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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의 미학
장향규
목차
히스토리
스토리
추억과 문양의 비밀
사랑. 이별. 상심. 약속. 희망의 손수건
다시 손수건을 펴며
히스토리
손수건의 사전辭典적 의미는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작은 수건'으로 되어 있고, 또 다른 사전에는, '땀을 씻는 작은 수건, 손을 씻는 작은 헝겊'이라고 되어 있다. 씻는다는 것은 닦는다는 오래된 표현이므로 여기서는 닦는다는 뜻으로 보면 마땅하겠다. 손수건의 의미는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손수건의 사회적 의의는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최소한의 청결과 예의염치를 차리기 위한 소품으로 시작해서 점차 미적인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손수건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것이지만, 손수건 Handkerchief라는 말의 어원이 머릿수건 Kerchief이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사람의 머리를 보호하는 머릿수건으로 또는 추운 겨울날 머리를 감싸는 용도로 최초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로마시대의 영화에서 자주 봤듯이 고대의 로마인들은 대중적인 스포츠 경기 때 손수건을 흔들어 환호했고, 전차 경주에서 손수건을 떨어뜨리는 것은 경기의 출발신호였다.
서양 중세 시대의 기사는 행운의 부적으로 투구의 뒷면에 여자의 손수건을 묶었다. 전장에서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체취와 마음이 배인 손수건을 소지함으로서 행운의 여신의 가호로 살아서 그녀에게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이 가득했을 것이다. 15세기의 유럽 상인들은 유럽패션의 액세서리로, 또는 농민의 머리 수건으로 많은 양의 실크손수건을 중국에서 들여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한 초상화에서는 남성이 자수와 레이스 장식의 아름다운 손수건을 들고 여성들에게 보여 주는(자랑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왕족이나 귀족 여성이 손수건을 꼭 쥐고 있는 초상화도 자주 보인다.
가장 극적인 일은 손수건에 대한 오해로 자신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인 ‘오델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다. 당시 귀족가문의 여성들의 지참금 목록에도 손수건이 있을 만큼 손수건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페르시아에서도 손수건은 귀족의 상징으로 간주되었고, 왕을 위한 손수건은 미리 예약한 모양과 색으로 만들어졌다. 자신의 초상화에 손수건을 포함하도록 요청할 정도로 손수건은 자신의 상태와 위치를 나타 내주는 효율적인 물건이었던 것이다.
1785년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자신보다 더 큰 손수건을 금지하는 법령을 내릴 정도로 손수건은 재산과 신분의 상징적 물건이었으며, 그의 젊은 신부 마리 앙투아네뜨의 손수건은 스웨덴 출신의 미남 무관武官이었던 연인 ‘훼르센Fersen 백작’과의 구애와 비밀의 약속과-오스트리아 공주 출신이었던 그녀를 미워하는 적들의 눈을 피해-연애편지를 써서 전달하는 기능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귀족여성들도 마음에 있는 남자 앞에 손수건을 떨어트려 간접적인 구애를 하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로 쓰였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칙령을 내려서 각양각색의 크기와 모양이었던 손수건을 정사각형으로 통일 했다는 일화도 현재의 관점으로 볼 때는 매우 특이한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그녀의 손수건으로 수행원을 부리는 손수건 제스처의 전형을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1세 이래 줄곧 전 세계를 무대로 교역을 확대하고 세계 각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해온 영국에서의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중엽에 걸친 산업혁명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비약적 발전을 이룩했다. 영국은 사실상 세계의 지도국이었으며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ica’ 시대의 장을 열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드디어 빅토리아여왕(1837~1901)시대의 역사상 최대의 번영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손수건은 사치의 극을 치달으며 금실과 은실로 수놓은 실크로 만들어졌고 평균적 남자손수건은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까지도 주로 흰색이었다.
여성은 손수건에 화려한 꽃이나 자기 이름의 이니셜이나 다른 이미지의 수를 놓았다.
