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산과 바다 이면엔 고단한 섬 주민 삶의 편린들
- 국수봉·응봉산 넘어 눌차만 원점회귀 - 총길이 13㎞ 산행시간 5시간 반 소요
- 정거마을 담벼락 주민 일상생활 벽화 - 항월마을 비석엔 애환 서린 민담 새겨
- 산행 중 편백림·기암괴석 즐거움 더해 - 정상 오르면 바다 맞닿은 하구 펼쳐져 - 토사 쌓여 만들어진 섬들 보는 재미도
항월(項越), 정거(停巨), 새바지, 터질목…. 마을 이름들에는 주민들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지난 19일 산행하러 간 가덕도 이야기다. "저문 배 기다리며 목을 넘던 사람살이 그 정성 오늘로 이어 집집마다 정은 일고. 멀던 땅 이웃되어 오순도순 새순 돋아 까치놀 꽃물이 들 듯 마음 적셔 보듬는다." 항월마을 입구에 세워진 비석의 글귀다. '항월'은 우리말로 '목넘이'인데, 고개를 넘는다는 뜻이다. 글귀에는 고갯마루에 서서 저녁놀이 붉게 물든 바다를 바라보며 고기잡이 나간 남편과 아버지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가족의 마음이 서려 있다.
|  | | 부산 강서구 가덕도 천가교에서 바라본 눌차만 양식장. 양쪽의 두 산은 국수봉(왼쪽)과 응봉산이며, 그 가운데에 두 곳을 잇는 동선방조제가 조성돼 있다. |
'정거'는 항월의 이웃 마을 이름으로, 우리말로는 '닻걸이'다. 바다에 거센 파도가 몰아치면 배의 닻을 올려 걸어놓고 물결이 잔잔해질 때까지 머물던 곳이다. '닻 정(碇)'에 '악기걸이 거(鐻)' 자를 써야 하는데, 우리말을 한자화면서 글자를 오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 집집마다 담벼락에 악천후 때 배를 대거나 어패류를 양식하는 장면 등 일상생활과 희망 사항을 그림으로 옮겨 놓았다. 항월마을과 달리 글 대신 그림에 주민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새바지'는 샛바람을 많이 받는 곳이라는 뜻이다. 샛바람은 동풍(東風)을 이르는 뱃사람의 은어다. 가덕도에는 북쪽 동선리와 동쪽 대항리 등 두 군데에 새바지가 있다. 매년 1, 2월 동해에서 자란 대구가 산란하러 동선·대항 새바지에 몰려든다. 맛이 좋아 임금의 진상품에 올랐던 '가덕대구'다. '터질목'은 가덕도와 부속 섬인 눌차도를 연결한 '동선방조제'을 가리킨다. 태풍이 불면 제방이 터지거나 그 앞을 지나는 배가 파손되는 일이 잦아 붙여진 이름이다.
|  | | 국수봉 능선길. |
이번 산행은 눌차도 국수봉(139m)과 가덕도 응봉산(314m)을 넘고 두 산 사이에 산재한 마을을 거쳐 눌차만을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섬 주민들의 애환 어린 역사와 산과 바다의 수려한 경치를 고루 체험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산행지다.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천 리 벌판을 적시며 유장하게 흘러와 태평양과 몸을 섞는 하구를 굽어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국수봉의 울창한 편백림과 기암괴석이 즐비한 응봉산의 비범한 산세도 산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총거리는 약 13㎞로, 5시간30분가량 걸린다.
산행은 눌차도가 마주 보이는 가덕도의 북단 선창마을에서 시작한다. 천가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400m쯤 가면 갈맷길 이정표가 나온다. 거기서 왼쪽 항월·정거마을로 향한다. 5분쯤 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오른편에 폐교된 눌차초등학교가 보인다. 항월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정거마을 고샅길을 관통하면 진우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진우도는 서낙동강의 토사가 쌓여 만들어진 섬이다. 진우도에 이어 하구둑이 들어서면서 하구의 지형이 변해 장자도 대마등 신자도 등 새로운 섬이 생겼다.
|  | | 폐교된 눌차초등학교 |
정거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10분쯤 산을 오르면 갈림길을 만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100m쯤 걸어 산의 끝자락에 서면 진우도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국수봉 정상으로 걷는다. 정상까지 30분가량 거리의 숲길은 편백나무가 우거져 호젓하고 청량하다. 가덕도에는 최북단 눌차도와 최남단 외양포 등 두 곳에 국수봉이 있다. 외양포 국수봉(252m)은 고기잡이를 하거나 전장에 나가 싸우는 남성을, 이보다 높이가 낮은 눌차도 국수봉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을 상징한다. 눌차도 국수봉 정상에는 매년 1월 1일 할머니신에게 풍어제를 지내는 국수당이 있다.
|  | | 눌차도 정거마을 |
정상에서 15분쯤 내려오면 동선방조제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방조제를 지나 동선새바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진입한다. 50m쯤 가다 갈림길에서 왼쪽 산길로 방향을 바꾼다. 1.4㎞가량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삼거리에 이르고, 5분쯤 더 직진하면 응봉산 정상이다. 깎아지른 뾰족한 바위 봉우리 아래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낮게 엎드린 눌차만과, 바다와 맞닿은 하구가 고즈넉하게 펼쳐진다. 제 할 일을 다 한 낙동강이 하구에 이르러 산과 들을 뒤로하고 기나긴 물굽이를 벗어나 대양으로 스며드는 모습은 장엄하다.
|  | | 가덕도 북단의 해안 |
정상 밑 삼거리에서 둥근 바위문을 통과한 뒤 어음포산불초소 쪽으로 하산한다. 30분가량 내려가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바꿔 걷는다. 20분쯤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간다. 다시 20분가량 후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20m쯤 걷다 눌차만 해안길(샛바람길)을 따라 동선마을로 진행한다. 해안길은 동선마을을 지나 출발지인 선창마을로 이어진다. # 주변 가볼만한 곳
- 전국 최대 자생동백림 장관 - 외양포엔 옛 일본군 포진지
|  | | 가덕등대. |
가덕도에는 볼거리가 즐비하다. 1909년 섬 남단에 건립한 등대가 대표적이다. 옛 시설은 사무실과 숙소, 9.2m 높이의 등탑으로 구성된 복합건물인데, 출입구 천장에는 조선 황실의 상징인 자두꽃 모양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2002년 새로 지은 등대는 팔각으로 된 돌출형으로, 등탑의 높이가 40.5m로 국내 등대 중 두 번째로 높다.
남단 동쪽 해안 절벽 위의 24만㎡에 달하는 동백림은 장관이다. 자생 동백림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인데, 수만 그루의 나무 가운데 수령이 150년 이상인 것도 2500여 그루나 된다. 두문리에는 지석묘가 있다. 부산에서 유일한 해안 지석묘로, 가덕도를 다스리던 인물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인근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천성진성이 있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유적들도 있다.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가 그 하나다. 일본군이 1904년 진해만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해 지은 것이다. 눌차도에는 높이 약 3m에 둘레가 700m가량 되는 왜성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낙동강과 남해안으로 통하는 길목을 장악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 교통편
- 동아대 승학 캠퍼스서 58번 버스 - 하단역 강서 17번 마을버스 탑승
시내버스와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부산 사하구 하단동 동아대 앞에서 58번 시내버스를 타면 산행 출발지인 선창마을까지 환승없이 바로 갈 수 있다. 오전 5시부터 3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도시철도 1호선 하단역에서 강서구 17번 마을버스를 타도 된다. 오전 7시부터 10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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