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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기(薄明記)
서 기 원
종소리 때문에 오늘도 잠이 깨었다. 곧 종소리가 그친 것으로 보아 새벽잠이 깊었던 성싶다.
방안은 새벽녘 같지 않게 후덥지근했다. 식은땀이 축축히 밴 내 몸뚱이는 구지레한 이불에 휘감긴 채 첫 담배 한 모금에 나른히 취했다.
나는 머리맡을 더듬어 재떨이와 타구를 겸해 쓰고 있는 깡통 속에 담배꽁초를 던졌다. 지지직 불똥이 물을 빨아 죽어가는 소리가 개운치 않은 꼬리를 남겼다. 깡통 속에 괸 가래침이 여느 때보다 더 차지고 된 탓일 것이다.
나는 목덜미에 한 줄기의 선선한 습기를 느끼고 들창이 뚫린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희부연 빛의 그림자 따위조차 눈시울에 감촉되지 않았다. 비 내리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가끔 낙수물 소리가 또렷이 섞 이곤 했다.
겉에서는 진숙의 고단스러운 숨소리가 아직도 피로를 풀지 못했다. 나는 허전한 마음으로 옆자리를 더듬어 찾았다.
진숙의 이부자리와의 간격은 언제나 자로 잰 듯이 한 뼘 남짓했다. 그만큼 방이 좁은 것이다. 진숙은 입김에서 시큼한 내음새를 풍긴다. 그녀의 얼굴은 분명히 이쪽을 향해 누워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살며시 잡아 보았다.
가운뎃손가락은 사내처럼 마디지고 그 끄트머리는 기름기가 빠져 까칠 까칠 했다.
여자의 손이라고 하기엔 딱한 촉감이었다.
그렇지만 그 메마른 감촉은 나를 한결 위로해 줄 수가 있었다. 행여 그녀의 손길이 상상 속에서 그리는 부드러움을 지녔더라면, 아마도 나는 심술궂은 심사로 울적해졌을 터이니까.
예배당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고, 밖이 부산해졌다. 오르간의 반주도 없이 가늘게 떨리는 남성(男聲)을 선창으로 찬송가가 시작되었다.
주문을 외는 듯한 사내들 속에서 간혹 음치(音癡)의 여성(女聲)이 앙칼지게 울렸다. 사내들은 이마를 땅에 부비고 주문을 외고 십자가를 움켜쥔 광녀(狂女)는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사내자식이 계집한테 지고만 있을 턱이 없겠지. 아니나다를까 난데없이 찢어져 나가는 테너가 여자의 목청을 덮어눌렀다.
그러나 대부분은 여전히 신음소리를 토할 뿐이었다. 땅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의 율동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주 십자가에 달릴 때 날 생각하시고
죄인을 사랑했으니 그 대신 속죄되섰네.
형님과 나를 대신해 주께서 고난받으사
그 크신 사랑함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네.
들창 안으로 어슬어슬한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내 눈은 죽어버린 조개처럼 완강하게 닫혀 있다. 빛을 보아서는 안 된다. 눈시울 밖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가닥의 광채, 광채라고 하기엔 너무도 어둡고 불투명한 음영(陰影)만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하기야 그러한 음영과 싸우다 못해 속을 탕진해 버린지 오래되었다.
내 눈시울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절대로 광명이 아니었다. 나는 배를 깔고 엎드려 담배를 다시 물었다.
겉에서 기지개를 켜는 기척이 나고 진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담배연기 좀 봐.”
“눈 뜨자 시비로구나.”
무뚝뚝하게 내가 대꾸했다.
“비가 오시네요.”
그녀는 딴전을 핀다.
이런 경우,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일 수가 있다.
공연히 그녀를 집적거리고 괴롭히는 것으로 이지러진 기쁨 같은 것을 맛보고 싶을 때엔 아무거나 몹시 파괴적인 말을 뇌까리게 마련이었다. 가령,
“빌어먹을! 온종일 비나 피부어라.”
그렇지만 오늘 아침은 진숙을 건드리고 싶지가 않다. 너무도 내 몸이 곤비하여 만사가 귀찮은 탓일 것이다.
“봄비 같군.”
나는 무표정하게 입을 놀렸다.
“아직두 봄 아녀요?”
