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식과 한강 물파장
시내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여자를 만났다. 미친...×? 까진 아니고 상당한 광신도란 느낌이다.
그녀는 팜프렛을 펼쳐들고 '호랑개교(남요호랑개교)'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마음속으로 '호랑개교건 늑대개교든 사는게 피곤한데 왜그러니?' 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손으로 거부의사를 내보이며 곁으로 물러났다. 오늘따라 어째 순순히 그것으로 끝났다.
몇년전이던가. 시내에서 그녀를 만나 혼이 난적이 있었다. 그때 아예 나의 앞을 막아섰고, 비켜가면 따라와서는 또 다시 막아섰다. 쥐어 박을수도 없고, 피곤을 느낄정도로 한동안 골탕을 먹었었다.
어째든 종교란 신성한 것이다. 나쁜건 사람 탓이고, 그곳은 사랑과 구원이 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구렁에 빠지기거나 살아가며 위험에 처할때면 종교가 없어도 우리로선 '엄마야!(하느님...도 무심하시지)'나 서양사람들은 'Oh my god(맙소사! 하느님!)'이라 말한다. 그게 표현방법은 다르지만 순간의 위기를 구해줄 각자의 믿음(종교)이 아닌가 여겨진다.
오랫만에 어느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그분은 미국에서 공학박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인천의 어느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분이다.
내가 그분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성경위주의 교리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의 문제점을 설교하고 행동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회 소속의 목사지만, 유명대학교의 교수를 겸하며, 통상적으로 교회에서 주는 사례금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번의 설교내용은 얼마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작가의 삼촌은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정부연구소에 근무하다 퇴직하여 현재는 대전에서 목사로 활동하고 있단다.
삼촌이 85학번이면 본격적인 민주화운동 대열에 참여한 세대인 것 같다. 아무튼 30대 초반에 교회를 다녔고, 형님인 한승원(소설가, 한강 작가의 아버지)과는 종교와 구혼문제로 갈등을 겪었단다.
그러한 삼촌이 노벨상을 탄 자랑스런 조카가 국민의 반쪽 축하를 받고, 한편으론 여론의 비판대상이 된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다 조카(한강)에게 보내는 장문을 글을 올렸고, 그걸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며 인천의 목사에게도 알려왔더란다.
삼촌목사는 조카가 큰상을 받은 것은 가문의 영광이고, 국가의 쾌거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삼촌은 작가란 역사에 관한 글을 쓰더라도 역사의 나침판처럼 그게 순리대로 해석되게 하여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강의 작품(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에서 인용된 6.25, 제주 4.3사건, 광주 5.18사건 등은 조카의 역사인식이 부족하고, 잘못된 성적표현(채식주의자 -> 처제와의 성관계), 아직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장이 상반되는 역사의 비극인 과거의 상처는 위로를 해야지 후벼 파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6.25나 제주 4.3사건은 유물론자인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유발된 사태를 편향적으로 이해하면 안된다고 하였다.
삼촌목사는 태생 당시 아버지는 발목상처가 있었고, 어머니는 와사증이 걸렸던 50살 불행한 가정에 늦둥이로 태어났단다.
(내가 아는한 작가의 아버지인 한승원의 어린시절은 장흥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학을 하다시피 하였고, 광주에서 살았으니 역사의 아픔을 충분히 느끼는 것 같았지만 누구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삼촌은 우리들은 아담과 이브의 후손인 죄인으로 그리스도의 못박혀 죽으심과 부활로 죄는 사함 받았으나, 진저리 나는 이세상의 타락의 극치를 일삼는 무리들의 홍위병이 되어 남에게 상처를 남기고 분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단다.
조카에게 이제 50이면 지천명(知天命 : 공자님 말씀으로 하늘의 명을 안다는 뜻)할 나이이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며, 소망을 주는 책을 썼으면 좋겠단다.
그리고 생각 같아선 조카의 책을 많이 구입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여 몇번을 울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카에게 사랑과 평화, 위로가 오길 기도하고, 건강과 행복을 바란다며 글을 마쳤단다. 이상이 인천의 목사 설교였다.
엇그제 건너편 빌라 관리자와 쓰레기 문제를 따지다가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술잔을 건네다다보니 문제는 간곳없고, 형님 동생하며 지내기로 하였다. 짧은 인생에 이것 저것 따지며 편가름하는 삶들을 왜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 손해보면...
*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나의 속마음을 내보이는 두려움도 있지만,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하는 배려와 위험이 도사린다.
물론 나같은 글같지 않은 글을 갈겨대는 무지랭이는 별개로 하더라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