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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소제
소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그분의 뜻대로 삼겠다는 헌신의 표시로 드리는 독물 제사이다. 이것은 생명과 소유물(작품)을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이다. 이것은 피흘리는 제사와 더불어 드려졌는데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구주의 속죄의 공로를 상징했던 피를 가지고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소제는 히브리어로 민하인데 이 말의 뜻은 “선물,” 또는 “헌물” 이다‘ 소제는 보통 위의 사람들에게 드려지는 것으로(창 32:13; 43:11), 굴복과 의지하는 것을 표현했다. 모세의 율법 이후에는, 만물의 소유주와 공급자(provider)로서, 그리고 유지자(sustainer)와 섭리자로서 생명의 은전에 대해 주님을 믿는 믿음과, 위탁된 것들에 대해서 청지기로 인정하는 표시였다.
공적인 소제는 의무적이고 규정되어 있었지만 개인적인 소제는 자원하는 것이었고 어느 때에든지 가능했다. 공적인 소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매 아식얼마다 성소에 놓여졌던 “임재의 떡,” 또는 “얼굴의 떡” 이라고 불려졌던 진설병이었다. 번제가 끊이지 않고 항상 드려지므로 상번제라 불리어졌듯이(민 28:3,6) 진설병도 항상 차려놓았다. 새 떡이 떡상 위에 놓이기 전에 옛것을 치우지 않도록 주의했다(대하 2:4). 이것은 백성들의 필요를 계속 채워 주실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과, 그분을 신뢰하는 이스라엘의 필요가 항상 주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전제는 부어 드리는 제사로 조석 번제에 수반되었다(출 29:41,42; 민 15:5). 이 때문에 떡 상에는 대접, 숟가락, 병과 붓는 잔 등의 기구가 있어 성소에서 주님에게로 전제가 부어졌다(출 25:29). 구약의 진설상이 신약에서는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했다. 임재의 떡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그분의 상징인 동시에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 이신 주님을 나타낸다(요 6:51).
전제는 백성들의 형편에 따라 곡식 가루로 드리는 것과 고운 가루를 가공하여 드리는 것, 그리고 첫 이삭의 소제 등이 있었다. 고운 가루를 가공하여 드리는 방법에는 화덕에 구운 것, 번철(돌판)에 부친 것, 그리고 솥에 삶은 것으로 드리는 종류가 있었다. 소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곡식 가루로 드리는 것이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부어 잘 섞고 유향을 따로 준비하여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면 제사장은 기름가루 한 줌과 유황을 취하여 번제단 위의 불에 놓아 그 향기를 여호와께 드렸다. 화제로 드린 것의 나머지 부분은 제사장의 몫이 되었다. 누구든지 드리려면, 그 중 기름 섞인 가루와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랐다"(레 2:2).
소제의 개념
1-3: 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소제의 고운 가루(nC,o) 에 기름과 유향을 놓아 가져오면, 제사장은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유향을 기념물로 번제단에 불사름으로 여호와께 드렸다. 고운 가루는 밀 알로 만들어졌고 고대 사회에서 사치품이었다(겔 16:13). 보통 식용 밀가루(nop)는 곡식과 밀기울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념물과 향기로운 냄새로 여호와께 기념물로 드려졌다.
기념물은 번제단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제단에서 언급되고 제물이 번제단에 드려져 태워질 때 매일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하나님은 헌제자의 헌신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TDOT 5:80). 이 때 시 편 38편 또는 70편 등의 암송되었다고 전해진다.
기름은 보통 감람유(olive oil)로 풍성함과 부의 상징이었고 성령의 사역을 나타내었다(출 29:29; 신 32:13; 사 61:3; 단 9:25-26; 요일 2:7:1). 그리고 유향은 제물이 향기를 내도록 첨가되었다. 소제에 유향이 첨가된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는 그리스도의 공로가 첨가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향기로운 제물이 되신다(엡 5:2). 또한 성도들의 기도와 삶이 향으로도 상징 된다(고후 2:15).
소제는 사실상 제사장들에게 대한 선물이었다. 여호와께 기념물로 드리는 것 이외에는 제사장의 몫이었고 그들은 각자가 골고루 나누었다(7:10). 일단 제단에 드려진 것은 지극히 거룩했다. 이 말은 의식적으로 정결한 제사장들만에 의해서 성소의 지정된 곳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겔 42:13).
