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8: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 - 요한은 최종적으로 예수를 체포한 사람들을 밝히고 있다. 3절의 언급과 다른 점은 '천부장'이라는 구체적 직위를 명시하고 있다는사실이다. 천부장은 문자 그대로 1000명으로 구성된 부대의 지휘관을 의미한다. 그러나 바렛은 천부장에 해당하는 본절의 헬라어 '킬리아르코스'가 로마군의 한 부대의 지휘관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는 어떤 규모 부대의 지휘관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역 성경 중에서는 바렛의 견해와 같이 단순히 'Captain'이라고 번역되어 지휘관적인 '천부장'이 아니라 규모가 작은 부대의장임이 암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견해는 다음두 가지 추정에 의해 부정된다.
(1)요한으로 추정되는 15절의 제자는 대제사장과 서로 알고 있었으므로 그곳에 온 자가 '천부장'인지 직급이 그보다 훨씬 낮은 자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2) 민란의 이유로 산헤드린이 예수를 체포하러 군대까지 동원시켰으므로 '천부장'이 나섰을 것이다. 잡아 결박하여 - '잡아'는 '함께 잡다'란 말로 '체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결박하여'는 본절에서는 '묶는다'로 해석되지만 본래는 투옥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 같은 표현은 시사해 주는 것은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는 체포 현장을 묘사함과 동시에 11절에서 보여준 예수의 단호한 모습과 함께 예수의 체포 역시 간결한 용어로 표현하여 예언의 전격적인 성취를 돋보이게 하는 데 있다. 또한 요한은 공관복음처럼 체포에 대한 예수의 설명을 첨가하지 않음으로써 생략법을 통한 예언 성취를 강조했다.
[요 18:13]"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안나스 - 안나스는 눅 3:2;행 4:6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누가는 안나스 직책을 대제사장 가야바와 함께 언급함으로써 안나스가 대제사장인 것처럼 이해하게도 한다. 허나 요한은 안나스의 직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그해 대제사장 가야바와 구분함으로써 당시 안나스는 대제사장이 아님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안나스는 A.D. 6-15년 사이에 대제사장의 직책을 맡았던 사람인데 그에게 아들 다섯이 있었다. 그 아들들 역시 제사장을 맡았었다며 본문에 언급된 사위 가야바도 대제사장이었다. 본래 대제사장은 종신적이었으나 로마의 지매가 시작된후 대제사장직이 막대한 부와 권력에 의해 좌우되어 로마에 대한 적극적인 추종자들에게 주어짐으로써 자주 교체되었다.
안나스 역시 로마 총독 그라투스에 의해 폐위되었다. 그런데 무리들이 예수를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데려가지 않고 그의 장인 안나스에게로 데려간 이유가 무엇인지 본문에 언급되지 않아 알수 없다. 아마 안나스는 대제사장 직위에서 폐위 당했으나 그의 사위가 대제사장이었으므로 대제사장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가졌던 사람으로 짐작된다.
그해의 대제사장 - 본문과 동일한 언급이 11:49에서 나타난바 있는데 '그해'라는 단어는 제사장직이 1년으로 끝나는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체포되던 역사적인 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언급된 가야바는 약 20년 동안 대제사장직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 18:14]"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권고하던 자러라..."
가야바는...권고하던 자러라 - 가야바는 예수께서 사역을 하였던 기간에 대제사장으로 활동하던 자였다. 본절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11:50을 가리킨다. 유대 백성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일들이 점점 확대됨에 따라 그것이 필경은 로마의 공격을 초래하리라는 염려에서 그는 '산헤드린의 회원들에게 예수를 죽이는것이 모두를 위하여 유익하다'고 말했었다.
이러한 그의 권고는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비롯된 것이지만 결국에는 예언적 의미로 예수의 죽으심과 결부되었던 것이다
[요 18:15]"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다른 제자 - 베드로와 더불어 체포되어 끌려가는 예수의 뒤를 따라갔던 두 제자 가운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제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는가 하면 저자의 동생인 야고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그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예수의 사랑하시던 제자' 즉 요한 자신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그러나 여기에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한낱 갈릴리 어촌의 어부에 지나지 않는 요한이 어떻게 유대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 안나스와 친분관계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혹자는 요한이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기 때문에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는 실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오히려 요한이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와 함께 고난에 동참하지 못했던 자신의 나약했던 당시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그제자가 자신이라고 밝히지 않았을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그리고 본절의 설명을 통해 베드로와 자신이 어떻게 그 법정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어 법정안에서의 모든 일들이 직접 두 제자에 의해 목격된 진실임을 암시해준다.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 - 이 제자가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었다는 것은 문지키는 여종에게 아무런 저지를 받지 않고 문을 통과해 들어갈 수 있었던 데서 입증된다. 여기서 '아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노스토스'는 어느 정도의 친밀성을 나타내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이 말은 '친한 친구', '친척 관계' 또는 '형제'를 뜻할 수 있지만 그런 정도의 관계는 아닐지라도 그가 안으로 들어갈 때 문지기로부터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결코 단순한 관계가 아닌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다드는 '그 사람이 대제사장과 아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제사장 출신이거나 아니면 대제사장과 관련된 일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폴리크라테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제사장이었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제롬은 이에 반박하면서 '기독 교회의 사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거의 근거가 없으므로 타당하지 않다.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 여기서 '뜰'이 울타리 안의 뜰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산헤드린의 집회장소 안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여기서 안나스가 예수에게 심문을 하는 데, 이 심문이 안나스 개인에 의한 비공식적인 것이라면 '안뜰'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고, 산헤드린에 의한 심문이 시작되기 직전에 있었던 것이라면 산헤드린 집회 장소의 안뜰이라고 볼 수 있다. 안나스가 심문 후에 예수를 그해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에게 보낸 점 그리고 본절에서 '집 뜰'이라고 진술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