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공모전의 계절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이후, 나는 매일 문학공모전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신춘문예와 공모전 정보를 찾아돌아다니고 있다. 한국에서는 내 생각보다 꽤 많은 문예공모전이 있었고 그 과다한 정보의 범람을 받아들이느라, 내 머리는 과부화가 될 지경이었다.
문학 공모전에 대해서 최대한 많이 알아보아야할까? 아니면 책을 많이 읽어야할까? 공모전에 보낼 글을 준비해야할까?
아니면 1년 뒤에 군대 가기 전에 컴퓨터 활용자격증을 따둘까? 아르바이트를 할까? 부산하게 이것저것 한 것은 많지만, 유야무야하게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이번 방학에는 하는 수 없이 문예공모전에 작품을 보내기로 한 참에 시문화회관에서 이혜경 선생님을 초대하여 강연을 연다고 한 것이다. 나는 이혜경 선생님이 어떻게 신춘문예를 공략했는지 그 비법을 듣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자리에 참석했다.
"제가 작가가 된 거는요. 어쩌다가 말, 그대로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에요."
그 순간, 뒷목에 무언가가 뜨거운 것이 확 치밀어 오르면서, 귀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가라니....어쩌다가라니....
22살에 내 나이에 등단한 사람이 '어쩌다가 등단해서, 작가가 된 거에요.'라고 말하니 허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세간에서는 이런 것을 보고 '염장질 당했다고 표현하는데, 덕분에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혜경 선생님은 굉장히 순진하신 분이었다. 선생님은 원래 수녀가 되어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삶을 꿈꾸었다. 국문과에 가게 되고 교수님에게 소설을 써보라는 말을 듣게 되어 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그게 그대로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여성잡지에서 사람들을 취재하거나 논설위원으로 일하면서 지냈는데, 그때 사람들을 많이 접하면서 이야기의 소제거리를 얻게 되셨고 장차 10년간의 공백 후에 다시 돌아와 단편집을 써내시기 시작하였다.
이해경 선생님의 대담을 들으면서, 그분이 유독 폭력에 대해 민감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A와 B의 관계에서 A가 B의 생각이나 감정을 무시하고 A만의 주장을 요구하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폭력'이라고 말하셨을 때에 나는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있는 어떤 불쾌함을 이혜경 선생님은 '폭력'으로 정의내리며,그것을 소제로 작품의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었는데, 그러한 폭력들은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일상의 잔재들 아니었나 싶은 것이었다. 그런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크나큰 서사를 생각해내다니, 작가의 자질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혜경 선생님은 소설은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로 정의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고 짜임새가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내가 일상을 겪으면서 느꼈던 어떤 사소한 감정들이나 지겨움, 틀에 밖힌 관습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이탈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왔지만, 그것은 재차의 일로 미뤄두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이혜경 선생님의 '그 집 앞'을 빌려왔고, 그것들을 읽어가면서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감미하기로 한 것이다.
질문시간에 나는 선생님에게 어떻게하면 신춘문예에 당선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면 그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에 부딫히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덧붙였다.
이혜경 선생님은 신춘문예는 어느정도 운이 따른다고 말씀하셨고,(으아아악 나는 마음 속에서 괴성을 질렀다.) 작가로써 사는 것에 대해 반대에도 부딫히겠지만, 죽기 전에 눈을 감는다면 아마도 주위의 기대와 여건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살다가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히려 글을 쓰는 것으로써 진정한 나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겠냐고 대답하셨다.
죽기 전에 눈을 감는다면...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만약 내가 오늘 눈을 감는다면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 만족할까?
이혜경 선생님은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회의하는 투로 말씀하셨다. 글을 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현실에 대한 고백이고 나 자신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라고. 그 말을 듣는순간, 조금 부끄러워졌다.
최근 들어,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인생은 지속될 것이고, 삶은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 빠져있었다. 내가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하는 초심을 잃어버렸고, 내가 쓸 글의 소제라는 것은 어쩌면 없는지도 모른다.하는 자괴감을 갖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혜경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현실에 대한 고백' '나 자신에 대한 목소리를 갖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 속에서 불씨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두 명제는 내가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가 아니었던가
나의 초심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끝으로 자리를 내어주신 큰선생님과 한선생님, 시문화회관에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