)
-'문화약탈전쟁'은 1592년 임진왜란 시 부터이다.- 임진왜란 시 고려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전주사고 제외), 승정원
일기 및 사초, 토지대장, 호적대장 대부분 소실 됨
-9대 성종 릉(선릉), 11대 중종 릉(정릉) 1952년 도굴됨.
-중요 범종이 일본 국보로
일본국보로 지정된 범종-출석사의 고려종, 옥상신사의 고려종, 혜일사의 고려종, 사대사의 고려종, 우좌신궁의
신라종, 부동원의 고려종
이토 히로부미가 일왕에게 선물한 거북모양 주전자 청자, 1966년 반환 받음
-불화 : 파악된 고려불화 50여점, 조선불화 200여점
-불상 : 경신사의 양유관음상, 십륜사의 오불존상 - 일본국보로 됨
-밝혀진 서적은 2만여권 이상, 조선 태종 조부터 임란 이전까지 주조된 동활자 60만자 이상 중 20만자가 일본에 있음
※조사연도가 달라 2)항과 다소 숫자 차이가 남
2)고려자기, 조선백자 도굴과 반출(도굴로 인해 대부분 출처를 모름)
※근세까지 불교를 숭상한 일본은 불교미술품과 다도의 융성으로 도자기 보는 안목의 발달, 아름다운 정원가꾸기와 과
관련하여 석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1894년 청일전쟁 승리 후 일본군을 따라 온 무직자와 전과자들이 인천, 부산 등에 상륙하여 북상하면서 불교문화재
약탈하기 시작함
-1905년 을사조약 후 서울에서 개성으로 진출하여 고려왕릉과 귀인들의 묘에서 고려청자를 무더기 탈취하기 시작
-강화도와 개성의 주변인 개풍군, 장단군, 해주 일대에서 수백, 수천의 고분이 수천명의 호리꾼(도굴꾼)에게 도굴 당
하여 고려청자가 두더기로 도굴, 약탈 당함(조선의 한양 천도 후 수천의 개성고분들이 무연고로 남겨짐-관리 안됨)
-심지어 고분이 있는 지역을 헐값에 사들여 도굴함
-초대 통감 이토히로부미(22번 조선 왕래)는 문화재 도굴에 불을 지핀 역할을 함.
.巨商 곤도近藤에게 "얼마든지 고려자기를 가져와라, 몽땅 사겠다." 그의 상점을 통해 수천 점을 손에 넣음
.그 중 명품 103점을 골라 천왕에게 진상하고 귀족들에게 선물함(통치자가 이러니 도굴꾼은 마음놓고 파헤침)
이왕가박물관은 도굴품인 이 '포도동자무늬 표주박모양 주자'를 96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이왕가 박물관에서 소장한 고려청자 6,562 점 중 99%가 개성 출토품(도굴품)이라 함
♣이왕가박물관(덕수궁박물관의 전신)-1909년 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으로 창경궁에서 개관했지만 1938년
'이왕가박물관'으로 개칭한 한반도 최초의 박물관으로 그 소장품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합쳐젔음. 고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졌지만 오히려 도굴한 고려자기를 시중가보다 비싸게 사들이는 역할을 함.
-1904년 요쿠시라 본노는 '조선 땅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망업종 중 하나는 '골동품상'이고....고려자기는 서양에서는
수백원의 가치가 있지만 조선에서는 최상품이 10원 정도이다. " 라고 진술(10원 정도에 사서 수백원에 판다!!!!!!!)
-사학자 이홍직 선생은 일본의 민간인 소장 고려자기만 약 2만점에 이른다고 기록했다. 지금 국내 모
든 박물관과 민간 소장의 고려자기를 모두 합친다 해도 2만점에 불과하다고 한다.(수십만점이 일본
으로 반출되었다.)
-오사카의 山中 상회는 고려자기를 대량으로 사들여 유럽과 미국에 팔아 넘겼다.
