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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책 추천입니다.
원래 해당 달의 초반이나, 그 전 달 말경에 꼬박꼬박 올렸는데요. 지난 5월까지는 그랬죠.
그런데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회사 일정이 좀 있어서 그 리듬이 삐끗했죠.
참고로 지금은 코엑스에서 하는 ‘서울국제도서전’으로 좀 분주합니다.
그래도 아직 6월 안 지났으니까... 위안을 삼으면서 책 소개 시작할게요.
도서명: 나의 완벽한 장례식
저자: 조현선
* 이 책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도서관에서 데이지 형태로 만날 수 있습니다.
전자도서 플래폼 밀리의 서재에서는 전자책과 오디오북으로 구비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힐링물을 선호하는 편이다. 추리, 서스펜스, 판타지, SF, 청소년 소설 등 주로 읽는 장르 중 가장 자주 감상문 스는 게 ‘힐링물’이다. 스트레스 때문일까?
하기사, 5~6월 사이 전국동시지방선거 점자형 선거 공보물 및 점자형 공약서에 시달리느라 고생을 하긴 했다, 내가.
저녁에 일하는 야근도 하고, 토~일요일에 출근하는 휴일 근무도 하고, 밤새며 일하는 철야 근무도 하고 말이다. 나중에 보니 추가 수당으로 받은 금액이 다 병원비로 나간 게 함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했건만, 투표 및 개표 과정에서의 부정 의혹이 터지고, 송파 개표소(올림픽공원) 등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구호를 외치게 되었다. 지금 심정을 적나라하게 기술하자면 말이다. 대통령 포함 정치인들 다 접싯물에 코 박고 장례식 치르라 그래!
《나의 완벽한 장례식》 - 마지막 소원을 주문받은 편의점 알바생 이야기
💁♀️ “몇 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거든. 여기 일해주던, 그러니까 한참 전의 야간 담당 알바생이 너랑 같은 이야기를 했었어. 밤에 뭐가 나온다고.”
소설의 주요 배경은 병원의 편의점이다. 장례식장 맞은편에 있는 것 같다. 의사와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 및 행정 직원까지 온갖 이들이 잠시간의 쉼을 위해 방문하는 병원 편의점.
그런데 그곳에 가끔 평범하지 않은 ‘손님’이 오곤 한다. 그리고 통상 편의점에 요청할 것 같지 않은, 평범하지 않은 주문을 넣는다. 미용실 문을 열어달라든가, 병원 편의점에서는 팔지 않는 붕대와 의료용 알코올을 요청하기도 하고, 어떤 손님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새벽 2시마다 나타나기도 한다. 공장에 둔 쇼핑백을 가져와달라거나, 핸드폰을 찾아 담임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내달라는 주문도 한다.
그렇기에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삼종합병원’의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스무 살 정나희는 고민이 많다. 시급도 세고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은 병원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데, 자꾸 기이한 손님들이 나타나서 무섭기도 하고 신경도 쓰였던 것.
심지어 편의점 사장 미수의 배려로 낮 시간대로 옮겼음에도 나희는 그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결국 손님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은근 오지랖어에,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데다가, 이상한 주문을 하는 죽었으되 이승을 떠나지 못한 손님들이 측은했던 것이다. 계절에 맞지 않게 페딩을 입은 청년, 산소마스크를 비롯해 온갖 의료용 관에 휘감긴 채 나타나는 할머니, 해 질 녘에 만난 빠글빠글 파마머리의 아주머니 등.
그림자가 없는 이 손님들은 죽기 직전 남은 ‘미련’에 의해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자신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마침 나희가 귀신을 볼 수 있었기에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 👻
그렇다. 소설 《나의 완벽한 장례식》은 여섯 ‘손님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이다.
오늘을 더 잘 살고 싶어지는 소설 - 《나의 완벽한 장례식》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죽음’이란 뜻의 ‘호상’이라는 표현이 있다. 좋을 호 자에, 죽을 상 자를 쓴다. 옛날에는 큰 병 없이 장수하다 가는 것, 또는 자면서 죽는 것을 꼽았다고 한다. 글쎄, 요즘은 주변에 폐 덜 끼치고 죽는 거나, 덜 아프고 죽는 것 등을 꼽지 않을까?
‘호상’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참 아이러니한 말이라 생각했다. 죽는 건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떠나는 사람은 아쉬울 것이고, 남겨진 사람은 그리울 것이기 때문에...
‘아쉬움’이란, 요컨대 떠나는 사람의 ‘미련’이다. 소설 《나의 완벽한 장례식》에서 여섯 손님은 삶의 끝에서 그 ‘마지막 소원’으로 인해 떠나지 못한다. 그 소원의 정체는 다양하다. 사소한 것처럼 보였으나 책임감이 느껴지는 요청도 있었고, 애잔하면서 가슴 먹먹해지는 부탁도 있었다. 추억처럼 아련한 여운을 남긴 마무리가 있는가 하면, 후회와 죄책감을 품은 미련도 있었다.
