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만 화려한 만화는 결국 未生… 스토리까지 좋아야 完生 [지상 강의] 만화 '미생' 윤태호 작가의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 디테일이 중요하다 뭔가 가르치려 한다는 인상 안주고 샐러리맨 삶 목격담 풀어놓으려 해 직장생활 해본 경험 전혀 없어서 시시콜콜 작은 것까지 물으며 취재
- 원했던 메시지 '그래도 괜찮아' 꿈이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完生 아닐까
윤태호 작가는 “창작자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비추는 좋은 거울”이라고 말했다./한국능률협회 제공
만화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한국능률협회 리더스모닝포럼에서 강연한 '미생(未生)에서 완생(完生)으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미생'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아니라 직장인의 삶에 대한 목격담을 풀어놓으려 한 것이었다. 직장에 다녀본 적도 없고 대학 입시에도 실패한 처지에서 뭔가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고 믿었다. 창작하는 사람이 가끔 빠지는 오류 중 하나는 누군가에게 자꾸 뭘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미생'이 나오기 전 '이끼'(영화로도 만들어짐)라는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작가로서 이름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전에는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그래서 점성술이나 관상·손금 공부에 빠졌다.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리 안 풀리나'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별자리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점은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듯하지만 결국 비슷한 정서·욕망·갈등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생계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집에서 돈을 벌어오라는 등쌀에 시달려 사주 관상을 접고 다시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 그때 작품이 술술 나왔는데, 절박하면 엄청난 창작력이 나온다는 걸 느꼈다.(웃음)
출판사에서 처음 제안한 건 바둑의 고수가 세상 사람들에게 지혜를 나눠주는 이야기였다. 책을 폈을 때 어느 페이지를 펴도 인생의 지혜를 엿볼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리더나 고수, 이런 낱말을 싫어한다. 내 인생 자체가 실패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 출판사에서 정한 가제 '고수'를 바꾸기 위해 협상을 벌여 '미생: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로 바꿨다.
그림만 잘 그리면 된다고 믿었던 시절
만화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988년 대학 입시 실패다. 미대에 가려는 꿈을 포기하고 허영만 선생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993년 월간점프에 '비상착륙'이란 작품으로 데뷔했는데 25세였다. 보통 문하생이 30세를 넘어야 데뷔가 가능한 게 이 세계인데, 상당히 일찍이었다.
그런데 실패였다. 처음에는 스토리는 그림을 잘 그리면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스토리는 소설책만 열심히 읽으면 저절로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림을 잘 그려야지 스토리는 뭐…' 그게 오산이었다.
두근거리며 데뷔작이 담긴 잡지를 보다가 페이지를 넘기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림은 신경 썼으나 내용이 술자리 농담 수준이었다. 그림만 잘 그리는 철없는 아이에 불과했다고 깨달았고, 책을 찢어버렸다. 그때부터 스토리를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난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미술부 생활을 하다 보니 20년가량 그림만 그렸다. 그러다 갑자기 글을 쓰려 하니 머리가 아팠다.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습관을 고치는 게 힘들었다.
스토리를 갖기 위해 일기를 쓰다
먼저 시도한 건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나에 대해서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서 일기를 썼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는 첫걸음은 '나 자신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나를 이루는 자아의 밑바탕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무서웠다. 언젠가 헌 책방에서 '한 정신과 의사의 실존적 자기 분석'(한기수 저)이란 책을 발견하고 단숨에 읽어내려 갔는데 충격적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공포와 압박, 부담은 누구나 가진 것이고, 이 프리즘을 통해 자아에 좀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다.
아버지는 권투 선수였고 배우가 꿈이었다. 그런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리에 서다 보니 꿈을 버리고 현실로 돌아섰다. 아마 자신의 삶을 옥죄는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원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무서운 분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모든 걸 반추해 보니 인생은 다 똑같고, 아버지도 불쌍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됐고, 지금은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다. 집에 내려가면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다음은 좋은 글을 필사했다.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모래시계' 대본을 구해 전체를 필사하기도 했다.
만화 ‘미생’은 직장인들 삶에 대한 디테일을 섬세하게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순간순간의 성실한 최선이 반집의 승리를 가능케 한다’ ‘어려워도 해야 될 일, 쉬워도 하지 말아야 될 일’ 등 대사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위즈덤하우스 제공
나의 고민, 우주관을 풀어내는 게 만화
여러 번 실패를 겪고 나서 스토리가 있는 만화,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는 만화가 결국 살아남고,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만화가가 단지 그림쟁이가 아니라 작가라면 '내 생각은 이런데 당신은 어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런 건 좋은 책을 본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내가 보는 우주의 이야기를 쓸 줄 알아야 한다. 자기의 세계에 대해 아무리 유치하더라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경우엔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나에 대한 고민을 문장화시키는 게 스토리를 향한 중요한 초석이었다. 내가 누굴 미워하고 좋아하는지 이런 감정의 결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게 도움이 됐다. 스토리를 위해 살려고 하다 보니 무게중심이 그림에서 글로 이동해야 했고, 모든 사고방식을 활자에 맞추려 노력했다.
