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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불변한 언약을 따라 (렘2-34)
2026년 10월 23일 (금요일)
찬양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본문 : 예레미야 34:1-22절
☞ https://youtu.be/blWn_a-8bNE?si=_Znh2G6TuXPDBWFZ
어제 목회사관학교 7주 차 수업이 마쳤다. 수고하신 강사님들과 사관생도들을 마음 다해 축복하고 기도한다.
오늘은 김성일 목사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금요 한마음 기도회가 진행된다. 모든 시간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충만한 은혜가 모두에게 넘치는 시간이 되고, 수고하시는 강사님께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과 지혜와 은사가 충만하시기를 기도한다.
이제 내일 11시, 나는 16년간의 전반전 사역을 마치며 은퇴하고 새로운 후반전을 향해 파송을 받아 나아간다. 여러 감정이 나의 마음에 교차하고, 아내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굳게 믿지만, 당장의 낯선 현실이 주는 두려움을 떨쳐내는 데에는 역시나 연약하고 미숙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우리를 붙잡아 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여전함을 믿기에 흔들릴지언정 결코 주저앉지 않고, 우리는 주님이 정하신 그 길을 묵묵히, 그리고 멋지게 걸어갈 것이다. 오늘은 내일 있을 은퇴 설교를 마무리하고 주일 사역과 부흥회 준비 등 여전히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모든 시간 주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 주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자로 이 하루가 온전히 감당되기를 소망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34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1절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전면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시드기야 왕 통치 말기의 긴박한 상황이다. 이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시드기야 왕과 예루살렘을 향한 계획을 알려주신다.
성은 불탈 것이고, 왕은 바벨론 왕과 대면하여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평안히 죽을 것이며" 왕의 장례를 치러주겠다는 자비가 섞인 예언을 전하신다.
이때의 절망적인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7절
‘그 때에 바벨론의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들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한때 46개가 넘던 유다의 견고한 요새들이 다 함락되고, 이제 수도를 제외하면 라기스와 아세가 두 곳만이 남아 숨을 헐떡이는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계속 말씀을 전해주고 계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는 심판 중에도 회개와 순종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요 소망의 선포였다.
그러나 시드기야와 고관들은 이 하나님의 본심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들은 그저 당장 하나님의 환심을 사고, 포위망 속에서 노비들에게 먹일 양식조차 줄여보려는 얄팍한 계산으로 히브리 남녀 노비들을 풀어주는 해방 언약을 맺는다. 9절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마지못해 율법에 순종하는 '척'을 한 것이다. 그러나 돕기 위해 출정한 애굽 군대의 등장으로 바벨론 군대가 잠시 포위를 풀고 물러가자, 그들은 즉각 태도를 돌변한다. 11절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상황이 나아지자마자 은혜와 언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참으로 얄팍하고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이 모든 기만을 지켜보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의 행위가 곧 '내 이름을 더럽힌 것'이라며 엄중히 책망하신다. 16절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얄팍하게 나 자신을 지켜가려는 욕망에 종노릇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유불리와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는 이 간사한 태도가, 바로 죄로 타락한 우리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임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오늘 내 안에도 이런 마음이 도사리고 있어 상황에 따라 언제든 돌변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그러기에 더욱 겸손히, 지금도 불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에 나의 시선을 고정하며, 변함없이 말씀에 순복하는 하루가 되기를 다짐한다.
이러한 인간의 기만을 향해, 하나님은 매우 역설적이고도 두려운 '언어유희'를 섞어 무서운 심판을 선언하신다. 17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하나님은 억압받는 동족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다시 빼앗아버린 그들을 향해, "너희가 자유를 주지 않았으니, 이제 내가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너희를 마음껏 칠 '자유'를 주리라"는 참으로 소름 돋는 역설적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다.
어쩌면 노비들을 풀어주는 이 해방 언약은, 멸망 직전의 유다에게 하나님이 내미신 '마지막 회복의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이 조금 나아지자마자 그 언약을 가볍게 깨뜨려버림으로써, 마지막 은혜의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리고 무서운 심판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말았다. 18절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시드기야와 백성들은 위기를 모면하려는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자신들이 직접'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갔다. 그러나 인간의 결단은 얄팍한 고무줄과 같았고, 결국 상황이 바뀌자 계약을 파기해 버렸다. 이 계약 파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입술로 맹세한 저주대로 바벨론의 칼에 쪼개지는 참혹한 심판을 당하고 만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창 15장)의 장면이 생각난다. 인간은 자신의 얄팍한 의지와 다짐으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지만, 그 끝은 언제나 변덕과 파기, 그리고 심판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절대 그 언약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음을 아셨다. 그래서 그 언약을 맺으실 때 아브라함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타는 횃불'로 임재하신 하나님 홀로 그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다.
그 이유는 "네가 연약하여 이 언약을 깨뜨리더라도, 그 쪼개지는 저주와 형벌은 내가 다 감당하겠다"는 위대한 은혜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당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러주셨다.
이 놀라운 은혜의 언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의를 내세우며 스스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갔고 결국 처참한 결말을 맞았다. 22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주님은 오늘 낯선 길 앞에 선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당장의 현실이 주는 막막함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연약함이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신뢰하고 붙잡을 것은, 얄팍하게 변하는 나의 환경이나 다짐이 아니라 홀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신 주님의 '영원불변하신 은혜의 언약'뿐이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부르는 이 찬송(370장)의 가사가 내 남은 삶, 그리고 새롭게 걷게 될 후반전의 영원한 결론이 되기를 소망한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험악하여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나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자로 아브라함의 언약안에 있음을 선포하며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은혜의 새로운 존재임을 믿고 믿음으로 후반전도 주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주님, 이 종을 받아주소서.
한줄 묵상 :
<상황에 따라 요동치는 나의 얄팍한 다짐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해 친히 쪼개지신 십자가의 영원한 은혜만을 굳게 붙들고 나아갑니다.>
적용 질문 :
1.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만 엎드리고, 위기가 지나가면 곧바로 세상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고무줄 같은 신앙'의 모습이 내 안에는 없습니까?
2.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홀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신 주님의 '횃불 언약'을 생각할 때, 지금 내 삶의 두려움과 염려를 어떻게 주님께 맡겨드릴 수 있을까요?
3. 내일이면 낯선 자리로 나아가는데 "내 앞길 험악하여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라는 찬양의 고백을 끝까지 부르며 살아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