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손의 역리; 한국 겸손꾼들의 음모 문장 한국어 인문학 글쓰기 지식인 출판 편집자; 문장론 독자 책읽기 독서론 작가 작문
☞ 한국 말 글 발언 집필 내용 무시 묵살 무지 꼰대 도덕 정의 정확성 발언자 집필자 태도 즉감 감정 청중독중 맹감맹정 괴테 니체
☞ 실천결과 예상 성격; 지행합일, 언행합일, 지행일치, 언행일치, 심언일치, 심행일치, 표리일치, 표리상동; 대안강박증 지식 행동 내면 표면 내막
이족보행포유류(이보포류)의 겉속, 안팎, 표리(表裏), 내외(內外), 언행(言行), 심언(心言), 심행(心行), 지행(知行), 지행(志行) 따위들의 일치(一致), 합일(合一), 상동(相同), 정합(整合)을 추정하거나 가정하여 강조하거나 역설하거나 강요하는 심정(心情)의 원인이나 원흉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과연 이보포류의 어느 개체나 집단이, 왜, 하필이면, 이른바 언행일치나 심언일치, 지행합일이나 표리상동 따위들을 가능한 상태들로 추정하거나 가정하여 타개체나 타집단에게 강조하거나 역설하거나 강요할까?
이런 상태들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개체나 집단의 심정은 실로 무분별한 망상과 요령부득한 착각의 소치는 아닐까? 겉속, 안팎, 표리, 내외, 언행, 심언, 심행, 지행 따위들은 오히려 대체로 일치-합일-상동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하물며 이따위들이 일치-합일-상동하면 대관절 어찌되겠으랴? 예컨대, 사과(능금)의 속씨, 속살, 껍질이 일치-합일-상동하면 어찌되겠으며, 또한 적어도 한반도휴전선이남지역에 거주하는 이보포류 대다수의 악심과 악언이 악행과 일치-합일-상동하면 얼마나 괴악하고 참담한 불상사나 참변을 초래하겠으랴(하지만 그런 결과들이 오히려 불일치-불합일-부동-부정합의 결과들보다 차라리 더 무난하다, 달달하다, 말랑말랑하다, 힐링한다고 버럭 장담할 개체나 집단도, 설마, 있기는 있을랑가말랑가).
하여튼, 그래서 이따위들의 일치-합일-상동 여부보다는 그런 일치-합일-상동을 추정-가정-강조-역설-강요하는 심정이나 심리, 개체나 집단, 사연이나 경위가 중시-주시-심시(審視)-분별-학문되어야 한다. 이른바 인문학이 조금이라도 더 떳떳해지려면 바로 이런 심정이나 심리, 개인이나 집단, 사연이나 경위를 중시-주시-심시-분별-학문해야 할 것이다.
(2018.01.20.09:44.)
* 아래 좌측: 잉글랜드 화가 오스카 윌슨(Oscar Wilson, 1867~1930) 1889년작 <눈치싸움: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San Marco) 광장의 관광객들, 소매치기들, 경찰들(A battle of wits: tourists, pickpockets and police int. St Mark's Square)>
* 아래 우측: 오스트리아 화가 겸 작가 알프레드 쿠빈(Alfred Kubin, 1877~1959)의 1902년작 <떼죽음(Massensterb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