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한국의 제2도시라는걸 전혀 실감 못한 채로 결국은 서울로 올라왔다. 하긴 실력있는 넘은 어디다 떨어뜨려 놔도 오라는 사람 많겠다마는 내 눈에 불을 덜 밝혀서 그런지 몰라도 잡이 잘 안보이더라. 영어학원강사도 재밌었지만 그거 하며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는 그 잘난 내 전공 녹슬겠더라구.
아토피자매에 매달려 사는 우리 이여사 편하게 해줄려고 귀국한 건 맞지만 쫌 더 편하게 해준답시고 친정 옆에 둥지 틀었다가는 더 중요한 걸 잃을 거 같다는 궁시렁하고 이기적인 핑계를 댔지 모. 서울만 올라오면 당장에 취직 될 듯 얘기 했었는데 (내게도 그럴 듯 보였고), 설 전주에 올라왔으니 삼주짼데 아직도 '구직중'이다.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및 선배들이 없으니 힘들거라는 말이 맞는건지. 검정고시 셤 볼 때 옆에 앉았던 예뻤던 아줌마 전화번호라도 받아 놨다면 (동창이니까) 이럴때 요긴했을까. 게다가 중학교도 우린 1회 졸업 아니겠냐. 그니까 동기인 느그들만이 내 유일한 희망이다. 기다리다 여기서 추워지면 이제 국민학교 동창들한테 연락할거다. ^.^
아니... 이건 농담 아니고. 진짜로. 너희들 또는 아는 사람들 중에 혹시 일손 필요한 '분'들 없니. 뉴질랜드가 비록 양들만 많은 나라지만 그래도 거기 있는 IT계에선 쫌 하는 축에 들었었는데 쓸모 없으려나... 이 자리에다 대놓고 공개하긴 쫌 창피하니까 그런 분들 있다고 알려주면 이력서 보내줄께. (물론 뇌물도 함께.)
이제 한국생활이 익숙해진 만큼 여기서 구직을 어떻게 하는지도 알게 되어서 요 며칠 전 헤드헌터라는 사람들한테 등록 해놨으니까 느이들이 크게 부담 가질건 없고... 아 근데, 거기 등록하는데 글쎄 37세로 나오데. 그래서 계산을 좀 했더니 진짜 우리 나이가 그렇게 나오더라구. 그러면 3년 후면, 슬슬 짤리는걸 준비해야 하는 그 무서운 40대가 되는거니.
이렇게 장난말만 찍찍하는 걸로 오해하면 안되는데... 나도 심각하면 얼마나 일 잘하는데.
다들 어떻게 지내니? 춥긴 하네. 아연이 델꼬 놀이터를 가려 해도 온도 확인 하고 나가야 하니말야. (평일에 남자가 애 놀이터 데려가는거 창피하지 않냐는 울 엄마 말이 이제 슬슬 이해할것 같은게 이제 나도 한국사람 다 되는건지. 그래도 어떡해, 애가 목조르면 목에 걸고 나가야지.)
뉴질랜드선 물론이고, 부산만 해도 거의 날씨 눈치 안보며 데리고 다녔는데 서울이 춥긴 한가부다. 울 엄니집이 분당이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서울은 아니지. 나도 짝퉁 서울시민이고.
결혼 후 8년만에 첨으로 시집살이 하는 아내는 요즘 죽겠단다. 설이라는 명절을 치른게 힘들어서도 아니고, ... 그런거 있잖냐, 울 엄마도 10년을 혼자 사신 분인데. 따로따로 살던 사람 둘이 한집에 살려니 스트레스 안 받겠어. 나만 가운데서 왔다갔다하며 외교관 역할을 하긴 하는데 곧 터질 듯한 새우등이다. 빨리 내 일자리가 정해져야 집도 구하고 그러면 마찰열도 좀 식겠지.
근데말야... 한국의 며느리들이 받는다는 명절 스트레스를 내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말야... 좀 손을 쓰려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는거 있지. 애들 봐주는 임무를 띄고 있는 자로서 딴 일을 돕는다는게 불가능하더라구. (실은 아기 생긴 담부터 내가 기분내고 부억에서 메이져한거 모 만들어 본적도 없는거 같어. 3년쯤 지난 지금은 과일 깎는거 조차 집중해야 손 안벤다니까.) 그냥 음식을 많이 하는 날이라 치고 애들과 좀 더 오래 놀아줬지 모. 그리고 밤에 마사지해주며 뭉친 근육과 상한 기분을 풀어주는 정도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더라구.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여지껏 이 명절을 두고 남녀대립구도로 싸우는 장면에선 나도 남편들 탓을 많이 했었는데 그건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이라는걸 알았다구. 둘 다 실제로 해본사람은 음식 만드는거보다 애들 놀아주는게 약간 더 힘든다는거 다 아는 사실 아니겠니. 그러니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건 공평하지 않은거라고 보는게 지금의 내 생각인데... 벼락 맞으려나?
시정해야 할 부분은 말야... 울 엄마한테 느낀건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신 후 20년 넘게 제사를 안지냈던 분이라 그냥 넘어갈 줄 알았는데 며느리랑 재밌게 재미로 음식 몇가지 더 해먹자고 구슬리는거로 시작해서 한가지 한가지 메뉴를 더하더니 완전 잔치상을 만들었더라구. 어짜피 우리끼리 먹는 상이었지만 그렇게 많은 종류의 음식을 만들게 할 줄은 몰랐다니까.
게다가 TV에선 '맛대맛'이라는 프로에 나오는 류시원이라는 사람네 집안이 맛의 명문가라나 머라나 하는 소리가 나오는데... 그 집안만 모계사회라 엄마에서 딸로 이어지는 유전적인 음식솜씨겠어? 시어미에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학습과 훈련으로 이뤄진 계보겠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물론 문제점 있는 남편들도 있겠지만, 며느리들이 이담에 시어미가 되었을 때 좀 편하게 해주자고 (가문의 전통은 장농안에 넣어두고).
도화선에 불 붙이는 꼴이 될까 무서워서 더 얘기 하믄 안될 것 같다. 나도 하던 잡서칭이나 계속 하고. 그러고 보니 밤이 늦었네. 오늘은 이만 하고 자야겠다. 여기 글을 남긴것도 하나의 잡서칭이니까. 헤헤... 부담갖지 말라고 하구선 계속 부담주네.
첫댓글 아...유석인 한국이지..그래 좋은 일자리가 얼렁 생겼음 좋겠넴..3월엔 한번 모여야 되는뎀... 우리나라 며느리들은 아직 그렇긴 한데 난 며느리라고 크게 일많이 ㅎㅏ는거 없어서 좋아..ㅋ
아자!아자!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