1930년대 경제공황의 우울한 시대에 여자들은 손수건만으로 액센트를 주어 그녀들의 패션을 돋보이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2차 세계 대전도 손수건이 지속적인 패션 리더의 역할을 하게 했는데, 군수용품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은 실크 스타킹을 신지 못했으며, 새로운 모자나 의상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 대신 많은 제조업체는 보그vogue 잡지에서 손수건을 광고하면서, 밝은 색상의 배열로 예술가들에게 동물과 꽃의 모든 것을 묘사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했다. 손수건은 휴일이나 생일, 어머니날, 크리스마스 등의 특별한 날에 많이 판매되었으며 패션이 부활하기 시작한 몇 년 전후, 삐에르 발맹, 크리스티앙 디올, 로샤스 등 많은 디자이너들은 고급 패션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의미로 손수건을 이용했다. 즉 토탈 패션의 일환으로 보면 되겠다. 또한 손수건을 남성의 슈트의 주머니에 꽂거나 여성의 핸드백의 측면이나 손목에 묶기도 했다.
손수건은 심지어 정치 캠페인 광고에도 이용되었는데, 한 역사학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부인 마사 워싱턴은 남편의 선거를 홍보하는 손수건을 활용했었다고 주장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1787년의 헌법제정 회의에서 배포된 손수건에는 공화당과 민주당 관계자뿐만 아니라 대통령 취임식 장면들이 모두 묘사. 인쇄 되어 있다.
일회용 휴지인 클리넥스의 탄생은 손수건의 종언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원래 세균에 대한 소독제로 선전했다 1930년의 클리넥스는 콜드크림을 닦아내기 위한 손수건 대용으로 쓰였다. 1920년대에 처음으로 발명되어 1950년대 중반에는 천문학적인 판매를 기록했다. 바쁜 주부들은 일회용 손수건을 쉽게 받아 들였는데 위생적이며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손수건의 전성기는 1950년대이며, 상업적 작가 즉 패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작품(손수건)에 서명하고 로드 앤 테일러, 니먼 마커스 등은 손수건 전문점에서 창조적인 예술작품으로서 그들의 손수건을 선보였다. 이때부터 손수건은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새로운 디자인의 수백 가지의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선택의 어려움을 제공했으며 손수건의 효용성이 감소한 오늘날까지 과잉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손수건은 크리스마스 장식용품과 동화, 영화, 관광지의 광고, 조리법, 또는 보이 스카웃의 목에 두르는 손수건, 생일, 장례식과 결혼식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모든 경우와 장소에서 활용되었다.
본서本書는 20~21세기 서구권 국가의 손수건에 관한 내용이므로 우리나라와 타문화권 손수건에 관한 기술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86건의 수건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주로 제사용 수건의 재료와 규격과 보관에 관한 내용인 것을 볼 수 있다. 또 동국이상국집, 동사강목, 목은집, 몽경당일사, 성소부부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오주연문장전산고, 운양집, 표해록, 하곡집 등에 14건이 있는데 주로 이별의 눈물을 닦는다는 내용과 손수건을 흔들어 이별하는 시에서 나타난다.
손수건을 든 여인의 초상, 렘브란트,1664,비엔나 박물관 소장
스토리
손수건 이야기
국가별 분류
손수건은 예술인가?
손수건의 도상학적 분류
손수건에 문양에 나타난 길상吉祥과 벽사辟邪
손수건 이야기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손수건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여성이 있었다. 20년도 더 이전에는 그런 특별한 손수건을 가지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TPO에 딱 들어맞는 것으로 무릎을 가리거나 손과 입을 닦을 때 자랑스럽게 꺼내는 모습은 나의 로망이 되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필수품이라서 손수건을 수집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행지에서 가장 값싸고 가벼워서 선물로 적당한 것이었다. 여행지라야 10여 개국 뿐이고 주로 서구권 국가에 치중되었지만, 수집의 양이 늘어날수록 작은 손수건에 함축된 의미가 간단하지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손수건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의 압축파일이다.
손수건에는 한 나라의 디자인 예술과, 직조기술, 염색기술, 봉제술이 집약되어 있다. 또한 정신문화의 소산이기도 하다. 경제대국이 문화대국이라는 등식은 반드시 성립되지 않는다. 문화대국이 최고의 손수건을 만든다. 유럽의 브랜드를 달고 일본이나 북한의 개성 공단에서 제작된 손수건은 유럽 본토의 그것과는 많이 다름을 볼 수 있다.
또 서구권의 대부분(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 독일)국가와 일본(서구권에 포함)처럼 토탈 패션의 개념으로 손수건을 제작. 판매하는 국가가 있는 한편, 태국이나 한국은 디자이너의 예술적 손수건은 과거 몇몇 디자이너들의 시도가 있었으나 거의 없다고 해도 될 만큼 단품 위주로만 제작. 생산하는 점이 특이하다.
