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kairos)의 시간 허 열 웅
마지막 남은 카렌다 위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는 곧 작년이 되고 내년이 올 해가 될 것이다. 살아있는 있는 모든 건 시간을 갖고 있지만 우리 는 종종 시간이 없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간도 쉼 없이 흘러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잡히지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시간은 멈추는 법도 또 더디게 흘러가는 법도 없다. 저축하거나 남에게 빌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시간이 우리에게 무한정 베풀어지는 것도 아니고 길어야 고작 100년의 삶을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다. 그 속에서 누구나 쫒기 듯 살아가고 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직선으로 쏜살같이 퀵서비스처럼 달려와 엊그제가 꽃피는 봄이었는데 낙엽을 떨구고 수은주 거꾸로 곤두박질치는 겨울의 한 가운데 와 있다. 우리 인생도 청춘을 지나 장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뒤돌아 볼 생각의 틈을 주지 않고 마감시간은 위협하듯 다가온다. 과거 인간의 예상 수명은 길어야 70~80세 정도였다. 그런데 환경이 좋아지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100세를 바라보게 되었다. 수명이 연장되었다는 건 단순히 하루, 한 달, 1년을 더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고대 그리스인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먼저 크로노스는 시계의 시간이다. 1분이 60초, 1시간은 60분,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과 같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간이다.
반면에 카이로스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의미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똑 같은 하루의 시간의 주어지지만 저 마다 다른 24 시간의 삶을 살아간다. 카이로스의 시간에서는 새로운 사건과 기회, 순간적인 경험 등이 중심축을 이룬다. 일상의 주기적인 시간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이로스 시간 안에서는 사건의 연속이고 젊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 획일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시간들이 존재한다.
금년에 105세가 되는 김형석 박사는 지금도 칼럼을 쓰며 강연준비를 한다. 매일 수영을 하며 건강관리를 하여 젊은이와 다름없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반면에 올해 고작 80살이 된 어느 친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오늘 무엇을 하며 보낼지 고민을 한다. 그리고 나서 집에서 TV나 핸드폰을 몇 시간 보다가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새우깡으로 소주를 마시며 하루를 소비한다. 1970년대 냉전기 ‘핑퐁’외교를 통해 공산 중국의 “죽의 장막‘을 열고, 소련의 전략핵무기 제한 협상을 통해 데탕트(긴장완화)를 유도했으며, 미국 대통령 12명에게 조언을 했던 기신저 전 국무장관이 100세 나이로 2023년 11월 29일 별세했다. 그는 100세 나이에도 호기심과 열정을 갖고 하루에 15시간 이상 일을 했다고 한다.
어제는 잘 살았는가? 오늘은 잘 살고 있는가? 내일은 어떤 마음으로 맞을까? 군자는 다만 이 사흘을 마음에 두고 매일 매일에 충실할 뿐이라는 말의 의미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시계는 많은 데 시간은 없는 우리들의 일상이다. 1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기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봐라.
1분을 몹시도 아쉬워할 것이다.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간신히 교통사고를 모면한 사람에게 물어봐라. 1초의 기적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나이가 들면 많은 사람이 크로노스의 시간 안에서 주기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든다. 그들의 시간은 의미 없이 단지 흐를 뿐이다. 그렇지만 시간은 나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다.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를 휩쓸어가지만 내가 곧 강이다.
단순히 속절없이 강물에 떠내려가는 대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것, 시간의 흐름을 오히려 품어 안을 수 있다는 반전이다. 나는 지금 단지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의 배에 나를 맡기고 있는지, 아니면 시간의 길이를, 시간의 결을, 시간의 기능을 바꾸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의미를 찾으며 힘껏 노를 젓어가고 있는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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