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무장은 아니지만, 임진 왜란 때 귀화한 한 인물을 소개 해보겠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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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선(金忠善) (1571~?) (선조 4 ~ ?)
조선시대 귀화한 일본인, 자는 선지(善之) 호는 모하당(慕夏堂), 본성은
사(沙) 본명은 야가(也可),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
(加藤淸正)의 좌선봉장으로 삼천 군사를 인솔하고 들어왔다가 조선의 문
물을 흠모하여,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에게 항복한 뒤 귀부하여 여러 번
전공을 세웠다. 특히 97년 (선조 30) 정유 재란 때와, 1636년 (인조 4)
병자호란 때 전공을 세워 3품 당상에 올랐으며, 도원수 권율과 어사 한준
겸의 주청으로 성명이 하사되고 자헌대부로 승진하였다. 뒤에 북쪽 오랑
캐가 자주 변경을 침범하자 방어임무를 자청하여, 10년 동안 임무를 마치
고 돌아와서 정헌대부에 올랐다.
이괄의 난 때 부장 서아지를 포참한 공으로 사패지를 받았으나 사양하
고, 수어청에 반납하여 둔전을 만들었다.병자호란 때 소명을 받지 않고
광주 쌍령에 나가 싸워 적 500여 명을 베었으나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말
을 듣고 통곡하고 대구의 녹리로 돌아갔다. 저서에 <<모하당문집>>이 있
다.
김해 김씨 김충선계의 시조로 귀화 후 진주 목사 장춘점의 딸과 결혼하였
고김해를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그의 일본 성이 스나(沙)임을 고려하여
모래 중에는 사금이 으뜸이라 하여 김씨 성을 하사하고, 금 중에는 김해
의 금이 으뜸이라 하여 김해를 본관으로 하사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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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 일본 무사 스나야가(沙也可)--김충선(金忠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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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