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기행
김시종
대한민국의 전 국토를 한 마리의 말이라 볼 때 백두산은 말의 머리요 압록강을 말의 입이라 상징할 때 태백산맥은 허리요 제주도는 말의 앞발이며 대마도는 말의 뒷발로 생각된다.
일본 나가시키현과 한반도와 규수 사이에 대한해협 중간에 있는 섬이 대마도이다.
면적 708,5Km 인구는 296,670명이고 언어는 일본어다. 대마도에는 항구가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히타카츠항이고 또 하나는 이지하라 항이다.
부산 국제 여객 터미널에서 쓰시마링크호로 1시간 10분이면 히타카츠항에 도착한다.
쓰시마링크호는 매일 운항하며 토요일에는 하루 두 차례 운항하고 있다. 부산과 대마도의 거리는 49,5Km며 일본 규수와는 147Km 거리다. 대마도는 다섯 개의 바위섬으로 상대마와 하대마를 잇는 붉은 다리가 만제키바시(만관교)다. 행정 중심 도시는 이즈하라이고 농지가 빈약하여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마도 면적의 팔십 프로 이상 살림으로 섬 대부분이 삼사 나무와 편백으로 숲이 울창한 바위섬이 대마도다.
맑은 날에는 부산에서 대마도의 산봉우리인 시악산도 바라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기도 하다.
대구 문인협회에서는 2023년 상반기 문학기행을 1박 2일로 일정을 잡았다. 날씨는 맑고 바람은 없었고 파도는 잔잔했다. 문인들은 문학 소재 발굴과 우리의 역사가 서려 있는 대마도를 문학기행 지로 선정하였다.
부산 국제 여객터미널을 출발하여 대마도 히타카츠에 도착 입국 수속을 마치고 인근 레스토랑에서 중식을 한 후 1905년 5월 쓰시마해전 때 러시아 함대가 침몰 시 병사가 함대에서 탈출 상륙한 지점으로 역사가 깃든 토노사키 국림공원을 돌아보고 일본 해안 100선에 선전된 미우다 해변을 관람했다.
대마도의 하롱베이라 불리는 에보시타케 전망대를 가기 위해 해발 176미터에 올라 아소만을 동서남북의 조망으로 대마도를 보았다.
바다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사 중 가장 오래된 와타즈미신사에는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남신)과 도요타마히메노미코트(여신)의 부부 신을 모시는 신시를 찾아보았다.
대마도를 정벌한 고려 출신 이종무는 장수 이씨로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였고 1381년 (우왕 7년)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에 침입한 대마도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정용호 군이 되었다.
고려 말 빈번하게 조선에 대한 노락질 하던 왜구의 활동이 사라지기도 했었다. .
1397년 태조 6년 이종무가 옹진만호로 재직 중 대마도의 왜구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조선을 침입할 때 이종무는 그때마다 왜구를 격퇴하였다. 조정에서는 이종무로 하여금 적의 허점을 틈타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를 정벌토록 하여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크게 활약한 이종무 장수는 왜구와 전쟁사에 지울 수 없는 공적을 남긴 장수이다.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임진왜란 때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금석성의 터를 개축하여 오테문 위에 2층의 망루를 세워 천수(天守) 대용으로 성터의 정원을 왜구는 국가 명승지로 지정해 두었다.
덕혜옹주는 조선의 26대 왕인 고종과 귀인 양 씨 사이에 태어난 딸로서 아버지 고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였지만, 아버지 고종이 의문사한 후 공포에 휩싸여 살았으며 신여성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끌려간 뒤에 우울증과 고독감으로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다. 어머니 양 씨가 유방암으로 사망하자 우울증이 심화(心火)되기도 했다.
일제는 소 가문의 후손으로 35대 당주 소다케유키 백작과 덕혜옹주는 정략결혼을 하여 딸 마사에(정혜)를 출산하였지만 행복하지 못했다. 지병으로 인한 그녀를 비좁은 새장 속에 가두었다. 그로 인한 병세가 심화한 덕혜옹주는 딸과 생이별하고 정신병원에서 청춘을 보내며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대마도에 거주하는 한국인에 의해 덕혜옹주의 결혼을 축하하는 결혼 봉축비를 세우기도 했다. 말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창덕궁 낙선재에 안주하였지만, 영혼이 떠나버린 덕혜옹주의 육신은 유년의 기억만을 남긴 채 1989년 4월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대마도 출생인 나카라이 토스이의 생가이자 문학관을 돌아보았고, 1,500년 수명을 자랑하는 한 칸의 은행나무를 보며 슈시지구 삼림공원에서 편백나무 숲을 배경 삼아 단체 기념 촬영도 하고 이지로의 물결을 보며 히타카츠 항구로 귀국 길에 올랐다.
대마도는 위도(緯度)상으로 보아 대한민국이 지배하는 영토가 되어야 하겠다.
약력
대구 출생, 수필가, 사진작가
대두문인협회 홍보위원, k 국제 펜 문학회, 대구수필협회 이사, 영남문학 이사,
신한국운동본부 인성 대학원 이사, 영축문학회원, 한국경찰문학 대구 경북 지회장.
*제 50회 한민족통일문예대축전 공모전 수상, 한국예술인 복지재단 “디딤돌” 창작기금 수혜, 제1회 대구문화원 연합회장상(사진 작가상) 송암 문학상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