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악이라는 산에 육군대사라는 스님의 제자 성진이 있었다. 그는 스승님의 심부름을 갔다가 불가에서 금하는 음주를 하고 술기운에 깨려고 물가에 갔다. 그곳에서 선녀 여덟 명을 만나게 됐다. 절로 돌아온 그는 방에 앉아서 아까 봤던 아름다운 선녀들을 떠올리면서 속세에서 벗어나 도를 닦는 일은 가치롭지만 따분하다 생각했다. 갑자기 육군대사가 성진을 불렀고 성진이 오늘 한 일과 방금 하던 생각들을 모두 알고 크게 화를 냈다. 성진은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대사는 끝내 절을 떠나라고 했고 성진은 인간 양소유로 태어났다. 양소유는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과거를 보러 떠났고 장원급제했다. 그렇게 벼슬을 하다 사신으로 연나라에 갔고 토번을 정벌한 공을 세워 승상이 됐다. 그동안 여덟 명의 부인들을 만나 결혼했다. 벼슬에서 물러난 늙은 양소유가 부인들과 함께한 100년이 하루 같았다며 덧없는 인생 자신은 도를 얻으러 이곳을 떠나겠다 했고 여덟 부인도 함께 도를 깨치러 가겠다 했다. 그때 한 노부가 찾아와 이제 춘몽에서 깨라 하며 지팡이를 치자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달빛이 들어오는 방에 앉아있었다.
성진은 모든 것이 하룻밤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성진은 인간 세상의 부귀를 바라던 제자를 쫓아내지 않고 하룻밤의 꿈으로 깨닫게 한 육군대사에게 감사해하였다. 여덟 선녀가 절에 찾아왔고 자신들도 도를 닦겠다며 머리를 깎고 제자가 됐다. 대사는 전도를 하러 이곳에 왔지만 다른 곳에 맑은 법을 전하러 돌아갔고 성진과 여덟 비구니는 도를 깨닫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교화시키며 다 함께 극락세계로 갔다.
인간세상의 출세와 부귀영화, 남녀 간의 사랑 모두 덧없고 허무한 일이라는 것이 책의 교훈이다. 구운몽의 메시지는 성진이 하룻밤 꿈을 통해 얻은 메시지와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진과 함께 꿈을 꾸고 함께 도를 깨치게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성진이 절을 떠날 때 울면서 가기 싫어하자 육군대사가 위로하며 했던 말이 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비록 산중에 있어도 도를 이루기 어렵고, 근본을 잊지 아니하면 속세에 있어도 돌아올 길이 있는지라. 네 만일 오고자 하면 내 손수 데려올 것이니 의심 말고 행할지어다."
그러고는 양소유가 정말 오고자 했을 때 비록 그곳이 꿈이었지만 약속대로 손수 데리러 왔다. 책 맨 앞에서 나온 짧은 말이었는데 말 뜻이 좋아서 마지막 챕터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딱 이 대사대로 소유가 100살이 되도록 찾아오지 않았었지만 드디어 직접 불가를 찾아가려 했을 때, 속세에서 근본을 찾고자 했을 때, 오히려 대사가 직접 찾아와 그를 데리러 왔다. 육군대사가 성진이 스스로 찾을 때까지 기다려준 것 같기도 하고 약속을 그대로 지키는 장면이어서 좋았다.
도를 이루는 것도 공부도 신앙도 모두 똑같은 것 같다. 공부할 마음이 없으면 내가 어느 고등학교를 가도 어느 학원에 가도 끝내 성적을 못 만드는데, 공부할 의지가 굳다면 솔직히 교육 인프라 없는 시골에 가도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내 생각에 내 나이와 내가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 수준을 봐서 이젠 비록 내 환경이 타락한 것으로 가득해도 내 뜻이 그렇다면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 가치관대로 살 수 있는 정도가 된 것 같다. 그런데도 해가 갈수록 오히려 물들기도 하고 말씀과 멀어지는 것 같은 내 자신에 아차 싶었다.
100년은 안 살아봐서 100년이 하루 같은지는 모르지만 내가 사는 것이 꿈이 아닌데도 참 하룻밤처럼 짧고 순식간인 것 같다. 얼마 전이었던 작년, 작년의 얼마 전이었던 재작년, 재작년의 얼마 전이었던 재재작년, 이렇게 타고 올라가면 결국 모든 게 방금 전 일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생이 허무하다 느끼는 것 같다. 음미할 새도 없는 것이 시간이니까. 시간이 멈추질 않고 홀라당 지나가버리니 아마 100년을 살아도 똑같지 않을까? 만약 나도 본질에 다가가면 꿈에서 깨어 본질 그 자체인 곳에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룻밤의 꿈일지라도 너무 빨라 허무하게 느껴져도 애쓰면서 살아가는 것은 헛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