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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깨어 있으라 말씀/ 마가복음 13:1-37 요절/ 마가복음 13:37 | 2024. 8. 18 | |
마가복음 제 21 강 |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 사회에 역사 논쟁은 뜨거운 이슈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보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는 누가 이끌어가고 있습니까? 이 세상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이 세상은 마지막 때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쾌락과 탐욕에 빠져 있을 때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역사관을 바로 세우고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나가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계속 성전에 머무셨는데 이제 성전을 떠나시면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십니다.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때 제자 중 한 사람이 성전의 돌과 건물들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보고 감탄하였습니다. 이 성전은 헤롯 성전으로 주전 19년에 리모델링을 시작하여 주후 64년에 완공한 최고의 건축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성전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네가 이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은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성전의 파괴는 하나님이 그 곳에 계시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과거 솔로몬 성전의 파괴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헤롯 성전 파괴는 제자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왜 헤롯 성전이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까? 그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강도의 굴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 성전 시대는 끝이 나고 예수님이 성전이 되시는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우리 비전팀은 유럽여행을 하면서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들을 보고 우와 하며 크게 놀랐습니다. 또한 우리는 대형교회의 건물을 보고 많은 교인들의 숫자를 보고 대단하다며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물의 겉모습을 보기보다 본질을 보십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교회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인정을 받고 구원역사에 귀히 쓰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주님께 책망 받고 심판에 던져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나와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고 앉으셨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은 성전 파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언제 성전 파괴가 있을지, 그 징조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먼저 성전 파괴의 징조에 대해서 그리고 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징조는 미혹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라 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는 거짓 그리스도들이 출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미혹 받지 않게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이단들이 돈과 미인계와 비유공부를 통해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들은 불신자들보다 신자들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대하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면서 호감을 얻고 신뢰를 쌓아갑니다. 성경으로 다가오고 신앙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미혹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유튜브나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경공부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에서 꾸준하게 성경공부하고 성도 간에 긴밀한 교제를 나눌 때 복음신앙과 복음적인 가치관을 견고히 세울 수 있고 이단의 미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전쟁과 지진과 기근의 징조가 있습니다. 전쟁과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서 세상이 끝장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전쟁이 없었던 때는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재난의 시작입니다. 재난은 해산할 때 동반하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해산의 고통은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아픔입니다. 재난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픔으로 볼 때 두려움에 빠지지 않고 견딜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징조는 신자들에 대한 박해입니다. 예수님은 박해를 예고하시며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신자들을 공회에 넘길 것입니다. 신자들은 회당에서 매질 당하고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까?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예수님은 이런 박해가 복음의 증거를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박해 때문에 벨릭스, 베스도 총독 앞에, 아그립바 왕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 앞에서 서게 됩니다. 교부 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인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박해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고 영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박해를 받을 때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말하는 이는 신자들이 아니라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염려 대신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 박해는 부모형제로부터 박는 박해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로마에 있는 신자들은 AD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될 때까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때 세상과 타협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박해의 때에 가장 힘든 때에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박해의 시기에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가 인내입니다. 박해의 때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인내의 열매를 주시고 구원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신자들이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세상에는 환난과 미혹이 그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신자들이 가장 힘써야 할 일은 복음전파입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지진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하고 기후대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주택문제 자녀양육문제에 특단의 조치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가장 시급한 것은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없는 세상은 희망이 없습니다. 복음이 없는 인생은 길을 잃어버리고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는 인생입니다. 복음만이 죄와 죽음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선교여행을 통해 선교사로 파송된 분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십여년 전에 슬로바키아 코메니스 대학 심방하여 그 나라 개척을 위해 기도했을 때 장바울 목자님에게 선교비전이 심겨졌고 얼마 후에 그는 슬로바키아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서도 많은 분들에게 선교비전이 심겨졌습니다. 