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國原王紀
王名斯由 乙弗大王第三子也 身長八尺 美風采 聰明好學 愛人下士 善騎射 有脅力 故畋獵 性至孝事母太后 至誠友愛兄弟姊妹 及宗戚皆厚待之 故人稱小乙弗
元年 白兔 二月 王卽位於五雲宮 詔曰 "朕以先王寵子 紹我祖業爾 百僚臣民 佑我護國 內無相奸 外無浸侮 共樂太平 子孫茂長" 太輔明臨靑見 左輔長莫思 右輔仙述 樂浪王方夫 清河公烏陌南等率臣僚 朝賀山呼 大赦天下
三月 周太后生王子城 或曰 "城非周太后子也 槨女周氏生也"
五月 王宴宗室外戚于瓊木宮 分賜先王廐馬御衣 酒酣而泣曰 "先王愛我無雙 朝暮眷我 今百花滿發 草木皆榮 獨先王棄我 嗚呼痛矣"
故國原王紀(고국원왕기)
왕의 이름은 斯由(사유)이며, 乙弗大王(을불대왕)의 셋째 아들이다. 신장이 8척이고, 풍채가 이쁘고, 총명하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에게 겸손하였으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 하고, 힘이 쎄어 사냥을 잘 하였다. 성품은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머니 태후를 모셨고, 지극한 정성으로 형제자매들과 우애를 나누었고, 또한 종친과 외척들에게도 모두 후하게 대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小乙弗(소을불)'이라 칭하였다.
원년(AD331년) 백토 2월, 왕이 五雲宮(오운궁)에서 즉위하고,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짐은 先王(선왕)의 총애를 받은 아들로서, 우리 조상의 대업을 이어받았으니, 모든 신하와 신민들은 나를 도와 나라를 보호하여, 안으로는 서로 간음이 없으며, 밖으로는 침범과 모욕을 당함이 없게 하여, 함께 태평성대를 즐기고, 자손들이 무성하게 번창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太輔(태보) 明臨靑見(명림청견), 左輔(좌보) 長莫思(장막사), 右輔(우보) 仙述(선술), 樂浪王(낙랑왕) 方夫(방부), 淸河公(청하공) 烏陌南(오백남) 등이 臣僚(신료)들을 거느리고 조정에서 하례하며 만세를 외치니(山呼),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3월, 周太后(주태후)가 왕자 城(성)을 낳았다. 혹은 말하기를, "城(성)은 周太后(주태후)의 아들이 아니라, 槨(곽)의 딸 周氏(주씨)가 낳았다." 라고 하였다.
5월, 왕이 종실과 외척들에게 瓊木宮(경목궁)에서 연회를 베풀고, 선왕의 마굿간 말과 御衣(어의)를 나누어 주었다. 술에 취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선왕께서 나를 사랑하심이 비할 데 없으셨고, 아침저녁으로 나를 돌봐주셨는데, 이제 온갖 꽃이 만발하고 풀과 나무가 모두 무성해졌건만, 홀로 선왕께서 나를 버리셨으니, 아아 통탄스럽구나!" 라고 하였다.
王兄松仁扶王慰曰 臣等在王 無悲傷 以致太后憂 王曰 兄弟一身也 我雖王而弟也 兄等愛我 如昔以慰吾心 乃賜松東海沐邑 仁沸流沐邑 松曰 臣等已富 何復封乎 杣亦父王之遺血 而久屈爲松巨子 不可無別也 王善之 封杣爲菖蒲公 賜最彘沐邑 仁曰 烏忠亦常自訢甚可憐也 王謂松曰 兄亦然之 松曰 臣母與倉氏爭妬 故其言未可正也 王曰 賢哉 吾兄也 乃使仁徃問於倉氏 倉氏泣曰 妾雖與陌南相通 而豈不自知王胎乎 忠實夫王之子也 王乃封烏忠爲西山公 賜國川沐邑 序於宗室 兔太后責松曰 汝於王前 訕我引陌南子爲兄 何也 松曰 母子一身 雖訕何害 弟王好仁 伸人之寃 母何多言乎 唯好仁者 福長矣
王爲兔太后作山宮 命王兄松監之
왕의 형 松(송)과 仁(인)이 왕을 붙들고 위로하며 말하였다. "臣(신)들이 왕의 곁에 있으니 너무 슬퍼하고 상심하여, 太后(태후)께 근심을 끼치지 마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兄弟(형제)는 한 몸입니다. 제가 비록 왕이지만, 아우이기도 합니다. 형님들께서 예전처럼 저를 사랑해 주시는 것이 제 마음을 위로하는 길입니다."
이에 松(송)에게 東海(동해)를 沐邑(목읍)으로 내리고, 仁(인)에게는 沸流(비류)를 沐邑(목읍)으로 내렸다.
松(송)이 말하였다. "臣(신)들은 이미 부유한데 어찌 다시 봉하십니까? 杣(산) 또한 父王(부왕)의 남겨진 핏줄인데도, 오랫동안 굽히고 지내며, 松(송)의 巨子(거자, 큰아들 혹은 가신)가 되었으니, 특별한 대우가 없을 수 없습니다."
