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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용 고전詩 모음❤️
❤️간 밤에 우던 여흘 / 원호(元昊)
간밤에 우던 여흘 슬피 우러 지내여다
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우러 보내도다.
저 물이 거스리 흐르고져 나도 우러 녜니라.
-여흘 : 여울, 임과 나의 울음을 연결해 주는 소재로 화자의 감정이 이입되어 있다.
-지내여다 : 지나 갔도다.
-거스리 : 거슬러. 거꾸로.
-흐르고져 : 흘렀으면.
-녜리라 : 흐르리라. 가겠도다. 가리라.
● 전문풀이
간밤에 울며 흐르던 여울, 슬피 울어 흘렀는데
이제야 생각해 보니 임이 울면서 물을 보냈구나
저 물이 거슬러 흐르고져 하는데 나도 울면서 가니라.
● 배경
작자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세조에 의하여 영월에 유배되는 단종을 따라 석실에서 함께 기거하며 지냈다.
그때의 어린 임금을 생각하며 읊은 시조다.
출처 : 청구영언(靑丘永言)
❤️방(房) 안에 혓는 촉(燭)불 / 이개
방(房) 안에 혓는 촉(燭)불
방 안에 켜져 있는 촛불
방(房) 안에 혓는 촉(燭)불 눌과 이별(離別)하얏관대
겉으로 눈물 디고 속 타는 줄 모르는고.
뎌 촉(燭)불 나(我)와 갓트니 뉠가 이별(離別)하얏관대.
방안에 혓는 촉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겉으로 눈물지고 속 타는 줄 모르고
저 촉불 날과 같아서 속 타는 줄 모르도다.
방안에 켜 있는 저 촛불은 누구와 이별을 하였기에
겉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속으로 타 들어가는 줄을 모르는가
저 촛불도 나와 같아서(눈물만 흘릴 뿐) 속이 얼마나
타는 줄을 모르는구나.
《💜창작배경》
세조가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충신들은
단종의 복위를 꾀했습나다. 이개는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유성원, 김질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했으나 김질의
밀고로 계획이 발각됩니다.
결국 이개(李塏 : 사육신의 한 사람)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고 세조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방(房) 안에 혓는 촉(燭)불' 은 그가 죽음을 앞두고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시조 속의 '촉불' 은
자신 즉 이개를 비유합니다.
겉으로 눈물을 흘리는 촉불의 모습은 나라를 잃은 슬픔과
임금(단종)과 이별하는 애통함을 나타내며 속으로 타들어
가는 촉불의 모습은 충절을 지키려는 비장한 결의와 고통을
보여줍니다. 즉 이 시조는 '단조에 대한 변함없는 충정과
비극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느끼는 한(恨)을
절절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 왕방연(王邦衍 1400년대 ?~?)
千萬里(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듸 업서 냇가에 안자이다
져 물도 내 안 갓도다 우러 밤길 녜놋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현대어 풀이】
천만리 머나먼 길에서 떠나와 고운 님(단종)을 이별하고,
내 마음을 매어 둘 곳이 없어 혼자 흘러가는 냇물가에 앉아 있으니,
아! 저 시냇물도 내 마음속 같아서 울면서 흘러가기만 하는구나.
【어구 풀이】
<고운 님> : 사랑하는 임. 여기서는 단종(端宗)을 가리킴.
<여의옵고> : 이별하옵고.
<내 안> : 내 마음.
<예놋다> : 가도다. 가는구나. ‘놋다’는 힘줌을 나타내는 ‘도다’의 옛말.
*💛 왕방연은 조선 전기의 문신(文臣)으로,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왕방연은 조선 세조 때 금부도사(禁府都事)였는데,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된 단종을 유배지인 강월도 영월까지 호송하였다. 이 작품은 단종을 호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은 작품이라고 한다. 왕방연은 단종에게 사약(賜藥)이 내려졌을 때도 사약을 가지고 간 인물로 단종과 비극적인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 사건으로 인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가게 되었을 때 단종은 열일곱 살이었다. 왕방연은 당시 금부도사로 단종을 호송하는 책임을 맡았다. 한때 왕이었던 단종을 영월에 모신 후 돌아오는 왕방연의 슬픈 심정을 이 작품은 잘 보여준다.
초장에서는 임(단종)과 이별한 사실과 이별한 상실감의 정도를 거리로 보여주고 있다. 한양(서울)에서 영월까지 거리가 천만 리나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은이는 ‘천만리 머나먼 길’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임을 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워서 임과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는 표현이다.
발걸음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기 때문에 쉽게 가지 못하는 상황을 중장에서 표현하였다. 임을 두고 가려니 지은이의 마음은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이별의 슬픔과 안타까움, 임을 두고 가야만 하는 죄책감 등으로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냇가에 앉자 흘러가는 냇물을 보며 잠시 쉬려고 하였다.
