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해 후 邂逅
전장터 정리를 지휘하던 이중부 천부장의 묵황도 깃대 곁으로 전투용 갑옷을 입은 한 여인이
어린 꼬마를 말안장 앞에 태우고 다가오고 있었다.
호위대장 고적 탕후 백부장이 앞을 가로 막아선다.
그러자 여인은 말없이 들고 있던 투구를 내보인다.
그러고 보니, 그 여인은 아군 我軍의 천부장 투구를 왼손에 들고 있었고, 몸에는 장군용 갑옷을 입고 있었다.
천강선 우문 청아 천 부장이었다.
그제야 알아본, 고적 탕후 백부장이 얼른 마상에서 고개 숙여, 예의를 갖추고는 옆으로 비켜선다.
우문 청아가 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를 안장 앞에 앉힌 채, 이중부에게로 다가 갔다.
“오라버니”
“어, 청아!”
놀란 중부가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말에서 내려 다가가자, 청아도 안고 있던 꼬마를 중부에게 먼저 건네고 말에서 내린다.
중부는 두 손으로 받아 안았던 꼬마를 땅에 내려놓고, 반가운 마음에 양손으로 청아의 손을 부여잡는다.
청아의 눈가에 물기가 고인다.
“엄마 우는 거야?”
어린 꼬마가 소매로 눈을 가리는 우문청아를 위로 올려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꼬마의 그 소리를 듣고, 중부는 속으로 흠칫 놀란다.
‘우문청아가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옷 소매로 눈시울을 훔치던 우문 청아는 고개를 숙여 남자 꼬마에게 말한다.
“사로야! 아버지께 인사드려”
“응? 이 아저씨가 아부지야?”
“그래, 네가 늘 찾던 아버지야”
꼬마는 중부에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아부지, 안녕하세요?”
중부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으 응, 청아! 이게 뭔 소리야?”
“무슨 소리는 오라버니 아들이지”
“뭐?”
“오라버니 아들 사로야”
그제야 꼬마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영락 零落 없이 중부 자신의 어릴 때 모습의 판박이다.
오 년전, 일축왕에게 대패를 당하고 서로가 전사 戰死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둘 다 멀쩡하게 살아있고 청아는 아들까지 낳아 씩씩하게 키우고 있었다.
오년 전,
청아는 그날 울란바토르 전투에서 아군의 선봉대와 중군이 적병들에게 습격당하여, 공격 진형 陣形의 허리가 잘려 분리되면서 처참히 패퇴 당하는 것을 멀리 떨어진, 후군에서 적병과 싸우는 도중에도 얼핏 보았으며, 나중에는 선우측 군사 모두가 전멸하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후군인 우문 청아, 자신들도 적들의 포위망을 어렵게 뚫고, 구사일생으로 달아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
따라서 전투 정황상 이중부도 전사한 걸로 알았으며, 아이가 유복자 遺腹子라고 생각하고, 외가 外家의 성씨 姓氏를 따라 ‘우문 사로’ 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사로라는 이름은 이중부의 조국 祖國 ‘사로국’ 이름을 따서 지었단다.
한편,
선봉대 을지 담열 소왕의 소속이었던, 이중부도 자기들 패잔병 2백여 명 외에는 모든 아군이 전멸한 것으로 보고 받았고, 쓰라린 아픈 가슴을 지금껏 달래고 있었다.
중부는 아들 사로를 안고 청아를 데리고, 언덕 위 넓은 바위가 있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지난번 전투에서 패퇴한 후 항가이산맥으로 도주하였으며,
그동안 을지 담열 소왕의 딸인 미앙과 결혼한 사실을 이실직고 以實直告하였다.
중부는 입으로는 지난 이야기들을 어물어물 힘들게 이어 가면서도, 계속 우문청아의 눈치를 살핀다.
그러나 우문청아는 역시 여장부였다.
“오라버니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어, 이렇게 사로에게 아버지 얼굴이라도 보여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싹싹하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청아가 오히려 좋은 말로 위로 해주니, 중부는 청아와 아들 사로를 보기가 더 미안하다.
“청아, 미안해. 사로에게도 죄를 지은 것 같고”
“아뇨, 고의로 속인 것도 아니고, 난리 亂離 중에 일어난 일을 누굴 원망하겠어요”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워”
“괜찮아요”
우문청아가 오히려 중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위로해 준다.
중부는 사로를 꼭 껴안고 볼을 비벼 본다.
사로도 처음 보는 아버지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부지, 심이 세 보여요”
태어나 아버지를 처음으로 만나보고 신이 난, 4살짜리 사로는 초원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뛰어다닌다.
“그럼, 사로 외할아버지를 뵙고 인사드려야지, 지금 어디 계시지?”
“천천히 인사해도 돼요. 지금은 서로가 바쁘니 다음에 인사하도록 해요”
이중부가 혼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우문 청아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말을 하고 있지만,
마음의 정리가 덜 된 모양이다.
“그래, 알았어. 조만간에 내가 찾아 갈께”
“네, 조심히 가세요”
한 번 더 사로를 안아보고 중부는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본 진영으로 돌아가는 중부의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반갑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쓰리고 아프기도 하고, 또 이래저래 걱정되기도 한다.
[* 외가성씨 外家姓氏]
당시, 성씨를 외가 外家의 성을 쓰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흉노족 중에도 한의 황제 성씨인 유씨 劉氏를 사용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후한 시기에는 선우의 부인이 한나라의 공주 公主(황제의 딸) 아니면, 군주 郡主(왕의 딸)의 신분이므로
그 자녀들은 외가의 성씨인 유씨를 사용하는 일이 흔하였다.
삼국지 三國志에서 등장하는 촉한의 황제, 유비의 친족 親族인 유표(삼국지의 형주자사와는 다른 인물)도
흉노 출신인데 외가 外家 성 姓을 사용하고 있다.
삼국지에서 나오는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촉한 蜀漢 황제 유비 劉備의 가까운 친족 親族
유표 劉豹는 흉노족 선우 單于(可汗, Khan) 난제어부라 欒提於夫羅(50~196)의 아들이며,
호주천 呼廚泉의 조카이다.
196년 어부라 사망 후, 호주천이 선우의 자리에 오르고 유표는 좌현왕이 된다.
후에 위 魏의 조조 曹操에 의해서 5부로 나누어져서, 유표는 흉노의 좌부 左府를 통괄한다.
이처럼 남 흉노 출신자들이 한족화 漢族化한 후에 유씨 성을 자칭 自稱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유비도 흉노의 선비족 출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니 유비는 한 漢 황실 皇室 유씨 劉氏의 친손 親孫이 아니라, 외손 外孫이라는 것이다.
유비가 젊을 때, 낡은 황실 족보 族譜 한 권을 우연히 얻은 것을 빌미로 이미, 외가 外家의 유씨 성으로
신분 세탁 身分 洗濯을 하여, 당시의 정세가 어지러운 난세 亂世임을 간파하고,
후한 後漢의 황족임을 자칭 自稱하는 것을 보면, 배포 排布가 크고 대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방의 북 흉노 중 일부는 서쪽으로 도주하고, 일부는 유연 柔然의 주요 부족으로
그대로 남아있다가 수, 당 시절 돌궐족에 의해 흡수된 후 완전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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