소제물의 세 가지 종류
4-10: 4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병을 드릴것이요 5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6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7 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8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9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0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곡식 가루로 드리는 것 외에도 떡이나 과자류로 구워서 소제로 드릴 수 있었다. 화덕에 구운 것, 번철에 부친 것, 그리고 솥에 삶은 것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다. 화덕은 진흙으로 만든 가마솥인데, 이것을 달구어서 그 안쪽에 밀가루 반죽을 구웠다.
번철은 둥글넓적한 철판으로 이 위에 먹을 구웠다. 이것은 유목민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드리는 자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다양하게 드릴 수 있었다. 인간의 형편에 따른 다양성을 관용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볼 수 있다. 백성들의 사정에 따라 다양하게 소제를 드렸듯이, 사람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고운 밀가루가 의미하는 바, 우리들도 정성과 철저한 헌신의 작품을 주님께 드릴 수 있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전 9:10). 주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뭇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고 말씀하셨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곡식 가루로 드리는 것이었는데, 이것의 중요한 점은 인간 노력의 작품을 주님께 드린다는 사실이다. 곡식 가루는 신-인 협력의 산물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칙을 심으셨고 햇빛과 비를 주시어 자라게 하신다. 사람은 씨를 심고 가꾸어 수확하고,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 하나님께 드렸다. 이처럼 우리 각자에게는 재능들이 부여되었는데, 소제물처럼 그것들이 계발되고 정결하고 고상하게 되어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 소제는 사람의 생명과 모든 소유의 시여자요 섭리자이시며 그것들을 유지시켜 주시는 분으로서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고 있다(행 17:28).
곡식 가루는 인간 활동을 상징한다. 씨가 땅 속에 묻힘으로써 발아하는 것처럼, 삶에서도 자아를 포기하고 슬픔과 절망 및 흑암 등의 고난의 과정에서 사람은 겸손해지고, 남을 동정하게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도 있다.
모든 재능과 잠재 능력이 갈고 닦이는 인고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인격이 고양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쓰임을 받는 존재로 준비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삶에서 고난도 의미가 있다.
곡식이 고운 가루가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자아를 버리고 부서지고 가루로 만들어지면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생명을 공급하는 더 고상한 생명의 연장 과정이다.
고운 가루처럼 인간의 자아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 바쳐지고 봉사할 때, 영원한 의미가 있게 된다. 또한 연단 과정을 거치면서 삶이란 전문성의 극상품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밀가루에는 기름과 향을 섞었다. 기름은 성령의 은혜를 상징하는데 인간의 삶이 성령으로 성화되고 성령이 감화 아래 있게 될 때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기름으로 인쳐질 때 그것은 향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향기를 발하게 되는 것이다. 기념물로 불태워져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으로, 제물 뿐 아니라 드리는 자의 충성, 봉사, 구제, 선행 및 인간 전 존재를 포함한다(신 10:12). 우리들은 주님처럼 성령의 침례를 받고,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사신 완전한 모본이신 주님을 따라야 한다(마 3:16; 엡 5:18).
