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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1월 28일 금요일
[(녹)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다니엘은 밤의 환시 속에서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하시며,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7,2ㄴ-14
나 다니엘이 2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저었다.
3 그러자 서로 모양이 다른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4 첫 번째 것은 사자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것은 날개가 뽑히더니
땅에서 들어 올려져 사람처럼 두 발로 일으켜 세워진 다음,
그것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졌다.
5 그리고 다른 두 번째 짐승은 곰처럼 생겼다.
한쪽으로만 일으켜져 있던 이 짐승은
입속 이빨 사이에 갈비 세 개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일어나 고기를 많이 먹어라.”
6 그 뒤에 내가 다시 보니 표범처럼 생긴 또 다른 짐승이 나왔다.
그 짐승은 등에 새의 날개가 네 개 달려 있고 머리도 네 개였는데,
그것에게 통치권이 주어졌다.
7 그 뒤에 내가 계속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아주 튼튼한 네 번째 짐승이 나왔다.
커다란 쇠 이빨을 가진 그 짐승은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았다.
그것은 또 앞의 모든 짐승과 다르게 생겼으며 뿔을 열 개나 달고 있었다.
8 내가 그 뿔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것들 사이에서 또 다른 자그마한 뿔이 올라왔다.
그리고 먼저 나온 뿔 가운데에서 세 개가 그것 앞에서 뽑혀 나갔다.
그 자그마한 뿔은 사람의 눈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1 그 뒤에 그 뿔이 떠들어 대는 거만한 말소리 때문에 나는 그쪽을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 짐승이 살해되고 몸은 부서져 타는 불에 던져졌다.
12 그리고 나머지 짐승들은 통치권을 빼앗겼으나 생명은 얼마 동안 연장되었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9-3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번 한 주간 우리가 독서로 듣고 있는 다니엘서는 묵시 문학에 속합니다. 묵시 문학은 절망적인 역사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 하느님께서는 그럼에도 역사의 변함없는 주인이시며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사건들조차도 하느님의 통제 아래 있다는 믿음을 환시와 상징 등으로 표현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묵시 문학으로는 다니엘서가 대표적입니다.
다니엘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와 그의 아들 벨사차르, 이어서 바빌론을 장악한 메디아 왕조의 다리우스와 페르시아 왕조의 키루스까지 세 왕조에 걸쳐 네 명의 임금을 두루 섬긴 인물입니다. 다니엘서는 기원전 2세기에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를 받던 시기에 쓰였다고 추정됩니다. 자신을 스스로 ‘신의 현현’이라는 뜻의 ‘에피파네스’라고 불렀던 임금이 억압하던 시대에 다니엘서의 저자는 과거의 역사를 빌려 와 백성들에게 큰 위안을 준 것이지요.
다니엘서 1-6장에는 유다인 청년 다니엘에 관한 일화 여섯 개가 소개됩니다. 바빌론과 페르시아 임금들의 통치 아래에서 다니엘은 친구들과 함께 하느님에 대한 충실함을 잃지 않고 살아갑니다. 미래에 대한 묵시적 환시를 담고 있는 7-12장은 묵시 문학의 대표적 예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들, 특히 안티오코스 4세의 파멸에 초점을 둔 네 개의 상징적 환시가 나오는데,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오늘 독서로 읽는 7장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네 마리의 짐승들’의 환시에 이어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다니 7,13)라는 환시가 나오는데, 참된 하느님의 왕권과 그에 따른 희망이 선포되기 때문입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이것이 인생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바닷가라 그런지 날씨가 변화무쌍합니다. 어제 그리도 잔잔하던 바다가 오늘을 완전 뒤집혀서 화가 난 듯합니다. 계절 역시 돌고 돌아 어느덧 겨울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 아직까지 용케 버텨내고 있는 저 샛노란 단풍들이 바람에 떨어져 내리고 나면 다시 한 번 계절의 순환이 마무리되겠지요.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정쩡한 을씨년스런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조금씩 적응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차가운 땅에, 쓸쓸한 가슴에 묻고 돌아설 때 마다 드는 느낌입니다.
이 세상 것 무엇 하나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물건들도, 죽고 못 살던 인연들도, 목숨처럼 중요시 여겼던 일도, 직책도, 사랑도, 젊음도 다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끝도 없이 순환을 거듭하는 자연, 부침을 거듭하는 인간사야말로 인생의 참된 깨우침을 주는 큰 스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진리를 명확히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변화무쌍한 이 세상 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더 큰 가치와 우위성을 두고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33)
우리네 인생도 계절의 순환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부드러운 연초록 떡잎 같던 유년기의 추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어엿한 청년입니다. 젊은 혈기 하나 믿고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합니다.