조직에 있더라고 자기 앞에 거울을 두고 있어야 한다. 조직에 있다 보면 관계와 매뉴얼 때문에 관성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매뉴얼은 자기 자신을 지켜낼 때 의미가 있다. 매뉴얼 때문에 개성을 훼손하거나 잠식당하면 매뉴얼은 가치를 잃는다.
창작이란 '익숙하게 다른 것을 만드는 것'
창작은 '익숙하게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고 접근하기 어려운 컬트 마니아용이 아니라 누구나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가운데 남다른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다.
디테일도 중요하다. 과거 만화가는 투박한 집게로 뭉뚱그려 윤곽을 묘사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예민한 핀셋으로 어떤 사람에 있는 세심한 결을 하나하나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 미생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회사 생활을 한 번도 안 해봤다는 데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전에는 과장이 높은지 부장이 높은지도 몰랐다.
기업에 취재를 요청했더니 다 거절당했다. 그래서 결국 페이스북 친구들을 통해 취재했다. 종합상사 직원 데이트하는 데 끼어서 회사 얘길 듣기도 했다. 사실 취재라기보다 공부였다. 아예 직장 경험이 없으니 모르는 말투성이었다.
여기서 굳이 나의 무식함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부끄러웠지만. 그렇다고 '나도 그쯤은 안다'는 식으로 나오면 취재의 디테일을 얻을 수 없다. 상대방이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말씀드리는 건 실례가 아닌가'라고 나오면 섬세한 얘길 들을 수 없다. 작가가 잘 모르면서 글을 쓰면 독자는 금방 알아챈다. 회사에 탕비실이란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상사에게 손님이 오면 어떻게 하나. 누가 커피를 타나. 원두커피냐 믹스커피냐.' 이런 걸 물었다.
'미생'에 요르단 사업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아는 게 없었다. 요르단 대사관에 문의했다. 우연하게도 주한 요르단 대사가 전날 이슬람법학회라는 모임에서 "요즘 유행하는 '미생'이라는 만화에 요르단 얘기가 나오던데 보셨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마침 잘됐다면서 초청해줘 대사관저에 가 저녁을 먹으며 새벽 1시까지 취재했다.
대기업 임원에 대해서 그전까지는 드라마에나 나오는 접대 식사와 술자리, 골프 뭐 이런 전형성을 띤 모습만 상상했다. 그러다 한번은 어느 회사 직원에게 "임원이 부정적인 모습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 분야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 오랫동안 그 업무를 맡아 통달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런 게 만화 속에서 소홀히 그려지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임원의 품위라는 걸 녹여내려 노력했다.
'미생'이 던지는 메시지 "그래도 괜찮아"
스토리에서 인물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공감이 줄어든다. 독자가 이 캐릭터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충분히 알아야 몰입이 가능하다. 예컨대 어린이가 혼자 길을 건너는 걸 보면서 느끼는 불안감은 자기 자식일 때 완전히 다른 법이다.
캐릭터의 나이나 살아온 시대적 배경, 학력 같은 걸 다 알고 있어야 대사나 행동이 작가의 것이 아닌 캐릭터 자체의 개성으로 표출된다. 작가의 말투가 아닌 캐릭터의 말투가 나와야 한다.
캐릭터를 만들어 낼 때는 한계를 설정하려 했다. 수퍼맨을 묘사할 때 장점을 묘사하는 만큼 약점도 드러나야 한다. 자신이 가진 무한한 힘 때문에 뒤따르는 고뇌나 고독이 나와야 한다. 인간이란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캐릭터가 살아 숨 쉬려면 그림자를 잘 묘사하는 게 관건이다. 또 과거엔 단순하게 악인과 선인의 대립 구도만 부각시켰다면, 지금은 악인의 동기를 찾고 악인에게도 인간적인 당위를 부여하려 한다.
미생을 통해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그래도 괜찮아'라는 것이다. 직장인 대부분은 능력이 뛰어남에도 인생에 대해 비관적·회의적이었고,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 즉, 꿈을 향해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완생으로 가기 위한 길이기 때문에 꿈이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꿈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열심히 사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의 총량은 과정이 아닐까 싶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스님, ()()()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