그녀의 대답이다.
“그런가?”
나는 쓰디쓰게 웃었다.
“우스운 일이 있나봐.”
그녀가 혼잣말로 지껄였다.
나는 내 표정에 도무지 자신을 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입 가장자리에 주름을 잡으면 빙그레 웃는 낯으로 보일 테지.
“유쾌하게 웃는 얼굴 같애?”
나는 이렇게 비꼬았다.
“그런 말씀 마세요.”
그녀는 민망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길게 내쉰 다음 한탄조로 덧붙였다.
“웃는 모습이 큰오빠 닮았어.”
“미친 소리 말아.”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년아, 그래 내가 어떻게 형하구 같을 수가 있니? 자는 얼굴이 닮았다고나 해라. 날 조롱할 셈이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금시 그녀의 흐느낌 소리가 새어나왔을 것이고, 어쩌면 신경질적인 말대꾸라도 나올 법한 노릇인데도 이젠 아예 침묵뿐인 것이다.
“창문을 좀 열어라.”
나는 다소 타협적인 태도로 일렀다.
덜렁 하고 창문이 열리고 그녀가 다시 요 위에 주저앉는 기척이 났다.
“아버지도 깨신 것 같은데.”
내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그녀는 부스스 몸을 일으키면서 이부자리를 거두었다.
그녀가 밖으로 나간 다음,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다시 짐을 청했다. 베개를 누른 쪽의 귓속으로 심장의 고동이 울려왔다. 고개를 들고 돌아누웠으나 이미 귓속에서 울리기 시작한 고동소리는 더욱 둔중한 음향을 온몸에 파급시켰다.
“약 잠수실 물 드려요?”
부엌에서 진숙이 말했다.
“약?”
그 말에 나는 소스라쳐 놀랐다.
“약 말예요.”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별안간 등허리에 차가우 진저리가 훑어내렸다. 나는 얼음 조각 사이에 끼인 새우의 꼬락서니로 팔다리를 오그린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 약, 약은 다 떨어쳤어.”
나는 내가 낭패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약과 친근한 처지여야 할 병자이면서도 진숙의 말에 소스라쳐 놀란 까닭을 훤히 알고 있었다. 제대한 뒤 몇 달 동안, 약이라는 물건으로. 차라리 기나긴 휴식을 이룰 수 있듯이 끈덕지게 집착하던 그 무렵의 나로 잠시나마 되돌아간 탓일 것이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거친 숨결을 가다듬고 있었다.
좁은 대청마루 너머 건넌방으로부터 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땅이 꺼지도록 탈진한 소리를 토하더니 별안간 어, 어, 어얏 하고 도시 중환자 같지 않은 억센 고함소리를 내질렀다.
분명히 그건 엄살이라고 다짐했다. 나는 우스꽝스러움과 불쾌감이 뒤섞인 묘한 심정으로 귀를 막았다. 비록 늙어저 중병을 앓게 되더라도 엄살은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만일 내가 성한 몸이라면 돈을 벌어 아버지의 병 치료는 물론이요, 진숙도 시집을 보낼 수 있으리라고 그다지 신기스러울 것 없는 뉘우침을 새삼 되씸 어 보았다.
불행히도 나는 틀림없는 병자인 것이다. 더구나 눈이 먼 소경이고 아버지는 중풍 환자이다. 내가 나 자신을 틀림없는 병자라고 강조하는 까닭은 지금껏 어엿한 의사로부터 병명을 진단받은 일이 없으나, 어쨌든 고치기 어려운 무거운 병이 아닐 수 없으며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병명을 자신있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심장 질환의 한가지라는 것만은 티끌만큼도 의심치 않는다.
반항도 없이 당하신 긴 시간 고통 가운데
내 영혼 위해 우시네 주 예수 창에 찔리네.
찬송가가 다시 들려온다.
“망할 것들.”
아버지의 숨가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 견딜 수 있어야지.”
앞집 건너 빈터에 교회가 선 것은 작년 봄의 일이다. 진숙의 설명에 의하면 예배당은 이 근처 빈촌에 어울리는 양철지붕의 블록 집이며 문앞에 껍질도 벗기지 않은 소나무 기둥을 세워 그 위에 갓난애 머리통만한 종을 매달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밀이 아니더라도 첫 종소리부터 종의 크기쯤 짐작이 넉넉한 터이었다.