💇♀️💆♀️ 첫 번째 에피소드, 미용실 사장님인 손님은 ‘미용실 문 아래에 작은 문을 열어달라’는 거였다.
나희는 고민하다가 비교적 간단한 부탁이기에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다. 그 결과, 미닫이문을 열고 나온 고양이 루비를 입양하게 되었다. 미용실 사장님의 미련은 ‘반려묘’에 대한 걱정이었던 것. 🐈⬛
🏭👨🏭 두 번째 손님은 노년 남자로, 그의 주문은 ‘공장 사무실 책상 밑에 둔 쇼핑백을 가져와달라’는 거였다. 알고 보니 남자는 치매 아내를 케어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아내 식사를 위해 사다 둔 고깃국을 아들에게 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참 가슴 뭉클했다. 고령화 사회가 된 우리 시대의 애잔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
책에는 마냥 애잔하고 아련한 이별만 잊지는 않았다. 세 번째 에피소드가 그랬다. 껄렁해 보이고 실제도 썩 모범생은 아닌 손님은 ‘자기 핸드폰을 찾아 담임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내야 한다’며 다짜고짜 자기 부탁을 들어달라 요구한다. ‘소영이한테는 핸드폰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조건도 추가로 붙인다. 청소년 손님의 태도에 부화가 치민 나희가 거절하자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기도 한다.
👨🎓 그 이야기의 결말은 비뚤어졌던 고3 학생의 마지막 양심선언이었다. 좀 더 일찍, 살아 있을 때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세 번째 에피소드는 문득 내 자취를 돌아보게 되는 스토리였다. ‘했으면 좋았을 일’이 남지는 않았는지, ‘후회가 될 일’이 있지는 않은지.
한편 소설 《나의 완벽한 장례식》은 떠나는 사람의 슬픔뿐 아니라 남은 사람들의 ‘그리움’도 다룬다. 네 번째 스토리가 대표적이었다.
병원 매점의 전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수영이 중심 인물이었다. 중증 루푸스로 투병하던 친구 희진의 죽음과 이후 이별을 받아들이고 기억하기 위한 ‘삶의 이야기’였다. 잔잔한 우정과 추억, 상실을 받아들이는 성장물이라고 하면 될까? 🧭🚞🎑
🐶💞 다섯 번째 에피소드 역시 비슷한 계열인데, 이쪽은 반려견과의 이별을 소재로 삼았다. 차에 치여 죽은 황구 진돌이에게, 아직까지 전단지를 붙이고 기다리는 아빠와 이별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내용이었다. 진돌이는 마지막 소원을 이뤘고, 철물점 주인은 진돌이의 죽음을 수용했다. 뭐랄까, ‘돌아온 진도개 백구’가 떠오르는 스토리.
여섯 번째 사연은 마지막답게 그동안 살짝살짝 연기만 피웠던 인물들에 관해 나온다. 소설 초반부터 나왔던 의료용 관과 산소마스크를 쓰고 무언가를 얘기하려고 했던 할머니와 붕대와 알코올을 주문앴던 윤성우의 사연인 것. 👨⚕️🐱
다른 손님들 이야기 중간중간 두 손님에 관한 복선이 등장하고, 마지막에 와서야 모든 단서가 회수되며 매듭이 풀리는 셈이다. 🤶
한때 웰빙(Well-Being)이 삶의 화두로 급부상한 적이 있다. 지금은 삶을 건강하게 꾸려가는 웰빙이 일상이 되었지만, 초반에만 해도 제법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웰빙을 넘어 건강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웰다잉(Well-Dying)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를테면 호상 치르는 법이랄까? 그렇다면 건강한 끝, 곧 ‘잘 죽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삶을 잘 마무리하는 걸까?
⚰️ “... 최선을 다했잖니. 원래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남은 말이 있는 거란다.” 👼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상투적인 표어로 느껴질 때가 있다. 스포츠 경기나, 어디 유명 대회 나가면서, 즉 인생에서의 특별 이벤트 참가자들이 곧잘 하는 말이니까.
하지만 소설 《나의 완벽한 장례식》을 읽다 보면 그런 특별 이벤트에서뿐 아니라, 삶 자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고 끝이 올 테고, 그 마지막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실제 책 속의 인물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 삶의 마무리가 통보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그 순간 미처 끝내지 못한 일, 책임져야 하는 것, 전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말, 가보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장소, 보고 싶은 얼굴 등 사소하지만 절박한 것들이 미련이 되고 여한이 되고, 마지막 소원이 되어 발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을 더 잘 살고 싶어졌다. 미련이 남지 않게, 여한이 없게, 최선을 다하면서...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 살고, 유명 관광지 여행도 다니고, 부담 없이 식도락도 즐기는 삶은 객관적으로 잘 사는 인생이다. 그러나 그 삶이 최선을 다한 인생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좀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누가 봐도 부러운 인생이, 꼭 최선을 다한 삶이란 증거는 되지 못하니까.