특히 슬로바키아의 매력에 이끌려 슬로바키아 선교사로 나가고 싶다고 말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선교사들이 더 많이 파송되고 선교자원들이 더 많아져서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는 역사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성전 파괴의 결정적 징조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여기서 ‘멸망의 가증한 것’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을 가리킵니다. ‘서지 못할 곳’은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상이 성전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AD 70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에 로마 군기를 세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그 예언은 인류의 대종말의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모든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십니다. 그때까지 유대인들은 성전이 안전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성전이 아니라 산이 안전합니다. 집안에 있는 재산에 미련을 두지 말며, 겉옷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요긴한 것조차 포기해야 합니다. 환난의 날에는 임신했거나 아이에게 젖을 먹어야 하는 여인은 큰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게 기도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겨울은 장마철입니다. 강물이 불어나면 도망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감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환난은 창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겁니다. 오늘날 지구 멸망을 대비하여 부자들은 지구를 탈출하여 화성에 가서 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난의 날에는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환난의 날을 줄이십니다. 끔찍하고 참혹한 환난조차도 하나님의 계획과 통제 안에 있습니다. 환난의 날에도 신자들은 하나님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환난의 때에 다시 한번 신자들이 삼가야 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미혹하는 세력들이 많습니다. 특히 마지막 환난 때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과 기적을 행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특히 택하신 자들을 넘어뜨리려고 최후의 공격을 감행할 것입니다. 신자들은 이런 때일수록 삼가야 합니다. 환난만 보면 안 되고 거짓 그리스도들이 행하는 이적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왜 이렇게 힘든가, 왜 이렇게 복음역사가 어려운가 하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이 세상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미래 학자들이 시대 문제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대비책을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정확한 진단과 해석과 해답이 있습니다. 환난이 많은 시대일수록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진 자는 환난을 이기고 두려움과 염려와 절망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환난 후에 어떤 우주 질서의 변화가 옵니까? 24,25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앞에서 예수님이 예고하신 환난은 너무나 끔찍합니다. 세상의 종말로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사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주 질서의 붕괴와 인자의 재림 사건입니다. 여기서 비로소 이 세상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해 달 별과 같은 광명체들이 빛을 잃게 되고 우주 질서들이 붕괴될 것입니다. 재난이 시작될 때에는 땅을 흔드셨지만 끝 날에는 우주 전체를 흔드실 것입니다. 대환난 후 우주 질서가 흔들리고 붕괴되는 것으로 다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우주 질서의 탄생을 위한 것입니다. 그 때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십니다. 구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오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셔서 천사들을 보내어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되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다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신자들은 부활의 몸을 입게 되고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더 이상 죄가 없고 사망이 없고 질병이 없고 슬픔이 없고 고통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의 날은 구원의 날이요 승리의 날입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의 날은 심판의 날이요 멸망의 날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데 있습니까? 성공하고 많은 업적을 남기는 데 있습니까? 많은 청년들은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많은 자매들은 자상하고 마음이 따뜻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을 소망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망은 우리 신자들이 붙들어야할 궁극적인 소망은 아닙니다. 우리 신자들의 궁극적인 소망은 다시 오실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거짓 소망들을 내려놓고 다시 오실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참 소망으로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무화과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압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은 그렇게 어렵거나 특별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신비한 사건이 아니라 누구나 알 수 있는 자명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일어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한 세대는 40년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전 파괴는 세상 종말을 확실하게 보증할 것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남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도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자세가 필요합니까? 깨어 있어야 합니다. 33-37절까지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고 네 번에 걸쳐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종의 비유를 통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인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고 사무를 맡겼습니다. 주인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물 때나 밤중에나 닭 울 때나 새벽에 올지라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잠도 안 자고 일상생활을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주인을 생각하며 맡겨진 사무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마치시고 에수님은 결론적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성전 파괴와 세상 종말에 대한 말씀은 네 명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깨어 있는 것은 종말의 징조를 분별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현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사 교회와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사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 믿는 자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신앙을 가지고 한 사람을 말씀과 사랑으로 돕고 세계선교 장막터를 넓히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우리가 시대와 환경을 탓하지 않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며 복음전파에 더욱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