유향이 첨가된 것은 예물이 하나님 앞에 향기롭게 된다는 뜻인데, 성도의 모든 경건한 생활과 봉사, 그리고 예배는 주님의 기뻐 받으시는 예물이 된다. 그리고 향연처럼, 주님을 위한 모든 사업은 기도의 향으로 싸여져야 한다. 소제물 중의 일부는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로 단에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했던 것처럼 인간 활동에는 하나님의 부분이 있다. 우리가 누리는 시간의 1/7, 그리고 재물의 1/10은 주님의 것이다. 모든 소제마다 주님께 드리는 부분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수입과 시간에서 주님의 것을 구분해야 한다. 사람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탁물로 주신 것이요 인간은 주님의 청지기인 것이다. 우리의 존재와 소유들 - 언어, 시간, 신체, 재능, 재산 등 모든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것이요 우리는 선한 관리자 곧 청지기들이다. 선천적, 후천적인 모든 것들이 제단에 드려져야 한다.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자! 시간과 물질(재물)에 있어 주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십일조와 안식일을 더욱 철저하게 믿음으로 행하자. 그래서 소제의 기념물을 반드시 주님께 화제로 드린 것처럼 우리의 모든 재물과 시간에서 주님의 것을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소제물의 주의사항
11-16: 11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12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 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14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15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16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소제물에는 누룩이나 꿀을 넣지 말아야 했다. 누룩은 발효에 쓰였는데, 발효는 부패의 상징이었다. 「누룩}은 위선과 교만의 상징이기도 행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다. 그것은 악의의 누룩이었다(눅 12:1; 고전 5:8). 꿀은 풍요와 토지의 비옥함의 상징 이기도 했지 만(출 3:8), 여기서는 발효와 정욕의 상징이었기에 소제에서 제외되었다. 꿀은 육체의 정욕과 관련하여 쓰여졌는데, 기쁘게는 하지만 타락과 영적 생명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
이 둘은 모두 부패와 전염이라는 위험이 있다. 이것들은 단 위에서 사르지는 못했지만 첫 소산물로서 장막절에는 드려졌다(레 23:17; 출 34:22; 대하 31:5; TDOT, 3:128-31). 헌제자들이 초실물로서 이러한 것을 드릴 때는 하나님의 구원사(Heilsgeschite)를 암송했다. 이로써 새로운 수확은 하나님의 은총의 결실이며, 주위 이방에서 드렸던 것처럼 어떤 다산을 위한 주술의식의 결과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주님의 원에는 누룩과 꿀의 요소, 곧 악의와 정욕의 동기가 없어야 한다는 엄숙한 교훈이 담겨져 있다. 이 꿀을 제단에서 제외하는 것은 고대근동의 이방에서 제사에 널리 드려졌던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막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고대 바벨론, 이집트, 그리고 우가릿에서도 이러한 것들이 제물에 사용되었다(TDOT, 3:130; UT, 441). 세상적이고 이기적인 동기도 제거되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뜻과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생애하셨다. 주님은 심령과 동기를 살피는 분이시다(렘 17:10). 또한 하나님의 사업에서는 인간의 고안과 방법을 하나님의 계획과 대치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꿀처럼 달게 보일지라도 말이다.
소제에는 누룩과 꿀이 금지되고 반드시 소금이 첨가되었다(레 2:11- 13). 소금은 순결하게 하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바 방부제로, 순결과 거룩함의 상징으로 영원한 언약과 완전한 우정의 상징이었다(민 18:19; 대하 13:5). 소금은 언약 당사자 간에 여하한 불화를 막음으로써 양자간의 언약을 공고히 하는 결속을 상징했다. 그래서 고대 세계에서 소금은 불이나 시간 혹은 다른 어떤 것에 의하여도 파괴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제물에 소금을 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 관계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아랍이나 헬라 세계에서는 소금을 함께 먹음으로서 언약의 불가해성을 기념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구약에서 소금언약이 나오는데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 간의 언약의 영원한 지속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민 18:19; 대하 13:5).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마 5:13) 이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이러한 언약에서의 소금의 역할을 강조하신 것이다.
신자들은 죄악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마가복음 9장 49절엔 “사람마다 불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불은 정결하게 하고 소금은 유지시키는 작용을 한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죄용서 받고, 정결하게 되며, 순결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주님의 사업은 유지시켜는 그분의 은혜 아래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순결하게 항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헌신의 정신으로 시작을 잘하지만 오래 계속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약점이다. 제물에는 소금이 필요하다!
한편 소제는 일부만이 번제로 불태워 주님께 드려지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드려졌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일에는 믿음의 가족과 동료 이웃들도 그 축복에 참여하도록 해야한다.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하면서 동료 인간의 고통과 필요에 대해 몰인정하고 무관심한 자세는 잘못된 것으로,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선을 행하시며 생애하셨다.
첫 이삭소제
14- 16: 14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15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16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첫 이삭 소제도 드렸는데, 이것을 볶아 찧은 것으로 드렸다. 첫 이삭은 주로 보리에 보통 사용되었는데, 다른 곡물이나 과일류도 포함된다. 특히 첫 이삭은 비옥한 땅을 의미하고 풍성한 수확의 대명사이다. 이 말(갈멜)은 현재 이스라엘의 하이파(Haifa) 항 남쪽의 도단(Dothan) 지역에서 지중해(Mediterranean Sea) 에 이르는 평야를 말하는 지명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풍요한 수확으로 불리는 곳이다(KB, 475).