오늘 하루, 당당하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성공한 하루일 것이다. 그 하루가 모여 삶이 되는 것이니, 딱 하루씩만, 딱 오늘만 최선의 날로 만들며 살자는 자세로 임한다면, 나희의 어머니처럼 나중에 마지막 소원도, 여한도, 미련도 남기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오늘만 살자는 식으로 술 퍼먹고 마냥 즐기며 살다가는, 나중에 골골되는 몸과 빈곤한 통장 내지는 빚만 남는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는 건, 내 할 일과 책임과 감정 등에 충실하자는 거지, 방탕하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 되새기면 좋겠다.
잠시 이야기가 샜는데 각설하고, 개인적으로 ‘최선을 다한 삶’에 몇 가지 수식어를 추가하고 싶다. ‘올바르게’, ‘떳떳하게’라는 수식어를.
최근 한국의 정치가 혼란의 극치를 달리고 있어 시국이 매우 어수선하다. 부정선거 의혹에 이어, 자발적인 대학생 및 시민들의 재선거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한 대학생이 부상을 입어 ‘의식불명’이라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6월 항쟁 및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사건’이 오버랩되는데...
그는 1987년 6월 9일 전두환 군사정권의 독재 타도 시위에 참여했다가 전경이 던진 최루탄에 머리를 피격당해 동년 7월 5일 사망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역사의 한 장면이 재현되는 건가 싶다. 그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학생들이 먼저 거리로 나섰고, 그 뒤를 이어 일반 시민들이 합류해서, 올바른 민주주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그 상황이 또 재현되는 거라고 하면, 대체 이 나라 정치는 발전 안 하고 왜 퇴보하나 얼척 없기도 하다. 그럼,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와 외치는 시민들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좋은 학점을 주는 것도 아니요, 알바비를 받는 것도 아니요, 뭔가 경력으로 인정받지도 못할 텐데? 나의 귀한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란...?
글쎄, 그 어떤 이득보다, 아마 ‘당위’로 인한 것이 아닐까.
그런 학생과 시민들의 바람에 응하는 기득권의 작태는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어떤 당은 제 밥그릇 싸움에만 홀딱 빠져서 당 대표를 바꾸네 마네 하고 있어 자기네 무능을 만방에 떨치고, 다른 당은 어떤 정치적 소신도 없이 자기네 이득에만 취해 민주주의를 그저 광고용 카피 문구 정도로 이용만 할 뿐이다. 심지어 동영상 플랫폼에 개인 영상 통제하고, 댓글도 자신들 논지와 맞지 않으면 삭제시키고, 뉴스 보도조차 편파적으로 하는 언론 통제를 하질 않나, 경찰총장이 국민 상대로 ‘패가망신’ 운운하며 협박까지 해대니, 이거야 원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애썼다는 그 많은 민주화운동단체들 또한 학생들 및 시민의 행동에 대해 가타부타 소신 없이 눈치만 보고 있을 따름이다. 국민이 뽑아준 그 자리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자리였던가? 필요할 때만 민중의 지팡이 찾는 건가?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정권에 순종하는 게 민주주의인가?
《나의 완벽한 장례식》 책 읽다가 문득 생각했다. 대체 저 기득권 양반들은 나중에 어떻게 죽을까? 잘, 편하게, 미련도 여한도 없이, 역사 앞에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후련하게 떠날 수 있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한 시인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일점의 부끄럼 없이 살기란 요원하다. 하지만 최소한 수치로 남을 일은, 되돌아봤을 때 오점으로 남을 만한 일은 저지르지 말아야 잘 산 거 아니겠는가.
잘 산다는 건,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고, 최선을 다한 삶의 끝이란, 곧 잘 죽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이제 건강하고 당당한 웰빙(Well-Being) 인생만큼 떳떳하고 사람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웰다잉(Well-Dying)도 중요한 시대니까.
그래서 자문한다. 오늘의 나는 과연 잘 살았는가? 완벽한 장례식을 치를 수 있을 만큼?

첫댓글 파란만장 했던 내인생.
온갓 희비를 격었지만 지금의 정직과 거짓의 대립을 마주한 사태는 당황스럽고 어찌할바를 몰라 그저 이건아니다 싶어 올공으로 뛰쳐나갔다. 청년들의 삶을 우리가 왜 무슨 자격으로 흔들어 대는가!
그냥 처절한 그들의 곁에 있어 줄 뿐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