-이토가 부통감으로 데리고 온 동향인 소네 아라스케가 통감이 된 후 순시를 빌미로 경주를 방문하여 석굴암 안의 대리
석 5층 석탑을 손에 넣었고 그 뒤로 불국사 사리탑(현 도쿄 '정양원'에 있다 함), 다보탑의 돌사자상이 일본으
로 반출되었다. (※다보탑돌사자상-1902년 세끼노다타시의 조선고적도보에 4기 인정, 1916년에는 2기가 있었다 기록됨)
-1906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는 개성 부근의 경천사 10층석탑(현 국보 86)을 뜯어 도쿄 자신의 자택으로 실어 갔다가
문제 가 되자 1918년 우여골절 끝에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조선에 돌아왔다. (현 중앙박물관 건물내에 보존)
경천사 10층석탑(중앙박물관 내) |
외로운 다보탑 돌사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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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인 금동반가사유산은 일본인 고물상 가지야마가 몰래 숨겼다가 이왕가박물관에 되팔아 2,600원의 거금을 챙겼다.
(일제 1원 현 가치로 110,000원 정도)
-오대산 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은 양도형식으로 동경제대에 이관되었다가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되고 일부만 반환됨.
2)기타
-미국에 있는 문화재가 확인된 것만 44,500점에 이른다. (※ 미군정 때, 6.25 전쟁 중에 많은 문화재를무단 반출해 갔다.
북한의 6개 박물관에서도 6,000여점을 가져갔다 함)
-한국 전쟁 중 궁궐에서만 '御寶'만 47개를 가져갔다. 1951년 일개 미군상사는 고종의 옥새를 20달러에 주고 구매한 뒤 유출
하고 국내 최초의 종성 동관진 구석기 유물도 빠돌렸다.
-프랑스는 1866년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에서 350여 점의 문화재를 반출해 갔다. 2011년 의궤 1질만 반환 완료
3) 우리나라에도 외국의 문화재가 있어 반환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오타니 골렉션의 일부(사진)-오타니 컬렉션이란 일본의 승려 오타니 고즈이에 의해 중앙아시아에서 약탈된 문화재이다. 오타니는 세 차례에 걸쳐 중앙아시아 탐험을 실행하였는데 오타니 개인에 의해 계획된 탐험으로 결국 재정의 한계와 운영상의 문제로 탐험대는 흩어졌고 수집된 유물들 또한 흩어지게 되었다. 이때 오타니의 별장을 구입한 구하라 후사노스케는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이들 서역유물을 기증했다. 유물들은 경복궁 수정전에 전시되다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이것들을 그대로 두고 일본에 돌아가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남게 되었다.(위그르 족 유물)
※안견의 몽유도원도-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꿈(1447년), 임진왜란 때 경기도 양평에 주둔한 시마즈 요시히로의 손에 넘어감, 여러 과정을 거쳐 -후지타가 고미술상 류센도의 마유야마 준키치에게 11만엔에 매각(1947년)- 덴리교의 나카야마쇼젠이 구입해 현재 덴리天理 대학에 소장 중(※가격을 쉽게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
3부분으로 구성 됨: 안평대군의 글씨- 안견의그림 -문사들의 시(詩)의 3박자로 구성된 만큼 그 길이가 20m 이고 종합예술체
* 16세기 중엽 조선시대 희귀 관음보살도 발견(일본 가나가와현 구마카라사)-2015.11.‘유희좌
(遊戱坐·한쪽 다리를 곧추세운 채 앉아있는 자세)*
소감
1. 결과적으로 국권을 잃으면 민족의 혼과 정서와 삶이 깃든 문화재도 지키지 못한다.
2. 힘있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미국은 근래 이라크에서 많은 문화재 반출)
3. IS(이슬람)의 고대유적 파괴는 정말 미친 짓이다.
4. 통감부나 총독부는 내선일체를 내세우면서도 조선의 문화재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
5. 문화재 반환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현재 성과는 반출 수에 비해 미미-한번 뺏기면 되찾기는 거의 불가능)
짧은 내용이지만 게재가 참 어렵네요. 한번 살펴보시면 문화재보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첫댓글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
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