하지만 지은이의 생각과 달리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왜냐하면 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지은이에게는 마치 사람이 우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종장에서 ‘져 물도 내 안 도다 우러 밤길 녜놋다’라고 하였다. 임과 이별하고 가야만 하는 자신의 심정을 냇물이 아는 것처럼 울며 간다고 하였다. 즉 지은이는 냇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임과 이별한 슬픔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천만리 머나먼’처럼 과장법을 사용하거나, 흘러가는 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수법을 통해 슬픔을 형상화하였다. 이렇게 표현했던 것은 단종에 대한 지은이의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주제는 임과 이별하는 슬픔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유배된 임금을 두고 떠나야 하는 애달픔이라 할 수 있다.
『청구영언(靑丘永言)』, 『해동가요(海東歌謠)』,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등에 실려 있으며, 시조집마다 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원문은 『청구영언』의 표기를 따랐다.
❤️수양산 바라보며 : 성삼문(成三問 1418~1456)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채미(採薇)도 하는것가.
비록애 푸새앳 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
[현대어 풀이]
수양산을 바라보며 백이와 숙제 그들을 한하노라(원망하노라).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고사리를 캐먹었다는 것인가?
비록 푸성귀일지라도 그것이 누구의 땅에 생겨난 것인가? (주나라의 땅에 난 것이 아니던가?)
[창작 배경]
어린 조카 단종을 밀어 내고 자신이 왕좌에 오른 세조에게서 정국공신(靖國功臣)의 호까지 받은 성삼문이었으나, 의롭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 세조의 녹도 먹지 않았다. 이런 심정을 백이와 숙제의 고사에 얽힌 이야기에 비유하여 읊조린 시조이다.
[이해와 감상]
한결같이 충신으로 떠받드는 중국의 백이와 숙제를 오히려 원망하면서, 작자 자신의 곧은 충의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세조 아래에서 단종을 향한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굳게 지키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 수양산 - 중의법, 백이와 숙제가 숨어 살던 중국의 수양산 + 수양대군의 비유적 표현
* 채미 - 중의법, 고사리를 뜯어 캐먹음 + 수양대군이 내리는 녹봉
[정리]
형식 및 성격 : 평시조, 고시조, 절의가(節義歌), 충의가(忠義歌)
표현 : 은유법, 중의법, 풍유법(백이와 숙제의 고사 인용)
주제 : 굳은 절의와 지조
문학사적 의의 : 충신으로 추앙받는 백이와 숙제를 넌지시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절의와 지조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중의법을 사용하여 계유정난의 상황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수법이 뛰어남.
[💛참고]
※ 백이와 숙제를 변호라도 하는 듯한 '주의식(朱義植)'의 시조
"주려 죽으려 하고 수양산에 들었거니
현마 고사리를 먹으려 캐었으랴
물성이 굽은 줄 미워 펴보려고 캠이라."
굶어 죽으려고 수양산에 들어갔는데
설마 그 고사리를 먹으려고 캐었겠는가
고사리의 성질이 꼬부라진 것이 미워서 펴보려고 캐었느니라.
❤️이 몸이 죽어 가서 : 성삼문(成三問 1418~1456)
이 몸이 주거 가서 무어시 될 하니
蓬萊山(봉래산) 第一峰(제일봉)에 落落長松(낙락장송) 되야 이셔
白雪(백설)이 滿乾坤(만건곤)할 제 獨也靑靑(독야청청)하리라
【💜현대어 풀이】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이 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 것인고 하니,
봉래산 제일 높은 봉우리에 우뚝 솟은 소나무가 되었다가
흰 눈이 온 세상에 가득 찼을 때 홀로 푸르고 푸르리라.
【시어 풀이】
<蓬萊山(봉래산)> :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신령한 산. 여름의 금강산을 이르는 말이다.
<第一峰(제일봉)> : 제일 높은 봉우리.
<落落長松(낙락장송)> : 가지가 길게 축축 늘어진 소나무.
<滿乾坤(만건곤)> : 온 세상에 가득함.
<獨也靑靑(독야청청)> : 홀로 푸르름. 홀로 절개를 굳게 지키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 박팽년(朴彭年 1417~1456)
금생여수(金生麗水)ㅣ라 한들 물마다 금(金)이 남여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옥(玉)이 날쏜야.
암으리 사랑(思郞)이 중(重)타 한들 님님마다 좃츨야.
<海東歌謠>
[💜현대어 풀이]
여수에서 금이 난다고 해서 물마다 금이 나겠으며, (여수에서 항상 금이 나오는 것은 아님.)
옥이 곤강에서 나온다고 해서 산마다 옥이 나겠느냐? (모든 산에서 한상 옥이 나오는 것은 아님.)
아무리 사랑이 소중하다고 한들 님마다 다 따를 수 있겠는가? (님에 대한 일편단심을 다짐함.)