첫 종소리가 난데없이 울렸을 때, 나는 박격포탄이라도 지붕 위에서 터진 줄 알았었다. 종은 작은 놈일수록 가까운 곳에서는 요란하고 잡스러운 법이다. 수요일엔 아침 저녁으로 두 차례, 일요일에는 낮에 한번 더해서 세 차례씩 울린다. 이제는 거의 면역이 되다시피 되었지만 밤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 겨우 막 잠이 들었을 즈움 종소리가 터질라치면 슬그머니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 뛰어가 종을 끌어내려 부숴버리고 싶은 충격에 떠받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들창 안으로 희끄무레하게 스며드는 잿빛의 광채를 굳게 닫힌 눈 밖으로 내음새처럼 맡아 보려고 애썼다. 앞집 사람들은 우리보다도 더 소란스러우리니 애써 마음을 돌려, 그나마도 한 집 걸려 차지한 우리 집의 위치를 자위해 보려고 했다.
“거 미친 것들이.”
아버지의 내뱉는 목소리다. 나는 아버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안다. 조금도 오해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가리키는 미친 것들이란 아마도 나나 진숙은 아닐 것이다. 예배당에 모인 선남선녀들일 것이다. 나는 독실한 신도들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아비지를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들의 신앙이 가령 저 예배당 벽의 블록만큼이나 두텁다고 치디라도 종소리와 찬송가로 하여 우리 집 식구의 안면을 방해하고 더구나 안정이 긴요한 두 환자의 소망을 그르칠 도리는 있을 수 없으니까.
“이사를 가든지 해야 별 도리가 없지요.”
나는 건넌방을 향해 말했다.
아버지는 적이 의아해 했을 것이다. 좀처럼 건넌방에 말을 보내지 않는 내가 그야말로 희한스럽게도 아버지의 말에 반응을 나타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 말은 집안 살림 걱정이나 병 치료에 관해 부자간의 다정한 대화라도 시작되기는커녕, 도리어 아버지의 푸념을 예방해 버린 꼴이 되어 심란한 침묵만이 흘렀을 뿐이다. 아버지의 건넌방과 내 안방과의 거리는 두어 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런 침묵이 계속되는 시간에는 굉장히 멀리 따로따로 격리되어 있는 착각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피차 귀를 세워 상대방의 동정을 살피고 있는 그린 침묵이 싫었다. 나는 베개를 끌어당겨 한쪽 귀를 파묻고 남은 귀는 손바닥으로 덮어눌렀다. 그리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도리가 없었어, 그릴 수밖에 없었어.”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눈으로 본 영상(映像)들은 폐품이 되어 내다버 린 필름 조각이다. 내가 눈을 잃은 그 순간까지 헤아릴 수 없이 뇌리에 누적된 갖가지 영상들은 지금의 나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내 기억 속에 삭아 버린 무수한 그림자들은 꿈결에서 헤매듯 차디찬 이질감만을 어쩔 수 없이 안겨다 줄 뿐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의 습기와 곰팡이가 살아나는 알싸한 내음새. 나의 깊숙한 안저(眼底)에는 물이 번져흐르는 벽의 지하실이 재생된다. 그 지하실 한구석에는 초췌한 두 사내가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나와 내 형이 아니었다. 덥수룩한 머리 모양마저 꼭같이 닮은 두 청년이었을 뿐이다. 결코 나와 내 형일 수는 없다. 구렛나룻이 검고 늙수그레한 측이 내 형은 아니었다.
“다녀오겠어요, 오빠 약도 사올께요.”
아까와는 딴판으로 이를테면 나들이 목청이라고나 해야 할까, 진숙의 가벼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살 내음새가 풍기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총을 넘겨주라.”
장화를 신은 군복이 부하에게 명령했다. 네모진 어깨 위에는 붉은 바탕에 노란 금줄이 보였다. 곁의 병사가 장총을 난폭하게 내게 넘겨주었다.
“총검을 꽃아서 주란 말이다.”
장화가 고함을 질렀다. 긴 총검을 꽃은 장총은 내 귀보다도 높았다.
“찔러!”
장화가 내질렀다. 나는 얼어붙은 눈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너도 반동이지?”