명품 브랜드의 손수건은 한 장에 거의 20만 원 이상의 고가품이다. 그러나 명품애호가들은 실용적 의미를 떠나서 신분적 가치를 높이는 소품으로, 또 거부할 수 없는 과시욕으로 명품을 선택하게 한다. 물론 그들의 세련된 예술적 식견도 무시할 수 없는 구매욕구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명품은 대개 왕실납품 업체의 제품들이었는데 왕정이 무너지거나 약화되면서 일반인들에게 판매를 개방하게 되었다. 왕족을 닮고 따라함으로서 자신의 신분이 상승된 것 같은 만족감을 얻는 것은 대부분의 왕정이 사라진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현상이다. 유럽의 명품이 아직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는 잔존하는 몇 개의 입헌군주국과 귀족이 있고, 그들의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는 때문이 아닐까한다.
세계적인 명품이 서구권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첫째, 1492년 신대륙으로 향하는 항로의 발견으로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이래 서구권 국가들이 세계 각국을 주유하면서 안목을 높였고 또한 새로운 동력원의 개발로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상공업의 발전이 있었으며 끝으로, 서구의 식민지 경영으로 인한 부富의 집중현상과 그로 인해 문화 예술의 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며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명품이 우위에 있는 것은 프랑스의 절대왕정이 다른 서구 국가에 비해 보다 강력했음으로 인해 왕실에 납품을 하던 업체가 왕실의 비호 아래에서 명실 공히 세계적 명품 브랜드로 성장한 것이라고 본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도 손수건이 있다.
세계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뉴욕 시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100년이 되지 않은 손수건이 소장.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유럽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도 소장되어 있으며 손수건이 그려진 초상화가 무수히 많음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손수건전용박물관이 생긴다면 세계 최초가 될 것이다. 본인은 도록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손수건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벌써 30여 년 전에 도록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국가별 작품, 제품분류와 특징
같은 서구권의 손수건이라도 크게 보면 공통적인 부분도 있지만,
국가별, 작가별, 메이커별 제품의 특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의 다른 특색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로 분류를 해보았다.
사실 서구권의 명품들이 글로벌 자본의 다국적 기업으로 모든 브랜드가 통폐합 되어 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나의 소장품들은 오래된 것이 많으므로 그 차이점을 찾을 수 있었으며, 브랜드의 전통이 퇴색해 가는 과정 중에 있지만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출시하는 손수건들은 아직도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이름값을 할 만하다고 보고 있다.
프랑스
샤넬. 에르메스. 레오나드. 루이뷔통. 레노마. 피에르 카르뎅. 니나 리치. 피에르 발맹. 크리스찬 디올. 소니아 리키엘. 마리 끌레르. 챨스 주르당. 웅가로. 지방시. 필리페 베네. 기라 로쉬. 입셍 로랑. 라 보엠. 비달. 엘르. 오마 샤리프. 셀린느. 꺄샤렐. 이라 드 미뇽. 뻬르 스뿍. 롤랑 무니에르 등.
어느 나라의 문화나 예술의 특징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이웃 나라와 다른 문화권과의 쉴 새 없는 교류와 융합으로 새로이 창조되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문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성이 풍부한 프랑스는 주변국들과의 접촉으로 많은 문명을 받아 들여서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어느 나라 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영향 아래 세계적 명품이 다수 제작되었으리라는 추측을 해본다. 프랑스의 힘이 문화와 예술에서 나온다고 할 만큼, 시대를 앞서는 지성과 풍부한 감성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탈리아
발렌티노 일가一家 일련제품(10종류 이상). 에트로. 파울로 구치. 파트리치아 구치. 트루사루디. 게랄디니. 마놀로 보로메오. 자노베티. 지노 리몰디. 로베르타 디 까메리노. 펜디. 란세티.피오루치. 까사데이 등.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문화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로서 로마제국. 르네상스 기를 거쳐 18세기까지 유럽문화의 주류를 형성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세계적 문화의 하나의 주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문화적 자신감과 깊은 역사성이 유럽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손수건에 있어서는 뛰어난 염색술과 독창적이면서도 전통을 고수하려는 의지가 숨어있다.