세월 참 빠르구나, 하고 멈춰 서 보면 어느새 인생 막장입니다. 그리고는 그만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순리에 따라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부하려고 발버둥 쳐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바톤을 넘겨주고 조용히 떠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이요, 어쩔 수 없는 보통사람들 삶의 공식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이 인생의 끝이 허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기대할 것 하나 없습니다. 그저 쓸쓸하고 황량한,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할 괴로움만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확연하게 다른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매일 먹고 살기에 더 큰 기대, 더 큰 희망, 더 큰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엮어갑니다. 물론 각자가 감당해야 할 육체적 고통이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매일의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더욱 성숙할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아버지께서 주실 크나큰 상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말씀을 통해 그분께서 주시는 위로는 너무나 달콤한 것이기에 끝으로 나아갈수록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휴가 중에 부산엘 다녀왔습니다. 해운대에서 일출을 보았고, 동백섬을 걸었습니다. 국제 시장과 자갈치 시장을 걸었습니다. 부산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이태석 신부님을 기억하며 기획된 ‘청청 뮤직 페스티벌’이었습니다. 예선을 거쳐 10개 팀이 참가했습니다. 청소년과 청년이 음악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행사 진행을 맡은 분이 초청했고, 즐겁게 보았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2010년 하느님의 품으로 갔지만, 신부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습니다. 신부님이 함께했던 아프리카 톤즈의 학생들은 ‘의사’가 되어서 신부님이 못다 이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청소년과 청년들은 음악을 통해서 신부님이 못다 이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울산과 부산의 여정에 함께 해 준 신부님들께서 감사드립니다. 뉴욕에서 함께 지냈던 인연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부른 노래 중에 ‘꽃’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바람이 불어 꽃씨 날리면 이 세상 온 마음 가득히 향기 가득하네” 이태석 신부님의 꿈과 사랑은 시간이 흘렀어도 향기가 되어 세상을 따뜻하게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이 예언한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신앙인들입니다. 그들은 가진 것을 함께 나누었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슬픔도, 고통도, 절망도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가난도, 질병도, 죽음까지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고 있음을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눈으로 하늘을 볼 수는 없지만 하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졌던 권력을 빼앗길 줄 알았던 헤로데가 있습니다. 그동안 누렸던 기득권을 빼앗길 줄 알았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두려워했던 빌라도가 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제자들이 있습니다. 거짓된 선동에 휩쓸린 군중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시작되었지만 죽음을 넘어 부활을 통하여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받은 이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자선’입니다. 마태오 복음 25장의 심판의 기준도 ‘자선’입니다. 자선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 존재가 변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모범. “그분이 말씀하는 것을 실천하여라.”에서 시작됩니다. 그날 복음 말씀을 그대로 실천해 보면 좋겠습니다. 들음은 가슴에 남아서 나를 행동하게 합니다. 이것이 들음입니다. 들음이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완전하게 바꾸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습관을 지녀봅니다. 기억하고 가슴에 담으려고 하면 그 말씀이 살아납니다. 실천하게 되면 기쁨이 쌓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영토, 국민, 정부,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믿음, 희망, 사랑, 부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지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틀’에 갇혀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은 이들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희망을 간직한 이에게 부활로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봄이 살림이요 보지 않음은 죽임입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 21,31)
봅니다
있으니 봅니다
보니 있습니다
보지 않습니다
있으나 보지 않습니다
보지 않으니 없습니다
봄이 살림이요
보지 않음은 죽임입니다
봅니다
있기에 보이니 봅니다
보니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보지 않습니다
있기에 보이나 보지 않습니다
보지 않으니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봄이 살림이요
보지 않음은 죽임입니다
봅니다
있기에 보이는 것 너머를 봅니다
보니 있기에 보이는 것 너머가 있습니다
보지 않습니다
있기에 보이는 너머를 보지 않습니다
보지 않으니 있기에 보이는 것 너머가 없습니다
봄이 살림이요
보지 않음은 죽임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Catherine Laboure)
신분 : 수녀, 환시자
활동연도 : 1806-1876년
같은이름 :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Catharina Laboure, 또는 가타리나)는 프랑스의 디종(Dijon) 근교 팽-레-무티에(Fain-les-Moutiers)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서 조에 라부레(Zoe Laboure)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8살 때 어머니를 여의였고 또 언니인 루이자(Louisa)가 파리(Paris)의 자비 수녀회에 입회하자 어린 나이에 삼촌의 카페에서 일을 하며 가사 일을 돌보아야만 했다. 그녀는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처지라 읽고 쓰는 것조차 배울 수가 없었다.
