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발의 아내의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요셉 (창세기 39: 11~23)
* 본문요약
어느 날 요셉이 자기의 일을 하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집안에 그 집 종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주인의 아내가 요셉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유혹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버려둔 채 밖으로 나갑니다. 그러자 여인은 주인에게 요셉이 자기를 욕보이려다 소리를 지르니 옷을 버려두고 도망했다고 거짓을 고합니다. 주인은 크게 노하여 요셉을 왕에게 죄를 지은 자들이 들어가는 감옥에 들어갑니다.
찬 양 : 434장 (새 384)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441장 (새 388) 비바람이 칠 때와
* 본문해설
1.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는 요셉(11~12절)
11)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집안에 그 집 종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12) 주인의 아내가 요셉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침실로 가자.”
그러나 요셉은 붙잡힌 자신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둔 채, 뿌리치고 집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12절) :
요셉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도록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단단히 쥐어 잡았다는 뜻입니다.
2.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누명을 씌움(13~18절)
13) 여인은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의 손에 버려 둔 채 집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
14) 집에서 일하는 종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이것 좀 보아라. 주인의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왔나 보구나. 그가 나를 욕보이려고 달려들기에. 내가 고함을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고함지르는 소리를 듣고, 자기 옷을 내 옆에 버려둔 채 바깥으로 도망하여
나갔다.”
16) 주인의 아내는 주인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 옷을 곁에 두고 있다가
17) 주인이 돌아오자 그에게 이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다 놓은 저 히브리 사람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 달려들었습니다.
18) 그래서 내가 사람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그가 자기 옷을 나한테 버려두고
집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 주인이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우리를 희롱하려고(14절) :
간교한 주인의 아내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보디발의 집안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키고 왜곡시킵니다.
3. 요셉의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힘(19~23절)
19) 주인은 자기 아내가 “당신의 종이 나에게 이런 짓을 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크게 진노하였습니다.
20) 이에 주인은 요셉을 잡아서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자비를) 베푸셔서, 요셉이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간수장의 마음에 들게 하셨습니다).
22) 간수장은 감옥 안에 있는 죄수를 모두 요셉에게 맡기고,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모두 요셉이 혼자 처리하게 했습니다.
23) 간수장은 요셉에게 맡긴 일은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그가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 요셉을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가두었습니다(20절) :
보통의 경우라면 주인의 아내를 욕보이려한 노예는 당장 사형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요셉도 사형을 당해야 하지만, 요셉이 보디발의 신임을 얻어 그나마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감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입니다.
* 묵상 point
1. 끈질긴 주인의 아내의 유혹을 끝내 거절한 요셉
주인의 아내는 요셉을 아주 끈길지게 유혹 했습니다. 주인의 아내는 요셉의 준수한 용모에 반하여 요셉을 요구했으나, 요셉의 입장에서는 그 여인이 주인의 아내라는 점이 유혹거리가 됩니다. 지금 요셉은 구덩이 안에 빠진 것처럼 완전한 절망의 상태에 있었고, 주인의 아내는 그런 요셉을 자유인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형들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합니다. 요셉은 아예 유혹을 받을만한 자리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 옛날 하와는 선악과 주위를 맴돌다가 스스로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받을 만한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마음이 약하여 넘어졌다고 할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자리를 떠나 유혹에 빠질 여지를 만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거절당한 앙갚음으로 요셉에게 누명을 씌운 보디발의 아내
그러나 아무리 조심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예 그럴 여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주인의 부인이 있는 집안으로는 아예 발을 들여놓지를 않았는데, 어느 날 그 집 안으로 들여가야만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집 안에 다른 종들이 하나도 없고 그 주인의 아내 혼자만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주인의 아내가 일을 꾸미고 다른 종들을 다 내보냈을 것입니다.