[창작 배경]
단종을 쫓아낸 수양대군 섬기기를 거부한 사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박팽년의 작품이다.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해 및 감상]
사육신의 절개와 신념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초 · 중장은 대구적인 표현을 이루는 부분으로 종장에 대한 전제를 이루고 있다. '금(金)'과 '옥(玉)'은 '성군(聖君)'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장은 이 작품의 주제를 표현한 장으로서 앞의 전제에 대한 작자의 자세가 단정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임금을 섬기되 분별없이 여러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 표현 기교로 노래했다. 수양 대군에 의해 쫓겨난 어린 단종에 대한 애끓는 충정을 담아 노래한 작품이다.
* 여수(麗水) : 중국에서 금이 가장 많이 나온다는 강
* 옥출곤강(玉出崑崗) : 옥은 곤강에서 남. '곤강'은 중국에서 옥이 가장 많이 나온다는 곤륜산을 이름.
* 날쏜야 : 나겠느냐, 날 것이냐.
* 암으리 : 아무리
[정리]
성격 : 평시조, 절의가
표현
금과 옥을 성군에 대한 비유로 사용하여 누구나 성군이 되는 것이 아님을 효과적으로 표현함.
초장과 중장의 대구적 표현을 통해 리듬감을 형성함.
설의법을 통해 임금에 대한 일편단심을 강조함.
주제 : 일편단심.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문학사적 의의 : 세조가 단종을 내쫓자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화자가 단종에 대한 변함 없는 충절을 노래한 작품으로, 비유적 표현과 대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자신의 의지를 드러냄.
❤️가마귀 눈비 맞아 : 박팽년(朴彭年 1417~1456)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전문 풀이】
‘까마귀는 본디 검기에 눈비 맞아 희게도 보이지만 본디 모습대로 검구나.
밤에 비치는 밝은 달빛이 밤이라고 하여 어둡겠느냐.
임금님을 향한 한 조각 붉은 마음은 변하지 않고 지키겠노라.’
하는 시조로 단종 복위를 꾀하다 옥중에 갇혀 자신의 본심을 밝힌 작품으로 단종에 대한 의리를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이고 있다.
초장에서 까마귀가 눈비를 맞아 잠깐 희게 보일 때도 있지만 결코 그 본색을 바꾸지는 않다고 하고,
중장에서 밤에 빛나는 밝은 달은 밤이라고 해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야광명월은 자신의 마음이요 밤은 세조가 빼앗은 조정을 말한 것이다.
종장에서 단종을 향한 충성심은 변할 수가 없으니 절개를 지키다 죽겠다는 결의로 마무리하고 있다.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호는 취금헌(醉琴軒)이다. 조선 세조 2년(1456년)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처형된 6명의 충신을 일컬어 '사육신'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저자인 박팽년을 비롯해, 유응부, 이개, 하위지, 유성원, 성삼문이 그들로 대부분 집현적 학자 출신이다.
❤️간밤에 부던 바람 / 유응부(兪應孚 ?~1456)
간밤의 부던 바람 눈서리 치단말가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다 기우러 가노ᄆᆡ라
하물며 못다 픤 곳이야 닐너 므슴하리오
-청구영언(靑丘永言) 절의가(絶義歌)-
간밤의 부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낙락장송이 다 기울어 가노매라.
하물며 못 다 핀 꽃이야 닐러 무엇 하리오.
【💜현대어 풀이】
지난 밤에 불던 바람이 매서운 눈보라와 차가운서리를 몰아치게 했단 말인가?
푸른 절개를 가진 충신들이 모두 쓰러져 가는구나.!
하물며 아직 못다 핀 꽃들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시어 풀이】
<간밤의 부던 바람> : 시련과 고난, 수양 대군(세조)의 포악과 횡포
<눈서리> : 시련과 고난, 수양 대군(세조)의 포악과 횡포(역사적 사실 : 계유정란)
<낙락장송> : 가지가 축축 늘어진 키가 큰 소나무, 조정의 충신
<다 기우러 가노매라.> : 충신들이 숙청되는 부정적 상황
<하믈며 못다 픤 곳> : 젊은 선비와 학사
<이야 닐러> : 말하여
<므슴 하리오.> : 크나큰 시련을 겪고 있음, 설의적
【배경】
사육신의 한 사람인 유응부의 절의가다. 계유정란, 즉 단종 즉위 후 수양대군과 한명회 등이 조정의 중신들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을 전후하여 많은 사람들이 수양대군의 횡포에 쓰러져 갔다. 어두운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며 나라 걱정을 하고 있다.
단종 즉위 후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의 뜻을 품고, 정인지, 한명회 등과 결탁하여 중신들을 죽이고 단종을 폐위시킨 계유정난을 풍자한 것으로, 작자가 그 비참한 사실을 한탄하며 읊은 작품이다.
