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봉뵈르가 말하기를 이 원 세상에는 더 이상 시가 없다고 생각되나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커튼을 열었다고요? 점점 얇아진 살갗이 나일론 질감으로 변했다고요? 파란 핏줄을 맞닥뜨렸다고요? 내내 질려 있었구나 엄마의 음성을 들었다고요? 빨간 혀를 그려 넣고 펼쳐진 곳만 보면 우산이라고 불렀다고요? 사소한 규칙이라도 어길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고요? 그런데도 아직도 볼은 붉어지고 귀는 빨개진다고요? 소금을 얼마나 잘 쓰느냐가 시간의 맛을 결정하죠 해풍 속에는 고소하고 쫄깃하고 미끌거리는 단맛이 들어 있죠 구름이 열어놓은 옷장에 들어가 봐요 가도 가도 벽일 땐 모국어도 노래도 없이 모든 날들은 밤으로부터 이어 붙여 봐요 숨어 있을지 몰라요 잠봉뵈르, 발로 땅을 힘차게 밀치고 있었다니까 싱싱한 흙냄새를 킁킁거리는 코였다니까 잠봉뵈르, 부르면 잠봉뵈르와 꼭 닮은 그들이 우르르 돌아본다니까 원래 이 모양으로 태어난 걸 그러니까 잠봉뵈르의 말은 다른 것을 한 곳에 포개겠다는 한 접시를 여럿이 나눠 먹는 동작을 멈추지 않겠다는 튿어진 실밥 같은 눈을 부릅뜨는 연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런 줄줄이 탁구공이나 메추리알을 밀어내는 입이었는데 뱉는 것은 낳는 것과 같아서 꼬물거리는 살들이 소름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잠봉뵈르, 그가 말하기를 이제 안녕히 계세요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돈으로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속도로 흘러나왔던 것이다. 잠봉뵈르 그에게서 그럼 이제 꿈과 잠을 오가던 미지근해서 양쪽 어디에도 속할 수 없던 그림자에서 펄쩍펄쩍 뛰면서도 지평선처럼 안을 넓혀가던 흘러내리는 것이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던 오늘을 떠받들고 있던 사테 우리의 잠봉뵈르가 사라진단 말인가 그럼 잠봉뵈르만 사라진단 말인가 인사를 받으면 꼼짝없이 여기 있으란 말인가 순식간에 남겨지게 됨으로써 남겨지는 우리에게는 잠봉뵈르 이름 붙일 수 없음으로써 금방 울거나 금방 웃을 것 같은 얼굴을 동시에 내보이는 익살스러운 존재에게 붙여지는 이름 일그러진 안으로 반죽하기를 좋아하는 존재에게 붙여지는 이름 종이로 깃발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가지에서 홀연히 떨어지는 나뭇잎을 서슴없이 날개의 재료로 삼는 존재에게 붙여지는 이름 잠봉뵈르에 속할 수 없음으로써 마지막 순간이야 눈을 부릅뜨고 봐 마지막이라고? 절박해 보이지 않는데 금방 사라질 것 같은데 따라가자 이미 사라졌어 잠봉뵈르 잠봉뵈르 아악 나는 아직 발이 붙어 있어 내 발은 열매로 변했어 디딜 수 없는 결실을 맺었다고 꿈이라면 맹렬하게 페인트칠을 하자 빛이란 빛은 모두 막아버리자 시라는 발음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문이라는 농담의 표정이 뭉개지도록 완벽한 절망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으로써 —계간 《창작과비평》 2025 봄호 --------------------- 이원 / 1968년 경기 화성 출생. 1992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사랑은 탄생하라』 『나는 나의 다정한 얼룩말』 등.
잠봉뵈르(Jam bon-beurre) : 햄과 버터, 프랑스의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 프랑스를 대표하는 맛의 샌드위치. —카페지기 씀. |