이 초실물의 복은 것 위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더하여 소제로 번제단에 드렸다. 이것은 여호와께 기념물로 불살라져서 화제로 드려졌다. 이 소제에서 하나님께 화제로 드린 것을 제외한 것이 제사장의 생계 수단이었다. 초실물의 이삭을 볶아서 드림으로써 제물을 드리는 자는 자신의 수확 전체를 하나님께 받쳐 그의 전 수확에 대한 주님의 주권을 인정했다. 하나님께서 초실물을 받으시고 수확의 나머지는 헌제자에게 되돌려 주셔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신다는 의미이다.
소제는 언제나 드릴 수 있었지만, 거의 항상 번제나 화목제와 함께 드렸다. 소제의 일부를 번제로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헌제자를 기억하게 했고, 축복의 관계에 두도록 한다는 것이다.
구속사관
소제는 여러 제사 중 피가 없는 제사이지만, 피 있는 제사와 함께 드려졌다. 이는 하나님 앞에 인간이 나아가는 길은 속죄의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 소제인 진설병은 성소에 있어 인간 삶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했다. 다양한 형태의 소제는 여러 방면으로 우리가 “힘입어 살며 기동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나타낸다(행 17:28). 주님은 우리 생명과 삶의 모든 것이 되신다.
진셜병은 우리 죄인의 계속적인 필요가 하나님 앞에 상존했고, 주님은 그것을 늘 기억하시고 채워주신다는 웅변적인 실물교훈이었다(요 6:35, 48, 51).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을 향해서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말씀하시고 그분을 믿은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소유하도록 그분의 살과 피를 먹도록 초청하셨다(요 6:47-58).
소제는 봉건시대의 영주들이 지방의 소산물을 중앙의 황제에게 보내어서 황제의 보호에 감사하고 충성을 서약했듯이, 소제는 죄인이 만유의 대주재이신 주님에게 바치는 공물로서 또한 기억하실 만한 제물로서 불로 서서히 태워 향기로운 냄세로 드리는 제사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안의 노력이 결합된 삶의 극상품을 주님께 바친다는 의미도 있고 인간 삶 전체를 주님께 드린다는 뜻도 된다. 밀가루처럼 노력 의 긴 인고와 훈련 및 준비를 거친다는 것이다. 성령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함으로써 죄인은 삶의 최종 작품을 주님께 헌신한다는 것이다. 죄성이나 이기심이 고난의 풀무불에서 제거되고 고양되고 성화된 삶을 바친다는 것이다.
소제에는 인간의 부패를 상징하는 누룩과 꿀을 넣지 못하고 반드시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을 넣었다. 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인간의 자세는 탐욕과 정욕 및 악행을 피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함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신약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목회자들이 적합한 생계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3-14). 예수님께서도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눅 10:7). 이러한 원칙은 오늘날에도 복음 사업에 헌신한 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하고 평신도들은 목회자들이 안심하고 성직에 헌신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충족해 주어야 한다는 엄숙한 기별도 있다.
교훈과적용
1. 소제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생명의 떡 그리스도들 나타낸다.
2. 소제는 우리가 가진 것의 완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소유물의 헌신은 생명의 헌신과 병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것을 분명히 구분해서 정성으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려야한다. 안식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3. 소제처럼 삶 전체가 성화되도록 하자. 인간의 재능과 가능성이 최대한 계발되고 고양된 삶의 결실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드리도록 하자. 곡식이 고운 가루가 되어 가는 것은 신인협력의 과정으로 긴 인고의 노력이 필요로 할 수 있지만, 성령의 은혜로 고난을 기쁘게 받아 들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의무이고 도리이다. 개인의 가능성과 잠재된 재능을 계발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진리의 발전에 헌신하도록 하는 것이 이 성을 가진 인간의 본분이다.
4. 우리의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고(골 4:6), 신자들 가운데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도록 해야 한다(막 9:50). 언행이 정결하고 순결하게 유지되도록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한다.
5. 신자들은 위선과 부패. 정욕의 모든 것들로부터 삶을 정결하게 보존하여야 한다. 이는 마치 소제에 기름과 유향이 첨가되었던 것처럼 인간성의 약점과 죄의 악성을 성령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6 교인들은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복음 사업에 헌신하는 목회자들이 그들의 사역에 전념하도록 생계를 보장해 주어 야 한다(눅 10:7; 고전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