영국
아쿠아 스큐텀. 웨지우드. 닥스. 버버리. 미사 로즈. 데이빗 힉스. 로라 애슐리. 보그. 버크셔 로열 폴로 클럽.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영국문화의 특징으로 원칙성. 전통성. 견실성. 실용성을 들고 싶다. 산업혁명 이후 발전한 직조술로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인 손수건계의 모범생이라고 할 수 있다. 손수건의 기능에 충실하며 전통적 디자인을 대체로 고수하는 편으로 보았다.
미국
카운테스 마라. 포라 카트린느. 유에스 폴로. 카렌 피코크. 앤클라인. 안나 수이. 랄프 로렌. 멜로즈. 오스카르 드 라 렌타. 핑키&다이앤. 아놀드 팔머. 퍼슨즈 등.
미국은 세계문화의 용광로와 같다고 할 만큼 모든 국가와 인종적 문화의 특성이 복합된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대자본의 뒷받침으로 문화예술계의 지도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깊이 축적된 문화에서 우러나오는 디테일에서는 아직 유럽 본토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독일
모니카 에른스트. 레이크 알스터(호텔)
스웨덴
잉게보르이
스위스
페릭스 뵐러.
스페인
스페인 산 니나 리치
일본
겐조 하나에 모리. 준코 코시노, 히로코 코시노 자매. 준코 시마타. 유키 토리이. A.O. 이세이 미야케. 유키코 하나이. 하우스 텐 보스. 프라이빗 레이블. 민속(풍속) 손수건. 디즈니 동화. 만화 등.
동아시아 사회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에 총력을 기울였던 일본은 손수건에서도 영국과 프랑스 등의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자기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디자이너의 이름을 서명한 손수건은 서구와 마찬가지로 토탈 패션의 개념으로 제작되며, 디자인 면에서도 일본적인 간결함과 담박澹泊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태국
짐 탐슨. 등
불교국가인 태국은 손수건 도상으로 연꽃과 코끼리 또는 꽃과 새 등의 자연물이 민속적 화풍으로 제작된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국
아이엘드. 한국산 레노마. 수제 손수건. 호텔 신라. 민화작품. 수제품 경주 박물관 기념품 등
기타 무인無印 제품과 수제 손수건
사실 여기에서 소개 되는 손수건이나 포켓 스퀘어 브랜드는 명품일지라도 백화점이나 잡화점 혹은 전문 상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것에 불과하다.
세계 최고의 로열패밀리나 부호들은 사실 런던. 파리. 뉴욕의 최고급 품질을 자랑하는 전문 샾에서 주문. 제작되는 수제手製의 손수건이나 포켓스퀘어를 쓴다고 한다.
손수건은 예술인가?
예술작품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재료와 양식. 기교에 의해 미적으로 창작하여 만든 물건’이다. 에밀 졸라는 ‘예술은 예술가의 기질을 통해 보는 자연의 일부이다’라고 정의 했다.
손수건 이야기를 ‘페이스 북’에 포스팅 하면서 많은 예술가와 대학교수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 예술사학을 하는 교수나 화가들에게 손수건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문의한 결과, 손수건도 예술의 한 장르가 분명하다는 확답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예술적 디자이너가 아닌 회사의 이름으로 제작. 생산된 제품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레코드나 판화 혹은 예술사진작품처럼 제한적 금기가 없는 제품을 예술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전자보다 더 한정적으로 제작되는 손수건도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나의 수집품은 한국에서 한 장밖에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작품이 다수이다.
손수건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분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뛰어난 예술적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디자인이 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선천적이거나 유전적 기질, 신체적 구조 및 소질 인종적 자연. 사회적 환경, 지나간 시대의 작가 또는 어느 사조思潮의 작가나 예술사조의 요인이 총체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손수건에 압축되기 때문이다. 또 모든 예술은 자연에 대한 모방에서 시작되었으며 예술가의 눈으로 걸러져서 간결해지고 생략된 이미지가 우리에게 공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사유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문양으로 표현되어 도상학적 분류가 가능하다. 예술을 넘어 학문적으로도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가치가 분명하다.
도상적 분류
가) 꽃무늬형
손수건 문양에서 압도적인 패턴으로 그중에서 장미꽃과 튤립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으며,
나리(lily), 모란, 은방울꽃, 들국화, 이름 모를 꽃들이 뒤를 잇는다. 꽃무늬도 세분할 수 있으니, 꽃다발형, 꽃폭탄형, 자유낙하형, 꽃담형, 대칭형, 가장자리형, 사방연속형, 모서리 배치형, 만다라 형 등이 있다.