그가 물었다.
“아닙니다.”
내가 대답했다.
“네 형은 원수다. 네가 반동이 아니라는 증거는…….”
“용서해 주십시오, 전 못합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 애걸했다. 가벼운 쇠붙이 소리가 울렸다. 권총의 총구가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열까지만 헤어 주지, 하나 둘…….”
나는 장총을 움켜쥐고 눈을 감았다.
“……일곱, 여덟, 아흡.”
나는 앞을 찔렀다. 묵직한 충격이 총신과 내 팔로 반사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돼.”
내가 문을 향해서 두어 발 내디딨을 때, 등뒤에서 총소리가 터졌다. 나는 무릎을 꺾고 제자리에 엎어졌다.
총에 맞은 것은 내가 아니었다. 사정(射精)의 시간처럼 짧은 동안 삶의 희열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형이 총살당했다고 알렸다.
형이 죽은 원인은 놈들의 권총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찌른 총검으론 살을 다쳤을 정도겠지. 놈들이 총을 쏜 사실이 바로 그걸 뱐증했지 않느냐.
건넌방 문이 열리고 비틀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뜻밖에도 아버지가 대청마루까지 나온 것이다.
“누워 계시지요.”
나는 덤덤히 말했다.
“대문을 잠가 놔야지.”
아버지가 대답했다.
“놔두시지요.”
그래도 아버지는 앓는 소리를 토하면서 마당으로 내려가 대문을 잠갔다. 아버지는 곧장 돌아오지 않고 부엌문을 삐이걱 하고 살며시 열었다.
솥뚜껑을 벗겨 내리는 소리다.
“아!”
심상치 않은 비명이 일어났다. 헐떡이는 숨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마루에 나섰다. 마룻가를 대중해서 발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맨발로 살금살금 부엌까지 더듬어갔다.
“괜찮으신가요? "
내가 물었다. 구정물과 행주 내음새가 코를 쑤셨다.
“좀, 좀 부축해 줘야.”
아버지의 난중한 모습이 선하다. 나는 그 내음새 쪽으로 다가서면서 두 팔을 벌렸다.
시든 나뭇가지가 내 손을 붙들었다. 나는 한 팔로 아버지를 껴안고 한 손으로 벽을 의지해 가면서 마루까지 부축해 왔다.
“됐다.”
아버지가 숨을 몰아쉬고 말했다. 그리고는 무릎을 끌고 방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나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도둑처럼 바스락 소리 하나 내지 않게 바짝 긴장해서 몸을 움직였다. 먼지 뚜껑이 열린 솥 속에 손을 넣어 저어 보았다. 미지근한 숭늉뿐이었다.
나는 찬장 속을 뒤졌다. 자그마한 주발 안에 찬밥이 반쯤 남아 있었다. 그걸 내려 우선 부뚜막 위에 얹어놓은 다음 찬장 위에서 밥상을 내렸다. 상 위에 밥그릇과 수저, 그리고 김치 보시기, 간장 종지 따위를 차렸다.
그것밖엔 손끝에 닿지가 않았다. 하긴 아침의 된장국이 남아 있음직 했지만, 결국 나는 그걸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숭늉을 한 대접 넘치도록 떠서 주발 오른쪽에 놓았다.
나는 더욱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상을 날랐다. 일단 상을 마루에 내려놓고 건넌방 문부터 조용히 열었다.
“시장하지 않다.”
노인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간신히 말끝을 흐렸다.
“점심을 잡수세요.”
나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우리 집에 점심이 없어진 지 너덧 달이 좋이 넘는다. 회사원인 진숙은 으례 밖에서 사먹을 터이지만 집안에 남아 있는 두 식구야 점심을 거른다고 별 지장이 있을 리 없었다.
“속이 허하시면 저한테라도 말씀을 하세요.”
나는 진숙이가 미웠다. 그녀를 미워하지 않고 누굴 미워하나. 나는 안방으로 되돌아왔다. 수저 소리가 달그락거린다.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졌다. 담밑의 시궁창에 흙탕물이 넘쳐흐를 것이다.
