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비가 많이 왔습니다. 일요일 오후부터 내린 비가 월요일에는 더욱 거세져서 꽤 굵고 휘몰아치고 어디엔가 상처를 내기도 했습니다. 여름에 사용하고는 치우지 못하고 마당에 내버려둔 텐트 옆구리가 찢어졌으며, 비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태균이랑 쓰는 방에 불이 들어오질 않습니다.
그 방에 딸린 욕실 불이 들어오지 않은지는 근 한달째. 밤마다 어두운 욕실을 사용하다보니 올빼미 눈기능이 회복될 정도입니다. 이제 방에 불도 나갔으니 올빼미 눈기능을 더 강화시켜야 하는지. 이리저리 하도 많이 끌고다닌 경험이 많은지라 태균이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 하나는 끝내줍니다. 열심히 스윗치 조작해봐도 안되니 그냥 어둠에 적응해 버립니다.
며칠 전에 다녀간 그림이어머님과 할머님께서 태균이 행동에 칭찬을 많이 해주고, 밝고 웃음가득 얼굴이 보기좋다고 하니 어미된 입장에서 기분은 많이 좋았지만 준이와 완이도 그런 평가를 받으면 너무 좋았었는데요... 식당에서 식사도중 음료수마시던 컵에 그대로 쉬를 싸대는 완이의 엽기적 행동에 아마 많이 놀랐을 것 같습니다.
준이와 완이, 비록 걱정되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준이와 완이 나이 때의 태균이를 떠올려봅니다. 태균이 열 살 때는 어땠을까? 태균이 17살 때는 어땠을까? 기본상태는 오히려 준이 완이가 더 나았을 것 같은데, 되돌아보니 경험치가 많이 달라던 것 같습니다.
완이 나이에 그래도 태균이는 자기가 인지하는 사물이나 대상은 한글표기가 가능했고, 컴퓨터하기를 좋아했고, 미술하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열살 때니까 대구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 대구 덕희학교에서 밀알학교로 옮겼고, 대구에서 터득한 수영실력을 좀더 지속하려 이곳저곳 강습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퇴짜의 연속으로 마음상해 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해외여행도 2차례나 했으니 이런 경험은 꽤 일찍 했었네요.
준이 나이대의 경험은 더 특별해서 이미 방학 때마다 해외연수도 서너차례 다녀왔고 돌이켜보니 엄마가 시키는대로 뭐든 따라주는 착한 아들인 것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는 없는 듯 합니다. 제 머리가 지금과 같았다면 더 일찍 깨어나기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즐겁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월요일, 태균이 운동가자고 자꾸 재촉하지만 비가 계속되니 나갈 수도 없고, 빗속 한라산 구경이라도 하러갈까 잠시 생각했지만 비도 비지만 비안개도 자욱해서 어떤 풍경도 보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간만에 휴식이 주어졌기는 했지만 심신이 참으로 고달픈 요즘입니다.
이틀이 지났는데도 샤워조차 거부하는 준이는 여전히 '싫어' '아니야'를 반복하고 고추로 뻗히는 신경을 자신도 주체 못하는 듯 합니다.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가장 강력한 회오리바람은 역시 성적 에너지입니다. 어떤 종의 수컷쥐는 여러 암컷과의 교미를 지속하다 목숨까지 위태로와지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생을 마무리합니다. 이 때 분출되는 도파민이 뇌전체를 지배한답니다.
부모도 견디기 어려운 아이들의 질풍노도 시기를 제가 다둑여줄 수 있을지... 더욱 용기가 떨어지는 비오는 날의 우울함입니다. 대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순종적인 아이도 아니고... 마냥 맞추어주자니 고집은 더 세어지는 것 같고. 말 그대로 기로岐路입니다. 생사처럼 극단의 선택을 요하는 길목에 서있는 기분입니다.
왜 하필 이 시기에 준이가 갑자기 저러는지 준이의 운명이 딱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지금까지 좋기만한 것은 아니지만 나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너무 나쁜 쪽으로 기울어가는 준이의 행동문제가 준이의 운명인 것 같아 정말 빗줄기처럼 눈물을 쏟고싶은 심정입니다.