나) 풍경화형
유명한 유적지나 경관이 빼어난 장소, 관광지를 사진이나 그림으로 나타낸 패턴이다.
다) 민속. 혹은 풍속화형
미국인 짐 탐슨이 처음으로 손수건과 인테리어 소품에 태국의 민속풍의 디자인을 사용해서 유행을 했다. 일본제품에도 이런 형이 많다.
라) 동물형
주로 나비와 새, 드물게 앵무새나 코끼리, 고래, 고양이, 강아지, 곰, 물고기나 조개 등의 동물이다.
마) 디즈니 영화 혹은 만화 주인공 혹은 동화형
백설공주, 아기곰 푸, 키티, 테디 베어, 포켓 몬스터, 뽀빠이, 오즈의 마법사 등
바) 신화형
에르메스. 베르사체, 셀린느 손수건의 대표적 문양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사) 추상화형
아) 인물형은 드물지만 풍경 혹은 스토리텔링과 함께 또는 풍속화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외에도 위의 분류에 포함 시킬 수 없는 특이한 도상의 손수건이 무척 많이 있다.
자)명화형
손수건에 문양에 나타난 길상吉祥과 벽사辟邪
인류의 예술행위는 역사시대 이전부터 암각화나 장신구, 거석기념비, 동굴 벽화 등에서 보인다. 이것은 거의 길상과 벽사의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물고기나 동물을 많이 잡고 위험에서 안전하기를 기원하는 원시적 종교형태인 무속적 행위가 곧 예술이 되는 것이다. 물론 예술행위가 자기표현의 수단임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현대의 예술적 목적은 좀 더 다양해졌겠지만 역시 크게 보면 재화의 증식과 현세의 행운과 복을 부르는 하나의 수단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손수건에서 보이는 색채에서 붉은색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꽃을 주제로 한 문양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 하나의 의미는 손수건이 항상 휴대가 쉽고 극양極陽의 붉은색으로 그리는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즉 길상과 벽사의 용도로 쓰였다.
서구 문화권 즉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 독일 등의 손수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양은 금은과 보석, 꽃, 훈장, 마차, 벨트 등이 리본이나 체인으로 끊임없이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인류공통의 꿈인 장수. 부귀영화. 자손번창 등의 염원을 담은 것으로 본다.
손수건에 꽃문양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도, 만발한 꽃처럼 향기롭고 영광스러운 순간들이 영속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젊고 아름다울 때 자연의 섭리대로 사랑을 하고 열매를 맺는 꽃처럼 우리 인간도 때를 어김없이 순리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므로 행운을 불러들이는 초운招運의 기운이 강한 꽃과 동물, 혹은 물건을 도상화 함으로써 그것을 바라보며 자신을 무한한 가능성과 긍정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의 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추억과
문양의 비밀-사랑. 이별. 상심. 약속. 희망의 손수건
누구나 손수건에 관한 추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출산을 앞 둔 신부가 결혼 때 시댁에서 받은 외올베를 잘라서 태어날 아기의 손수건과 기저귀를 만들며 기다리는 마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동들의 왼쪽 가슴에 수놓은 이름표와 함께 달려 있던 손수건, 첫사랑 여인의 손수건에 살짝 뿌린 향수냄새는 아직도 잔향으로 남아 있고, 호숫가 벤치 위에 자신의 손수건을 깔아 주던 이름도 잊은 사람, 보잘 것 없는 조그만 사각의 천에 담긴 사연은 각각의 아름다운 추억의 조각으로 남아있다.
수십 년 동안 손수건을 수집하고 보관 해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손수건에 아로 새겨져 슬픔, 상실과 기쁨, 희망과 행복의 감정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가高價의 물건이 명품이 아니라 스토리가 많은 것이 명품이다.
하얀 손수건
심리적 정신적 내면적 용도에서 보면 손수건은 역시 눈물과 이별, 또는 눈물과 만남과 가장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손수건은 선물용으로 기피했던 물건이었다. 유행가의 가사처럼 통속하지만 ‘눈물로 흔들어 주던 하얀 손수건’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늘 따르듯이 인생사 중에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를 관장하는 물건이 손수건인 것이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기 보다는 슬픈 눈물의 표상이다. 울지 않는 씩씩한 여인들이 늘어나는 현대에 손수건이 효용가치를 잃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하얀 손수건의 또 하나의 의미는 결혼하는 신부의 순결과 혼인의 약속의 징표이다.