졸지에 쏟아진 소나기 때문에 얕이 판 참호 바닥은 흙탕물이 넘쳐흘렀다. 적의 포격이 멈추자, 전면에서 소화기의 총성과 함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수류탄만의 접전이 한참 동안 계속되더니, 다시 적의 포탄이 진지 위에 작렬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보병도 아랑곳없다는 포격이다. 나는 온몸이 가루가 될 폭발음과 뜨거운 화기(火氣)를 얼굴에 의식하자, 그대로 뒹굴었다.
눈앞을 겹겹이 감은 붕대를 떼는 순간 나는 절대로 절망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 눈알이 외계(外界)를 보기 위해서 앞을 향해 위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나의 내부를 응시하기 위해 안으로 초점을 바꾸어 맞춘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소경이 되었다고 믿기 싫었던 것이다. 내 눈앞이 거꾸로 박혔다고만 믿고 싶었다.
그것은 캄캄한 공간이 아니었다. 희부연 물질 속이었다. 딱딱한 물질의 내부였다.
그렇지만 어떤 때엔 깨끗이 닦은 거울 속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듯, 차갑게 선명하면서도 현실감을 잃은 풍경이 내 눈 밑바닥으로 끝없이 빌어지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그것이 숙명과 같은 귀걸이며 하나의 구원일 수 있다는 묘한 자기 위안을 저버릴 수 없었던 성싶다. 나는 필경 병신이 됨으로써 비로소 형의 육신을 총검으로 찌른 동작과 손목에 반사된 충격이 서로 상쇄될 수 있을 것 같은 발상에 매혹된 것이다.
천만에, 그건 큰 오산이었지. 내 귀, 코, 그리고 손가락 끝은 곤충의 신경처럼 차라리 변태스럽게 예민해질 뿐이었다. 그러한 곤충의 촉각은 눈을 감고 형을 찌른 어느 청년의 동작을 좀더 생생하게 되살릴 수가 있었다.
건넌방에선 숭늉을 궁상스럽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해도 길어지고 했으니, 아버지 한 분만이라도 점심을 차려놓도록 진숙에게 단단히 일러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물린 밥상읕 마루에 내다놓았다.
“네 형만 살았어두.”
아버지가 혀를 차고 말했다.
“그 얘긴 관두세요.”
나는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긴 한숨만 내쉬었다.
나는 불쑥 아버지한테 모든 일을 고백하고 싶은 충동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누구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거역하지 못할 엄숙한 명령이고, 내게 있어서는 절박한 의무감 같은 다급한 시간이었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관자놀이의 심줄을 타고 머리속에 퍼져흘렀다. 어머니한테만은 꼭 얘기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런 뉘우침은 나만을 생각하는 수작일 것이다.
“이리 좀 오너라.”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선뜻 말문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내 눈자위를 안스럽게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차례가 올 때쯤 되었는데요.”
내가 먼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다 소용없는 짓이어. 안 간다, 안 가.”
아버지는 틀림없이 고개를 모로 흔들면서 말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국립 중앙병원에 무료 입원수속을 취해 놓고 입원 허가 통지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중풍이라고 아예 단념해 버릴 것이 아니라, 다행히 입원비와 치료비가 들지 않으니 일단 진단을 받아볼 일이라고 나와 진숙이 의논 끝에 그처럼 결정했었다. 무료 입원이라고 해도 밥은 사먹어야 하니까 진숙의 수입으로는 분수에 넘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들면 우리 식구가 밥을 먹고 살고 있는 사실 자체부티 이변이 아니냐?
나는 오랜 침묵 끝에 나직이 말했다.
“입원을 하셔야지요.”
“소경이라고 장가들지 말란 법은 없겠지.”
아버지는 당돌한 말을 끄집어낸다.
“허, 허, 허.”
나는 맥빠진 소리로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니다. 네 형도 장가 못 들인 게 한인데…….”
아버지가 말끝을 맺지 못했다.
“진숙이부터 시집을 보내야지요.”
그녀를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내가 동시에 없어지는 길밖엔 없다. 너무도 뻔한 노릇이다. 아버지가 병사하고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든지 그렇게도 못 된다면 그녀가 아버지와 나를 독살하든지, 어쨌든 두 가지 중의 하나를 택하는 수밖에는 이 육친의 무거운 쇠사슬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녀가 어느 놈팡이의 꽁무니를 쫓아 이 집을 도망쳐나간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때는 먼지 아버지와 나를 죽인 다음이겠지. 설마 점심 한 끼만을 차려놓고 그냥 달아나버릴 수 있을 만큼 그토록 잔인한 여자는 아닌 줄 나는 굳게 믿는다. 믿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진숙의 경우라고 생각해 본다. 어쩐지 뒤숭숭하고 마음이 편지 못했다.