주인의 아내는 요셉의 옷을 아주 단단히 붙잡고는 침실로 가자고 거의 협박하듯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그 옷을 여인의 손에 버려둔 채 뛰어 나갔습니다. 여인은 요셉이 옷까지 벗어두고 황망하게 도망하는 모습을 바라보고는 요셉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남편이 돌아오자 여인은 요셉의 옷을 내밀며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 했으며, 자기가 놀라 소리를 지르자 옷만 놔둔 채 도망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런 경우 보통은 노예가 주인을 겁탈하려했으니 전후 사정 따질 것도 없이 무조건 사형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주인은 크게 화를 내면서도 요셉을 죽이지 않고 그의 집안에 있는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세상에는 보디발의 아내와 같은 교활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단지 요셉이 자기의 제안을 거절했을 뿐인데, 보디발의 집안 전체를 희롱한 것처럼 몰아갑니다. 악은 자기가 저질러놓고 요셉이 악의 근원인 것처럼 몰아갑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자기가 한 일을 덮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 일을 보셨습니다. 땅이 보고 하늘이 보고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장은 이런 사람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 하나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 적용 : 그러므로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늦더라도 주님 뜻대로 살아갑시다.
3. 역사를 보는 두 가지 시각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것은 분명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요셉은 왕의 죄수들이 들어가는 감옥에 들어갑니다. 노예가 주인을 겁탈하려 했다는 누명을 썼으니 보통의 경우라면 당장 사형 당했을 것이지만, 보디발이 요셉을 신임하여 그나마 감옥에 들어간 정도로 마무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옥에 들어간 것이 사형당한 것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그 감옥이 왕의 죄인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죽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옥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이것을 보고 각자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지를 살펴봅시다.
1)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시므로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서 노예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 번 노예가 된 사람은 그 자식에 자식까지 영원히 노예가 됩니다. 완전한 절망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요셉이 완전한 절망의 상태인 노예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도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시므로’라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시므로 요셉이 하는 일마다 다 잘되었다는 것입니다.
2) 그러나 그의 신분은 더욱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셨다면 요셉을 힘들게 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여전히 노예 신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왜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셨다면서 요셉으로 인하여 보디발의 집이 잘되게 하시고, 요셉의 고민인 노예는 풀어주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더구나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도 이겨냈다면 잘했다고 칭찬해주셔야 마땅한 일인데, 왕의 죄수들의 감옥이라니요. 더 깊은 나락으로 요셉을 끌어 내리시고는 ‘여호와께서 형통케 하시므로 그가 감옥의 모든 일을 맡아서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 어떤 눈으로 역사를 볼 것인가 : 영적인 감각을 예민하게 하십시오.
1) 내가 역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역사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변 상황을 내 입장에서 해석합니다. 요셉이 만일 자신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그가 가진 가장 큰 문제인 노예를 어떻게 해서든 자기 힘으로 풀어보려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의 아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냥 넘기기에는 그녀가 가진 힘이 너무나도 큽니다. 애굽의 2인자의 아내이니 요셉이 바라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아마도 그때 요셉의 주변에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조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를 부흥할 꿈을 가진 자가 부흥이 잘 되지 않을 때 부흥을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기울이려 할 것입니다. 그런 때에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교인 중심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성도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성도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을 성도들을 평안하게 하고,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가득 채웁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교회의 고객이 된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교회와 목사는 비즈니스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힘을 빌려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같은 일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항상 변함없이 자신을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요셉이 그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시므로’하는 말씀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요셉이 점점 더 나빠져만 가는 것 같으나, 실상 가만히 보면 그가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잘되고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자기의 일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 주변에서 살며시 다가오는 편법의 유혹을 붙잡지 않습니다. 그것을 붙잡지 않으려다 오히려 더 상황이 나빠지게 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진리의 길로 갑니다. 그러다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더 나빠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확인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서로를 향해 의심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내 삶이 더 힘들어지고, 내 하는 일이 지지부진하며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바로 조금 전에도 내가 그분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 적용 : 그러나 영적인 예민함을 갖고 있지 않으면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 상황만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의지력이 좋아도 편법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여 영적인 감각이 둔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나도 가인이나 사울처럼 어리석은 자가 될지 모릅니다.
* 기도제목
1.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더디더라도 주님의 뜻대로 하게 하옵소서.
2. 지지부진하며 상황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편법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3. 오늘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예민함을 갖게 하옵소서.
출처: 가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송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