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변합니다. 형태도 변하고 의미도 변합니다. 그 변하는 양상도 참 다양합니다. 말이 변한다는 것은 단지 '가람'을 '강'이 대체하고 벽창우'가 '벽창호'가 되고 '마삼'이 '마음'으로 변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장에서 문법적인 기능을 하는 어미들도 그 기능이 변하게 됩니다. 주어가 일인칭일 때 서술어에 등장했던 선어말 어미 '오'는 현대국어에선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반면 둘이었던 게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쏜살같이', '불현듯' 등의 말들은 두 단어 이상의 구 형태가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 한 단어로 굳어진 형태입니다. '암탉, 수탉'처럼 예전엔 합성어였으나 '암'과 '수'는 현대국어에서 접사로 그 지위가 떨어졌습니다. '아프다', '슬프다'도 '앓다', '슳다'에 접미사 '-브-'가 결합한 파생어였으나 더 분석되지 않는 단일어화의 과정을 겪은 예입니다.
문법화도 우리 교재엔 거의 나오지 않지만 꽤나 익숙한 현상입니다. 정확히는 '문법형태소화'입니다. 즉, 문법형태소가 아닌 것이 문법형태소가 된 것입니다. 문법형태소는 조사나 어미를 말하고 문법형태소가 아닌 것은 실질형태소이니 명사나 동사처럼 어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미나 조사 중에서 문법화를 겪은 것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러니까 몇백 년 전엔 조사나 어미가 아닌 명사나 동사인 단어들인 것들이 많았다는 거죠. 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태초부터 넌 어미, 넌 조사하고 태어났을 리가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고자'는 사전에 따르면 '어떤 행동을 할 의도나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이고 '그는 특별히 예의라는 것을 엄격히 지키고자 노력하였다'와 같이 사용합니다. 이 '고자'가 이런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싶다'의 의미가 비슷한 '지다'의 활용형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좀 거슬러 올라가면 '-고져'였고 이는 '-고(연결어미)+지-(보조용언)+-어(연결어미)로 분석됩니다. 즉, '-고져'는 '-고 싶어서'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현대어에도 '-고 지고'의 형태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정든 님 함께 천년만년 살고지고' 이렇게 '-고자'에 문법화의 현상이 들어 있습니다.
'-어서', '-고서', '-에서'의 '서' : 이 어미와 조사를 구성하는 '서'는 원래 형용사에서 온 말입니다. 중세국어시기에 '있다'에 해당하는 형태는 '이시다', '잇다', '시다' 세 가지였습니다. 이 중 '시다'의 활용형인 '시-+-어'가 '셔'로서 지금의 '서'가 된 것입니다. '-에서'는 당시 '에셔'로서 '-에 있어'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보조사 '부터'와 '조차'는 동사 '붙다(附)' '좇다(從)'의 활용형인 '붙-+-어', '좇-+-아'가 조사가 된 문법화의 예입니다. 이외에도 많습니다. '-에게'엔 '거기'를 뜻하는 '긔'가 들어 있고, '-로써'의 '써'는 '쓰다(用)'의 활용형입니다. '오늘따라', '오늘같이'의 조사 '따라'와 '같이'는 어떤 단어에서 왔는지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런 조사들을 띄어 쓰는 잘못(규정상)을 하는데 문법화가 진행단계에 있어서 단어인지 조사인지 헷갈려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가고파'의 '파'도 '싶다'와 연관이 있고 '-ㄹ수록', '-까지' 등도 문법화의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사놔', '가지 마'의 '놔'나 '마' 등도 '놓다', '말다'의 활용형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어떤 문법적인 기능을 하는 어미가 아닐까(그래서 붙여써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어쩌면 이 말들이 문법화 단계에 아주 조금 들어선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댓글 아...그러네요. 언어의 변신?진화? 퇴화? 뭐 어쨌든 언어도 인간이 변하듯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언어도 살아야 하니...ㅋㅋ '부터, 조차'에 그런 문법화가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중세국어는 필수로 해야하나 봅니다. 오늘 저녁 중세국어 출석셤이 있는데...ㅋㅋ 언어의 옛모습에 애정을 두고,(넘 심하게 바람직했나???ㅋㅋ) 최선을 다해 셤 치고 오겠습니다. 쥔장님의 정성스런 답변에 힘입어~^^
'부터'와 '조차'는 '붙-+-어', '좇-+-아'가 조사가 된 문법화의 예라고 하셨는데 '부터'와 '붙어'(지금부터, 여기부터, 붙어 간다 붙어버렸다 등), '조차'와 '좇아'(예문조차, 문법조차, 옛글을 좇아, 좇아 가보면 등) 현재 모두 따로 있지 않은지요? 의미가 각각 다른데... 하나의 단어가 그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두 개의 독립적인 의미의 단어으로 벌어지기도 하는지요? 문득 궁금해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는...ㅋㅋ
1.예문조차, 문법조차의 '조차'는 표준어에서 인정되지 않는(서울방언에 없어서) 접속조사 '조차'입니다. 전라방언과 경상방언엔 흔히 쓰이죠. 2.'옛글을 좇아'의 '좇아'와 보조사 '조차'가 아예 다른 어원에서 갈라진 건 아니냐는 거죠? 문법화가 됐는데 원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 말이 안 되죠. 지금은 별개의 단어입니다. 보조사 '조차'는 형태소분석을 하지 않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아...'조차'가 표준어가 아닌 줄도 몰랐습니다. (흔히 쓰이기도 하거니와 사전에도 나오는데요??? )아무런 특별함이나 궁금함을 모르고 지나친 단어들이 참 많은 사연을 품고 살고 있네요.ㅎㅎ
'문법화'에 대한 설명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우선 개념에 대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그것에 대한 다른 현상을 설명해도 헷갈리거나 이해조차(오잉? 여기도 '조차'..ㅋㅋ) 힘들 거라는 생각이...실컷 설명하고 나니 엉뚱한 소리를 하면 얼마나 힘빠지실까...쩝~ 선배님이 주신 것에 비해 제가 받아들이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게 의심스럽습니다.@@
그 '이해조차 안 됐다'의 '조차'는 보조사 맞고요. 우리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떡조차, 밤조차 모다(모두) 다 가져가니라' 할 때의 '조차'가 접속조사입니다. 저 위에 예를 드신 게 혹시 보조사 '조차'인가요? 접속조사 '조차'가 경상도에도 있나 해서 실은 놀랐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잘못 이해한 듯...ㅎㅎ
네. 보조사 '조차'였는데...저도 그게 방언이라기에 놀랐습니다.ㅎㅎ 아무래도 제가 애매한 예문을 들었나 봅니다. (예문조차 제대로 못내는...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