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41] 김기영 (金基榮) - 나의 삶을 돌아보며 11. 남편의 교통사고와 상경 - 1 1 1967년에는 참부모님께서 각 지구에 활동용 지프를 한대씩 하사해 주셨다. 그러면서 전국 각 지구들은 더 넓은 범위로 크게 활동 범위를 넓히며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시기였다.
2 하사하신 차를 받으러 상경해야 하는데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운전할 수 있는 식구를 겨우 찾아 같이 상경하여 차를 받았다.
3 그러나 국도(그때는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임)로 운행을 하던 중 경기도 송탄 인근에서 급커브를 돌다 속력을 줄이지 못하여 사고가 났고 차는 수리소에 맡겨둔 채 사람만 청주로 내려왔다.
4 식구가 아닌 운전기사에게 임금을 주며 채용하였는데 재정의 어려움으로 고민하던 중 2, 3개월 후에 운전병으로 제대하였다는 식구가 있어 기사로 모시게 되었다. 5 새로운 식구 기사가 운행을 한 지 몇 달 후 지구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상경하던 중 청주에서 조치원역을 2㎞ 정도 남겨둔 직선거리에서 길 옆 가로수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6 동승한 사람들은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을 뿐이었는데 조수석에 앉은 남편은 들이받는 순간 의자가 앞으로 쏠리며 엉치뼈의 고관절 부분이 여러 조각으로 깨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7 청주 시내에 있는 정형외과의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가슴으로부터 발가락까지를 깁스 한 상태로 40일 후에 오면 된다고 하였다.
8 불안한 나머지 서울 시댁에 알렸는데 시아버지께서 급히 내려오셔서 병원에서 안 주려고 하는 엑스레이 사진을 억지로 받아 서울 세브란스병원의 원무과에 있는 조카에게 보였고 정형외과 과장과 상담 결과는 서둘러서 대수술을 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결과가 온다는 것이었다.
9 청주에서 서울까지 응급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달렸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수술을 급히 하고 한 달 후에 다시 2차 수술을 하는 엄청난 고비를 겪었다.
10 나는 병수발을 위해서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청주의 아이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그때에도 집사님이 어머니 역할을 해 주셨기 때문에 걱정을 덜었다. 11 시간을 내어 참부모님께 자초지종을 보고드리러 본부교회로 갔다. “남편이 그렇게 됐으면 더 용기를 내어 강하게 살고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 된다는 생각을 해야지 누구한테 도움을 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라고 하셨다.
12 말씀드릴 때부터 긴장하고 있던 나는 더 떨려서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 경배 드리고 나왔다. 섭섭하고 야속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 아버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니 아버님 또한 그 소식에 얼마나 놀라고 기가 막히셨을까.
13 하지만 내 마음이 약해질까 봐 용기를 주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었다. 식구들이 매일 문병을 와서 쾌유를 빌어 주시고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것에 대해 지금까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