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본인, 글 : 옆지기
저희 부부가 올해 은혼을 맞았습니다.
둘 다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들이라
결혼주례사 해 주신 은사님마저 은근히 염려를 했던
그 두 사람이 무사히 25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세상 어느 부부가 우여곡절이 없겠습니까만,
저희도 참 유별난 세월을 함께 겪으며 살았습니다.
서로 대견해하며, 감사해하며, 미안해하며
너무도 바쁜 옆지기 스케쥴 때문에
이제는 바깥으로 나갈 시간이 없어서
겨우 월요일 하루 휴가를 내어
10월 20일 토요일부터 2박 3일 제주도로 갔습니다.
저희의 결혼기념일은 10월 21일,
올해는 딱 일요일에 걸려 참 다행이었답니다.
공항에서 여유부리며 커피 한잔하고....
구름 위를 둥둥 떠 다니다 무사히 제주공항에 내렸습니다.
공항에서 'QM5' 차량을 빌려 타고
공항에서 가까운 동문 시장으로 일단 과일을 사러 갔습니다.
제주도 최대의 재래시장으로
거의 사람 말고는 다 판다는 곳입니다.
가격은 참고용으로....
요게 5천원어치.... 순대는 맛있네예... 수제 순대!
황금향 한 박스(5Kg) 오만 원에 사고
등산 때 먹을 오이랑 몇 가지 산 다음에
수제로 만든 토종 순대집을 지나가다가
맛있어 보여 순대로 점심 먹기로 했답니다.
제주산 막걸리~
고기 국밥 한 그릇~~
근데 참 깊은 맛이 비싼 식당보다 나았습니다~~
참고로 저렴하게 회나 회덮밥을 제공하는
식당 겸 횟집도 시장안에 아주 많습니다.
예전에 친구들이랑 올레길 걸으러 왔을 때는
여기서 방어회랑 튀김이랑 매운탕이랑
아주 싼값으로 먹기도 했답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다음, 첫번째 여정으로
제주 산천단에 우리 여행을 고하러 왔습니다.
예전 제주에서는 정월에 백록담에서
천제를 올리며 탐라국의 무사안녕을 기원했는데
한겨울에 백록담까지 제물을 지고 올라가던 사람들이
얼어죽거나 부상을 당하는 일이 많아지자
성종 임금 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분이
한라산의 초입인 여기에 제단을 만들고
천제를 지내기로 한 혁신적인 조치를 취했답니다.
해서 만들어진 산신제를 올린 제단이 바로 <산천단>입니다.
주변의 해묵은 여덟 그루의 곰솔(黑松)이
이 제단의 연륜을 보여줍니다.
멀리 예비 신혼부부가 웨딩촬영을 하고 있었고
우리 묵은 부부는 은혼여행을 떠나왔고
그 사이에 묵은 곰솔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풍광은
많은 느낌을 마음 속에 가져다 주었답니다.
이번 여행내내 온 마음을 열고
모든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겠다고
이런 여행을 가지게되어 감사하다고
여행의 매순간 행복하겠다고
저도 산천단에 고하며 떠났습니다.
두번째 여정은 <제주의 숨은 비경 31>에서도
으뜸으로 친다는 사려니숲을 향해 갔습니다.
무성한 삼나무 가로수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사려니 숲길의 안내표지판이 보입니다.
현위치를 확인하고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차 때문에 원점회귀하려니
15Km 숲길 걷기는 어렵습니다.
해서 한 시간만 걸어가다가 되돌아오기로 하고 갑니다.
토요일이라 숲길에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혹은 우리 같은 부부가
더러는 홀로 숲길을 걷는 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앞서가고, 옆지기는 사진 찍으며 오느라고
뒤따라 오는 상황이라
손잡고 걸어가는 다정한 풍경은 연출이 안 됩니다~~ ㅎㅎㅎ
가다가 '곤줄박이'로 보이는 작고 예쁜 새도 만나고~~
묵은 나무가 주는 상생의 아름다움도 만나고~~
앞서가는 아이처럼 저도 귀여운 척, 이쁜 척~~
옆지기의 부름에 사진을 찍고 또 갑니다.
사진으로 보니, 25년 세월의 흔적이 보이네요.
참 고왔던 새댁이 이제 주름이 잡히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좋아 아직은 아줌마로 보아주지,
예전 같으면 벌써 할머니로 전락했지 싶습니다.ㅋㅋㅋ
새카맣게 앉아있는 까마귀 녀석이
자꾸 아이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를 따라 옵니다.
제 가방 속에 육포가 든 걸 아는 모양입니다.ㅎㅎ
이렇게 비틀리며 자란 나무도 있었고~~
울릉도 성인봉 올라가는 길목에 만났던
원시림 같은 숲속을 자꾸만 엿보며 지나갑니다.
조릿대 군락도 아주 넓게 자리하고 있었어요.
원시림이 모두 단풍이 들려면
아직은 2~3주쯤 더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살아가다 가끔, 혼자 있고 싶어질 때
살짝 숨어들어 한나절을 앉아있다 가면 좋을
그야말로 치유의 숲으로는
<사려니 숲길>을 추천합니다.
숲길 입구쪽으로 넓은 숲 속 주차장이 있는데도
이렇게 양 길가에 주차를 해서
교행을 불편하게 만드는 불법주차인들은
아마도 거의 제주 허씨들(렌트카)아닐까 싶네요~~
요게 비자나무 잎사귀입니다.
비자림이 삼나무에 가려 영 비실되고 있습니다.
키 큰 비자나무 사이사이에서 살아남으려고 용을 써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삼나무 숲길을 계속 타고 나와서
세번째 여정은 세미마을 회천동에 있는
화천사의 석상들을 만나러 갑니다.