회사 안에서는 제 가정 사정이 휜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총각사원의 결혼 신청은 고사하고 위태로운 곳엔 가지 말라는 격으로 처음부터 경원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밖의 사내들과 가벼운 교제쯤 못할 법은 없겠지요. 전 감출 것도 없는 과년한 처녀지만 요즈음 점점 늘어가는 노처녀 중에선 그래도 외양이 떨어지는 편은 아닐 거예요. 아버지와 오빠를 버릴 마음은 조금도 없거든요. 그렇다고 이대로 늙어 시들어 버릴 수도 없지 않아요.
진숙에겐 애인이 있는지 모른다고 나는 의심한다.
그이는 저보다도 두 살이나 손아래이고,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제가 유혹한 셈이에요. 어느 일요일. 그이하고 저는 교외로 소풍을 나갔어요. 전 도시락하고 맥주 두 병을 준비했어요. 그이 짐을 풀어보니까, 빵, 캐러멜, 생과자 같은 단 것만 나오기에 한바탕 함께 웃었어요.
나는 그녀의 하얀 살결을 쓰다듬고 있는 사내의 손을 상상한다. 손등에 털이 돋고 손바닥 가죽이 두터운 손을 그려본다.
제 몸에서 그의 강한 체취를 씻을 수가 없어요. 그이는 제 몸을 탐스러워할 거예요. 이건 여자의 좁은 소견이나 허영이 아닐 거예요. 왜냐구요. 제 이마나 눈 가장자리에 잡히는 잔주름을 도배질할 수는 없지만 과히 흉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마침내 은근히 기다리면서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났어요.
나는 그녀에게 구혼하는 작자는 흉악한 사기한이거나 숙맥 이 라고 생각한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부들부들 떨릴 만큼 기뻤어요. 흔해빠진 육체 관계로부터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 식을 올립시다 하는 따위의 구혼이 아니길 바랐지요. 그이는 아버지와 오빠도 상관이 없다고 장담하지 않겠어요? 참 순진한 청년으로 여길 수밖에요. 길바닥의 자갈처럼 닳고 닳은 지로서 못할 말은 아닐 거예요. 어쨌든 평생에 단 한번 기적이 찾아왔는데 그걸 놓치다니요. 그래서 말하자면 타협안을 궁리해 냈지요. 결혼한 뒤에도 제가 직장을 계속해서 제가 번 몫은 고스란히 아버지와 오빠의 생계를 위해서 보내드리기로 마음먹었어요. 그 다음엔 오빠한테 시집올 사람을 구해야지요. 하긴 제가 가끔 보살핀다면 식모라도 넉넉히 살림이 되겠지요. 눈을 딱 감고 문을 열겠어요.
나는 방구석으로 기어가, 책상 위 진숙의 화ㅈㅇ품을 살펴본다. 장난감 같은 경대며, 크림통, 분갑 그리고 빗을 하나하나 손으로 확인했다. 나는 분갑을 열었다. 여자의 내음새가 나를 자극했다.
“형이 내가 아니었던 것처럼 진숙은 내가 아니니까.”
나는 일부러 소리를 내어 구차하게 웃었다.
아주머니이!
대문 밖에서 느리처분한 목소리가 길게 들렸다.
“밥 좀 주우.”
그리고는 엷은 송판으로 짠 대문을 덜컹 덜컹하고 떠밀었다.
“아주머니 없다.”
나는 마루에 나가 말했다.
“밥 한 술 주시우.”
이번에는 빈 깡통을 덜거럭거린다.
“대문을 떠밀지 말아.”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루 밑이 예배당인데 너무 그러지 마시우.”
거지애의 능청맞은 목소리가 히죽이 웃는 낯을 연상시킨다.
“예배당에 가서 달래라.”
