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축일 [0531]
스바니야 3,14-18 루카 1,39-56
2024. 5. 31. 목
주제 : 내가 행동하는 일의 영향은?
신앙을 가진 사람에는 당연한 구별이지만,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신앙인으로 사는 사람의 숫자를 세자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만, 신앙인에는 남자보다는 여자의 숫자가 많습니다. 왜 그러한지는 모르지만, 우리 본당에도 남자보다 여자의 신앙인이 많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니, 왜 그렇지 하고 나름대로 이유와 핑계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는 세상의 일에 관심이 있고 세상을 지배하거나 세상을 통해서 자기의 이름과 뜻을 남기려고 하고, 여자는 신앙의 일에 좀 더 우선권을 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하지만,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가 전례에서 기념하거나 기억하는 일에도 여성의 본보기를 말하는 것이 많습니다. 요셉성인과 성모님을 비교할 때도 성모님에 관한 축일이 많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일입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한 가지 성모님이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들은 뒤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고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찾아간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 여인이 임신하고서 다른 여자를 찾아가는 일이 무엇이 그리도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신앙인의 처지에서 그 일을 해석한다면 우리가 달리 말할 수도 있습니다. 늘 세상에서 만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일이 담은 의미를 우리가 생각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여성을 기억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특별한 일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얼마나 판단이 달라질까요? 남자로서 그 말을 들을 때, ‘그래서 나는 신앙에 충실하지 않는 거야(!)’라고 자기를 변호하는 말을 할까요? 여자로서 그 말을 듣는다면 다른 사람의 본보기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할까요?
남자와 여자를 말하면서 둘 사이를 경쟁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관심이 있는 사항과 처지가 다른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처지에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일이 그의 삶에 좋은 결과가 있고 좋은 결과를 남긴다면 좋겠습니다.
천사에게서 놀라운 소리를 듣고서 그 기쁨을 사촌 언니에게도 전한 성모님의 삶에 관해서 우리가 본받을 것을 찾으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