회천(回泉)은 뜻 그대로 물이 돌아가는 마을이란 이름으로
예전부터 이 마을에는, 여성 중심인 제주에서
남성들이 따로 동제를 지냈는데
그 동제를 지내는 자리에 있는 다섯 개의 석상들을
만나러 가는 길, 묻고 물어 겨우 도착했어요.
지금은 화천사 법당 뒤쪽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절에서 모신 석불로 알고 있지만,
아주 오래 전, 이 마을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다섯 석인상을 모셔놓고 동제를 지내던 곳을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유교적 흔적이 새겨지고
또 후대에 절이 들어서면서, 석불로 오해를 받고 있는
다섯 석인상을 만나러 왔습니다.
절 뒷곁으로 이어지는 작은 감귤밭을 지나서~~
첫번째 석인상~!
귀여운 아기 모습입니다.
두번째 석인상~!
아주 선한 아저씨 얼굴입니다.
세번째 석인상~!
심술궂은 개구쟁이 같습니다.
네번째 석인상~!
편안하게 웃는 엄마 얼굴입니다.
다섯번째 석인상~!
많이 마모되어 형체를 잘 알아보기 어렵습니다만,
듬직하고 굳센 청년 같습니다.
절에서 제단을 만들고 제물들을 차려놓아
그냥 보면, 영락없이 절에서 만든 석불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오랜 세월동안의 변화를
이 석불들은 다 기억하고 있지 싶습니다.
참고로 우리 민초들의 석상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잡아내어 만드는게 특징입니다.
측백나무 잎사귀가 새롭게 자라네요, 색상이 다르게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음 여정은 화천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와흘리의 본향당으로 왔습니다.
산에는 산신당이 있고
바다에는 해신당이 있듯이
마을에는 본향당이 있습니다.
제주 사람들이 사는 각 마을의 일종의 수호신을 모셔놓은 곳이지요.
육지의 시골에 있는 서낭당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마을마다 다 본향당이 있다고 하니,
아마도 300개가 넘는 본향당이 있겠지만,
특별히 와흘리의 본향당에는
묵은 팽나무 두 그루가 서로 얽혀
아주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기에
나무를 만나러 왔습니다.
제주 신당의 원조는 송당 본향당입니다.
송당 본향신인 금백주가 아들 18명, 딸 28명을 낳아
각지로 흩어져 당을 만들게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는 송당 본향당의 11번째 아들 백조도령과
그와 혼인한 이곳 서정승의 딸을 모셔놓은 두 신당이 있답니다.
백조도령 앞에는 술병만 있네요~~
서정승 따님의 신위 앞에는 과자랑 사탕이랑, 음료수까지...
저도 들고 간 황금향 두 알을 조심스레 내려놓았습니다.ㅎㅎ
이 곳 무속인들이 무속행위를 하다가
불이 나는 바람에, 심한 화상을 입은 팽나무 한 그루가
아직 치료중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꼭 무속인들만 본향당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에게 본향당의 의미는
<영혼의 동사무소>라고 합니다.
제주의 여인네들이 살아가며 만나는
좋은 일, 궂은 일, 화나는 일, 소망하는 일...
등을 모두 여기에 와서 풀어놓고 신고하고 고해 바치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곳이랍니다.
줄줄이 매달린 소지 종이에는
각자의 소망들이 저렇게 매달려 있네요~~
비 오는 날이나, 해저물녘에는
귀기스런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돌담 바깥으로 나와 찍은
팽나무 두 그루의 얽힌 모습입니다.
두터운 구름 사이로 노을이 비칩니다~~
해 지기 전에 한 군데 더 들를 곳이 있어 서둘러 갑니다.
역시 <제주의 숨은 비경 31>에 들어가는
두맹이 골목의 벽화를 보러 왔습니다.
<두맹이 복지회관>을 중심으로
반경 1kM에 걸쳐 그려진 벽화로
어린 날, 우리들의 일상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잠시 추억의 시간 속을 걸어보다가
해가 저물어 어두워지는 시간이라
저녁을 먹으러 예약해둔 곳으로 갑니다.
제주시 이도 2동에 있는 유명한 한정식 횟집입니다.
맨 먼저 한 상이 가득 차려져 나오고~~
제주에 왔으니, 마셔야 하는 한라산 소주도 한 병~!
두번째로 모듬 해물이 나오고~~
세번째로 갈치회와~
얼린 옥돌 위에 다소곳이 놓인 참치회~!
메인 회인 광어와 감성돔입니다~!
크기는 장난이 아니게 대물이었습니다.
꽁치구이도 나오고~~
따끈하게 금방 튀겨 나온 튀김과~~
게살죽~~
마지막으로 알밥입니다~~
저는 배가 터질 것 같아 도저히 밥까지는 못 먹었어요~~
이렇게 해서 코스요리 1인 25,000원인데요,
많이 먹는 분들에겐 좋은 집이지만
저 처럼 소식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추~!
용두암 부근에 잡아 둔 숙소에 여장을 풀었답니다.
<그림리조트>란 숙소에는,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와서
가든파티를 하고 있어 시끌벅적하기에
잠시 해변의 야경을 보러 나갔습니다.
멀리 어선들의 불빛도 밤꽃(夜花)들처럼 아름답고
조명을 받은 용두암 부근의 바위들도
화려한 돌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옆지기 사진이 제법입니다~~'라고 하네요...ㅋㅋ
야경이 훨씬 돋보이네요.
하룻밤 자기에는 제법 비싼 값을 치르고
따뜻하고 편한 잠 속 여행으로 빠졌습니다~~
2일차를 기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