❤️삼동에 뵈옷 닙고 : 조식(曹植 1501~1572)
삼동(三冬)에 뵈옷 닙고 암혈(巖穴)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西山)에 해 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전문 풀이】
춥고도 추운 삼동(三冬)에 베옷을 입고, 바위틈의 작은 거처에서 눈비를 맞아가며
구름에 덮인 조금의 햇볕의 혜택도 받은 일이 없건만,
서산에 해가 진다하니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구나.
【💛어휘 풀이】
<삼동(三冬)> : 겨울 석 달(시월, 동짓달, 섣달). 한겨울. 엄동(嚴冬).
<베옷> : 삼베로 만든 옷. 유의어는 포의(布衣), 반의어는 금의(錦衣). 포의(布衣)는 벼슬하지 않은 선비를 비유하고(布衣之士), 금의(錦衣)는 출세한 사람을 말할 때 쓴다. 금의환향(錦衣還鄕).
<암혈(巖穴)> : 바위 굴. 바위 구멍의 궁색한 거처. 여기서는 벼슬을 하지 않고 세상을 등진 은사(隱士)가 사는 깊은 산골, 즉 두류산(頭流山) 덕산동(德山洞)을 말함.
<볕뉘> : 햇살. 여기서는 임금의 은총을 뜻함. ‘뉘’는 대단하지 않은 것, 작은 것 따위를 뜻하는 접미사.
<해 지다 하니> : 해가 진다 하니. 중종(中宗)의 승하(昇遐)를 뜻함.
조식(曺植, 1501~1572)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학자로, ‘남명’이라는 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조정의 여러 번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오직 산속에 은거하며 후진을 기르고 학문을 연마하는 삶을 살았다.
이 시조는 그가 두류산에 머무르던 중 중종 임금이 승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느낀 깊은 슬픔을 담아 지은 작품이다. 벼슬하지 않아 임금의 은혜를 입은 적이 없음에도,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유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임금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시심이 표현되어 있다.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에 / 서익(徐益 1542~1587)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에 굴레 벗은 말이 되어
때때로 머리 들어 북향(北向)하여 우는 뜻은
석양(夕陽)이 재 넘어가매 임자 그려 우노라.
【💜현대어 풀이】
녹초 청강상에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 살고 있지만
때로 고개를 들어 북쪽을 향해 우는 뜻은
석양에 해 넘어갔다(임금께서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임금을 그리워하여 운다.
【💛어휘 풀이】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 : 푸른 풀이 우거진 비 갠 강가
<북향(北向)하여> : 임금 계신 곳을 향하여
❤️深山(심산)의 밤이 드니 / 박인로
深山(심산)의 밤이 드니 북풍이 더욱 차다
玉樓高處(옥루고처)에도 이 바람 부는 게오
긴 밤의 치우신가 北斗(북두) 비겨 바래로라.
(💜현대어 풀이)
깊은 산 속에 밤이 드니 북풍이 더욱 차다. 궁벽한 산골에 숨어사는 자신의 처지를 말한 것이다. 임금이 계신 궁궐에도 찬바람은 부는 것인가. 긴 겨울 바람에 춥지 않으실까 하여 임금을 북두성에 견주어 바라노라.
지은이는 임금의 옥루고처를 염려하고 있다. 북두 곧 임금과 왕권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에 뛰어든 충의의 인물이다.
❤️오리의 짧은 다리 / 김구
올해 댜른 다리 학긔다리 되도록애
거믄 가마괴 해오라비 되도록애
향복무강하샤 억만세를 누리소셔
(💜현대 어 풀이)
오리의 짧은 다리가 학의 긴 다리로 될 때까지
검은 까마귀가 흰 백로가 될 때까지
끝없이 복을 누리소서 억만년을 누리소서
* 올해: 오리, *댜른: 짧다, *해오라비: 해오라기
*향복무강享福無疆: 끝없이 오래 복을 누림.
불가능한 것을 노래하고 있는 시조다.
어찌 오리의 다리가 학의 긴 다리가 될 수 있겠는가.
어찌 까마귀의 검은 색이
백로의 흰 색으로 변할 수 있겠는가.
이런 과장된 표현으로
왕의 장수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오면 가랴 하고 : 선조(宣祖 1552~1608)
오면 가랴 하고 가면 아니 오네
오노라 가노라니 볼날히 전혀 없네
오날도 가노라 하니 그를 슬허하노라
<珍本靑丘永言 23>
[💜현대어 풀이]
오면 가려 하고 가면 다시 아니 오네
왔다가 가버리니 만나볼 날 전혀 없네
오늘도 가려고 하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 슬허 : 슬퍼
[시조 해설]
선조 왕이 노진(盧禛)이 벼슬을 사양하고 돌아갈 때 한강을 건너자 이 노래를 지어 은쟁반에 담아 중사(中使)를 보내어 전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신하를 떠나보내는 아쉬운 심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분석]
1. 배경
이 시조는 선조가 조선 선비 노진(盧禛)이 벼슬을 사양하고 떠날 때, 한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고 지은 작품입니다. 선조는 사랑하는 신하를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슬픔을 담아 이 시조를 지었고, 은쟁반에 담아 중사를 통해 전달했다고 전해집니다.