나는 이렇게 쏘아주고 나서 쓰디쓰게 웃었다. 거지애와 실없는 수작을 걸고 있는 나 자신을 비웃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거지애가 제물에 지쳐 돌아간 다음 까닭모를 공허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것은 친한 벗과 막 헤어진 뒤의 가슴을 죄는 느낌과 흡사했다. 나는 그애가 나와 같은 소경이 아니었는지 궁금해 했다. 나는 침울했다. 불길한 예감이 음산하게 감기어들었다.
주께서 문에 오셔서
곧 열어달라 하실 때
왜 즉시 문을 안 열고
너 오래 지체하느냐.
이번에는 창녀들의 쉰 목소리 같은 합창이 흘러나왔다.
“도리가 없었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나는 입버릇이 된 독백을 거듭 중얼거렸다. 심장이 벌떡이는 소리가 차츰 빨라진다. 재봉틀 바늘이 초조하게 운동하듯 내 심장은 그 바늘 밑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다. 고문을 당해서 싸지. 이쯤은 아직도 약과지. 나는 손바닥으로 귀를 덮어눌렀다. 그래도 재봉침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손가락을 귓속에 집어넣 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무렇게나 몸을 던졌다.
잠결에서 나는 심상치 않은 신음소리를 틈틈이 엿들었다. 건넌방의 동정에 귀를 모았다. 가래에 걸린 헛소리가 다급한 숨소리와 함께 들렸다.
나는 건넌방으로 달려갔다. 방 속에선 마른 생선이 썩는 내음새가 유난히 걍하다. 나는 아버지의 손목을 잡아 맥을 깊어보았다. 노인의 맥은 불규칙했다. 급작스럽게 벌떡 벌떡 뛰다가도 멀리 꺼져들어간다. 그릴 때마다 내 심장도 멈추었다.
“아버지!”
나는 입을 가까이 대고 불렀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의 팔은 닳아버린 수수빗자루처럼 가볍고 시들해 있었다. 아버지는 목에 걸린 가래를 시원스레 뱉어 버릴 기운조차 없었다. 그 가래 끓는 소리는 죽음에 임박한 절박감에 휩싸여 있었다.
“아버지!”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아!”
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열고 내 얼굴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점심 먹은 게…….”
아버지는 입속말로 소곤거렸다.
“등을 문질러 드릴까요?”
나는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내 손을 쥐었다. 아버지의 손은 가지런히 떨리고 있었다.
“네 형한테로 가야겠다.”
아버지는 할딱이는 숨결 사이로 간신히 중얼거렸다.
“체하신 거예요, 곧 진숙이가 올 테니 진정하세요.”
나는 아버지를 돌아눕히고, 적삼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등허리의 건조하고 홧홧한 온기는 타다 남은 재의 뜨거움이었다. 그 온기는 차츰 미적지근하게 식어가는 성싶었다. 싸늘한 소름이 끼쳐졌다.
아버지의 등허리 한가운데 구부정한 등골은 울툭불툭하게 마디지고 앙상했다. 아버지의 목구멍에서 빚어 흐르는 탁음(濁音)은 내 겉에서 숨을 거두던 병사의 헤벌어진 검은 입술과 누런 입념을 선명하게 되살려 주었다.
“아버지!”
나는 다시 나직이 불렀다.
“아.”
아버지는 짧은 신음소리로 대답했다.
“아버지, 형을 죽인 건 접니다. 제가 죽였어요.”
그러나 뻣뻣이 굳어 버린 내 혓바닥은 말소리를 이루지 못했다.
“손을 잡아다오.”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점심을 잡수신 게 체한 것뿐이에요.”
내 말은 거짓이었다.
“아무 소리도 말아라.”
아버지는 뜻밖에도 밝은 음성이었다.
아버지의 손은 싸늘했다. 아버지까지도 내가 죽였지. 부엌에 들어가서 밥상을 차린 것이 큰 잘못이지. 주발에 반쯤 남았던 찬밥은 쉰 밥이었지. 그건 틀림없이 쉰 밥이었다. 풀자루에 들어갈 쉰 밥이었다. 나는 쉰 내를 의식했으면서도 그걸 상 위에 엊어놓았다. 그뿐이랴! 나는 그 미지근한 숭늉 속에 가루약을 풀었지. 나는 바지주머니 속에서 약봉지를 끄집어내어 숭늉 대접 위에 떤 다음 종이는 아궁이 속으로 깊숙이 던져버렸지.
