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하심 그 이상의 삶
" 영혼의 파멸인 죄(罪) 에서 영혼을 건져내어 영혼의 건강과 평안인 거룩에 이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자녀들을 다루시는 목표이다.그런데 그 분은 강요하지 않으시고 우리 스스로 그것을
획득하도록 힘을 주셔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 그 분의 자녀로서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좁고 멀고 험한 길이다 " '존 우드 오만' 의 " 은혜와 성품 " 중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 된 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시는 방식에 있어서는 너무나 다양하다고
할 것이다.
그 말씀의 내용이 때로는 비현실적이거나 철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인생의 어느
영역에서든지 우리가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믿을 수 있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믿음과 은혜를 오해하면 기독교의 복음을, 사람이 믿으면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단순한 교리 정도로만 이해하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게 된다.
믿음이란 지식의 반대가 아니라 보는 것의 반대다. 또한 은혜란 노력의 반대가 아니라 대가로
얻는 것의 반대이다.
즉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그 분의 방식에 대해
단지 주변에서 입수하는 상식적인 개념과 편견에 의지할 때 우리는 성경에서 그리고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참한 사례들을 목격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시는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러한 이해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성경 공부나 그 밖의 공부를 외면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명시(明示)적인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 분을 사랑하라고 명시하시는 것이다. (막 12:30, 잠 1:8)
그러므로 성경을 근거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사 소통 방식을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뜻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신중하고 주의 깊은 공부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만을 믿는 무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정하신 목표를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거부하는 자존하는 '하와'가 되는 지름길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 전반과 그것에 대한 성경에 제시된 내용을
조심스레 깊이 생각하는 수고를 했고, 이제 그 공부의 결과를 삶 -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누구나 매일을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삶 - 으로 옮겨야 할 시점이 되었다.
그리고 진정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을 향한 그 분의 뜻을 알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얼굴이
과연 나를 향해 비추고 있음을 확실히 깨달아서 평안과 확신의 자리에 이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본질상 방법의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명제로 은혜를 나눠보고자 한다.
1) 우리의 삶 속에 임재(臨齋) 하시며 우리와 대화하시는 하나님과 어떻게 확신 있고 분별 있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2)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인가?
3)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스스로 알아서 내리는 결정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또는 우리의 마음이 그 분의 뜻에 맞춰져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따로 특별한 말씀을 주시지 않을 때가 많아서 곤고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런 때 무조건 내가 잘못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런 경우라면 - 물론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며, 언제나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
그것을 알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알려고만 한다면 - 자신의 삶에 대한 정직한 성찰(省察), 사역자들과의 상담, 기도 등을 통해서 - 그것을 얼마든지 밝혀내 명확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진실하게 마음을 열고 기도하며 알려고만 한다면 그 분은 마땅히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보여 주실 것이다.
한편 특별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말씀이 주어지지 않는 이유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 외에 다른 이유들이 있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삶의 행로를 정할 때 대부분
우리 자신이 알아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 않을 때 또는 그 분께 완전히 잠겨 있어 내면에 들려오는 그 분의
음성이 내 생각이나 지각과 구별되지 않을 때, 그 때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실상 즉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었던가를 드러내주므로 나중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음을 깨우쳐 주는 또 하나의 하나님의 방법인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다른 사랑들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기뻐하는 것보다 오로지 의롭게 되는 데 관심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완전을 얻으려는 전략으로 의롭게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혹은 지나친 두려움 속에
살다보니 하나님께 길을 가르쳐 달라고 조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롭고 선하신 뜻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는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되새겨서,
거기에 이르지 못한다면 설사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받는다 해도 그 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에는 들어가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