첫날밤을 치른 신부가 하얀 손수건에 찍힌 붉은 징표를 신랑에게 보임으로써 자신의 처녀성을 확인 받는 절차가 봉건시대의 잔재이기는 하지만 현대에도 종종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3~40년 전만 해도 신부의 필수 지참물이 첫날밤 자리 위에 까는 거즈 손수건이었다고 하면 요즘 세대들은 놀란다.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도 처녀성 검사를 받고 결혼 심사를 통과 했다고 하니 말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아직도 ‘브라이덜 행키 bridal handky’가 만들어지고 있다.
무인제품으로 매우 얄고 가벼운 린넨(마아사)소재
무인제품으로 매우 얄고 가벼운 린넨(아사)소재
무인제품으로 매우 얇고 가벼운 린넨(아사)소재
일본의 디자이너 유키코 하나이 작품. 튤립 문양의 얇은 실크 소재.
장미 문양 레이스 목면 제품.
큐피트의 화살과 섬세한 장미문양의 십자수. 옥양목에 천연염색 자수사.
들꽃 무늬 얇은 목면 소재의 손수건으로 가장자리에 굴곡을 준 마감처리.
레이스를 단 모시 손수건.
노란 손수건
1973년에 발표된 ‘Tony Orlando & Dawn’의 미국 대중가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라는 노래가 공전의 큰 판매고를 올렸다. 그 가사 내용은 교도소에서 출감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로 아직도 자기를 사랑하고 기다려준다면 모월모시에 버스를 타고 그곳을 지날 테니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 달라고 부탁한다. 운명의 시각이 되어 고향에 도착했을 때 참나무에는 온통 노란 손수건이 매어져 있었다는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1998년에는 ‘Yellow Handkerchief’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후로 노란 손수건은 용서와 화해 그리고 기다림과 재회의 상징이 되었다.
장미
꽃의 여왕이 단연 장미이듯이
손수건에 그려진 수많은 소재 중에서도 으뜸이다.
장미꽃 향에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의 분비를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남성들이 연인에 주는 선물로 장미꽃다발이 압도적인 이유는 설명할 필요도 없는 본능적인 행동인 것이다.
장미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가 십자가에 박혀 흘린 피의 상징이라고도 하고 다섯 송이의 붉은 장미는 비밀을 나타낸다고도 한다. 세 송이의 붉은 장미는 빛과 생명. 사랑을 뜻하는 강력한 프리메이슨적 상징이라고도 한다.
전술前述했듯이 손수건에 꽃문양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꽃과 인생의 유사성 때문이다. 만발한 꽃처럼 향기롭고 영광스러운 순간들이 영속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연의 섭리대로 사랑을 하고 열매를 맺는 꽃처럼 우리 인간도 때를 어김없이 순리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튤립
장미 못지않게 손수건의 도상으로 자주 사용되는 꽃이 튤립이다.
흔히 튤립의 전설은 아름다운 어떤 아가씨가 세 남자의 청혼을 동시에 승낙을 했는데 분노에 찬 남자들은 여자를 죽였다. 그녀가 죽은 자리에 아름다운 튤립이 피어났는데, 꽃잎의 모양은 왕자의 크라운 즉 로열티를 상징하고, 길고 좁은 잎은 기사의 칼 즉 남성적 힘을 상징하며 노란 꽃술은 부유한 상인의 황금을 의미한다고 한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즉 밥은 부유한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잘생긴 미남자의 집에서 자겠다는 중국의 어떤 처녀의 고사故事와 같은 말이다.
풍염부귀豊艶富貴의 모란
모란은 화려한 색감과 풍성한 꽃의 이미지로 부wealth와 귀social position를 상징하는 부의 표상이 되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장미꽃을 노류장화路柳墻花라고 하여 길 가의 버들이나 담장에 핀 장미라 하여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라 여겨 천품賤品으로 매겼다.
