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달교수의 역사칼럼(58)
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 삼화고전연구소 소장
決繫囚
갇혀 있는 죄수를 판결하라
요즈음 TV를 틀면 정치인들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가 뉴스의 태반을 차지하는 느낌이다. 죄가 있었다느니 없었다느니 각기 주장도 다양하다. 그것도 한두 번이면 새로운 소식인가 하고 듣겠지만 비슷하거나 같은 것이 연중무휴로 뉴스 시간을 장식하니 짜증이 나서 뉴스를 보기 싫다는 사람도 있다.
제대로 된 사회를 구현하려면 사회의 통념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말하자면 처벌 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처벌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역사서(歷史書)에는 지방의 주현에서 옥공(獄空), 즉 처벌받는 죄수가 하나도 없어서 감옥(監獄)이 텅 비었다고 보고하면 그 주현에 상(賞)을 주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감옥이 텅 비었다는 것은 정치를 잘했다는 방증(反證)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관이 상을 받으려고 거짓으로 감옥이 텅 비었다고 보고하는 예도 있었지만.
각설하고 송사(宋史)를 뒤져 보면 옥공이라는 말이 77번 나온다. 요사(遼史)에는 10번, 금사(金史)에는 5번 나온다. 정말 이만큼 태평성대가 이루어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러한 통계로 나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하여 죄를 지은 사람의 죄를 면제해 주는 사면령(赦免令)이 있다. 이는 죄를 면제하거나 감면해 주는 조치이다. 예컨대, 새로 황제가 등극했다든지, 황태자가 태어났다든지 심지어는 황제가 병이 들었을 적에도 사면령을 내렸다. 이 경우라면 황제가 그동안 죄 없는 사람을 가두었는데, 그 죄 없는 사람을 풀어 주어서 하늘의 노여움을 풀어 보려는 속셈이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황제의 통치행위는 결국 정치 행위였다. 형벌권을 가진 사람이 그 형벌권을 가지고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편으로 돌려 보려는 정치 행위이다. 그러면서 이 사면령을 통하여 황제는 백성을 아끼고 은덕을 베푸는 사람으로 각인시키려 하였다.
그런데 사면령과는 조금 다른 형사 조치가 있다. 이른바 ‘결계수(決繫囚)’라는 명령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의 판결을 하라는 말이다. 이는 죄가 있다고 잡아다 감옥에 집어놓고 미결수(未決囚)인 상태로 내버려 둔 사람들을 빨리 판결하라는 것이다. 판결을 하라는 말은 죄를 없애 준다는 것은 아니고 얼마 정도 벌을 받을 죄를 지은 것인지 결정해서 벌은 받을 것이면 받게 하고, 벌을 받은 일이 아니면 풀어 주라는 뜻이다.
속자치통감에는 남송 효종 건도 9년(1173년) 윤 정월 9일에도 결계수의 명령을 내린 기록이 있는데, ‘오래도록 비가 내리자 대리시(大理寺)·삼아(三衙)·임안부(臨安府)와 양절(兩浙)지역에 있는 주현(州縣)에 명령을 내려서 갇혀 있는 죄수를 판결하게 하고 잡범(雜犯)들이 범한 사죄(死罪)를 한 등급 경감하고 장형(杖刑)에 해당하는 죄수는 이를 석방하였다.’라고 하였다.
갇혀 있는 죄수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의 벌을 받아야 할지를 빨리 판결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는 각 주현에서 당연한 조치하지 않는 일이 많다는 방증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명령은 갇혀 있는 사람에게 죄를 사면해 주라는 것이 아니므로 특별한 은전이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죄 없는 사람이 어떠한 연고로 갇힌 상태에서 판결해 주지 않는다면 죄 없이 갇혀 있는 셈이니 이들에게 판결을 늦추는 것은 바로 형벌의 연장이다. 그래서 갇힌 죄수의 재판을 서두르는 것이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은전이다.
효종은 명령을 왜 내렸을까? 오래도록 비가 내려서이다. 비가 오래 내린다는 것은 홍수가 날 수 있다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장마와 재판이 무슨 관계냐’라고 하겠지만 이 시절 사람들은 억울하게 갇혀 있는 사람이 많아서 그 억울한 원한이 하늘에 닿아서 하늘이 노하여 비를 내린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하여튼 정치하는 사람들이 하늘을 무서워한 셈이다.
그러면 하늘이 노여워했는데, 왜 미결수를 없애라고 했을까? 관리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엇인가로 엮어서 일단 감옥에 집어넣는 일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던 시절이었기에 미결수를 없애는 것이 곧 덕정(德政)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요즈음에는 재판을 늦추는 것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조치라는 말이 나온다. 특히 선거사범의 경우가 그렇다. 선거는 유권자의 의견을 받아서 공직을 맡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권자의 의견이 왜곡되지 못하도록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동시에 선거 규정을 어긴 선거사범의 경우에 일정한 형량 이상이 나오면 당선되었던 사람이라도 그날로 직을 그만두게 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선거사범은 6개월 안에 판결하도록 규정도 두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선거재판은 들쭉날쭉 이다. 어떤 사람은 선거가 끝나고 선거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으면서도 그 재판이 그의 임기 4년 동안 진행되지 않아서, 이제 선거법 위반으로 판결된다고 하여도 이미 그가 처리하였던 공자자로서의 결정을 뒤집을 방법이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경우에는 재판을 늦게 한 것이 그 당선자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라면 그 판결문이 아무리 훌륭한 논리로 공정한 판결을 하였다고 하여도 그 재판은 아무런 의미 없는 잘못된 재판이다. 부정한 사람을 가려내지 못하여 그 부정한 사람이 임기 끝날 때까지 공직을 수행하였다니 유권자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반면에 규정대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6개월 이내에 재판을 끝내어 공직에서 물러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일이야 당연함에도 재판을 미적거리면서 질질 끌어서 임기를 다 마치는 사람과 비교한다면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당연한 벌을 받는 사람이 억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느 사람의 재판을 일찍 처리하고 어느 사람의 재판은 질질 끈다면 이러한 사법권의 운영이라면 이미 판결문이 아무리 고상해도 속임수인 셈이다. 무슨 힘이 그렇게 작용했을까? 사람들은 사법부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운영되었다고 의심한다.
전에 우리 사회의 형사제도에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유행하여 사법부(司法府)에 대한 불신을 불러오게 하였는데, 이제 선거사범의 판결에서 사법부는 완전히 신뢰를 잃게 되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에서 그래도 믿은 것은 사법(司法)이었는데 그마저 신뢰가 무너졌으니 이 백성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
첫댓글 좋은 역사평론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