나는 머리를 사납게 흔들면서 쫓기어왔다. 건넌방에 되돌아가기가 무서웠다.
내 등에서 총성이 터지고 나는 제자리에 엎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쏜 총소리가 아니었다. 자독(自瀆)의 사정(射精) 처럼 짧은 동안 삶의 희열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대문 소리에 놀랐다. 마당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대문의 빗장을 벗겼다.
“나예요.”
진숙이었다.
“대문은 왜 잠가 둔담.”
비는 멎었으나 얕은 먹구름이 아직도 머리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는 하늘이었다. 나는 입을 다문 채 건넌방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진숙은 종종걸음으로 건넌방에 들어갔다. 나는 따라들어가지 않고 마루쪽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아버지를 연거푸 불러댔다. 겨우 아버지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문득 목소리를 죽이면서 귓속말로 얘기를 시작한다. 내가 들어서는 안 될 밀담을 은밀하게 소곤거리고 있듯…… 네 오라비가 애비를 죽이려고 독약을 탄 숭늉을 먹였단다. 애비의 원한을 기어이 갚아다오. 아버지, 염려마세요, 제게 맡겨두세요. 그녀의 눈은 괴이한 푸른 빛이 번득인다. 아버지는 아직도 모르세요? 큰 오빠를 죽인 것도 작은오빠인 줄 아직까지 모르셨어요? 아버지는 입에서 거품을 뿜고 허우저거린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갑을 더듬었다.
“오빠, 의사 데리고 올께요.”
진숙이의 심란한 목소리가 마당에서 들렸다.
“그만두라니까?”
나는 벌컥 화를 내어 고함을 질렀다. 미닫이를 젖히고 그녀가 의아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여느때 같지 않으신데!”
“중앙병원의 입원이나 기다려.”
나는 상체를 일으키고 내뱉었다.
“아직 통지가 안 왔어요.”
그녀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누가 모른대, 무료 입원만 기다리고 있지 말고 돈을 내구 입원부터 하셔야 될 게 아니야.”
그녀는 무료고 유료이고간에 당장 위급하니 우선 의사를 데려다가 응급치료를 받은 다음의 문제가 아니냐고, 너무도 당연한 말을 시비조로 늘어놓았다. 나는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대꾸를 않았다.
“오빠도 안색이 좋지 않아요. 이거 오늘 사온 거예요.”
알약이 든 병이 내 무릎 앞에 굴렀다. 나는 방바닥을 더듬어 약병을 집어들었다.
“약값도 올랐대요.”
진숙은 마음을 돌렸는지 제법 상냥스러운 목소리를 남기고 문을 닫았다. 대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고 고무신을 걸친 발짝 소리가 골목 밖으로 멀리 사라졌다.
나는 약병을 흔들었다. 자글자글, 알약이 부딪는 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이건 심장약이 아니라 영양제인 것이다. 나는 병마개를 열고 손가락을 넣어 탈지면을 끄집어냈다. 그 부드러운 솜은 붕대로 눈을 가리고 누워 있던 병실의 내음새를 풍겼다. 나논 솜을 길게 뽑아 눈앞을 가려보았다.
예배당 근처가 부산해졌다.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벌써 저녁 예배 시간이다. 갓난애 머리통만큼이나 작은 종일 것이다. 구름이 걷히어 가는지 장지문에 희부연 빛이 잠시 아물거렸다.
나는 건넌방으로 조심스레 밭을 옮겼다.
“아버지!”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
다시 불렀으나 숨소리마지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 형을 죽인 건 접니다.”
나는 한마디 한마디 떼어 나직이 말했다. 아버지의 손이 내 손을 힘없이 건드렀다.
“알고 있다. 다 내 죄다.”
아버지는 한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이한테는 알리지 말아라.”
내 손을 놓은 아버지의 목에선 다시 가래가 꿇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었으나 속으로부터 치받쳐오르는 흐느낌을 끝내 견디어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흐느낌은 때마침 울려나온 찬송가 소리 때문에 멀어져가는 아버지의 귀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레루야
싸움은 모두 끝나고 생명의 승리 얻었네
개선의 노래 부르세 할렐루야 아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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