장미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 모란으로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정원에 부귀를뜻하는 모란을 가득 심었다. 특히 낙양은 모란의 도시로 측천무후의 모란꽃 애호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란이 중국을 연상하게 하는 이유는 중국 문학의 영향이 크다. 당시唐詩에서는 모란을 자질이 풍염한 양귀비와 같은 경국지색의 미인을 뜻하기도 했다.
꽃에도 花品이 있으니 신라의 설총은 화왕계花王戒를 써서 모란이 꽃 중의 꽃이지만 왕의 失政을 경고하는 의미로 쓰였다. 선덕여왕의 모란꽃의 知機三事도 흔히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아폴론의 화신 해바라기
어느 문명권에서나 태양신은 주신主神이거나 주신 다음의 위치를 차지하는 중요한 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아폴론을 사랑했으나 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요정 크리티가 죽어서 해바라기 꽃이 되었다고 한다. 동양권에서는 해바라기를 규화葵花라고 하는데 역시 그리스 신화와 비슷한 전설이 있다. 여성이 지나치게 남성을 좋아하면 흥미를 잃는 남성의 심리를 보여준다. 짙은 황금색의 해바라기는 황금을 뜻하기도 하는데 자주 쓰이는 손수건 문양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정물화 ‘해바라기’와 소피아 로렌의 영화 ‘해바라기’가 만발하여 흔들리던 우크라이나의 풍광이 떠오른다. 남미가 원산지인 해바라기는 중요한 식량자원이며 약용식물이기도 하다.
비슈누의 아바타와 연꽃
연꽃은 전설의 무Mu대륙의 상징이었다고도 하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난 인류최초의 문명인 수메르Sumer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집트 카르낙 신전의 기둥과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열주列柱에서도 나타난다. 힌두교의 전통에서 비슈누는 세계와 인류, 다르마(도덕적 질서)의 수호자로서 중요한 신으로 숭배된다. 연꽃은 비슈누 신의 여러 가지 상징 중 하나이며 후에 불교의 관음신앙의 중요한 심벌로 발전한다. 또한 진흙에서 피어나 청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어(처염상정處染常淨) 혼란한 물질세계에서 확철한 깨달음으로 가는 정신을 뜻한다. 연꽃이 영원한 생명의 표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연 씨가 1만년을 지나도 다시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연꽃은 손수건의 도상에서 드물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동양적이면서 불교나 힌두를 상징하는 연꽃의 이미지가 서구적 손수건에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준코 코시노 히로코 코시노 5점과 연꽃 보상화 2점
나리(백합)
바람둥이 신 제우스는 인간인 알크메네와의 사이에 태어난 자신의 아들인 헤라클레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아내인 헤라 여신을 잠재워서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먹게 한다. 이때 한 방울이 젖이 바닥에 떨어져 하얀 나리꽃이 피어났는데, 그때부터 제우스가 헤라에게 감사의 표시로 나리꽃을 바치게 되었으며, 성모에게 올리는 꽃이 되었다고 한다. 나리꽃은 프랑스나 영국의 왕실이나 귀족 가문의 문장의 도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양귀비꽃
그리스 신화에 대지와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가 지하와 저승의 신인 하데스가 빼앗아간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를 찾아 헤매다가 양귀비꽃을 보며 잠시 위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화와 전설은 이루지 못한 현실을 상상의 이야기로 채우는,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꿈이다. 상상의 세계가 바로 상징으로 나타난다. 많은 작가와 화가들의 영감을 불러 일으켜 작품으로 탄생한 양귀비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다함이 없을 것이다.
난초. 카라
아이리스Iris와 창포
철쭉과 진달래
들국화
들국화와 산국화는 수수하고 순박한 시골처녀를 연상하게 하는 꽃이다.
어떤 현자는 들국화로부터 내려오는 물을 마시면 120살까지 장수했다.
숨어사는 은자隱者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은 국화꽃을 심어놓고 즐기며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국화는 추운 가을에 피는 꽃이니 오상고절傲霜孤節 즉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절개나 지조를 뜻한다.
무궁화 Hibiscus
무궁화는 서양 손수건에 드물게 보이나 일본제 손수건에서 특히 많다. 우리나라의 국화國花인 무궁화와는 달리 종자개량이 된 것이 많아서 색과 화형이 다양하고 매우 아름답다. 무궁화는 일본에는 초가을을 대표하는 일곱 가지 풀꽃의 하나로 패랭이, 마타리, 싸리꽃, 억새꽃, 최꽃, 술패랭이, 무궁화 등이다. 예상과는 달리 일본에는 ‘무쿠게(목근木槿)’라고 부르는 무궁화가 예로부터 관상화로 널리 심어졌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하이쿠(俳句)시인인 ‘마츠오 바쇼오(1644~1694)’의 ‘길가의 무궁화는 말에 뜯겨 먹히누나’ 라는 시는 시골 풍경을 읇은 시詩로 유명하다.