2. 원문 분석
* 초장 "오면 가랴 하고 가면 아니 오네"
임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 중장 "오노라 가노라니 볼 날이 전혀 없네"
만남이 짧고 이별이 길어질 것을 예감하며, 다시 볼 날이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을 드러냅니다.
* 종장 "오늘도 가노라 하니 그를 슬허하노라"
임이 떠나는 오늘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로 인한 슬픔을 애절하게 표현합니다.
3. 주제
이별의 슬픔: 사랑하는 신하와의 이별로 인한 아쉬움과 비통함.
재회의 불확실성: 만남과 이별의 반복 속에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4. 표현 기법
* 반복법: "오면", "가면", "오노라", "가노라" 등의 반복은 이별의 고통을 강조합니다.
* 대조법: 임이 오는 것과 가는 것을 대비하여 만남과 이별의 상반된 감정을 부각합니다.
* 직설적 표현: 화자의 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독자가 공감할 수 있게 합니다.
5. 감정의 흐름
- 초장에서 화자는 임의 방문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 중장에서 만남이 짧고 이별이 길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낍니다.
- 종장에서 결국 임의 떠남으로 인해 깊은 슬픔을 느끼며 마무리됩니다.
6. 작품의 의의
- 선조는 왕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며, 군신 관계를 넘어서는 애정을 보여줍니다.
- 조선 시대 시조 문학에서 흔히 다루어진 '이별'이라는 주제를 대표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7. 결론
선조의 시조 "오면 가랴 하고"는 단순한 군신 관계를 넘어, 인간적인 정서와 이별의 슬픔을 담은 작품입니다. 반복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은 화자의 애절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조선 왕조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조로 평가됩니다.
[💛작자] 선조(宣祖, 1552~1608)
선조(宣祖)는 조선의 제14대 국왕(1567년~1608년)이다. 휘는 연(昖), 초명은 균(鈞),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즉위 전의 작호는 하성군(河城君)이었다.
1. 출생과 즉위
선조는 중종의 서자인 덕흥대원군 이초(李岹)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하동부대부인 정씨이다.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그의 양자가 되어 왕위에 올랐다. 이는 조선에서 최초로 후궁 출신의 왕자가 즉위한 사례였으며, 방계 혈통의 왕이 처음으로 즉위한 사례이기도 했다.
명종은 생전에 하성군(선조)을 총명하고 겸손하다고 평가했다. 즉위 과정에서 인순왕후(명종의 왕비)와 대신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명종의 유지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였다. 하지만 왕위 계승 직후, 명나라의 책봉을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즉위 초기에는 인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이루어졌으나, 1년 후에 친정을 시작하였다. 선조는 즉위하자마자 사림(士林)을 대거 등용하여 훈구 세력을 견제하며 유교 정치 이념을 강화했다.
2. 사림정치와 붕당 형성
조선 중기 이후 사림이 정계의 중심 세력이 되었으며, 선조 때 이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선조는 사림을 적극적으로 등용했지만, 이 과정에서 사림 내부의 분열이 발생하였다.
1575년(선조 8년), 이조전랑 자리를 둘러싸고 김효원과 심의겸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나뉘게 되었다. 동인은 김효원을 중심으로 하여 개혁적 성향을 보였으며, 서인은 심의겸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이후 당쟁이 지속되며, 조선 정치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1589년(선조 22년), 정여립 모반 사건(기축옥사)이 발생하면서 동인이 크게 타격을 입었다. 정여립은 전주 출신의 문인이자 관료였으며, 동인의 주요 인사였으나 역모 혐의를 받으며 숙청되었다. 이후 서인이 정국을 장악하게 되었고,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었다.
3. 임진왜란과 국가의 위기
1592년(선조 2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일본군은 빠르게 한성을 점령했으며, 선조는 개성으로 피신했다가 의주까지 후퇴하였다.
조선의 대응은 초반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훈련된 상비군이 부족했고, 조정 내부에서는 대응책을 놓고 논란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순신, 권율, 김시민 등의 장군과 의병들의 활약으로 전황이 점차 호전되었다. 특히,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한산도 대첩 등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며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1593년,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일본군은 평양과 한성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하였다. 이후 정유재란(1597년)이 발생하였으나, 이순신의 명량해전 승리와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인해 일본군은 철수하게 되었다.
