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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투수 놀음이다”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 [야구의 정석]이라는 책이 있다면 1장 맨 첫 페이지에 쓰여 있을 법한 말이다.
그만큼 이 말은 야구에서 절대 진리처럼 통한다.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야구 경기를 유심히 살펴보면 아무리 투수보다는 타자나 감독 또는 치어리더 쪽에 호감을 가진 사람이라도
야구가 철저히 투수에 의한, 투수를 위한 놀이라는 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투수가 공을 던짐으로서 경기가 시작되고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느냐에 따라 타자와 상대 벤치와 수비수들의 대응이 변하며,
어떤 투수가 불펜에서 몸을 푸느냐에 따라 작전과 대타 기용이 180도 달라지는 게 야구다.
그래서 야구에 재능이 있는 모든 꼬마들은 하나같이 투수가 되기를 꿈꾼다.
아이를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시키려는 감독은 학부모의 격렬한 저항에 시달려야 한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구단들은 일단 투수부터 잔뜩 뽑고, 더 이상 뽑을 투수가 없으면 그때 가서야 타자를 뽑는다.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의 거의 대부분은 투수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야구는 분명 투수 놀음이다.
아버지 시대의 타자 놀음이 오늘날의 투수 놀음
하지만 만일 현대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렉산더 카트라이트(Alexander Joy Cartwright, Jr.)가 살아 돌아와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동의하긴커녕 “이게 대체 무슨 홈에서 3루로 뛰는 소리냐!”라며 고개를 저을 게 분명하다.
아마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콧수염을 매만지며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이보시오. 야구가 투수 놀음이라니. 그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요?
투수는 그냥 타자가 칠 수 있게 공을 던져 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소.
야구는 어디까지나 타자가 공을 치고 점수를 많이 내는 게 목적인 경기요.
야구의 즐거움은 치는데 있지 던지는 데 있는 게 아니란 말이오.
굳이 따지자면 야구는 타자 놀음이면 몰라도 투수 놀음은 절대로 아니오.
아무래도 그대가 생각하는 야구는 내가 기틀을 다진 야구와는 전혀 다른 종목인 것 같소.”
야구의 아버지와 오늘날 배트와 글러브를 손에 쥔 수많은 야구 자녀들 간의 세대 차이가 어째 좀 심각해 보인다.
과연 이런 차이는 어디서부터 생겨난 것일까?
어째서 똑같은 그라운드에서 공과 방망이를 갖고 하는 공놀이인데도
아버지 시대의 타자 놀음이 오늘날의 투수 놀음으로 변하게 된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현대 야구의 모태가 되는 규칙이 처음 만들어진 1800년대, 야구 조상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나인 볼에서 볼넷으로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야구에서 타자를 아웃 시키는 방법은 ‘맞춰잡기’가 유일했다.
당시에는 스트라이크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구의 목적은 아웃카운트를 잡는 게 아니라 방망이로 공을 쳐서 멀리 날려 보내는 데 있었다.
경기는 지금처럼 9회까지 앞선 팀이 아니라 먼저 21득점하는 팀이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투수는 타자를 잡아 내기 보다는 타자가 치기 좋은 공을 입맛에 맞게 던지는 데 그쳤다.
요즘으로 치면 '발야구'의 투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투수가 정가운데로 치기 좋은 공을 던져도 타자가 치지 않으면 칠 때까지 계속해서 던져야 했다.
경기 시간이 한없이 늘어난 것은 당연지사.
변화가 찾아온 건 1845년경이다. 그 해 미국의 은행원 알렉산더 카트라이트는
현대 야구의 시작을 알리는 몇 가지 새로운 규칙을 제안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삼진아웃’이었다.
물론 우리 시대 특급 투수들이 하듯 타자가 손도 못 댈 꽉 찬 코스에 강속구를 찔러 넣는 식의 삼진은 아니었다.
단지 타자가 헛스윙을 세 번 할 경우 아웃으로 처리한다는 매우 단순한 규정이었다.
아마도 이는 아예 배트에 공이 스치지도 못할 정도로 실력이 형편없는 선수들 때문에
경기가 지루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데는 변함없었다.
파울은 스트라이크로 취급되지 않았고 타자가 치지 않은 공도 스트라이크가 아니었다.
‘볼’이라는 개념은 생기지도 않았을 때다.
게다가 규정상 투수들은 지금처럼 오버핸드로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뿌려댈 수 없었고
타석 가까운 거리에서 언더핸드로 타자가 치기 좋게 토스해야만 했다.
여전히 야구는 타자들의 놀이였고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도시 상류층의 여가 생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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