왕이 이를 좋게 여겨, 杣(산)을 菖蒲公(창포공)으로 봉하고, 最彘(최체)를 沐邑(목읍)으로 내렸다.
仁(인)이 말하였다. "烏忠(오충) 또한 늘 스스로 하소연하니, 매우 가련합니다."
왕이 松(송)에게 말하기를, "형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니, 松(송)이 말하였다. "臣(신)의 어머니(토태후)는 倉氏(창씨)와 싸우고 질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말은 아직 올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어질도다, 우리 형님이시여!"
이에 仁(인)을 보내 倉氏(창씨)에게 가서 묻게 하니, 倉氏(창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첩이 비록 烏陌南(오맥남)과 서로 통하기는 하였으나, 어찌 왕의 胎(태, 왕의 자식)를 스스로 알지 못하겠습니까? 烏忠(오충)은 진실로 父王(부왕)의 아들입니다."
왕이 이에 烏忠(오충)을 西山公(서산공)으로 봉하고, 國川(국천)을 沐邑(목읍)으로 내렸으며, 宗室(종실)의 서열에 올려 주었다.
兔太后(토태후)가 松(송)을 꾸짖으며 말하였다. "네가 왕의 앞에서 나를 비방하고, 烏陌南(오맥남)의 자식을 끌어들여 兄(형)으로 삼은 것은 무슨 까닭이냐?"
松(송)이 말하였다. "어머니와 자식은 한 몸인데 비록 비방한들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아우인 왕이 어질어 사람의 원통함을 풀어주려 하는데, 어머니께서는 어찌 말이 많으십니까? 오직 어짐을 좋아하는 자라야 복이 길 것입니다."
왕이 兔太后(토태후)를 위해 山宮(산궁)을 지어주고, 왕의 형 松(송)에게 명하여 이를 감독하게 하였다.
九月 王畋于高山原 祭鹿
草山宮主與高拱相通 生子和 王子津請敀於拱 許之
9월, 왕이 高山原(고산원)에서 사냥을 하고, 사슴을 바쳐 제사를 지냈다.
草山宮主(초산궁주)가 高拱(고공)와 서로 통하여 아들 和(화)를 낳았는데, 왕자 津(진)이 (아이를) 拱(공)에게 맡기겠다고 청하자, 이를 허락하였다.
二年 黑龍 二月 王與周太后如卒本 祀始祖廟 巡問百姓 賑恤窮老病弱者如例 王弟武時年十九 而代王 接民甚詳 民皆頌之曰 "吾王之弟"
三月 太輔靑見薨 年七十七 靑見素有重名 周太后欲引之 而爲藩屛 始大用 爲政淸簡 而頗媚后旨 人多惜之 王自卒本還吊 命厚葬之 以長莫思爲太輔 仙述爲左輔 芙莢爲右輔 解玄爲大主簿前衛將軍 龍發南蘇太守 于璘爲西川公
命王兄松與王弟武祭鹿于龍山 命王兄杣忠仁等巡州郡 問民疾苦
2년 (332년) 흑룡 2월, 왕이 周太后(주태후)와 함께 卒本(졸본)에 가서 시조묘에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을 순무하며 곤궁한 노인, 병든 자, 약한 자들을 전례와 같이 진휼하였다. 왕의 동생 武(무)가 나이가 19세였는데, 왕을 대신하여 백성을 대함이 매우 상세하니, 백성들이 모두 칭송하여 말하기를 "우리 왕의 아우로다" 하였다.
3월, 太輔(태보) 靑見(청견)이 薨(훙)하니, 나이 77세였다. 靑見(청견)은 평소 명성이 무거웠는데, 周太后(주태후)가 그를 끌어들여, 藩屛(번병, 울타리와 병풍)으로 삼으니, 비로소 크게 등용하였다. 정사를 행함이 청렴하고 간결하였으나, 太后(태후)의 뜻에 자못 아첨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애석해 하였다. 왕이 卒本(졸본)에서 돌아와 조문하고, 명하여 후하게 장례하도록 하였다.
長莫思(장막사)를 太輔(태보)로, 仙述(선술)을 左輔(좌보)로, 芙莢(부협)을 右輔(우보)로 삼았으며, 解玄(해현)을 大主簿(대주박) 前衛將軍(전위장군)으로, 龍發(룡발)을 南蘇太守(남소태수)로, 于璘(우린)을 西川公(서천공)으로 삼았다.
왕의 형 松(송)과 왕의 아우 武(무)에게 명하여, 龍山(룡산)에서 사슴을 바쳐 제사 지내게 하였다. 왕의 형 杣(산), 忠(충), 仁(인) 등에게 명하여, 州郡(주군)을 순시하도록 하여, 백성들의 疾苦(질고)를 물었다.
첫댓글 而頗媚后旨 파미
이체자 확인하는게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