4. 전후 복구와 정치적 혼란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국토가 황폐화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선조는 재건 정책을 추진했으나, 전쟁 중에 발생한 당쟁이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전쟁 당시의 공로를 둘러싸고 서인과 동인(특히 북인)이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으나, 인목왕후의 아들 영창대군을 편애하면서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커졌다. 결국, 선조는 정치적 불안 속에서 1608년 2월 1일(음력) 승하하였으며, 광해군이 즉위하였다.
5. 평가와 유산
선조는 조선 역사에서 중요한 국왕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당쟁을 방치하고 국가적 위기(임진왜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전란 속에서 명나라의 원군을 요청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등의 조치는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재위 기간은 조선 정치가 붕당정치로 굳어지는 시기였으며, 동시에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이러한 점에서 선조는 조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군주로 평가된다.
❤️이시렴 부디 갈다 / 성종(成宗 1457~1494)
이시렴 부디 갈다 아니 가든 못할소냐
무단(無端)히 네 슬트냐 남의 말을 들엇느냐
그려도 하 애돼라 가는 뜻을 일러라.
[💜현대어 풀이]
있으렴 꼭 가겠느냐 아니 가진 못할쏘냐
까닭없이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너무 애닯다 가는 뜻을 말하거라
[💛어휘 풀이]
* 이시렴 : 있으렴.
* 갈다 : 가겠느냐
* 가든 : 가지는.
* 슬트냐 : 싫더냐
* 그려도: 그래도
* 하 : 많이, 하도
* 애도래라 : 애닯구나
[창작 배경]
성종 임금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고, <여지승람>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던 유호인이란 신하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합천 군수가 되어 떠나려고 벼슬을 내놓았을 때, 성종이 만류하여도 받아들이지 않아 석별의 연회를 베풀어 주면서 읊은 노래이다.
[이해와 감상]
작품 전체의 내용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노래로, 임금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법도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인정미가 넘치는 작품이다. 이것은 임금의 신하에 대한 태도라기 보다는 차라리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태도와 진배없다. 중장과 종장에 이르러서 그 귀향의 연유를 확실하게 알고자 하는 작자의 간곡함이 잘 나타나 있다.
짧은 노래 안에 군신 간의 끈끈한 애정, 인간미 넘치는 성품 등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리]
성격 : 고시조, 평시조, 회유가, 유교적 군신유의
표현
① 문답법, 직설적 표현
② 임금이라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번 신하의 의사를 묻는 방식으로 간절한 심리를 드러냄.
주제 : 신하를 떠나보내는 임금의 안타까운 심정(석별의 정)
문학사적 의의 : 작가가 봉건 왕조 시대의 최고 권력자인 임금이라는 점에서 시조의 창작 계층이 다양했음을 알려주며, 군신유의라는 덕목을 잘 구현함.
[💛작자]
성종(成宗 1457~1494) : 조선 제9대 임금. 학문을 즐기고 유학을 장려하였으며 經國大典, 樂學軌範, 杜詩諺解, 東國與地勝覽, 東文選, 東國通鑑 등을 편찬케 하였다.
[왕실(王室) 풍류(風流)의 대명사(代名詞)] : 월산대군(月山大君)
때는 이화(梨花) 도화(桃花)가 만발하고 두견화(杜鵑花)가 한양성(漢陽城)을 둘러 붉게 물들인 춘삼월 호시절, 지금 연경궁(현재의 안국동)에 위치한 풍월정(風月亭)에선 봄꽃보다 아름다운 잔치판이 흥겹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잔치 자리의 주인공은 두 사내와 한 여인, 불과 세 사람에 불과 하지만 그들의 노랫소리와 호탕한 웃음소리는 봄꽃과 산새들의 아름다운 우짖음마저도 주눅 들게 하고 있다.
풍월정(風月亭) 진실로 아름다운 정자 이름으로서 이곳에서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거의 예외 없이 이런 잔치판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주인공도 언제나 세 사람이었으니, 한 사람은 조선의 제 9대 임금인 성종대왕이요, 마주한 사람은 그의 형님인 좌리공신 월산대군(月山大君)이니, 이 아니 놀라운 자리인가? 천지가 경동(驚動)할 그 자리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여인인 즉 바로 성종 임금의 애기(愛妓)인 소춘풍(笑春風)인바 그녀는 바로 영흥의 명기(名妓)로서 선상기(選上妓)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여인이었다.
가장 화기애애하고 즐거우며, 인세(人世)의 근심걱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풍월정의 이 자리가 있기까지는 한두 마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숱한 사연을 그 뒤에 담고 있다.