도라지꽃과 초승달
미인의 눈썹 같은 초승달은 지하 세계의 어두움을 헤치고 다시 솟아나는 희망의 상징이다. 밤을 지나 새로운 새벽의 밝은 빛 속으로 영혼을 실어다 주는 배를 상징하기도 한다. 윤극영의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라는 노래가 있듯이 말이다. 이집트인들에게는 이시스Isis 여신을 나타내고 이슬람권에서 금성과 함께 국기國旗의 문양으로 쓰이며 군주君主의 신성을 나타낸다.
은방울꽃
해마다 5월이면 어떤 착한 이가 죽어 묻힌 무덤가에 피는 이 꽃을 보러 산야를 헤맨다. 5월의 바람이 불면 쪼로롱 방울소리가 들릴 것 같지만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마음의 종소리를 울린다. 프랑스 향수 중에는 은방울꽃향이 있는데 신선한 풀잎향이 섞인 감향甘香으로 푸릇한 젊은 여인의 향내가 난다. 은방울꽃을 어떤 식물도감에서는 초롱꽃이나 비비추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여름이 오기 전에 피는 은방울꽃은 흔히 ‘5월의 백합’이라고 부를 만큼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꽃인데 은방울꽃이 행운을 주는 꽃이며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 아래에서 흘린 눈물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생각한다.
산딸나무꽃
이것은 십자화과의 꽃으로 꽃잎이 십자가형으로 생겼다. 十자형은 문자가 없었던 고대 서양에서는 하늘의 부호이며, 동양에서는 땅을 상징하는 부호였다. 십자의 도상(스와티티카)은 원래 자이나교, 불교, 비슈누 신도에 의해 사용되었다. 스와티티카는 원래 중심이 빙글빙글 도는 십자가였는데 만卍자는 동양적 의미로는 음양의 에너지발생을 뜻한다. 이것이 나치의 상징으로도 쓰였듯이 부정적 의미도 있다고 한다.
등꽃
으아리
과남풀
해오라비 난초
토슈즈Toeshoes
왕관
왕관은 절대적 왕권과 신성성의 표상으로 최고의 위세품威勢品이다.
그 화려함과 고귀함은 아무도 따라하지 못하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강한 자와 약한 자, 지배자와 지배받는 자, 귀족과 평민, 남자와 여자 등 분리적이고 대립적인 모든 계급의 지배자들은 그들의 체제와 권위의 정당성을 유지하는데 많은 상징물들을 활용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절대 권력의 상징인 황금의 왕관이며 교황관, 건축, 의상, 문장, 훈장, 금화, 장식물, 가구 등등 의식주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화려하며 권위적인 상징물들이 등장해왔다. 시각적인 상징물의 의미는 대중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우며 빠르게 전파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금관은 남성의 관이며, 은관은 왕비나 공주의 관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금관과 은관(백금,플래티늄관) 모두를 쓴다.
파울로 구찌1점과 무인제품 1점
보주 寶珠 Orb
유럽의 왕들의 통치권을 보여주는 세 가지 상징물은, 머리에 쓰는 왕관과 오른손에 쥐는 왕홀王笏, 왼손에는 잡는 보주이다. 왕권과 신권神權이 결합된 왕의 권위를 나타내며, 천상의 절대자인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의 정당성을 표현하는 성스러운 구슬이다. Orb는 천체天體라는 뜻과 일륜日輪이라는 뜻도 있으므로 역시 왕권과도 상통이 된다. 대개 흑옥黑玉이나 청옥靑玉의 구球형태에 십자가를 올려놓고 보석으로 장식한 것으로 왕가의 상징적 보물이다. 보주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초상화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서도 왕관과 왕홀, 보주를 쥐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헝가리 유물에서도 왕관. 왕홀. 보주를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유럽의 모든 왕가가 친인척 관계였기 때문에 왕관과 왕홀, 보주가 공통적인 문양으로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