그런 와중에 잠시 눈을 떼면 훌떡훌떡 옷벗어제끼는 완이의 극혐행동은 종일 이어지고... 녀석들 저의 깊은 고민을 약올리기로 작정한 듯 심기에 거슬리는 행동을 일부러 더 하는 듯 합니다. 그런 와중에 태균이 자꾸 제 손을 꼭 잡아주고 제 팔목을 계속 쓰다듬어 줍니다. 태균이가 '엄마 많이 힘들지? 너무 힘들어 하지마. 내가 있잖아'하는 듯한 무언의 제스츄어를 계속 보내줍니다. 고맙다, 아들!
이 넓은 공간에 방이 고작 두 개! 그 동안 준이를 키우며 늘 준이만의 공간을 제공해왔고 제주도에서도 그리했는데, 완이의 준이방 침입이 너무 커서 준이가 힘들어하나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함께 지내는 공간말고도 다른 공간은 얼마든지 있기에 따로 거처를 주려니 이게 뭔지 모르는 준이는 싫어!만을 외쳐댑니다. 차라리 옆에 작은 원룸으로 준이가 잠자리만 옮기면 일이 좀더 수월할 것 같은데 다시 시도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문제의식과 어려움에는 해결대책이 최우선이지만 문제점의 핵심이 내힘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지금은 어떤 것보다 태균이가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인지해야 합니다.
뭔가 거대한, 보이지않는 손이 있어 운명을 조정해 갈 수 있다면 준이의 운명을 이제 그만 쥐어짰으면 좋겠습니다. 완이는 내년 2월 집으로 돌아가면 원래 그랬듯 제멋대로 살 것이고, 완이부모는 제 멋대로 살아가는데 제동을 거는 힘이 너무 약한지라 겉보기에는 엉망일지라도 완이에게는 그게 큰 행복일지 모릅니다. 제가 걸어대는 센 제동들은 결국 저만의 스트레스로 남지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태균이나 저는 문제가 없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던 편안한 삶이 되리라 마음다잡으며, 눈뜨면 다시 시작될 녀석들과의 전쟁에서 슬기롭게 이겨낼 작전을 머리에 쥐나도록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첫댓글 음식점에서 완이가 실수하고 대표님이 수습하실 때, 가장 놀라운 것은 태균씨의 눈빛이었습니다.
늘 스마일의 부드러운 눈빛만 사진으로 접하다가 넘 놀랬죠. 예리하게 확실하게 싸인을 보내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림맘과 저의 눈을 정확하게 맞추고 무언의 경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 크게 놀랄 일 아니예요. 부정적으로 보지 마세요. 그럴 수 있다는걸 알잖아요. 실수한다고 완이를 비호감의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저 실수로 완이의 존엄이 손상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뉘앙스는 그런 거였지만 태균씨 눈빛은 세상으로 부터 완이를 보호하는데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 엄마가 수습후 돌아 왔을때, 손목 부위 팔을 쓰다듬으며 수고 한다고 애 쓰신다고 토닥이는 모습이 얼마나 듬직하고 놀랍던지요. 태균씨 마인드에 못미치는 일반 어른들이 얼마나 많나요. 많이 배우고 느낀 순간이었답니다.
준이도 완이도 넘 애쓰시구나. 병 나면 어쩌지 이런 느낌도 있었습니다. 뇌 구조상 되다말다가 수십 수백번 되풀이 될텐데 정말 맥 빠져 포기하는 부모들도 많겠구나 싶었습니다.
어떤 국면이 와도 평화하시길 빕니다.🙏‼️🍒
ㅎㅎ 그 정도 수준은 아닐꺼예요. 좋게 봐주고 해석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완이가 워낙 엽기행동을 많이 하니 그럴 때마다 제 신경이 날카로와지는 것에 대한 엄마제어적 눈빛이었을꺼예요 ㅋ 그림할머님의 해석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 웃었습니다. 웃게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