수양대군, 세조의 맏아들은 의경세자(뒷날 덕종으로 추존됨)로서 시서화(詩書畵)에 능했으나, 월산대군과 자을산군의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약관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때문에 세조의 사후에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이 왕세자로 책봉되고 대통을 잇게 되지만, 그의 나이가 어린 까닭에 어머니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희왕후는 불도에 귀의한 까닭에 예종의 장인인 훈척(勳戚) 한명회가 권력을 쥐게 되었으니, 한명회는 자을산군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한편 예종은 몸이 약하여 즉위 원년(元年)을 넘기면서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만다. 그러나 예종에겐 두 아들과 한 명의 공주가 있었다. 당연히 그 아들이 왕권을 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한명회의 영향력은 여기에서도 작용한다. 이제 왕권은 의경세자의 맏아들인 월산대군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 동생 자을산군은 당대에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한명회의 사위였다. 결국 월산대군의 몸이 허약하다는 미명하에 왕권은 자을산군에게 넘어가게 되니, 그가 바로 성종이며 이때 성종의 나이 불과 열세 살이었다.
왕권을 이어받아야 할 왕세자가 그 대통을 이어받지 못하게 될 경우, 그의 일생은 여염집 남정네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목숨도 보장받지 못하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운명에 놓이는 경우도 흔한 일이었으니, 우리는 단종이나 영창대군의 경우를 통하여 그러한 예를 보아 왔다.
그러나 성종은 덕인(德人)으로서 인간미가 풍부했던가 보다. 비록 본의와는 관계없이 왕권을 잇게 되었지만, 형님인 월산대군에게 항상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즉위 후 2년째 되던 해에는 월산대군을 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에 책봉하고, 전지와 노비 등을 하사하였다. 뿐만 아니라 월산대군에게 풍월정이란 호를 하사하고 지금 잔치판이 벌어지고 있는 풍월정(風月亭)을 짓게 하였으며, 이곳에서 오늘과 같은 잔치를 종종 벌리고 있는 것이다.
술잔이 한 순배 돌면서 좌중은 술이 거나해졌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성종 임금이 곁의 여인에게 잔을 건네면서 말을 잇는다.
“거 봄바람의 미소가 훈기를 불러오는구나. 하늘엔 춘삼월의 보름달이 걸려 있고.... 봄바람이 있고, 밝은 달이 있는데 어찌 한 가락의 창이 없을쏘냐? 소춘풍아, 어디 한 자락 읊어 보렷다.”
소춘풍은 이미 성종임금과 남남이 아닌 사이였다. 성종은 미복잠행(微服潛行)을 빌미로 하여 소춘풍의 집을 한밤중에 찾아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눈 사이였지만, 월산대군이 그런 내막을 알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소춘풍은 선상기로서 성종의 총애를 독점하고 있기에 조정의 모든 잔치에 동석하므로 성종과 월산대군의 내면세계까지도 이해하는 입장이다.
“상감마마, 황공하옵니다. 감히 풍월을 벗할 수 있을지 모르겠아오나, 한 자락 읊어 올리겠나이다.”
제(齊)도 대국이요 초(楚)도 대국이로다
조그만 등(縢)국이 간어제초(間於齊楚)하였으니
두어라 이 다 좋으니 사제사초(事齊事楚)하리라.
제 나라도 큰 나라이며 초 나라도 큰 나라이로구나
힘없고 작은 등 나라가 제나라와 초 나라 사이에 끼었으니
아아, 그러나 제나라도 좋고 초나라도 좋으니 이 모두를 섬기리라.
이 얼마나 재기 넘치는 노래인가? 과연 성종의 총애를 받을 만한 조선의 명기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기지(機智)를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연인이신 성종 임금도 훌륭하고 그 형님인 월산대군도 걸출한 대장부이시도다.
작고 하찮은 계집 소춘풍이 두 분을 모시고 앉아 있거늘
아아, 어찌하여 한 분의 뜻만을 좇을 수 있으리오. 두 분 모두 섬기오리니, 즐거움과 우애가 넘치는 자리 되시옵소서.
“허허, 과연 듣던 대로 명기에 명창이로고. 상감께 주청(奏請)드리오. 어찌 이런 자리에서 상감이신들 한 곡조 화답이 없으오리까? 제 보기에 상감을 향한 소춘풍의 눈빛이 예사롭지 아니하오이다.”
“허허, 형님께선 별말씀을 다 하시옵니다. 모처럼 하시는 형님의 청 이시온 즉 제가 한 자락 읊어 보오리다.”
이시렴 부디 갈다 아니가든 못 할쏘냐
무단(無斷)히 네 슳드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려도 하 애닳아라 가는 뜻을 일러라
성종은 성군(聖君)으로서 25년의 재위 기간에 숱한 치적을 남긴 임금이다. 태조(太祖)에 의해 조선이 건국된 이후, 조선의 모든 문물제도는 성종 때에 이르러 거의 완성되었으며, 백성들은 건국 이후 최대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한 임금이 형님인 월산대군과 사랑하는 소춘풍 앞에서 부른 노래이다. 소춘풍의 노래에 풍자와 기지가 담겼듯이 성종의 이 노래는 중의적(重意的) 표현이 두드러지니, 이 노래는 소춘풍과 월산대군 두 사람 모두를 향한 하소연이라 할 수 있겠다.