14살 때부터 수도성소를 느낀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하고 마침내 언니를 뒤따라 1830년 샤티용쉬르센(Chatillon-sur-Seine)에 있는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의 파리의 자비 수녀회에 입회하여 카타리나라는 수도명을 얻었다. 지원기를 마친 그녀는 파리의 뤼 뒤박(Rue du Bac) 수도원으로 갔다.
그녀는 수도원 성당에서 일련의 성모 환시를 보게 되었는데, 이 환시에서 성모님은 당신이 원죄 없이 잉태하셨음을 표시하고 공경하는 메달을 만들라는 부탁을 여러 차례 하셨다. 그녀의 고해신부인 알라델(Aladel) 신부는 이 메달을 만들어도 좋다는 허가를 파리의 켈랑 대주교로부터 받고, 1832년에 처음으로 1500개의 만든 것이 즉시 백만 개의 메달로 불어나면서부터 유명한 기적의 메달이 된 것이다.
성녀 카타리나의 환시는 파리의 대주교가 임명한 특별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1836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이 결과 기적의 메달은 급속도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성녀 카타리나는 1831년부터 죽을 때까지 파리의 앙기앵(Enghien) 요양원에서 천한 일을 하면서 수도생활에 전념하였고, 고해신부에게만 자신의 환시를 늘 말씀드리고 지도를 받으면서 생활하였다. 그녀는 1933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7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야고보 (James)
신분 : 신부
활동지역 : 마르케(Marche)
활동연도 : +1476년
같은이름 :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자크, 제임스
성 야고보(Jacobus)는 이탈리아의 간갈라(Gangala) 집안 출신으로 마르케 지방 안코나(Ancona)의 몬테브란도네(Montebrandone)에서 가난한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416년에 아시시(Assisi)의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마치고, 피에졸레(Fiesole)에서 시에나(Siena)의 성 베르나르디노(Bernardino, 5월 20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사제로 서품되었다.
29세의 나이로 사제가 된 그는 즉시 토스카나(Toscana), 움브리아(Umbria) 그리고 마르케 지방 등을 돌며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을 더욱 단련하기 위하여 하루에 3시간만 잠을 잤고, 대부분의 시간은 책 사본을 만드는데 보냈으며, 항상 다 헤어진 의복만을 입고 지냈다.
또한 그는 작은 형제회와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 간의 화합을 위하여 활동한 적도 있었다.
그는 밀라노(Milano)의 주교로도 천거되었으나 거절하였다.
1476년 11월 28일 나폴리(Napoli)에서 선종한 그는 1624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726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마르치아의 야고보(1391 - 1476)는 이탈리아 몬떼 브란도네에서 태어났다.
페루지아에서 3년간 수학하고 피렌체에서 가르치다가 뽀르치웅꿀라에서 작은형제회 착복을 하였다.
그리고 수련기를 까르첼리의 은둔소에서 보냈다. 그의 수도 생활은 엄격한 보속의 연속이었고
모든 점에서 사부 성 프란치스꼬를 본받으려 하였고 선교사로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으며 특히 독일에서 성공하였다.
십자군 원정때 투르크인들을 거스려 성 요한 카페스트라노와 함께 설교하였다.
5 만 여명의 이단자들을 회개시키고 20만 여명의 무신론자들을 영세시켰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여러가지 합당한 은총을 허락하셨다.
그는 여러 교황의 사절로 유럽 제국을 여행하며 기도하였다.
베네딕또 13 세가 시성하였으며 그의 썩지 않는 유해는 나폴리에 보존되어 있다.
성 스테파노 (Stephen)
활동년도 : 715-765년
신분 : 은수자,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스더, 스테파누스, 스테판
비잔틴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5세의 성상 파괴 박해가 거세게 휘몰아칠 때,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성화 공경의 옹호자로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최초 지도자였다. 그는 원래 칼케돈(Chalcedon) 근방 성 아욱센티우스 산(Mount Saint Auxentius)의 은수자였으나, 성화 공경과 연루되어 3년 동안 마르마라해(Sea of Marmara)의 프로콘네수스(Proconnesus) 섬으로 추방되었다. 그는 석방되자마자 곧장 황제 앞으로 달려가서 질문을 던졌다.
그는 황제상이 새겨진 동전을 하나 들고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여기에 박힌 황제상이 수모를 당한다면 참지 못하겠지요? 그런데 하물며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 모친이신 마리아의 상을 불 속에 처넣다니요?” 이런 말을 한 뒤에 그는 동전을 마루에 내팽개쳤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진노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게 하였는데, 이렇게 갇힌 수도자 수효가 300명을 넘었다고 한다. 황제는 그를 사형에 처하라는 명을 내리지 못하였으나 그의 부하들이 성 스테파누스를 살해하였다고 한다. 이때 성 바실리우스(Basilius), 성 베드로(Petrus), 성 안드레아(Andreas) 등의 수도자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함께 순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