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하느님 백성에게 전하는 서한
사랑하는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 사제, 남녀 수도자, 형제자매님들,
좋으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부족한 저를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기도하고 숙고하며 하느님의 뜻과 교황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이해하기 매우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로 살기 위하여 “예”라는 대답을 드려야 함이 올바른 자세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님을 직접 보좌하는 교황청의 장관 직무는 한국인 성직자에게 처음 주어지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교황님께서는 한국천주교회가“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며,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의 후예답게 주어진 소명을 잘 수행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 신앙의 기틀을 세워주시고, 우리에게 전해주신 신앙 선조들께 영광을 드립니다. 부족한 저에게는 “십자가의 연속”이겠지만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모든 것을 맡겨드리고 겸손한 자세로 “예”라고 대답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 여러분,
저는 지난 4월 17일(토) 11:00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개인 알현하기 위하여 교황님의 집무실에 갔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처럼 떨리고, 반갑고,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교황님을 뵙고,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교황님께 한국에서 가져간 “조각 작품” 선물을 드린 후에 마주 보고 앉아 준비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황님께 솔뫼 성지에 건립한 “Memoria et Spes”(기억과 희망 성전)(성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 사진을 보여드리니 매우 흐뭇해하시며 꼼꼼하게 보셨습니다. 해미국제성지 선포와 해미국제성지에 건설중인 “Wake up Center”(청년문화센터)에 대해 보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황님께서는 해미국제성지 선포에 대한 메시지와 “Wake up Center”에 맞는 메시지를 써 주시고, 서명까지 해주시는 자상함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백신나눔운동”과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에 관하여 설명을 드렸습니다. 교황님의 북한 방문에 대하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직 저만을 위하여 계시듯이 저를 똑바로 바라보시며, 대화의 내용에 따라 웃으시고, 고개를 끄덕이시고 슬픈 모습을 보이시며 경청하셨습니다.
제 말이 끝난 후에 교황님께서는 “내가 주교님을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하니, 이곳 로마에 와서 나와 함께 살면서 교황청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을 하면 좋겠다.” 라고 저를 똑바로 바라보시며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하면서 “교황님,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여러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많은 것을 모르는 아시아의 작은 교구의 주교입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내가 다양한 방법으로 주교님에 관한 의견을 듣고 기도 가운데 식별하였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는, “주교님은 항상 사제들과 가까이 지내고 있으며 주교들 사이에 친교를 가져오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주교님께서 지니신 특유의 미소와 함께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친교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황청에는 아프리카 출신 장관은 두 분인데 아시아 출신 장관은 한 분뿐입니다. 주교님은 전 세계 보편교회에 매우 중요한 아시아 대륙 출신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저를 보시고 교황님께서는 “내가 매우 큰 어려움을 주어 미안합니다. 비밀을 꼭 지키고, 그 누구와도 말하지 말고 오직 기도하고 숙고하십시오. 순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유로운 상태로 성령께, 또 성모님께, 한국의 순교자들께 은총을 청하고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나에게 대답을 주십시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망치로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자세였습니다. 그날 밤을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저는 교황님 알현뿐만 아니라 우리 교구의 일과 한국 가톨릭교회를 위하여 교황청 여러 부서를 방문하는 계획들을 실행하면서도 제 마음은 오직 교황님께 드릴 답을 생각하느라 혼란스럽고 복잡하기만 하였습니다. 계획된 일을 하면서 기도하고 숙고하고 성 베드로 광장을 걷고 또 걸으며 성령께, 성모님께, 우리의 장한 순교자들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지금까지 나의 사제생활에서 무엇이 되겠다고 찾은 적이 없고, 교회가 나에게 새로운 임무를 줄 때 거부한 적도 없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에 일어나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기도하고 성찰할수록 나의 부족함이 떠올랐고, 그러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은 훨씬 더 크니 “예” 라고 대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라는 생각이 점점 커졌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을 지난다 해도 너를 덮치지 않게 하리라.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이사 43,1-2) 마음을 다지고 교황님께 연락을 드렸고, 약속한 시각에 교황님 숙소의 서재로 가서 교황님을 다시 뵈었습니다. 편안한 복장을 하신 교황님께서 매우 반갑게 맞아주셨고, 40분 동안 마주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주 친한 친구처럼, 아버지처럼, 아들처럼…. 교황님과 눈을 마주하며 대화한 시간은 제 마음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교황님께 “예” 라는 대답을 기쁘게 드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교황님의 강복을 받았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주교님은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내가 성직자성 장관 임명을 발표할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꼭 비밀을 지키며 교구와 한국에서 모든 일을 잘 정리한 후에 로마에서 기쁘게 만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의 모습은 매우 기쁘고 흐뭇하신 모습이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승강기 앞까지 오셔서 버튼을 눌러주신 후 제가 승강기에 오르고 문이 닫힐 때까지 눈을 마주치며 배웅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 사제, 남녀 수도자, 형제자매님들,
수많은 순교자의 믿음과 사랑의 삶으로 흠뻑 젖어있는 우리 대전교구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신앙을 받았고, 사제와 주교로 살도록 이끌어 준, 잊을 수 없는 은혜로운 고향입니다. 교황님께 대답을 드린 후에 많은 생각들이 제 머리와 마음을 스쳐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부족한 사제, 부족한 주교임에도 불구하고 사제, 남녀 수도자, 신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려 깊지 못한 모습, 우유부단함, 급한 성격과 독선적인 모습 등 생각할수록 저 자신의 얼굴이 붉어지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착한 목자로 교구 하느님 백성들과 함께 잘 하려고 노력은 하였지만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014년 교황님께서 우리 교구를 사목 방문하시며, 말씀과 모범으로 남겨주신 가르침을 우리의 삶으로 옮기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였습니다. 땀을 흘리며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도보 성지순례를 하였고, 함께 하는 교구 공동체 건설을 위해 교구 시노드도 개최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우리를 함께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 모든 일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저의 모든 부족함과 함께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 여러분,
좋으신 하느님께서 모든 일을 당신 자비에 맡기고, 앞을 보며 새롭게 나아가라고 저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동안 대전교구에서 살았던 은혜롭고 아름다웠던 기억을 하느님의 자비와 여러분의 사랑에 맡겨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로마에 가서 교황님께서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시도록 곁에서 저의 작은 힘을 보태며 기쁘게 살고 싶은 소망입니다. 보편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직자들의 양성과 삶, 신학교 등과 관련된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저에게 새로이 주어진 하느님의 뜻입니다. 사제의 쇄신을 위해 전 세계 사제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사제의 쇄신없이 교회 쇄신도 없다.” 라는 말은 항상 맞는 말입니다. “현대인은 스승의 말보다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습니다. 스승의 말을 듣는다면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현대의 복음선교, 41항) 저 자신이 성숙한 사제, 친교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님과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을 닮은 사제로 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장한 순교자들의 후예로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님 곁에서 보편교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봉사하고, 때가 되면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킨”(2티모 4,7) 대전 교구민의 모습으로 여러분 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교황님과 저를 위한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전 세계의 모든 사제와 신학생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님,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들과 부족한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들과 부족한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천주강생 '21년 6월 12일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 흥 식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온 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