소춘풍아 굳이 떠나야만 하겠느냐 아니 가든 못하겠느냐
공연히 내가 싫어졌느냐 이간질하는 말을 들었더냐
그래도 많이 애닯구나 가는 뜻을 일러라.
형님 꼭 떠나시렵니까? 언제까지나 제 곁에 함께 할 수는 없으십니까?
공연히 아우가 싫어졌습니까? 이간질하는 신하가 있었습니까?
만약 떠나신다면 너무도 애닯습니다. 부디 제 곁에 함께 하소서.
성종의 이 노래를 듣고 이런 뜻을 못 알아들을 소춘풍이 아니며, 월산대군도 아니겠다. 역시 월산대군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잠시의 침묵을 깨면서 분위기를 북돋운다.
“허허, 역시 상감이시구려. 국사에 분망하실 터임에도 어찌 이리 음률까지 능통하시오니까? 탄복, 그저 탄복뿐이로소이다.”
그러나 그 순간 소춘풍의 얼굴에 쓸쓸한 빛이 번개보다 빠르게 스치고 지나감은 웬일일까? 어쩌면 성종의 노래를 ‘네가 떠날 때가 되었다’는 암시쯤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그러나 소춘풍의 그런 낌새는 두 사람 모두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형제지간의 우애를 다지기에 여념이 없을 무렵 소춘풍이 월산대군에게 고한다. 역시 구슬이 구르는 듯한 음성이다.
“대군마마, 탄복만 하실 일이 아닌가 하옵니다. 상감마마께옵서 창을 읊으셨사오니 화창(話唱)이 있으셔야 하실 줄로 아옵니다.”
“허허, 소춘풍아, 그랬구나. 너무도 유쾌한 자리이기에 내 잠시 상감께 결례(缺禮)를 했구나, 허허. 상감, 송구하오이다. 내 한 자락 읊어 보리다.”
“허허. 형님의 창(唱)이야, 궁궐은 물론 장안(長安)에 자자한 솜씨가 아니옵니까? 어디한번 경청하겠습니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월산대군은 항상 낚시를 즐겼다. 강태공(姜太公)은 곧은 바늘을 늘어뜨려 세월을 낚으면서 때를 기다렸고, 마침내 세상을 얻는 자리에 이르렀지만, 월산대군의 낚시는 경우가 다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왕위 계승을 위한 암투(暗鬪)는 치열했었다. 특히 세조, 예종, 성종 연간의 왕위 계승 싸움은 더욱 치열했으니, 그것은 한명회를 비롯한 훈척들의 창궐(猖獗)에서 비롯된다.
이와 같은 왕위 계승 싸움에서 밀려난 왕족은 재상집의 자제만도 못한 슬픈 운명을 짊어지고 무거운 삶을 꾸려가야 했으며, 때로는 그 목숨까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월산대군의 낚시는 바로 이러한 것으로 부터의 도피행각 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세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단언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결국 그의 모든 행위는 풍류와 직결된다.
가을 강이다. 배를 띄운다. 달이 휘영청 밝다. 낚시를 드리우지만 고기는 물지 않는다. 그러나 고기가 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에 대수이랴, 월산대군은 이미 인생의 강에서 산을 낚고, 강을 낚고, 달빛까지 낚아 한 배 가득 싣고 돌아오는 중인 것을.
“허허. 형님의 창은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역시 명창이십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성종은 이미 월산대군의 내면의식을 이해하고 있다. 가을강의 차가운 물결이 무엇인 줄을 알고 있다. 물지 않는 고기가 무엇을 뜻하는 줄도 알고 있다. 당연히 형의 것이어야 했던 왕권, 그리고 그것의 상실, 그로부터 비롯된 상실감의 크기가 어떤 것인 줄을 성종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실감을 무심한 달빛으로 극복하고 무욕의 경지에서 삶을 꾸리며 성종으로 하여금 성군이 되어 주기를 염원하는 형님의 심정을 성종은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으며, 그러기에 성종은 형님인 월산대군에게 풍월정이란 호와 함께 정자를 지어 하사하여 오늘과 같은 잔치를 종종 베풀면서 형제간의 우의를 다져갔고, 그것은 곧 국태민안(國泰民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성종과 월산대군이 보여 준 형제간의 우애, 그것은 오로지 풍류 정신에 바탕을 둔 정신적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풍월(風月)이 무엇이던가? 풍월이란 바로 풍류(風流)가 아니던가. 따라서 풍월정이란 풍류를 누리는 정자이니, 왕권과 풍류를 맞바꾼 월산대군이야말로 왕실(王室) 풍류의 대명사라 이를 만하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로서의 풍류, 그것은 왕권까지도 초월하며,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원동력(原動力)이 되기도 하는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